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환영회식사

2012년 5월 30일 수요일

재수 나쁘면 재수 비용 드립니다.

  (경제원론이나 비슷한 수준의 경제학 수업을 들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입니다)
 
바야흐로 6월 모의고사의 시즌이 다가왔다. 중간 평가를 앞두고 설렘과 긴장에 싸여 있을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이번 글을 시작한다.
 
얼마 전 블로그 필진 중 한 분과 대화를 하다가 대학 입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나에게 왜 대학 입시에는 보험이 없을까라고 물었다. 위험기피적인 개인들 사이에 위험한 사건이 있다면, 위험중립적인 기업에겐 늘 보험 상품을 판매하여 이윤을 얻을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왜 대학 입시에는 보험이 없는지.

1.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문제 때문일까? 대학 입시에 보험이 생긴다면, 상대적으로 붙을 확률이 높은 학생들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험사의 비용 부담이 증가하므로 보험료를 높일 수밖에 없고, 결국 그렇다면 더더욱 떨어질 확률이 높은 학생들만이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결국 보험료는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보험 상품이 사라진다. 하지만 보험사가 신호(signal)’를 활용할 경우 이 문제는 대체로 해결된다. 이제까지 쌓아온 모의고사 성적이나 내신 성적, 기타 수상 실적이 좋은 학생들일수록 보험료를 깎아주며, 합격이 어려운 학교를 지원할수록 보험료를 높이는 것이다. 대입의 경우 학생의 합격 확률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가 쉬워 역선택의 문제는 많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2.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문제 때문일까? 대입 보험에 가입한 학생들은 위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학에 붙지 못하면 재수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위로금까지 주는 보험이 있다고 하자. 보험에 가입한 학생은 이제 대학 입시에 붙거나 붙지 않거나 무차별해질 것이다. 이 경우엔 학생의 위험 부담도 줄여주면서 학생이 공부도 열심히 하게 하는 최선(First-best)의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도 차선(Second-best)의 해결책은 존재하며, 이는 위험을 원래 수준과 0 사이의 적당한 수준으로 낮추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떨어질 경우, 재수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또한 보험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여기까지 경제학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의문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내 나름대로 이유를 더 생각해 보았다.
 
3. 대학에 떨어진다는 것을 상상하기 싫어서일까? 보험에 가입하려면 내가 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지, 재수를 하게 될 경우 그 비용은 얼마나 될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대입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계산을 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심리적 비용)를 수반할 것이다. 대입을 가까이에 앞둔 시점에는 여러 대학의 입시 정보나 수능 시험 준비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시기이므로 학생과 학부모의 심리적 안정의 가치가 올라가고, ‘주의(Attention)’가 희소해지는 시기이다. 만일 할인율이 충분히 작아 현재가 미래보다 많이 중요하다면, ‘불합격 상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보험 가입에 따른 유의미한 추가적 비용으로 작용할 것이다.
 
4. 예산제약이나 손실회피 때문일까?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부분의 대학은 경쟁률이 2:1을 넘는다. 떨어질 확률이 상당히 큰 것이다. 따라서 보험 상품이 만들어질 경우, 보험료가 매우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한편 비행기 사고와 같이 보험 상품이 제공되는 대부분의 상황은 위험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작고, 따라서 보험료가 낮다. 보험료가 높아지면 두 가지 효과가 생기리라 예상된다. 우선, 일반적인 서민 가정이라면 소비를 줄이거나 대출을 받아서 보험료를 내야 할 텐데 이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둘째로, 심리학에서 연구된 손실회피경향 때문에 사람들은 보험료라는 확정된 손실을 대학 입시에 수반된 기대 손실보다 크게 인식하여,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한편 역선택의 문제 때문에 합격 확률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들은 보험에 가입하기가 어려워, 보험료를 여러 해에 분산해서 지불하도록 하는 것도 어렵다.)
 
p.s.
3번과 4번 이유를 약간 변형하면 요즘 논란이 되는 노인보험(장기요양보험, 연금보험 등)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노후를 상상하는 데에 심리적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보험 가입을 계속 뒤로 미루게 되고, 노인보험은 보험료가 비싸지기 때문에 예산 제약과 손실 회피 심리에 부딪치는 것이다.

2012년 5월 23일 수요일

페이스북 IPO 사태의 아이러니(1부)





최근 국제 뉴스면에 페이스북의 기업공개(IPO)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지난 18일 주당 38달러의 공모가로 총 1040억 달러 (약 121조)의 자금을 모았습니다.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 자신은 이를 통해 200억달러대의 부자가 되기도 하였지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38달러로 시작했던 주가가 현재까지 총 26.3% 떨어진 31달러대까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때 공모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만큼의 손해를 본 것이지요. 기업공개 주관사인 모건스탠리는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겼다는 혐의로 당국의 조사까지 받게 되었고요.
참고로 IPO 때의 공모가 및 공개주식 수는 주관사(underwriter)와 기업 (여기서는 페이스북)이 협의하여 결정합니다. 공모가를 너무 높게 잡으면 공개된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없겠지요. 기업의 가치에 걸맞지 않게 비싼 돈을 주고 주식을 사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반대로 공모가를 너무 낮게 잡으면 기업이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페이스북이 주당 10달러에 기업공개를 실시했다면 투자자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었겠지요. 주가가 30달러 정도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주식을 배정받은 사람들은 200%의 차익을 챙겼겠지요. 하지만 페이스북 입장에서는 주당 38달러로 내놓았을 때보다 1/4 정도의 자금밖에 조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적정선의 공모가를 결정하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금 조달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은 투자자들이 적정주가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가격에 공모가를 설정하는 것이겠지요. 주관사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끔 기업공개기업을 최대한 돕는 것이 임무이겠고요.
경제학에서는 흔히 경제주체들이 평균적으로 합리적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IPO에서도 평균적으로는 적정주가와 공모가가 적어도 비슷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야겠지요. 적정주가와 공모가가 얼마나 비슷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가 바로 첫날 수익률 (first-day return)입니다. 기업의 적정주가가 공모가와 일치했다면 IPO 첫날 그 회사의 주가가 더 오르거나 떨어질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공모가를 너무 낮게 잡았다면 첫날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고 공모가를 높게 잡았다면 첫날 주가는 오히려 떨어질 것입니다. 즉, 첫날 수익률이 0에 가깝다는 것이 공모가를 적정주가와 일치시켰는지, 다시 말해 기업이 자금조달을 극대화하였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첫날 수익률이 금융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게 됩니다. (이하 제시하는 통계는 모두 미국 주식시장에 관한 것입니다) 첫날 수익률은 평균적으로 강력한 양(+)의 값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IT열풍이 불던 99년에는 무려 평균 첫날 수익률이 72%였고 IT거품이 꺼진 2001년부터 2012년까지 3차례를 빼고는 모두 첫날 수익률의 평균이 10% 이상이었습니다. 2012년 현재도 평균 첫날 수익률이 16%에 달하고 있고요. 다시 말해 기업들이 평균적으로 공모가를 10% 높게 잡았더라면 자금 조달도 10% 늘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실현되지 못한 자금을 "Money on the tabl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돈을 더 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뜻이지요.
금융학자들은 왜 IPO공모가가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적정주가보다 항상 평가절하 (underpriced)되어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실제 가치보다 공모가를 낮게 가져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쪽의 이론에서는 주로 정보의 비대칭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Rock, 1984) 쉽게 말하면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충분히 낮은 가격에 주식을 제시하지 않으면 충분한 투자자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이 10%이상의 평가절하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행동경제학적으로 이를 설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많았는데요 예를 들어 첫날에 주가가 많이 오르면 언론에 화제가 되어서 기업 홍보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등의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이론은 바로 “스캔들”로 이 현상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주관사의 시장 조작입니다. 참고로 첫날에 주가가 많이 오른다는 것은 공모가를 낮게 설정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주관사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주관사는 “Road Show"를 통해 기업공개가 되는 회사의 주식을 구매하라고 홍보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날 주식이 많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홍보효과가 컸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요. 주관사의 시장조작은 대략 다음의 3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Spinning: 회사 운영진과 주관사와의 결탁관계. 회사운영진은 주관사가 공모가를 낮게 가져가는 것을 묵인하는 대신에 그 주관사가 다른 회사의 기업공개를 할 때 그들에게 주식을 배정해줄 것을 약속받는다. 주관사는 첫 날 주가 상승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고 회사 운영진은 다른 회사의 기업공개 때 받은 주식이 기업공개 첫날 가격이 상승하여 차익을 챙김. (불법임)
2)Laddering: 주관사가 단독으로 첫날 주가를 부양하는 방법. 특정한 사람/기관에게 주식을 배정해주는 대신에 그 대상자가 IPO이후 추가로 주식을 매수할 것을 약속받음. 그들의 추가 주식 매수로 주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하게 됨. 그들은 적절한 시기에 주식을 팔고 빠져나오고 개인투자자들은 이후 주가하락으로 손실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음.
3)Analyst Lust: 회사와 주관사와의 결탁. 주관사는 의도적으로 공모가를 낮게 가져가고 회사는 이를 묵인함. 대신 그 주관사에 속한 애널리스트가 나중에 그 회사의 주식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해줄 것을 약속함. 주관사는 IPO 당일 주가상승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고 회사는 이후에 추가 주식 공개(SEO) 때 그 주관사 애널리스트의 도움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현재의 낮은 공모가를 묵인함.
핵심은 IPO의 평가절하 현상이 주관사의 이익추구 동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시장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번 페이스북 IPO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첫 날 주가 상승률은 0.61%에 그쳤던 것입니다.
오늘은 IPO에 대한 논란과 주요 이론들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으므로 페이스북의 IPO 결과를 금융이론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는 다음 연재에서 쓰겠습니다. 아직 IPO를 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다음 연재 때까지 모인 자료들을 더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성장과 분배는 두 마리 토끼일까?



일반적인 담론에서 성장과 분배는 '두 마리 토끼'처럼 여겨집니다. 하나를 잡으려고 하면 다른 하나는 놓치게 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성장'을 좀 더 올바른 의미로 사용한다면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성장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아마도 GDP가 올라가면 국민의 평균적인 삶의 질, 즉 효용도 높아질 것 같기 때문에 그럴 것 같습니다.
, 그러면 '국민들의 평균적인 효용'을 직접 측정할 것이지 GDP라는 변수로 측정할까요? 그것은  아시다시피 효용을 직접 측정하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것과 큰 관련성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GDP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효용이 주어졌을 때, GDP의 크기 그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장의 중요성을 이야기 할 때에는, GDP의 크기가 중요해서라기 보다는 국민의 평균적인 효용이 중요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GDP를 성장시키면서 효용이 떨어지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것이 GDP의 성장을 동반하는 분배정도의 악화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경제 내에 두명의 개인이 살고 있습니다. i번째 사람의 효용을 u_i= (c_i)^(1/2)로 나타낸다고 합시다. 여기서 c_i는 개인 i의 소비입니다. 이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상의 경제를 비교해 봅시다:
경제 1
c_1=100, c_2=100
-> GDP=200, 삶의 질 평균=10
경제 2
c_1=1, c_2=225
-> GDP=226, 삶의 질 평균=8
즉 분배가 나쁜 경제 2에서는, GDP는 더 높은 데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더 낮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여하튼 이러한 경우, 우리가 '국민의 평균적인 효용' 개선을 목표로 해야한 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경제 2 보다는 경제 1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경제의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성장'을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닌 효용 증대로 정의할 경우, 분배는 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극단적인 복지정책 등으로 차후 국민의 소득수준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리는 경우, 분배상태의 개선이 미래의 평균적 삶의 질까지 갉아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성장과 분배를 상반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는 것의 큰 이유중 하나는 '삶의 질'에 대한 지수가 GDP로써 잘못 정립되었기 때문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flyingbunny님이 얘기하였던 올바른 목표지수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미시경제학의 퍼즐




1. 시간선호율이란 실재하는가?
 
미시경제학에서 2기 이상의 효용극대화를 행하다 보면 암묵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 '시간선호율' 이다. 예를 들면, 흔히 우리가 간단한 효용극대화 문제를 풀때 접하는 다음 산식을 보도록 하자.
 
Max U = C1a * C2(1-a) , S.t. C1+(C2/1+r) = Y1 + (Y2/1+r)
 
이것은 우리가 미시경제학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2기간의 효용극대화식이다. 실제로 저 식에 1기와 2기의 노동공급의사 및 여가까지 추가해서 비교적 간단한 일반균형식을 만들 수 있으나 여기에서 고전적인 일반균형식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넘어가도록 한다.
그런데, 저와 같은 함수를 가정할 경우 우리는 필연적으로 '시간선호율' 을 사용하게 된다. 즉, 우리의 동태적 효용의 극대화를 위해서 1기의 소비와 2기의 소비에 각각 a , 1-a 의 가중치를 놓고 시간선호율을 도출하는 것이다. 가령 저 식의 효용극대화 조건을 간단하게 도출하면,
 
∴(a/(1-a)) * (1/(1+r))* C2 = C1
 
위 식이 어떻게 도출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독자의 기량에 맡기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저러한 일반항을 사용할 경우 [a/(1-a)] * [1/(1+r)] 이 개인의 시간선호율로 도출된다는 것이다. 혹은 [a/(1-a)] 를 단순히 미래에 대한 현재의 시간선호율로 정의할 수도 있다. 여하간 우리는 우리의 효용함수를 하나로 묶어서 사용할 경우 이러한 시간선호율의 '전제' 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진실로 '시간선호율'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이는 여러 측면에서 논파될 수 있지만 우선적으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반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시간선호율이 명시적으로 도출되는 효용함수의 특성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효용함수의 기수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중대한 오류이다.
 
즉, 우리는 U = C1a * C2(1-a) 이라는 함수의 특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장 간단히, 위 함수를 로그를 취하게 되면,

ln U = a*ln C1 + (1-a) * ln C2        --------식 1)
이 된다. 
또한 t기의 효용은 오직 t기의 소비에 의해서만 좌우된다고 할 때, 효용함수의 서수성을 가정한다면 Ut = CtB와 같은 식으로 나타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식 1)에 대입해 보면 어떻게 표현한다고 하여도 전체효용은 각 기간의 효용을 가중평균 합한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암묵적으로 효용의 기수성을 가정하는 셈이다. 시간선호율이 효용의 기수성을 가정할 경우에만 도출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효용의 기수성을 가정하게 되면 어떠한 일반화된 식을 사용하더라도 시간선호율이 도출되게 된다. 이것은 '시간선호율' 이라는 개념 자체가 합리적인 전제에 의해 손쉽게 도출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그렇다면 효용의 서수성을 전제하더라도 개인의 선택에 따라 시간선호율은 도출할 수 있지 않은가. 이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틀린 것이다.

가령, 우리는 이제 개인의 효용의 합을 전제하는 효용함수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자. 다만 각 기간의 효용함수는 주어져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식을 전제할 수 있을 것이다. 
t 기의 효용함수: Ut = Cta Lt(1-a) , S.t. Ct = w*(1-Lt) -∆St

(단, Ct = t기의 소비, 1= t기에 주어진 시간, Lt = t기의 여가, ∆St = t기의 저축변화율)

여기서 서수성을 가정했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총기간의 효용의 합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의 선택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자신의 시간선호율을 추론해 낼 수 있다.
서수적인 효용함수를 가정할 경우 시간선호율을 어떻게 추론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여기에서는 편의상 [Ut / Ut+1] 을 시간선호율로 정의한다고 하자. 즉 현재 기간이 다음기간보다 얼마나 선호되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선호율을 정의할 경우, 우리는 각각의 기간에서 현재 기가 다음 기보다 얼마나 선호되는지 추론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예를 들어, 1기에서 어떤 사람이 2천만원의 현재소비와 50일의 여가를 즐기고, 2기에서는 1000만원의 현재소비와 100일의 여가를 즐긴다고 하자.

이 경우의 시간선호율은  " 2(2a-1)" 로 도출된다. (간단한 계산이니 독자의 분석에 맡긴다. 이 경우 a >0.5인 경우 현재시간을 더 선호, a <0.5인 경우 미래시간을 더 선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언뜻 합리적이고 문제될 것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위 주장(둘째)의 맹점은 우리가 매 기간의 '동태적 효용극대화' 를 절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는 미래가 닥치지 않으면 절대로 '미래의 효용 또는 행복이 어떠할지' 에 대해서 정확히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의 효용에 대해서 우리가 현재처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①인간의 근시안적인 성향.
②미래의 불확실성. 우리는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저축을 예비한다지만 미래는 더욱 가혹할 수도, 풍요할 수도 있어 현재 저축보다 더 많이 필요할수도, 필요없을 수도 있다. 또한 미래는 당신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
③우리가 미래에 A라는 자원을 투입해서 얼마의 효용을 얻을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를 모른다. 우리는 t기에 여가를 더욱 선호하다가도, t+1기에는 소득을 더욱 선호할지도 모른다!

1번은 행태경제학적인 이론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2번 역시도 행태경제학 혹은 고전적인 미래불확실성 및 현재편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3번인데, 우리는 우리의 효용함수 자체를 모를 뿐더러 우리가 t기에 어떠한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는 있어도 그 다음 기에 무엇을 원하게 될지는 모른다.

[ 사 례 ]
 
예를 들어 (필자의 친구 이야기이다) A군은 2010년에는 고시를 합격해서 관청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이를 위해서 여가시간과 소득을 포기하였다(미래편향석 선호), 2011년에는 고시를 포기하고 유명한 대기업에 취직하였다. 높은 소득을 얻었지만 여가시간은 여전히 낮았다. 2012년에는 대기업을 나오면서 로스쿨에 진학하였다.(여가시간은 다소 늘었지만 소득은 잃어버렸다.) 이러한 3년간의 행태를, 우리는 효용함수를 전제함으로써 Calibration 방식으로 시간선호율을 어색하게 도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전제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적어도 '경제학적인' 분석으로는 의미가 없다. 2012년 시점에서 A군은 고시공부를 한 것을, 혹은 대기업에 진출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고, 2013년에는 대기업을 관둔 것을 후회할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현재 기간' 의 효용 말고는 알지 못하며 미래 기간의 효용을 유의미하게 고려할만큼 합리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성향은 위에서 열거한 1,2,3번이 심각할 수록 더욱 심해진다. 즉 인간의 근시안적인 성향이야 만국 공통이라고 치더라도 미래의 불확실성이 심해지고, 또한 미래의 여건변화가 심각하여 개인의 현재선호도가 지속적으로 변할 수록 우리의 선택은 합리적 선택과는 어긋나는 편향으로 이루어질지 모르며 이에 따라 점점 시간선호율은 쓸모없어지는 것이다!


 
2. 그렇다면 우리들의 선택체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앞에서 미래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심각해질수록 우리의 선택은 합리적 선택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 즉, 우리는 기껏해야 현재 기(t기)의 만족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으며, 미래의 효용에 대해서는 잘못된 가설을 세우고 나름대로 미래를 위한 선택을 행하지만 항상 t+1기에 가서는 적지 않은 후회를 남기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0기에서부터 t기까지의 여가,근로,교육 등의 선택을 놓고 우리의 '시간선호율' 이 마치 존재하는 양 결론을 내리게 되면 필히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t기까지의 미래에 대한 효용평가와 t+1기 부터의 미래에 대한 효용평가는 거의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설령 어떠한 개인이 일관적으로 미래지향적이거나 현재지향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미래에 누리게 될 효용을 유의미하게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유: 미래불확실성, 본인도 본인의 미래 효용함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음)
 
다소 재미있는 가정은 여기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개인이 스스로의 효용체계를 제대로 짐작하지도 못하고,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한다면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그렇게 될 경우, 개인은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첫째, 미래를 무시하고 현재의 효용극대화에만 신경쓴다. 쉬운 말로 풀어쓰자면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정도 되시겠다.
 
둘째. 미래의 효용까지 고려하여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즉, 다음 기의 미래에 여가가 더 필요할지 소득이 더 필요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근로소득' 이라는 것이 중립재나 비재화가 아닌 한, 어쨌든 소득이 가장 확실한 '효용지표' 로서 작용하는 것은 확실하며, 또한 미래의 여가시간은 현재의 선택과는 거의 무관하다. 이에 따라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사람들은 임금극대화 (Maximizing income)를 꾀하는 것이 일반적이게 될것이다.
 
임금극대화 혹은 소득극대화 모형에서 개인의 선택체계의 조건은 다음과 같게 된다.

 
①현재의 선택은 현재의 효용함수와 무관해진다.
 
②유보여가시간(Reservation Leisure)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가 정도의 개념이다. 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근로효율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정도면 족할 것이다.
 
③동태적 효용체계를 극대화하기 위한 가상적 지표(Proxy)로 총소득이 사용된다. 비근로소득이 없다면 총소득 = 근로소득.
 
∴결과적으로 : 개인이 일할수 있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면 유보여가시간만을 쉬고 나머지를 전부 일하는 것이 최적선택이 된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한계가 있다면 근로가능시간 전부를 일하게 된다. (단 추가근로시간에 대해서는 임금이 정상적으로 지불되어야 함)
슬프지만 이러한 방식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은 왜 그렇게 많이 일하는지를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대기업의 독과점 현상(상품시장과 노동수요의 수요독점)으로 인한 고용의 불안정성, 미래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개인은 스스로의 (미래)효용계를 제대로 짐작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총소득을 효용체계의 가상적 지표(Proxy)로 활용해 여가/근로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전문직 업종의 경우(가령,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개업변호사 및 의사 등 미래불확실성이 비교적 적은 경우에 한해)근로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직관적인 예측과도 일치한다.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CJE-May 2012] 왜 북유럽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가?


[Choi Journal of Economics]


May 2012



왜 북유럽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가?


지난 4월에 소개한 Prescott의 논문에서 설명되지 않은 부분, '높은 세율에도 노동공급을 많이 하는 국가들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에 대한 하나의 설명을 제시하는 논문입니다. 요컨대 세금을 거둬서 민간에 '특정 방식으로' '잘' 배분하면 마치 정부가 없는 시장에서의 경쟁적 균형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수학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모형을 통해 직관에 부합하는 이론적, 실증적 분석결과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좋은 논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한글 파일로 링크를 겁니다.


http://www.mediafire.com/?7em931da1cqb05l

Taxation and Market Work: Is Scandinavia an Outlier?

Richard Rogerson (2007) Economic Theory

http://pages.stern.nyu.edu/~dbackus/Taxes/Rogerson%20scandinavia%20Jan%2006.pdf

2012년 5월 10일 목요일

모든 사람이 게임의 달인이 된다면?


             먼저 게임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Ben Polak의 Game Theory 강의 발췌).

             여러 사람이 1부터 100까지의 숫자 중 한 개의 숫자를 각자 종이에 적는다.
             종이에 적은 숫자의 평균을 구한다.
             평균의 2/3에 제일 가까운 숫자를 댄 사람이 승리한다.

             독자 여러분이라면 어떤 숫자를 적겠는가?

             모든 사람이 똑똑하고, 다른 사람들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 게임의 정답은 정해져있다.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1을 적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100을 내더라도 그 2/3 66이므로, 66에서 100 사이의 수를 적어서는 이길 수가 없고,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면 44에서 66 사이, 28에서 44 사이, 의 수를 적으면 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1을 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을 실제로 했을 때 정말 1을 적은 사람이 이길까? 아니다. 여러분의 예상대로 보통은 1보다 큰 숫자를 적은 사람이 승자가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1보다 큰 숫자를 적었기 때문이다. , 위의 붉은 글씨는 현실과 다르다.

             요 근래 들어 필자는, “게임이론에 대한 연구는 왜 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러 유형의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게임 참가자들이 갖는 Payoff Strategy에 대한 고찰은 일반적으로 게임의 승률을 높여줄 것이다. 자나깨나 축구 전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축구를 더 잘 할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게임이론이 제시하는 최적전략(높은 승률의 전략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듯)이 현실에서 유효하기 위해서는 위의 붉은 글씨와 같은 가정이 만족되어야 한다. 따라서 게임이론 연구자들은 현실에 부합하는 가정을 하거나 혹은 가정에 맞는 현실을 만들고자 하는 유인을 가질 거라고 생각된다. 이 글은 후자와 후자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쓰여졌다. 위의 게임의 예를 보자면, 모든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이 똑똑하다는 것을 게임 참가자 모두가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게임이론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활발해지고 관련된 글, 영상 등의 매체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아하, 이런 게임엔 이렇게 대처하는게 정답이구나!’라는 것을 알아갈 것이다[1]. 또한, 여러 게임에 대한 정답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똑똑해지고”, “다른 사람도 똑똑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이렇게 게임이론의 가정을 만족시키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게임이론이 이끌어낸 정답은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경제학에서 주로 쓰는 용어를 빌리자면, 게임이론의 연구 및 교육, 홍보는 게임이론의 가정을 현실화함으로써 이론적 결과를 실현시키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2].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점은, 게임이론의 연구결과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 좋은 것일까 하는 점이다. 게임이론에서 다루는 많은 간단한 게임들(1:1)의 경우, 선공, 후공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여러분도 많이 해보았을 배스킨라빈스 써리원게임이 대표적인 예이다[3]. 게임을 하는 두 명 모두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배스킨라빈스 게임은 선후공을 정하는 가위바위보에서 이미 승패가 갈리게 된다. 모든 사람이 게임이론의 가정을 만족시킨다면, 세상에는 선후공에 무관하게 랜덤하게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만 남을 것이고, 어차피 게임의 결과가 랜덤이라면 그 중 가장 간단한 게임(예를 들자면 가위바위보) 하나만 남을지도 모른다[4].

아인슈타인은 인류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E=mc^2”라는 등식을 창안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한 줄의 등식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데 디딤돌이 되었다. 게임이론의 연구 역시,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지 아니면 사람들을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게 만들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5]

 

[1] 게임이론 관련 서적의 매출과 게임결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인해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2] 비단 게임이론 뿐만 아니라 경제학 역시 이러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3] 배스킨라빈스 게임은 무조건 선공이 이기게 된다.
[4] 물론 수많은 술자리 게임들은 랜덤이든 아니든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긴 하겠다.
[5] 필자는 모르는게 약이라고 생각하나, 게임이론 연구자들도 먹고살아야 하므로 적절한 속도로 연구, 교육, 홍보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적절한 속도라고 하면배스킨라빈스 게임을 할 때 이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게 유지될 정도?(웃음)

2012년 5월 6일 일요일

한계편익, 지불용의, 그리고 어떤 상품을 가장 원하는 사람


부제: 교과서 내용정리

이번 포스트는 MangoTango님의 이전 글인 김축구와 강부자, 그리고 소비자잉여를 학교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통하여 저 나름의 방법으로 정리, 보완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만, 결국 재미는 떨어지고 내용은 별 다를 것 없는 그냥 그런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경제경시대회를 준비하시는 우리 전국고교생 독자느님들께서 유용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였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두어볼까 합니다. 
(독자님들 사랑해요 ㅃㅇㅃㅇ~~) 

“맨큐의 경제학”에 따르면 수요량이란 소비자들이 값을 치르고 구입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재화의 양을 말하며, 수요곡선은 이런 가격과 수요량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지칭합니다. 또한, 지불용의는 구입희망자가 어떤 재화를 구입하기 위해 지불하고자 하는 최고금액을 말하구요.

한 사람의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곡선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이론적으로, 우리는 소득과 소비 가능한 다른 상품의 가격 등, 다른 모든 조건이 변하지 않고 그 상품의 가격만이 변하였을 때 그 사람이 선택하는 수요량을 관찰, 기록하여 수요곡선을 도출하게 됩니다. 이때, 다른 모든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 상품의 가격이 변화하게 되면 가지고 있던 소비능력, 즉 소득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살 수 있는 다른 상품의 양이 변화하게 됩니다. 800원으로 300원짜리 키커 초콜릿 두개와 200원짜리 추파춥스 하나를 사먹던 사람에게 키커 초콜릿의 가격이 200원으로 떨어지는 천운이 내려진다면 그 사람은 추파춥스를 하나 더 살 수 있게 되니까요. 이렇게 살 수 있는 재화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우리는 실질소득이 상승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상품의 가격이 변화함에 따라 의도치 않게 달라지는 조건들 중 특히 실질소득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우리의 수요곡선은 세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1. 표준수요곡선(Standard Demand Curve) ; 돈으로 환산한 소득을 고정시킨 채 도출한 수요곡선
  2. 슬러츠키수요곡선(Slutsky Demand Curve) : 재화단위로 나타낸 소득(구매력)을 고정시킨 채 도출한 수요곡선
  3. 힉스수요곡선(Hicks Demand Curve) : 기존에 누리고 있던 만족감(효용)을 고정시킨 채 도출한 수요곡선
- Hal R. Varian, Intermediate Microeconomics -

지불용의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살펴볼까요? 지불용의는 소득의 일부를 사용하여 상품 하나를 구매하였을 때 그 상품을 통해 얻는 효용을 정확하게 상쇄시키는 크기의 줄어든 소득을 의미합니다.(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득, 혹은 돈을 통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통해 원하는 상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소득을 통해 만족감을 느낀다는 말은 그리 어색한 것 같지 않습니다)즉, 특정 양의 상품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상품을 하나 더 가짐으로써 추가되는 만족감이 그 상품을 추가로 갖지 않고 그 가격에 해당하는 소득을 가지고 있을 때의 만족감과 같아지는 가격수준인 것이지요. 이러한 지불용의의 의미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힉스수요곡선인 것 같습니다. 힉스수요곡선위에서는 상품하나를 더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얻는 만족감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힉스수요곡선은 동일한 만족감을 얻기 위하여 추가적 상품소비와 맞바꾸어야 하는 소득의 크기를 보여 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각 수요량에서의 힉스수요곡선의 높이는 그 수요량에서의 재화 한 단위에 대한 지불용의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불용의의 의미와 수요곡선의 도출과정으로부터, 주어진 소득 하에서 소비 가능한, 혹은 소비가능하다는 가정 하에 특정 소비량 하에서 어떤 상품의 마지막 단위를 소비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의 크기를 그 상품의 가격단위로 계산할 수 있게 됩니다. (첫 번째로 소비한 상품의 가격을 1로 놓고 나면 각 소비수준에 따른 만족감의 상대적 크기를 얻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이 가격단위로 계산된 만족감의 크기는 각 단위의 소비량에 대응하는 힉스수요곡선상의 가격과 일치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특정상품에 대한 경제 전체의 수요곡선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다른 모든 조건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가격을 매우 높은 수준에서 점차 낮추어 나가다 보면 자신의 소득수준 하에서 그 상품을 사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소득의 일부가 가장 높은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이때 그 사람의 만족감은 그 상품 하나를 소비하거나 하지 않거나 같은 수준일 것입니다. 이 수준의 가격에서 그 상품에 대한 경제 전체의 수요는 하나입니다. 이렇게 가격을 계속 내리다 보면 자신의 소득수준 하에서 그 상품 하나와 자신의 소득 중 일부를 맞바꾸려는 사람들이 한명 씩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가격과 소비량 사이의 관계를 알아 내고나면 우리는 경제 전체의 수요곡선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개인의 소득수준 차이를 제외한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는 가정 하에 이 경제 전체의 수요곡선은 개인의 수요곡선을 각 가격에 대해 더한 것과 같겠지요.

한계편익의 의미는 어떤 상품의 마지막 단위를 소비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의 크기입니다.- 이준구, 이창용, 경제학원론 -  그런데 이것을 지불용의와 동일시하여 이것이 가장 높다는 것이 가격의 단위로도, 효용의 단위로도 그 상품에게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위에 길게 설명을 하였지만, 수요곡선의 높이는 주어진 소득수준 하에서 그 상품의 수요량에 따라 상품 하나를 위해 최대한 얼마만큼의 소득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 줍니다. 즉, 소득의 크기가 달라진다면 같은 수요량에 대해서도 다른 지불용의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소득수준이 낮다는 것은 소득이라는 상품을 적게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고, 일반적인 경우 한 상품을 적게 가지고 있으면 많이 가지고 있을 때보다 그 상품 하나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매긴다는 것을 생각하면, MamboTango님이 김축구와 강부자, 그리고 소비자잉여에서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듯, 소득 한 단위(1원)에 대한 가치는 소득이 적은 쪽이 더 높게 매기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의 한 상품에 대한 지불용의는 같은 소비량에서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에 비해 낮을 수 있으나 그것을 소비함으로써 얻는 한계편익, 즉 상품에 대해 매기는 가치는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 쪽이 훨씬 높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상품에 대해 같은 선호를 갖는다는 다소 파격적인, 하지만 흔히 사용되는 가정을 사용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의 소득이 동일하지 않다면 지불용의를 한계편익대신 사용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그렇다면 한계편익을 측정할 수 있는 다른 지표를 찾아보아야겠지만, 이는 GDP를 대신하여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를 찾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연구일 것입니다.

위의 설명으로부터 우리는 현실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현실에서는 어떤 상품에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기는 사람일지라도 소득의 제약 때문에 그 상품을 가져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를 통하여 소득 분포의 불평등도를 완화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축구의 소득이 강부자의 그것보다 더 빠른 비율로 상승하여 그와 강부자의 소득격차가 줄어들고, 김축구에게 축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생기게 된다면 당연히 그가 자신의 소득 하에서 축구화에 대해 매기는 지불용의는 강부자의 그것보다 같거나 높아져 김축구는 축구화를 사게 될 것이고, 처음부터 김축구가 축구화에 매기는 가치는 강부자의 것보다 높았기 때문에 강부자가 축구화를 사던지 그렇지 않던지 사회총잉여는 상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사회총잉여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무엇인가를 더 원하는 사람이 그것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더 좋은 상황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김축구의 소득이 더 빠른 비율로 상승해야하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물가가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이 둘의 소득 뿐 아니라 축구화의 가격 또한 같은 비율로 상승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김축구는 축구화를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2년 5월 2일 수요일

시간, 아껴뒀다 어디에 쓰시게요?


시간, 아껴뒀다 어디에 쓰시게요?


-'시간'을 주제로 한 릴레이-

 
시간을 얻는다고 말한다. 시간을 아낀다고 말한다. 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시간을 일종의 '재화'로 취급하곤 한다. 사람들의 '' 속에서 시간은 참 다양한 용도로 요긴하게 쓰이는 재화인데, 그 자체로 소비되기도 하고 다른 재화를 만드는 데에 '투입'되기도 한다.
 
Flyingbunny가 보기에 이는 참 아리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은 여느 '재화'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시간을 '얻다': 늴리리 군의 어머니는 늴리리 군에게 오늘 마트에 가서 저녁에 먹을 생선 한 마리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뾰로퉁해 있던 늴리리 군이 집을 나서려던 찰나, 갑자기 아버지께서 오늘은 외식을 하자고 전화를 하셨다. 늴리리 군은 '시간을 얻었네'라며 쾌재를 외치고 아버지께서 퇴근하실 때까지 컴퓨터 게임을 했다.
 
시간을 '아끼다': 늘 바쁜 일상에 시달리는 나빡세 씨는 2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를 만나러 시내로 나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버스를 이용하면 1시간이 걸리는 반면, 택시를 타면 직장에서 약속 장소로 30분 내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비가 훨씬 비싸지만, 그는 이 돈이 시간을 '아낀' 것에 대해 지불한 비용이라고 여긴다.
 
시간을 '투자하다': 성실해 양은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한다. 그녀는 늘 전교 1등을 도맡아 한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녀는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돼"라고 답했다.
 
이제 한 번 냉정히 생각해 보자. 늴리리 군은 정말로 '시간'을 얻었는가? 늴리리 군이 오후 4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장을 보는 데에 보내든 컴퓨터 게임에 사용하든 그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나빡세 씨는 정말로 '시간'을 절약했는가? 나빡세 시가 오후 6시부터 630분까지 회사 발표 자료를 만들고 630분부터 7시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나, 6시부터 7시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나, 나빡세 씨에게 6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이 흘러갔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마지막으로 성실해 양 또한 중간고사 전 1주일 동안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의 시간을 공부에 사용했든 다른 일을 하며 보냈든, 어쨌든 지나갔을 시간임에는 변화가 없다.
 
"Flyingbunny,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며 아직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우리는 '시간'을 거래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거래하는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며 '시간'에 실려 있는 '행복감'이다. 늴리리 군이 만세를 외친 이유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자신이 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빡세 씨가 비싼 택시비를 내고 '구입'한 것은 30분의 시간이 아니라, '30분 분량의 업무 완료'였다. 만일 버스를 탔다면 다음날 30분 일찍 출근하여 업무를 했겠지만, 택시를 탔기에 다음날 아침 단잠을 30분 더 즐길 수 있었다. 성실해 양이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투자'한 것은 '21시간'이 아니라, 21시간동안 다른 여가 활동을 하며 느꼈을 '행복감'이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어떤 함의를 가지는가? 경제학자들은 '노동생산성'을 참으로 중요한 지표로 여긴다. 그런데 '노동생산성'이란 '생산량''노동시간'으로 나눈 것이다. 여기서 왜곡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김밥을 만드는 일을 하는 두 사람이 있다. 김달인 씨는 김밥 공장에 취직하여 하루에 천 개의 단무지를 오차범위 0.1mm이내 1cm 굵기로 썬다. 그가 근무하는 김밥 공장에는 10명의 노동자가 하루 총 1만 줄의 김밥을 싼다. 왕편해 씨는 매일 가족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느긋하게 김밥을 500줄 정도 싼다. 김밥을 만들며 보낸 시간''투입요소'로 본다면 김달인 씨의 노동생산성이 왕편해 씨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기회비용으로 포기한 행복감'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왕편해 씨의 노동생산성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왕편해 씨는 생산에 투입한 '행복감'의 양 자체가 매우 작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만이 아니라 '', 즉 그 시간동안 느끼는 '행복감'을 기준으로 경제학을 다시 써 보면 어떨까? 왜 돈이 많아도 불행할 수 있는지, 왜 선진국의 행복 지수가 후진국보다 낮을 수 있는지, 경제학자들이 평소 놓치는 부분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행복감'이란 주관적인 지수이므로 수량화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이란 보이지 않는 '인적자본'까지 수량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을 하는 데에 같은 1시간을 쓰더라도 AB보다 2배 더 재미있다면, A에 투입한 실제 '노동'B의 절반 수준으로 보는 새로운 계산법으로 세계 각국의 노동 생산성을 산출해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