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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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월요일

주파수를 경매에 부치다

  여러분은 옥션에서 물건을 사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하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적 중고 게임기를 하나 사고 싶었는데 중고 장터에서 사기에는 모아둔 용돈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경매 사이트였습니다. 비록 모자란 돈이지만 운 좋게 내가 마지막 입찰을 잡기만 한다면 물건을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순진한 꿈이었을까요? 제가 아무리 물건을 잘 찾아 입찰을 한들 항상 누군가는 그 보다 높은 금액을 또 제출함을 곧 이어 알게 되었습니다. 아 딱 3만원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런만, 결국 저의 동심은 돈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기억을 갖고 있던 중에, 최근 들어 하나 재미있는 경매 사례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달 한창 이슈였던 주파수 경매입니다. 특정 주파수 대역을 할당 받기 위해 SK텔레콤과 KT, LG U+ 삼 사가 참여했던 경매인데, 최종 입찰액이 2조 5천억원에 육박했으니 그야말로 스케일이 다른 경매라 할 수 있습니다. 세간의 이목도 자연스레 집중되었습니다. 특히 만년 꼴찌 LG가 최근 LTE의 성공을 기반으로 2위 탈환을 노리고 있던 터라 이번 경매는 향후 시장 판도를 가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하위 주자로서는 결정적인 찬스였지요.

  하지만 경매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LG의 꿈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시장 우위를 점하고 있던 SKT와 KT는 꽤나 성공적으로 주파수를 받을 수 있었고요. 아무래도 경매라는 방식에 회사마다 유, 불리가 달랐던 모양입니다. 자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은 듭니다. 왜 주파수를 배분할 때 다른 대안도 아니고 경매를 사용하는 것일까요? 분명 장단점이 있을 텐데 말이지요. 이는 우리가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이슈인데 이 참에 한 번 주파수 경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파수는 토지와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부는 특정 대역에 배타적인 사업 권을 부여하는데, 같은 대역에서 여러 사업자가 동시에 통신망을 이을 경우 혼선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주파수 역시 희소한 자원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마치 비옥한 땅이 있고 황폐한 땅이 있듯이, 어떤 주파수 대역을 지정 받느냐에 따라 통신 서비스의 질적 측면은 차이가 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과거 SK 텔레콤은 상대적으로 저주파(800Mhz)를 배정받은 덕분에 적은 기지국 설치로도 높은 통화성공률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흔히 SK가 통화품질이 좋다는 소비자들의 인식도 이에 연유합니다. 이를 통해 시장 초기부터 선도자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고요. 주파수의 위치뿐만 아니라 폭도 중요합니다. LG가 LTE 시장에서 선전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상대적으로 넓은 대역폭을 할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당된 대역폭이 넓은 경우 보다 빠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정부가 각 통신사들에게 얼마나 그리고 어느 주파수를 할당할 것인가의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입니다. 30조원에 달하는 통신 시장의 경쟁 판도가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배분 방식을 택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데, 정부의 옵션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정부의 첫 번째 옵션은 추첨입니다. 말 그대로 운에 맡기는 것입니다. 장점은 행정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를 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정한 배분방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 나라 공공주택의 경우 추첨을 통해 할당하는 것도 이러한 장점에서 기인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지원자를 심사하기도 힘들 뿐 더러 공정성을 가미할 필요도 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단점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efficiency)을 저해한다는 점입니다. 그 물건이 가장 절실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단지 운에 의해 탈락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파수도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닌 부실 기업에게 사업권이 배정될 수 있습니다.

  이때 정부는 추첨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후 거래를 허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물건은 시장 거래를 통해 지불용의가 가장 높은 사람에게로 돌아가겠지요. 통신 사업의 경우 가장 매출 창출 능력이 높은 사업체가 거래를 통해 당첨자로부터 라이선스를 구입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투기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일단 당첨만 되면 큰 수익을 무위험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 의지가 없는 회사들 조차 요행을 바라고 추첨에 참가할 유인이 있습니다. 실제로 신규 주택 청약에 있어서도 실수요자가 아님에도 당첨 프리미엄을 노리고 참가하는 경우가 있었음을 기억하실 겁니다. 사회적 지대(rent)가 특정 주체에게 전유된다는 점에서 이는 오히려 공정성을 저해한다고 볼 수 있으며 거래비용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한편 정부의 두 번째 옵션은 심사입니다. 심사위원단이 구성된 뒤 각 통신사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주파수를 할당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할당 대가로 매출의 일정 분을 세금으로 거둘 수도 있습니다. 좋은 주파수는 가장 사업 운영능력이 뛰어난 사업체에게 배당이 됩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고 또 더 높은 세수 확보도 가능할 것입니다. 실제로 과거 우리 나라에서 주파수 할당은 정부 심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지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특혜시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부정부패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행정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데, 미국 같은 경우에는 각 주별 사업자들을 일일이 검토하는 것이 불가하였던 터라 일찍이 심사 방식을 폐기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볼 정부의 옵션은 경매입니다. 이번 주파수 할당에서 진행되었듯이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사업체에게 해당 주파수를 불하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각 회사들이 자체 예상 매출을 바탕을 주파수의 가치를 적정하게 평가할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굳이 정부가 심사에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낮은 행정비용을 지불하고서도 배분의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심사 방식과 달리 부패가 개입할 여지도 특혜시비가 벌어질 염려도 없습니다. 물론 경매라는 제도 자체에 내재된 제반 문제들은 있습니다. 담합이 발생하면 배분이 왜곡될 수 있고, 반대로 과도한 경쟁이 지나치게 높은 입찰을 유도하여 소위 승자의 저주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시장 선도자 기업은 좋은 주파수에 배정받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기에 경매를 통해서는 기존 시장 구조를 탈피하기 어렵다는 점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완장치 역시 상당부분 연구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사실입니다.

  이처럼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여러 방안들 사이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파수의 경우 여러 특성을 미루어 볼 때 경매가 비교적 효과적인 배분 방식이라는 것도 짐작 할 수 있고요. 이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신규 주파수를 할당할 때 마다 경매를 활용하곤 합니다. 2011년 첫 시행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주파수 경매 제도가 또 다시 채택된 것도 놀라운 일 만은 아닙니다.

도표 출처: 미래창조과학부 보도 자료 

  그리하여 이번 2013년 주파수 경매는 1.8GHz와 2.6GHz 대역을 두고 실시 되었습니다. 방식 자체는 조금 특이합니다. 단순히 주파수만을 두고 경쟁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파수 배분의 안건 또한 함께 경쟁하는 구도입니다. 위의 그림에 보듯이 밴드플랜1과 밴드플랜2가 있습니다. 두 방안의 차이점은 기존 KT 주파수에 인접한 D2 대역을 할당하느냐 마느냐입니다. D2는 KT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KT의 경우 D2를 받을 경우 대역폭이 넓어져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됩니다. 다른 업체는 이를 견제해야 하는 상황인데, 만약 플랜2만 경매안으로 제시될 경우 KT를 막기 위해 각자에게 필요도 없는 D2에 입찰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부조리를 막기 위해 밴드플랜 1과 밴드플랜2을 동시에 두고 기업들은 입찰을 하며, 플랜 별 입찰액수 합에 따라 더 높은 쪽 방안이 선택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때 LG와 SK는 서로 힘을 합쳐 밴드플랜 1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지요. 하지만 어느 한 기업이라도 밴드플랜2로 옮겨 탈 경우 저렴하게 C2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죄수의 딜레마 상황) 결국 SK가 옮겨가게 됩니다. 덕분에 플랜2가 채택되어 KT는 원하던 D2를 챙길 수 있었고, SK가 C2를, LG는 가장 불리한 주파수였던 A2를 울며 겨자먹기로 가져가게 된 것입니다.

  이 경매 결과를 두고 언론들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입니다. KT에게 잡음 없이 D2를 할당하고 적정한 선에서 SK와 LG가 남은 주파수를 나눠 가진 것을 대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요. 사실 KT가 D2를 가져간 것은 다른 두 업체에게는 뼈아픈 일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효율적인 배분입니다. KT는 이제 아무런 추가 설비 투자 없이도 통신 속도를 2배 가까이 빨라지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장 다음 주 부터지요. 만약 KT가 이 주파수를 가지지 못했다면 다른 통신사들과 마찬가지로 신규 설비를 설치했어야 했는데, 이는 형평성을 위해 효율성을 희생한 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하간 우여곡절이 많았던 주파수 경매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상황이 복잡했던 만큼 상당히 정교한 방식의 경매가 채택되었고, 덕분에 효과적인 주파수 배분이 가능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만약 추첨이나 심사 등 다른 대안을 사용했더라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좋은 결과를 달성하기 어려웠었겠지요. 주파수 경매 또한 경제학의 이론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예가 아닐까요. 앞으로의 상황도 흥미롭게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