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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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4일 수요일

왜 게임은 확률의 노예가 되었나





들어가기에 앞서: 일단 예정된 날짜를 지키지 못하고 업로드가 늦어진 점 사죄 드립니다. 앞으론 날짜를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게임 말고 다른 쪽 얘기를 준비했었는데, 개인 사정 상 이번에도 게임 얘기를 하게 되었네요.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왜 게임은 확률의 노예가 되었나 -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윈드러너와 같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게임 회사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게임은 퍼즐 앤 드래곤이나 확산성 밀리언 아서와 같은 모바일 TCG 입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윈드러너'의 모습

TCG Trading Card Game의 준말로, 본래 카드 게임이 갖는 전략적인 플레이를 통한 오락성 이외에, 각각의 카드에 가치를 부여하여 거래가 가능토록 한 형태의 게임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전의 TCG는 카드 거래를 통해 더 좋은 카드를 얻고, 상대와의 1 1 대결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은 카드()를 활용해 전략적인 승부를 펼치는 형식이었습니다.

대표적인 TCG, 유희왕의 카드 모습
 
하지만 최근 모바일 게임회사들이 내놓은 모바일 TCG 게임의 성격은 조금 다릅니다. 게임 개발자들은 사용자들이 게임을 어떤 식으로 플레이 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더 희귀하고, 더 값진 카드를 얼마나 빨리, 많이 만들어내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더 희귀한 카드로 사용자들을 유혹해, 사용자들이 이 카드를 얻고자 아둥바둥 거리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모바일 TCG,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모습. ‘확산성 밀리언 아서와 같이, 최근 모바일 TCG에서는 기존의 TCG가 가지고 있던 복잡하고 전략적인 플레이 보다는, 트레이딩 시스템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모바일 TCG들이 전략적이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만 )

게임 내에서 사용자들이 희귀한 카드를 얻는 방법은, 뽑기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전문용어(?)로 가챠라고 부르는 것인데, 동전을 투입하고 손잡이를 돌려 장난감을 뽑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현금을 투입하고 뽑기 버튼을 터치 해 카드를 뽑는 시스템이랄까요.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카드 뽑기 시스템. 물론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금의 모바일 TCG들이 전략적이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TCG에 있어서, 트레이딩과 전략의 균형이 많이 무너진 건 사실입니다. 

사용자들이 현금으로 뽑기 티켓을 구입하고, 그 티켓으로 뽑기 버튼을 클릭하면, 사용자들이 얻게 될카드는 확률적으로 결정됩니다. 여기서 문제는 확률이라는 부분입니다. 사용자는 자신이 어떤 카드를 얻게 될지 알 수 없고, 어쩌면 자신이 갖고 있는 카드를 또 다시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희귀한 카드에 대한 욕심이 크면 클수록, 사용자의 지갑은 기하급수적으로 가벼워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많은 무료모바일 TCG 게임들이 마치 사용자들의 실력과 전략을 통해 다소 열등한 자신의 카드들을 더 강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을 심어주지만, 결국은 더 많은 현금을 써서, 더 희귀한 카드를 소유하는 사용자들이 모바일 TCG 세계의 최강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게임회사들은 모바일 TCG 게임이 가진 확률시스템을 활용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기록하기에 이릅니다.
 


퍼즐 앤 드래곤의 모습. ‘퍼즐 앤 드래곤 1달 매출액이 컴투스의 1년 매출액보다 더 많아요 J

즉 지금 게임회사들이 주목하는 건 카드 게임이란 장르가 지닌 특유의 전략성이 아닙니다. 바로 다양한 종류의 카드들과, 그 가운데서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뽑기 위해 거치게 되는 확률 시스템,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수익성입니다.
 


최근 모바일 앱스토어 상위 게임. 한국에서도 다수의 TCG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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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확률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기대값이란 개념은, 짧은 게임의 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미 게임이란 분야는 태어날 때부터 확률 시스템을 안고 있었던 셈 입니다. 

많은 분들이 해 보셨을 '드래곤 플라이트'(이하 '드플')란 게임을 예로 들어보고자 합니다. '드플'에 등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확률 시스템은 새끼용입니다. 일정 골드로 새끼용 알을 구입하면, 알에서 새끼용이 나오는데, 중요한 사실은, 아주 낮은 확률로 '희귀용'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희귀용'을 얻기 위해, 수 많은 사용자들이 자신의 게임 머니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구요.


 
'드래곤 플라이트'의 새끼용 

하지만, 게임 내에서 확률 시스템은 이런 '뽑기' 형태 말고도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드플'에 등장하는 다양한 적들의 출연 빈도라든지, 적의 다양한 움직임 패턴, 그리고 적을 쓰려뜨렸을 때 나오는 아이템의 종류 등도 모두 확률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히 게임 내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 혹은 오브젝트들이 확률적으로 등장한다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마치 아이템이나 오브젝트들을 우리의 노력을 통해 획득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템이나 오브젝트의 등장 빈도나, 획득 가능성, 획득하는데 걸리는 시간, 그리고 획득한 수치 등은 모두 게임 개발자들이 확률을 통해 미리 계산해 둔 기대값을 바탕으로 정해진 값입니다. 

때론 특정 아이템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 존재할 것이며, 때론 특정 아이템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귀찮아지는 순간도 존재할 것입니다. 어떤 아이템은 정말 한 두 개씩 모자라 사용자들의 애를 태울 것이며, 어떤 아이템은 전체 이용자 가운데 한 두 명만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용자들의 부러움과 우상의 대상이 되기도 하구요.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화면들도 사실상 확률에 지배당해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게임 내에서 사용자들이 확률적으로 아이템이나 오브젝트를 얻게 된 가장 주요한 이유는, 게임 내 오브젝트들에게 상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들은 게임을 하면서, 어떤 아이템이나 어떤 오브젝트가 더 좋은지, 더 나쁜지를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게임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죠 :D ) 때론, 게임 내 상점과 같은 곳에서, 더 좋은 아이템에 더 비싼 가격을 매기는 방식으로 사용자들에게 어떤 아이템이나 오브젝트가 더 좋은지를 알려줄 수도 있지만, 그런 방식 보다 훨씬 더 사용자들에게 아이템의 값어치를 체감시켜 줄 방법은, 더 좋은 아이템일 수록 확률적으로 얻기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게임 내에 등장하는 최고급 아이템이든 싸구려 아이템이든 모두 실제론 그저 '바이트 (byte)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우리 눈에는 해당 아이템에 대한 이미지 파일이 출력되어 보이지만, 좋은 아이템이든 나쁜 아이템이든 본질적으로는 그저 숫자로 이뤄진 덩어리라는 의미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라면 어떤 물체에 가치를 매기는 방식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겁니다. 누가 만들었는가, 언제 만들어졌는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 등등, 여러가지 잣대를 통해 물체의 가치가 정해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은 가치를 매기는 방식에 있어 확률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 확률 시스템으로부터 희소성의 가치를 끌어다가, '더 고급스런 바이트 덩어리'를 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 동물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어느게 더 희소하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게임 내 아이템이나 오브젝트의 가치를 가늠하는데 확률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들이 확률로 사용자들과 티격태격하는 것은 정말 게임의 근본적인 부분, '희소성의 원칙에 의한 가치 부여'와 관련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즐기는 (거의) 모든 게임들은 이미 확률에 지배당해 있습니다. 사용자들이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이미 게임 개발자들에게 확률적으로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상황과 다름 없습니다. 조금 잔인한 비교이지만, 게임 개발자는 마치 카지노에서 사용자들의 돈을 손쉽게 털어가는 딜러와 같은 존재입니다. 

결국, 게임 내 오브젝트의 가치를 정하는 가장 전통적이고(?) 익숙한 방법은 희소성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최근 모바일 게임들 대다수가 무료 다운로드 후 인앱 결재 - , 게임을 무료로 다운 받은 뒤, 게임 내 화폐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 - 방식을 취하고, 이로부터 막대한 금전적인 이득을 올리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 드렸듯이, TCG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좋은 카드, 귀한 카드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게임 내 확률 시스템에 적용하게 되면서, 게임 회사들은 사용자들의 현금으로 더 좋은 카드를 확률적으로 뽑을 수 있게 만듭니다. 게임 내 오브젝트들의 희소성에 게임 머니를 매겨오던 기존 방식이, 희소성에 현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변한 겁니다. 

이렇게 되자, 모바일 TCG는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수익을 챙기게 됩니다. 대다수 모바일 TCG의 일일 사용자 수는 '윈드러너''드플'과 같은 캐주얼 게임, 그리고 '아이 러브 커피''룰 더 스카이'과 같은 SNG의 일일 사용자 수에 턱없이 모자랍니다. 하지만, 그 턱없이 모자라는 소수의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금액은 정말 엄청납니다. 이들 대다수가 게임 내 현금 사용에 거부감이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희귀한 카드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현금 결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하드코어 유저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던 '히어로즈 워'. 지금 게임회사들은 모바일 게임 시장에 유입되고 있는, 과금력 넘치는 하드코어 유저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게임회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애니팡'과 같은 캐주얼 게임들을 운영하는 게 대중성이란 측면에서는 좋은 선택이나, 게임을 별로 해보지 못한 라이트 유저까지도 포함된, 너무도 많은 사용자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TCG 사용자들은 충성심 강한 소수의 '하드 코어'한 게이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관리해야 할 범위가 적으면서도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바일 TCG, 게임회사들 입장에선 매력적일 수 밖에 없죠. 그리고 이것이, 블리자드와 같은 초대형 회사들을 비롯, 수 많은 게임 회사들이 TCG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발표된 블리자드 사의 신작 PC/모바일 TCG '하스스톤: 워크래프트의 영웅들'

결국, (지난 달에 언급했던) 시간에 현금가치를 매기던 SNG의 시대에서, 게임 실행 횟수에 현금가치를 매기던 팡류 캐쥬얼 게임의 시대를 지나, 확률 시스템에 근거한 희소성에 현금가치를 매기는 모바일 TCG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게임을 지배하고 있던 확률 시스템은 좀 더 직접적으로 사용자들의 돈을 요구하기에 이른 겁니다. 이미 모바일 TCG가 게임 시장의 대세가 된 일본에서는 최근 모바일 게임 내 과다한 과금 결재가 이슈가 된 바 있습니다. 모바일 TCG를 즐기던 어느 사용자가 카드 뽑기에 한화 약 1억원을 사용했다는고 하더군요. 모바일 TCG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일부 사용자들은 도박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모바일 TCG의 사행성과 중독성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모바일 TCG가 정말 도박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여기서 결론을 내리긴 힘들지만, 분명한 사실은 게임이란 장르가 오래 전부터 확률 시스템과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게임 내 특정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거의 유일무이한 방법이 희소성의 원칙이라는 점에서, 희귀한 카드에 더 많은 현금을 쓰게 만드는 모바일 TCG의 과금 방식은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기발한 측면이 있습니다. (게임 개발자들은 결코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게임이 너무 확률에 의존하게 될 경우, 사용자들이 게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부터 게임 수명이 단축되는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는 점도 결코 간과되어선 안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좋게 봐줘야 고작 그래픽에 불과한 이 가상의 카드 조각에 얼만큼의 현금가치를 스스로가 부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란은 무료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현재의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끊임없이 재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번 SNG에 대해 다룬 데 이어, 이번엔 TCG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 SNG TCG가 세대 교체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다음 시대의 게임 장르는 어떤 식으로 사용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까요? 과연 어떤 경제 논리와 어떤 심리기재를 활용해, 사용자들이 돈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까요?








 

 

- 쿠키 -

 

사실 온라인 게임 시장이 발전하는 가운데 게임이 뽑기라든지 강화, 아이템 도박 등의 방식으로 좀 더 직접적으로 확률 시스템을 사용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도박을 예로 든다면, 확률적으로 도박을 통해 사람들이 잃는 돈은 따는 돈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면, 도박이 가진 확률적인 측면과 도박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만 활용한다면, 사용자들이 갖고 있는 게임 내 화폐를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하게 잃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게임 내 화폐가 엄청나게 쌓이면서 발생하는 게임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때는 더더욱 말이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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