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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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7일 토요일

조악한 모델링 ;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항상 독점화의 길을 걷는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필연적으로 독점으로 귀결되고 만다는 주장은 오늘날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굉장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어딘가 모르게 그럴싸한 선동 문구처럼 보이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독점이 사회적으로 나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독점은 사회 후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만약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독점화를 막을 수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체제 속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좋든 싫든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입장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나서는 저 주장에 대해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망설임의 근원은 그 주장이 나오게 된 출발점에 있다. 자본주의가 그 발전 경로에 있어 반드시 독점 자본주의로 가고 말 것이란 주장은 애초에 칼 맑스 계열 경제학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주의에 대해 맹목적인 비난을 일삼아야만 하는 역사적 배경을 지닌 곳에서 그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상과 사조를 떠나서, 자본주의가 정말 필연적으로 독점으로 귀결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실에서 많은 산업은 독점화, 혹은 과점화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독점 시장은 자동차 시장이다. 물론 외국 기업과의 경쟁을 무시할 수 없지만(현대/기아차 그룹의 경쟁 상대는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외국 경쟁업체들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해외시장에서의 이야기다) 그걸 감안하고서도 현대/기아차 그룹은 내수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몇몇 IT 기업들은 일국 수준이 아니라 세계시장 전체에서 독점 구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를 상대로 천문학적인 부를 쌓아올리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애플과 삼성전자 역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시장의 독점적 선두주자들이다.
 
  기존에 이미 이에 대해 직,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이론들이 많지만, 그를 굳이 반복하여 설명하는 대신 새로운 모델링을 통해 독자적으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간단한 모형을 설정해보고자 한다. 초기에 시장에 N개의 기업이 존재하고 있는 일종의 다기간 적자생존 모형을 상정한다. 각 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가격 변동이다. 여기서 경기 침체라 함은 총수요 감소뿐만 아니라 그 시장에 대한 수요의 감소가 가격의 감소로 이어진 상황까지도 포괄한다. 이를 간단히 수요 쇼크라 명명한다. 처음 시장에 존재하는 N개의 기업들은 모두 동질적이며, 각 기간 사이에 독립적이며 동일한 분포를(i.i.d.) 지닌 생산성 변동을 겪는다고 가정하자. 이 때 생산성 변동의 평균은 0이고, 그 변동은 한계비용의 상승 혹은 하락으로 나타난다. 이를 간단히 생산 쇼크라 명명하자. 분석의 단순화를 위해 이 생산 쇼크는 수요 쇼크에 직면했을 때 드러나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시장에 수요 쇼크를 주면, 시장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고정비용 전부가 회수가능하다면 시장 이탈 조건은 AC > P가 되므로 큰 음의 생산 쇼크를 겪어 이 조건에 해당되게 된 기업들은 시장에서 이탈한다. 이 때, 보유하고 있던 생산 시설은 큰 양의 생산 쇼크를 겪어 잉여를 남긴 기업들에게 매각한다고 가정하자. 수요 쇼크로 수요량은 줄어들지만 그들 기업들은 쇼크 이후를 내다보며 유휴 생산시설을 보유하게 된다고 보자. 이제 수요 쇼크 이후 시장에 남은 기업 숫자는 M개다. (M < N)
 
  다시 수요 쇼크가 회복 되도 새로운 시장 가격은 기존 가격보다 낮은 수준에서 형성된다. 시장 가격이 산업 전체의 평균 한계비용과 같은 수준에서 결정된다면 이 값은 초기 조건에서 주어진 동질적인 MC보다 낮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수요량이 늘어나지만 수요 쇼크기에 생산시설을 매입한 기업들이 유휴 생산시설을 가동하여 감당하기 때문에 생산량 증가에 따른 한계비용 상승은 없다고 본다) 만약 새로 진입하는 기업이 초기 조건과 같은 생산 함수에 직면한다면 이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 먼저 시장에 진입하여 수요 충격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생산성 측면에서 신규 진입 기업보다 앞서나가 일종의 진입 장벽을 세우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새로운 충격이 찾아오기 전까지 시장 내 기업 숫자는 신규 진입 기업 없이 M개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 M개의 기업들은 모두 동질적이지 않다. 생산성은 각 기업마다 모두 다르며, 기업의 규모는 그 생산성에 비례한다고 가정하자.(수요 쇼크 당시 시장에서 이탈하는 기업들로부터 생산시설을 매입할 때 그 매입 여력이 생산성에 비례할 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또 각 기업이 직면하는 생산성 쇼크의 확률 분포 역시 서로 같지 않다고 보자. 평균이 0인 것은 동일하나 그 분포가 달라진다. 규모가 더욱 커진 기업들이 더 큰 분산을 지니는 것으로 가정한다. , 규모가 더욱 커진 기업들이 더 큰 생산성 변동 폭에 직면한다. (이와 같은 가정은 기업의 규모가 더 클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생산성 관련 투자 활동에 나설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 나왔다)
  이와 같은 설정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수요 쇼크에 직면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확률적으로 본다면 처음부터 치고 나간 기업군이 끝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생산성 쇼크의 기댓값이 0이므로 동일한 수요 쇼크에 직면했을 때 처음부터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확보해둔 그룹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단적인 예를 들어, 수요 쇼크가 가장 생산성이 앞선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준으로 크게 들이친다면 시장은 순식간에 독점 시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초기에 운이 좋아 좋은 출발점에서 게임에 임하게 된 기업은 (물론 크게 망할 가능성도 있지만) 더 크게 치고나갈 가능성을 지니며 본전만 찾아도 다음 기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초기에 운이 좋지 않아 좋지 않은 출발점에서 게임에 임하게 된 기업은 대박이 나도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을만한 여력이 크지 않다. 더 나빠질 경우 버티지 못할 것 역시 자명하다. 여기에 만약 처음부터 앞선 생산성 조건에 있는 기업들일수록 생산성 변동 폭의 기댓값이 커진다고 가정하면(선도 기업이 앞서나갈 가능성이 더 크다고 가정하면) 수요 쇼크가 반복될수록 시장 내 기업 숫자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이 분석 틀에 따르면 결국 처음에 우연적으로 좋은 출발점을 얻은 기업은 해당 시장,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얻게 될 확률이 높다. 물론 이와 같은 틀로 모든 독점 기업, 혹은 산업군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처음에 얻은 (어찌 보면) 우연적 우위를 잃지 않고 잘 살려 지금까지 온 것만큼은 분명하다. 선도 기업은 분명 그 뒤를 좇는 기업들보다 유리하다. 추격 기업에 밀려 독점적 지위에서 내려앉은 코닥, 노키아, 소니 등 수많은 선도 기업들의 사례도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선도 기업이 추격 기업을 밀어낸 사례가 더 많다.
 
  특히 위 모형은 1997IMF 구제금융 당시 한국의 수많은 구조조정 사례를 살펴보는 데 조금이라도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당시 한국은 정말 거대한 수요 쇼크에 직면했다. 그 수요 쇼크를 맞아 수많은 굴지의 기업들이 무너졌고, 그 끝에 살아남은 기업들은 각 산업군에서 독과점 지위를 확립할 수 있게 됐다. 어찌 보면 그 무렵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이 모형이 예측하던 전개와 꼭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필연적으로 독과점 형태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가? 그동안 모형을 상정하여 독과점화에 대해 길게 설명했지만, 사실 그 결과는 분명치 않다. 모형 자체가 많은 비현실적인 가정을 바탕으로 한 단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한 개의 기업으로 시작하지 않고 N개의 기업으로 모형이 시작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초기 N개의 동질적인 기업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가? 생산성 변동이 각 기업 사이에 파급되지 않고 한 기업에만 적용된다는 것 역시 비현실적이다. 지적 재산권 제도가 보호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술 모방 등이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 설명력이 떨어진다. 또한 수요 충격이 음의 충격만 등장하고 있다는 점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 양의 수요 충격이 등장했을 때는 새로운 전개도 가능할 것이다. 또 사양 산업과 같이 음의 수요 충격이 원래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 경우는 설명할 수 없다. 처음 N개의 기업 이후로 신규 기업 진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역시 현실과 어긋난다. 산업 간 기업의 인수 합병이 산업 내에서만 이뤄져야 할 이유도 없고, 그 인수 합병이 꼭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리란 보장이 없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이러한 수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만약 위 모형이 현실의 어떤 단편적인 측면이라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위와 같은 조건들이 만족됐을 때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시장은 독점화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오늘날 마주하고 있는 몇몇 독점 산업군은 그와 같은 과정 끝에 탄생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 위 모형에서는 확률적으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 역시 제시하고 있다. 잘 나가는 기업이 항상 잘 나가는 게 아니고, 못 나가는 기업이 항상 못 나가는 게 아니라면 꼭 시장이 소수 기업의 전유물로 전락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댓글 1개:

  1. 예전 경제사 시간에 들은 강의내용이 생각나네요
    우리는 흔히 미국을 기업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반 대기업 정서가 미국에 팽배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거대한 스탠다드 오일을 공중분해 시킨 것만 보더라도 독과점에 대한 미국민들의 노이로제(?)가 있었다고 하나요. 당시 미국은 연방 정부의 크기와 역할이 매우 제한된 반면 기업들은 점차 거대해 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견제심리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과점의 모든 경우에서 폐해가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일시적인 기술 독점이 경제 발전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되었으며 (Schumpeterian View, 특허권 등등) 상대적으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면서 대기업에 대한 반감도 점차 누그러졌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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