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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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30일 목요일

선생님 밥그릇




 요즘 대학생들은 밥그릇 걱정이 참 많습니다. 새내기 때부터 난 나중에 뭘 먹고 사나 걱정하지요. 많고 많은 밥그릇 가운데 오늘은 초등학교 선생님 밥그릇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기존 초등 교사 임용 시험에서는 서울의 경우 8점 지방의 경우 6점의 지역 가산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이 가산점을 올해 11월 시험부터 3점으로 축소하기로 발표하여 말이 많다고 합니다. 사실 서울뿐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이제부터는 가산점을 동일하게 3점만 지급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닥친 제도 변화에 서울교대 학생들은 민감하게 저항하고, 여기에 지방교대 학생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라며 비난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다같이 자기 밥그릇 걱정에 바빠 이웃의 밥그릇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는 요즘, 교사가 꿈이 아닌 독자는 처음 듣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잠깐의 짬을 내어 과연 어느 쪽이 맞는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애초에 이 제도가 생긴 목적은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을 막고 지방교대/사대를 육성하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목표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방교대에서 길러진 교사들이 그 지역에 남아 직장을 잡도록 하자는 취지이지요. 나머지 하나는 지방의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로만 빠져나가지 않고 자기 지역 교대에서 교육받도록 하자는 취지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지역 가산점 제도는 이러한 역할에 적합했을까요?

 우선 두 번째 목표부터 검토해 봅시다. 지역과 상관없이 똑같이 경쟁하게 했을 때 서울소재 교대의 합격률이 더 높아 지방과 서울 교대의 뚜렷한 서열이 발생하는 상황을 우려한 제도로 보입니다. 출신 지역에서 교사 생활을 하기를 희망하는 고등학생을 상정한다면 효과적이겠지요. 가산점이 없다면 아무래도 합격률이 높은 서울소재 교대에 지원했겠지만, 가산점을 고려한다면 자기 지역에 남는 것이 유리하니까요. 하지만 서울 학교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지방 출신 학생에게는 반대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원래는 지방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임용 시험을 서울로 지원했을 학생이, 집을 떠나 생활하는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가산점을 위해 서울의 교대에 지원할 테니까요. 둘 중 어느 효과가 더 클까요? 개인적으로 제 주위 친구들을 둘러볼 때, 지방에서 직장을 구하고 싶다는 친구는 정말로 찾기가 어렵네요.

 이제 첫 번째 목표를 봅시다. 그 지역 교대 학생들이 그 지역에서 교사 생활을 하도록 유인하는 제도임은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서울로 빠져나가고, 반대로 서울에서 임용될 자신이 없거나 서울 소재 교대에 지원할 성적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이 지방 교대로 유입된 상황이라면, 이는 결국 지방의 이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성과입니다.

 종합해보면, 우수한 교사지망생들이 서울로 빠져나가는 단계를 대학교->임용에서 고등학교->대학교로 앞당긴 것 이외에는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지방 출신 학생들이 서울에서 유학하도록 만들어, 추가적인 비용만 발생하게 되지요. 고등학교 때는 서울 지역에서 가르치려다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지방에 가기로 (또는 그 반대로) 마음을 바꾸는 학생들에게 추가 비용을 괜히 물리게 되는 부분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가산점 축소 자체에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정책 변화를 결정하자마자 도입하기로 한 것은 큰 문제로 보입니다. 자원의 임의적 재분배가 일어났기 때문이지요. 가산점을 갑자기 축소한 것은, 가산점을 의식하고 지방에서 서울소재 교대로 유학 중이던 학생들의 미래 기대 효용 중 일부를, 지방에서 공부하면서 서울지역 임용 시험을 준비하던 학생들에게로 이전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사회적 총합이 줄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임의적인 재분배는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제도를 2013년에 교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부터 적용한다면 발생하지 않을 문제이지요. 대표적으로 서울을 들었지만, 모든 지역 임용고시에서 그 지역 교대 출신 학생들과 타 지역 교대 출신 학생들 사이에 임의적 재분배가 발생하겠지요.

한편 상대평가 내신이 임용고시 전체 성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면 추가적인 재분배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만일 같은 학생이 지방교대에서 받을 수 있는 성적이 서울교대에서 받을 수 있는 성적보다 높고, 이렇게 지방교대와 서울교대 사이에 학생의 학업능력’(좁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 이유가, 학업능력이 높은 학생들이 가산점을 노리고 서울교대로 몰렸기 때문이라면 말이지요. 물론 이 효과도 2013년 교대에 입학하는 학생들부터는 사라지게 됩니다.

사실 각 교대의 경쟁률, 인생계획의 수정에 따른 비용 등의 모든 부수적 효과를 감안한 가산점 축소의 총체적 효과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덧붙여 임용고시 성적이든 수능 성적이든 시험성적을 어느 정도 교사의 자질로 볼 수 있느냐의 근본적인 질문도 있지요.

요약하자면, 가산점 제도는 불필요한 사회후생의 손실을 낳으니 폐지가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갑자기 기대 소득을 빼앗긴 서울 교대 학생들의 반발은 비난하기 어렵네요. 밥그릇은 중요하니까요. 물론 서울지역 가산점이 8점으로 오른 것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서울지역 교대 학생들이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부의 임의적 재분배가 일어났겠지요. 하지만 그 때 이익을 본 학생들과 지금 손해를 보는 학생들은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관련기사:

2012년 8월 23일 목요일

‘7000원 때문에 자살한 할머니’ 읽고 든 두 가지 생각

8월 9일자 한겨레신문에 난 기사를 요약하면 혼자 사는 한 할머니의 ‘부양비’가 56만원으로 산정되었는데 1인 가구 최저 생계비가 약 55만3000원이어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양비’는 부양의무자인 딸과 사위의 소득의 일정부분으로 계산되는 것입니다. 즉, 딸 부부가 56만원 정도는 할머니에게 줄 여력이 된다고 산정되었기 때문에 그 할머니에게 생계비 지원이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지요. 그 할머니는 이전까지 39만원 정도를 생계비로 받아왔었기 때문에 그 충격에 자살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제가 이 기사를 읽고 가졌던 궁금증은 우리나라의 복지체계가 7천원에 한 사람의 생명이 좌우될 만큼 허술한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궁금증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의 자료를 보고 바로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링크의 “보충급여의 원칙”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요, 한 사람의 “소득인정액” (할머니의 경우에는 부양비가 해당되겠지요)과 기초생활비 지원액이 합쳐져서 최저생계비가 되도록 지원한다는 뜻입니다. 즉, 만약 돌아가신 할머니의 부양비가 56만원이아니라 55만 3000원 이었어도 여전히 할머니에게 돌아갈 생계지원비는 0원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요. 결국 7천원이라는 수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기사의 헤드라인은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면이 큰 것 같습니다. 사실 기사에 따르면 딸 부부의 소득의 대략 15% 정도가 부양비로 산정될 텐데 할머니가 이전처럼 39만원을 지원을 받으려면 딸 부부의 소득이 264만 원 정도 감소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397,000*100/15) 그렇다면 정확한 기사제목은 ‘264만원 때문에 기초수급자 제외되어...’ 와 같이 되어야 할 텐데 아무도 이런 기사에 주목하지 않겠지요. (참고로 딸 부부의 월 소득은 대략 800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회의 약자에 주목하는 것은 좋지만 이처럼 선정적인 기사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것은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할머니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단지 “자식이 800만원이나 벌면서 배부른 소리 한다”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은 부모들의 마음도 있을 것이고 자식들과 사이가 벌어진 경우도 있을 텐데 단순히 자식의 소득의 일부를 부모의 소득으로 간주하는 것은 불합리한 면이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이를 "가족부양 우선의 원칙"이라고 지칭합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일정 연령이상이 되고 본인의 소득이 없다면 자식의 소득과 상관없이 기초생계비를 지급하는 일종의 보편적 복지정책을 사용하면 어떨까라는 것입니다. 재원부족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차치하면 이러한 정책이 현재의 선택적 복지정책보다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재원부족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단순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바로 소득자에 비례하여 세금을 더 매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이 고소득자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일까요. 제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예전에는 “800만원 버는 사람은 56만원 정도를 부양비로 지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을 “800만원 버는 사람에게 56만원을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으로 바꾸는 식의 정책일 뿐입니다. 그들의 어머니는 55만3000원을 생계비로 받고 남은 7000원은 다른 사람에게 지원되겠지요. 물론 이러한 금액은 단순한 예시일 뿐이지만 간단한 정책의 변화가 사실상의 추가적인 부담은 거의 없이 더 합리적인 복지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의 논쟁에서 저는 보편적 복지의 장점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든 예가 보편적 복지의 한 가지 장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러한 보편적 복지가 무조건적인 재원부족이나 불합리한 세금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아는 당신의 품격있는 한시간은 얼마 짜리? (커피 값 빼고)



  미시경제학에서 흔히 보는 노동공급 모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효용함수: U(소비,여가시간)
예산제약식: 소비=<임금*(주어진시간-여가시간)+비근로소득

여기서 주어진시간-여가시간은 노동시간이 됩니다.

  이를 최적화하게 되면 소비와 여가의 한계대체율(MRS)이 임금과 같아짐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는 한 시간의 추가적인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정확히 한 시간의 임금만큼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죠. 즉 추가적인 여가 한 시간의 가치는 한 시간의 임금이 됩니다.

  그래서 각 나라마다의 여가 한 시간의 가치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네, 말은 거창했지만 그냥 시간당 임금을 조사한 거죠... 하지만 시간당 임금이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자료는 없어서, 저 나름대로 시간당 임금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제가 정의한 시간당 임금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매력평가실질GDP(기준년도 2005)/[총근로자수*근로자당평균근로시간(1년)]

  근로자당 평균근로시간은 OECD에서 제공하는 자료밖에 찾지 못해서 OECD 국가들에 대해서만 알아보았습니다. 조사해 본 결과, 2009년 국가별 시간당 임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즉 2005년 미국달러를 기준으로 한국의 시간당 임금은 약 17달러, 가장 높은 룩셈부르크는 64달러, 미국은 35달러, 일본은 22달러 정도였습니다. 생각보다 한국의 시간당 임금이 많이 낮죠? 그 이유는 한국인의 평균근로시간이 굉장히 높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한국의 고용률은 오히려 낮은 편입니다.) 2009년 국가별 평균근로시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편 2009년 국가별 1인당 GDP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기준년도 2005):

여기에서는 미세하게나마 한국의 상대적 위치가 나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한국의 1인당 GDP가 비교적 높은 것은 한국인들이 그만큼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인당 GDP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적인 삶의 질을 더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평소에 우리나라가 비슷한 정도의 1인당GDP를 가진 나라보다 훨씬 각박한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특히 2007년 스페인에서 잠시 지낼 때에는, 스페인이 우리나라랑 비슷한 1인당GDP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훨씬 행복한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었는데 위 표들을 통해 그 이유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예기치 못하는 전세값의 패러독스

예기치 못하는 전세값의 패러독스

 

 
흔히 전세는 아파트 집값보다 싸다고 인식됩니다. 만약 어떤 집의 매매가가 3억인데 전세가 3억원 혹은 그 이상이라면? 이 집 주인 미쳤나보다...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실상 조금만 우리가 노력을 기울여 분석해보면, 주택가격의 상승이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전세값이 아파트 집값보다 낮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분석을 단순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가정을 생각해봅시다:
 
1)개인은 자신의 기대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 따라서 주거편익이 일정하다면, 그에 소요되는 비용을 극소화하기 위해 행동한다.
2)위험중립자를 가정한다.
3)개인의 시간할인율은 이자율과 동일하다고 가정한다. 이는 다소 위험한 가정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이 시간이라는 재화를 금전이라는 재화와 동질적으로 취급한다는 가정을 도입하면 가능할 것이다.
4)개인은 현재의 이자율(r) , 현재의 주택가격상승률(π)을 바탕으로 미래의 이자율, 주택가격상승률을 예측한다. 가령 현재(혹은 측정의 어느 한 시점)에서 시장청산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t 기의 주택가격 상승률 πt = π +e 가 될 것이고, e 의 평균오차는 0이 될 것이다. 따라서 t기의 상승률은 평균적으로 π로 예측된다.
 
 
이 경우 계산의 편의를 위해 주택가격이 3억원인 경우, 전세값은 p * 3억 인 경우를 가정해봅시다.(p = 전세값의 주택가격 대비 비율이 될겁니다)
 
<주택을 구매할 경우의 비용>
 
①금전적인 편익: t 기간 이후 주택가격. 즉 (1+π)t/(1+r)t * 3억
 
②금전적인 비용: 3억을 차입해서 주택구매에 사용한 후 이를 t기간 후 상환한다고 할 때 금전적인 비용의 현재가치는 3억(1+r)t/(1+r)t = 3억. 단, t = 0 ~∞
 
③주택구매의 순비용: 금전적인 편익 - 금전적인 비용.
따라서 이는 (1+π)t/(1+r)t * 3억 - 3억 = [(1+π)t/(1+r)t - 1]*3억 이 됩니다.
 
<주택을 전세로 입주할 경우의 비용>

이 경우 분석을 간단히 하기 위해 현재의 고정금리 r로 3억원을 전부 대출받아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하겠습니다.
p * 3억의 전세금을 맡기고 입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t기간 후에 자신이 상환받는 전세금의 현재가치는 (p * 3억)/(1+r)t 입니다.
반면 당해 전세금을 고정금리 r로 차입한 후, t 기간 후에 상환해야 할 부채의 현재가치를 구해보면 p*3억(1+r)t/(1+r)t
 
따라서 주택을 전세로 입주할 경우의 순비용은 (p * 3억)/(1+r)t - p*3억 입니다.
 
주택과 전세가격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1+π)t/(1+r)t - 1]*3억 = (p * 3억)/(1+r)t - p*3억
 
즉 주택구매시의 순비용과 전세입주시의 순비용이 동일해야 합니다.(주택서비스에서 나오는 총편익은 동일하기 때문에)
 
위 식을 정리하면 p = [(1+π)t/(1+r)t - 1]/[1/(1+r)t -1], 즉 전세값의 주택가격대비 할증률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현재와 같이 π = 0 이거나 혹은 - 로 기대되는 경우, 전세값이 주택가격과 같거나 혹은 높게 책정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가령 π=0, r=5% 라고 할 경우, p = [1/(1+r)t - 1)]/[1/(1+r)t -1] 이 되고,
 
따라서 전세값은 주택가격과 일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반면 π = (-)로 예측되는 경우, 당연히 전세값은 주택가격을 상회해야 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주택가격이 0 혹은 - 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값은 주택가격과의 갭(Gap)이 줄어들지언정 주택가격과 동일하거나 혹은 상회하는 전세가격이 형성되는 권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이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실제로 차입할때의 이자율과 저축이자율, 시간할인율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 하지만 주택구매자와 주택전세자가 모두 동일하게 차입으로 자금조달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위의 차이는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다만 차입이자율>저축이자율이고 주택구매자의 경우 차입자금이 아닌 저축자금을 소비하여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가정을 할 경우, 주택을 구매하는 경우의 금전적 순비용이 다소 감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택의 구매를 통한 취득세 등을 추가적으로 감안할 경우, 이러한 가정에도 불구하고 전세금이 주택가격보다 낮을 이유가 없습니다.)
 
2)주택을 전세로 세입하는 경우, 주거위험이 존재할 수 있다. 즉, 일반적으로 전세의 계약기간은 t=50 혹은 그 이상의 다기간이 아닌 2~3년 안팎의 단기간으로 세입하는 경우가 많고, 그 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조건으로 계약을 하거나 혹은 다른 주택을 찾아야 할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따라서 주택구매의 가격이 전세가격에 비해 높게 형성되는 것은 위험프리미엄(Risk premium)의 대가라 볼 수 있다.
=> 그러나 그런식으로 치면 주택구매자 역시도 주택가격의 변동이라는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즉, 주택가격의 변동에 대해서 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전세 세입자와 달리 주택구매자는 경기변동에 따른 주택가격의 변동, 그에 따라 금전적인 비용이 달라지는 위험성을 역시 갖고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전세 계약기간 종료 후 마땅한 주택을 찾지 못해 주거서비스를 영위하는 자체가 문제되는 극히 일부의 경우에 한해, 전세자가 보다 높은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말하자면 속물효과. 즉, 대부분이 월세/전세로 살아가는 상황에서 실제 주택보유자로 사는 것은 단순히 주거서비스 말고도 개인의 효용을 증대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4)주택구매자로서 사는 것이 전세자에 비해 이사비용 등이 적게 드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주택보유자로 살게 될 경우, 취득세 등의 세금과, (인플레이션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주택매매시의 양도차익세 등의 비용에 노출됩니다. 전세자의 경우 이사비용은 존재하지만 이러한 부대비용은 없습니다.
 
전세가격이 주택구매가격보다 현저히(그래도 예전의 50% 수준에 비해 현재는 80%수준까지 올랐다지만)낮은 상태로 이탈하는 이유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고찰해 보았는데, 깔끔한 대답을 내리기가 역시 어렵네요. 현명하신 의견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2012년 8월 11일 토요일

지하철 자리 배분문제

심각한 주제가 많은 우리 경연 블로그에, 약간은 가볍고 좀 병맛 넘치는(!) 글을 하나 써보려 합니다. 평소에 지하철 타면서 자주 했던 생각을 가볍게 적는 것이니 내용이 좀 이상하더라도 너그러이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ㅠ

살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일이 참 많습니다. 시간대에 따라 (특히 출퇴근 시간대!)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기도 하지요. 사람들로 가득찬 지하철을 타면서 저는 다음과 같이 괴이한(?) 상황을 보곤 합니다.

 저는 지금 유동인구가 매우 많은 어느 역에서 긴 줄 뒤쪽에 서 지하철을 기다립니다. 지하철이 오는군요. 사람들이 가득하네요. 벌써부터 짜증이 치솟습니다. 지하철이 서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군요. 지하철에 탑니다. 뒤에 아저씨는 자꾸 밀고, 꾸역꾸역 밀려 들어가는데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어, 그런데 이상하네요. 문 주변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져 밀지 말라고 서로 아우성치는데 지하철 칸 가운데쪽을 보니 비교적 널럴하게, 여유롭게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하철을 이용하시다 보면 종종 겪으시는 상황일 거라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생각할 때 한 칸 안에서 이렇게 한쪽에 몰려 승객들이 '균일하게(uniformly)' 분포하지 않는 상황은 분명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딴소리지만 버스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는데, 그래서 어떤 버스 기사님들은 이런 상황에서 '탑승자를 균일하게 분포시키기 위해' 차를 좌우로 슬쩍슬쩍 흔들거나 급정거/급출발을 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지하철은 이게 안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마 이런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탑승하기 이전에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사람들이 솨~빠져나가면서 생긴 공간을 '선점'하려 들겠지요. 특히 문과 비교적 가까운 통로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여유롭게 공간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안쪽(곧 객차의 가운데 쪽)으로 밀리지 않으려 애쓸 것입니다.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면 내릴 때 한층 더 많은 인파를 뚫고 나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고 재수 없으면 아예 제가 원하는 역에서 내리지 못할 수 도 있으니 문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들이 내리는 역이 유동인구가 적은 역일수록 내릴 때 더욱 수고롭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으면 사람들 인파에 몸을 싣고 자연스레~ 내리면 될테니까요.) 그럼 아예 문 옆에 기대 서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면 대신 '객석 앞에 서 있다가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놓치게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결국 '최대한 쉽게 내리면서 재수 좋게 앉을 수 있는 기회도 갖고 있으려면' 문에서 가까운 좌석 앞 쪽에 서 있어야 합니다.

 결국 기존에 탑승하고 있던 문쪽에 가깝게 서 있던 승객들과 새로이 탑승하는 승객들 간에는 '들어가려는 자와 방해하려는 자'간의 신경전이 객차의 문 주변에서 벌어집니다. 개별 승객들은 작은 신경전을 벌이지만 이 신경전들이 모이면 장애물이 되고 승객들의 이동을 막게 되지요. 이 가운데서 어부지리를 보는 승객들이 있습니다. 바로 객차 가운데 쪽에 서 있는 승객들입니다. 이들은 문쪽에 서 있던 승객들이 대신 싸워주는(!) 덕에 비교적 널럴한 공간을 차지하고 서 있습니다. 물론 대신 내릴 때 문쪽에 밀집된 승객들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내릴 역이 유동인구가 많다면 이것도 별 문제가 안됩니다. 문쪽에서 아귀싸움을 하는 승객들 중 누군가가 알아서 길을 내 줄테니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심지어는 좌석에 빈 칸이 생겼는데 문쪽에서는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진짜 이상한 상황을 보기도 합니다.

상당히 희한한 광경이지만, 분명 현실에 실재하는 광경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경제주체들간의 유인이 서로 부딪치면서 자원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사실 저도 답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문가에 서 있는 기존 승객들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더라도 나중에 내릴 때 문제가 없도록' 만들어 주는데 있을 겁니다. 어떤 해결책이 가능할까요.

2012년 8월 8일 수요일

경제민주화를 위한 순환출자 규제?

 소위 "경제민주화"라는 바람을 타고 대기업의 순환출자 제한 여부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을 위시한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은 경제민주화 3호 법안으로 순환출자 규제법을 발의하였습니다. 헌법 제119조 1항과 2항의 조문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되,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국가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짧은 조문 속에 한꺼번에 담겨있지만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결국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아마도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재벌"에 대한 견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참 멋진 말입니다. 시장원리를 존중하면서도 시장실패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적절히 개입하는, 이상적인 경제시스템을 지향하는 것이니까요. 소수의 개인 혹은 집단에 의한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경제민주화를 위해 빼어든 무기인 "순환출자 규제"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습니다.

순환출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의 모습

 순환출자가 무엇인지는 위의 사진을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대기업 총수가 A라는 기업의 대주주이고 나머지 기업의 소액주주라고 합시다. A기업이 계열사 B의 지분에 투자를 하여 대주주가 됩니다. 또, B는 C의 지분에 투자를 하여 대주주가 되지요. 마찬가지로 C가 D, D가 A에 지분 투자를 하게 되면, 순환출자의 고리가 완성됩니다. 대기업 총수는 A기업 외의 다른 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낮더라도 강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삼성의 경우는 A기업에 해당하는 것이 삼성 에버랜드가 됩니다.
 원래 순환출자는 상호출자 금지를 피해가기 위한 편법으로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두 회사가 상호간의 지분 투자를 통해 실제 투자된 현금에 비해 자본금을 부풀리는 것이 상호출자인데 이를 법으로 규제하자 법을 회피하기 위해 사이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이지요. 우리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를 이용하여 얼마나 자본금을 부풀렸는지는 알아봐야 하겠지만, 세계 각지의 투자자들이 우리 기업들에 투자를 하고 있고, 또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 대기업들이 속 빈 강정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즉, 순환출자 규제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는 빈부격차의 심화입니다. 경제적 상위 계층은 잘 먹고 잘 삽니다. 필요한 것은 경제적 중하위 계층이 잘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소비자로서의 중하위 계층을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 실질소득의 증가가 필요합니다. 생산자로서의 중하위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막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순환출자 규제는 일자리 창출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기업의 힘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인 것 같습니다.

 순환출자 규제가 대기업의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기 위해서는, 순환출자 제도가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초래하고 있었어야만 합니다. 얼마 전 화두였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오랜 시간 동안 저해된 것이 과연 총수일가가 쥔 과도한 의결권 때문일까요? 좀 더 많은 주주들에게 의결권이 분배되었다면, 혹은 서로 혈연이 아닌 집단이 대주주였다면 대기업이 지금까지 행해온 걸로 알려져 있는 많은 횡포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독점기업으로서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되면 지배구조에 무관하게 하부 기업들을 착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협상력의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준법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 또는 위법, 편법 행위에 대한 페널티의 설계 및 개선, 대기업의 횡포가 가시화되어 있는 산업부문에 대한 중소기업 보호업종 지정 검토, 정경유착 근절 등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더 적절한 방향으로 보입니다. 이런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인지 새누리당의 이번 법안은 대기업 때리기에 편승하여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법안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차후 포스팅에서 이 글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세계 각국의 악덕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살펴보고, 지배구조 개선이 경제민주화에 정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8월 6일 월요일

실패에 대한 책임은 너만 지어라?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또 다양한 의미에서의 실패를 경험합니다. 이때 이러한 실패로 인한 영향은 개인의 삶을 넘어 주변, 혹은 국가 전체로 까지 확산되기도 하는데요, 때문에 국가는 이러한 개인의 선택 및 실패에 여러 방법으로 개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택은 정말 우리만의 것이었을까요? 그래서 선택의 실패로 인한 문제의 책임은 모두 우리에게 있는 것이고, 그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홀로 미안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한 전단계로 먼저 개인의 실패에 대처하는 국가의 자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초생활보장은 (실패를 포함한)원인에 관계없이 국민에게 기본적 생활 보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이유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을 가지고 삽니다.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먹고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험은 다들 들어놓고 싶어 할 것 같은데요, 이 제도는 이러한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국민의 기본적 권리라고 한다면, 국가가 이러한 제도를 실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창업투자보조는 정부가 개인의 선택과 실패를 보조하고 장려하는 제도입니다. 이러한 일에 정부가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러한 선택을 통한 개인의 발전은 고용창출 그리고 기술혁신 등을 통하여 국가전체에 이로운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업을 포함한 새로운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경우 그 정도의 위험을 떠안을 만큼의 여력이 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므로 작은 위험에 강한 국가가 위험의 일부를 분담한다면 더 많은 개인들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결과 더 많은 성공이 달성된다면 분명 더 많은 다른 이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것입니다. 창조적 실패는 확실히 권장할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개인회생, 그리고 개인파산제도는 국가가 개인의 실패의 종류를 감안하여 그가 행하던 경제활동을 지속하며 실패에 대한 책임의 전부 혹은 일부를 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원금의 온전한 상환이 불가능하다면, 채무자는 물론, 채권자 또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때 이 제도는 혜택을 채무자에게 집중시키되 채권자의 상황 또한 제도의 실행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채무변제에 실패한 개인은 최저소득계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제도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하우스푸어대책은 어떤가요?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일단 이것은 ‘집’이라는 특정한 재화에 대한 개인의 투자선택의 실패를 정부가 도와주어야하는가, 도와주어야 한다면 어떤 방법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우스푸어는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부담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금융위기 이전까지의 주택가격상승기에 형성된 기대를 바탕으로 한 선택이 금융위기 이후의 주택거래감소로 인한 주택가격 하락 등의 영향으로 실패하게 되어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요, 최근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및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고1),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높아2) 이들의 실패가 가져올 파급력이 우려할 수준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이런 면에서 하우스푸어대책은 가계부채대책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우스푸어대책을 제외한 현재 실행되고 있는 다른 정책들을 살펴보면, 정부는 크게 1.대상이 실패로 인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때, 또는 2.대상의 실패, 혹은 성공이 경제 전체, 혹은 경제의 상당한 부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을 때 그 문제에 개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의 개입은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있음에도 납득이 가는 면이 크다고 생각되고요. 지금까지 발표된 지표들을 보면3), 그리고 금융위기당시의 미국상황을 볼때 하우스푸어문제는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 대책의 실행에 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중 하나는 아마 더 잘 살아보겠다고 자기 스스로 한 도박에 의한 결과를 왜 정부가 나서서 세금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는가 하는 것인 듯싶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위에서 든 두 번째 정부개입의 요건, 즉 실패가 가져올 경제전체에 대한 파급력으로 어느 정도 펼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여기서 제가 궁금해 진 것은 이 실패의 책임이 과연 본인에게만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금융위기 때의 미국 금융회사들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 보겠습니다. 경제 호황기 때 그들 중 일부는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 주었고 또 다른 일부는 그것을 가지고 금융상품을 만들어 높은 신용등급을 매긴 후 그 당시의 기대와 정보 하에서 합당한 선택을 하던 사람들에게 그 상품을 ‘속여’팔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로인해 잭팟을 터뜨리게 되지요. 하지만 그 속임수는 오래가지 못했고, 그로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인들이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잭팟은 여전히 그들의 손에 있는 채로요. Subprime Mortgage Loan(비우량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 잘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결과의 책임이 이들에게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돈을 벌기 위해 과도한 위험을 무릅쓴 금융회사들의 책임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금융위기 이전, 우리나라 사람들은 LTV4)가 60%인 상황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기준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만, 주택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이 비율이 상승하게 되어5) 원금의 일부를 조기상환해야하는 부담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현재 주택담보대출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출이 결정되었다는 것이 채무자와 채권자가 서로 채무자의 변제능력에 대해 동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상황이 바뀌어 이러한 동의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이 채무자에게만 지워진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의 문제, 그리고 대출자격 강화로 인한 투자규모의 축소문제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저에게는 그렇게 옳은 일인 것 같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금융위기 이전의 미국 금융회사들처럼, 우리나라 금융회사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도한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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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2005년 521조4959억원에서 2012년 857조원(GDP대비 89%)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가계대출연체율 또한 2011년 12월 0.67%에서 2012년 4월 0.89%로 최근 들어 크게 증가하고 있다.
2)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은 가계대출 857조원 중 390조원으로 전체의 45.5%에 이른다.
3) 현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하우스푸어는 적게는 108만4000가구에서 많게는 156만9000가구에 달한다. 그리고 아파트 중도금 대출 연체율은 가계대출연체율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조사된다 - 매일경제 : 6월기준 1.84%, 조선비즈: 4월 말 기준 국민은행 9.07%, 수협 7.67% 등.
4) Loan To Value Ratio, 주택담보대출비율 - 담보가치대비 최대 대출 가능 한도
5) ex: LTV 60%하에서 1억의 주택을 담보로 6000만원을 빌렸을 때 주택가격이 8000만원으로 하락하게 되면 LTV는 6000/8000=75%가 된다.

2012년 8월 1일 수요일

통계로 확인해보는 부익부빈익빈2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 우리나라의 양극화 통계 자료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포스팅을 읽어 보신 독자 한 분께서 오프라인으로 제게 한 가지 뼈 있는 의문을 제기해 주셨어요. 만일 저소득층이 부채로 소비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소비수준이 감소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생활은 더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하는 점이었지요. 이런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저소득층의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순자산’이나, 월별 이자 지출액의 변화 추이를 살펴볼 것을 제안 하셨지요. 그렇게 해서 새로 살펴본 내용을 다시 여러분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사용한 자는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2010년과 2011년의 가계금융조사, 2006년의 가계자산조사, 그리고 2000년과 1996년의 가구소비실태조사 결과입니다. (월별 이자액은 조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충분한 자료가 쌓이지 않았더군요ㅠㅠ) 지난 번 글이 '소득'을 중심으로 한 것이라면 이번 글은 '부'가 중심입니다.

우선 ‘순자산액’이라는 지표를 정의했는데, 이는 가계금융조사 자료에서는 금융자산(저축액+전월세보증금)과 실물자산을 합한 데서 금융부채와 임대보증금을 차감한 것이고요. 가계자산조사 자료에서는 저축과 부동산과 기타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금액입니다. 가구소비실태조사에서는 실물자산 자료를 찾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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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만원(순금융자산+순실물자산)
200620102011
전체평균24,164.4 23,066 24,560
소득1분위11,570.6 9,929 9,401
소득2분위15,625.7 12,868 13,381
소득3분위17,142.5 16,497 18,963
소득4분위24,565.5 24,306 27,779
소득5분위51,913.4 51,717 53,258



 2006년과 2011년을 비교할 때 소득 1분위와 2분위의 자산은 줄어든 반면 3분위 이상은 늘어난 것을 발견할 수 있군요. '소득'편에서는 상대적인 격차는 증가한 반면 저소득층의 절대적인 소득이나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근거는 발견하기 어려웠는데 '자산'을 살펴보니 문자 그대로 '부익부빈익빈'에 가까운 현상이 관찰됩니다.

한편 ‘순금융자산’이라는 지표도 정의했는데, 이는 가계금융조사에서는 저축액에서 제한 것이고, 가계자산조사와 2000년 가구소비실태조사에서는 저축액에서 부채액을 제한 것입니다. 1996년 가구소비실태조사에서는 저축보유액에서 부채잔액을 제한 것입니다. 원래 통계청에서 금융자산이나 금융부채를 정의할 때에는 전월세보증금 및 임대보증금을 포함하지만, 저는 이를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 1996년 자료에는 전월세보증금 및 임대보증금이 없었는데, 최대한 과거까지 비교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단위: 만원(순금융자산만-전월세보증금, 임대보증금 제외)
 19962000200620102011
전체평균 1116.041,424.4 1,688.8 992 1,426
소득1분위 419.33224.1 910.1 266 162
소득2분위 640.25459.4 1,017.3 269 257
소득3분위 788.71981.2 1,329.9 651 1,056
소득4분위 1229.021,485.8 1,210.5 1,247 1,311
소득5분위 2502.483,970.7 3,976.0 2,530 4,341



 여기에서도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뚜렷이 관찰됩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2006년을 기준으로 관찰되는 갑작스러운 변화입니다. 특히 소득 1분위의 경우 평균 순금융자산이 2006년에는 거의 910만원에 이르렀다가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에는 266만원으로 감소하고, 고작 1년 뒤인 2011년에는 162만원에 불과하게 되는 점이 눈에 띱니다. 한편 소득 4분위는 금융위기로 인한 타격이 거의 없었고, 소득 5분위는 큰 타격을 입었으나 2011년이 되자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네요.

 소득 1분위의 순자산 및 순금융자산 변화 추이는 사실 제게 미스테리하게 다가왔습니다. 분명 지난 번에 소득과 소비 변화를 살펴보았을 때에 두 지표 모두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대체로 안정적이었거든요.  제가 추측해 본 바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의 기간에 소득1분위 계층이 꾸준히 부채를 통해 소비를 유지한 것은 아닐까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난 번에 찾아 둔 자료를 보니, 실제로 이들은 일정한 폭으로 소비가 소득을 상회하고 있더군요.  

 결국 이제까지 자료를 종합해보면,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상대적 부'가 아니라, '절대적 부'로도 말입니다. 다소 거친 비유지만, 역사 시간에 배웠던 '소작농과 지주'를 떠올려 보면 될 것 같아요. 소작농 돌쇠가 늘 같은 반찬에 같은 밥을 먹고, 그의 밭에서는 매년 일정한 소출이 나오며, 그에게 돌아오는 몫도 소출의 1/2로 정해져 있다고 합시다. 그의 소득과 소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돌쇠가 매년 먹어치우는 양이 그의 밭에서 나오는 평균 소출의 1/2보다 크다면 그는 늘 적자 상태일테고,  지주 어른에게 그만큼을 빌려야 할 테지요. 결국 그의 빚은 늘어만 가고, 갚아야 하는 이자도 계속 증가할테고요.
 끝으로, '경제적 형평성'을 따질 때 '결과의 평등'을 따지는 지표는 지니계수, 엣킨슨지수 등 몇 가지 방법을 들어 보았고 그 지표들이 실제로 사회에서 활용되는 것 같은데, '기회의 평등'을 따지는 지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혹시 독자들 중 '기회의 평등'에 관련된 지표를 아신다면 제게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은 최초 자원배분에 있어서의 형평성과 규칙의 공정성을 포괄합니다. 불완전한 지표라도 좋습니다. Acemoglu가 정치부패에 관한 지표를 Political Risk Services가 제공하는 “risk of expropriation”index로 사용했다는 것이 제가 아는 가장 가까운 사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