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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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9일 화요일

서별관 회의와 한국은행

  지난 화요일, 한국은행 총재가 서별관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잘못 뉴스가 전달되면서 채권시장이 요동친 적이 있었습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금리인하의 시그널로 받아들였는데,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인하할 경우 국채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이를 미리 예상해서 국채 선물을 대거 매입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해프닝이었습니다. 김중수 총재가 그날 서별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뒤늦게 드러난 것이지요.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이 불참을 두고도 금리인하를 위한 명분쌓기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총재의 서별관회의 참석이 왜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요? 오늘은 이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고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변화된 역할에 대해 저의 생각을 간단히 써볼까 합니다.

1. 한은 총재의 서별관 회의 참석?

  서별관 회의는 정부의 경제각료 들이 모여 경제현안을 논하고 정책을 조율하는 자리입니다. 정식명칭은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이지만 이와 같은 별칭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매 회의가 청와대 서별관에서 열려온 까닭입니다. 사실 서별관 회의는 비공식 밀실회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재정부 장관을 비롯하여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감원장 등 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주요 경제정책 쟁점을 논의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보도자료나 회의 기록을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별관에서 주최하는 이유도 보안유지에 유리하고 참석자들의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 추측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은행 총재가 서별관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앙은행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정책금리 결정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사실 금리결정 회의가 있는 주는 그래서 한은 총재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자제해 왔는데, 과거 몇 번의 예외가 있기는 했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그러한 예외 때마다 번번히 정책금리는 인하로 결정이 났었지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긴급 소집된 서별관 회의에 한은 총재가 참여한 이틀 후 기준금리는 0.25%p 내렸졌고, 지난해 7월에도 총재가 서별관 회의에 다녀온 직후 기준금리가 전격 인하되었습니다. 특히 후자는 제가 기억하기로도 아무도 시장에서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깜짝 조치였습니다. (채권 세일즈를 하던 선배의 절규가..) 이와 같은 사례가 과거에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한국은행 총재의 서별관 회의 참석은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시그널로 인식됩니다.

2. 중앙은행의 독립성 
    
  자 위에서도 보면서 알 수 있듯이, 또한 우리가 거시 시간에 배웠듯이^^; 통화정책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경제학의 주요한 논리 중 하나입니다. 통화정책은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도움을 줄 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필립스(A. Philps) 1861~1957년 중 명목임금상승률과 실업률 자료를 분석하여 이 둘 사이에 상충관계가 존재하였음을 발견하였고 이는 우리가 잘 아는 필립스 곡선입니다. 이후 립시(R. Lipsey)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이 필립스곡선에 이론적 토대를 부여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한다면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통화정책의 경기부양 효과를 부인하는 이론적, 실증적 논거들이 많이 제시되었고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합니다. 확장적 통화정책이 실물 경기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으로 상쇄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루카스는 임금 계약에서의 합리적 기대를 강조하며 통화정책의 무용론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를 보면 1에 가까운 데에 반해 인플레이션과 실질 생산의 상관관계는 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단기적인 부양효과 마저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여파는 머지않아 사라지는 반면, 인플레이션의 폐해는 장기적으로 미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통화정책은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즉, 통화정책이 경기 부양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지양하고 적정 인플레이션만을 타겟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까지의 조류였던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중앙은행을 아예 정부의 손으로부터 독립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의 유인을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에 법적, 제도적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것이지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메커니즘 중에는 사람들의 물가 상승 기대 심리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중앙은행의 물가관리 의지에 대한 강한 신뢰가 형성될 때 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또한 1997 IMF의 권고로 한국은행을 재정경제부 손에서 독립시킵니다. 또한 목표 물가상승률을 정하고 정책금리의 조율을 통해 이를 달성하는 제도를 도입합니다. 이름하여 인플레이션 타게팅(inflation targeting)입니다.


 3. 변화된 역할의 필요성

  이러한 연유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중립성, 자율성을 주문합니다. 얼마전 박근혜정부의 새 경제수석이 한은 금리 내리면 더 좋다라는 발언을 내놓았을 때 언론으로 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은행 총재가 정부의 고위 각료들이 모이는 서별관 회의에 참석하는 것 또한 비판적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변화된 금융환경에 맞추어 보다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통화정책의 목표 자체가 더 다양해졌습니다. 그 전에는 물가 주무 기관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금융시장의 안정 또한 중앙은행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유동성 충격을 해소하는 데 있어서 이번 금융위기에 통화정책이 유효한 해결방안 중 하나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중인 하우스 푸어 문제나 가계부채 문제에 있어서도 중앙은행의 역할은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금융 안정과 거시건정성 관리가 전 세계적으로도 점차 중앙은행의 주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다변화된 문제에 있어서 정책 기관들간의 공조가 중요시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 대출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이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정부 당국의 미시적인 규제 또한 이를 보조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물가 관리에 있어서도 정부당국의 역할이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일전에 있었던 국제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해 국내 식료품 가격이 급격히 오를 것이 예정되었을 때도 한국은행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통화정책은 일종의 대량살상무기(?) 같은 것이기 때문에 특정 종목의 물가상승을 억제하려다간 전체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식료품 가격의 상승은 사람들의 체감 인플레이션을 높여 장기적으로 추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정부가 곡물 가격에 일시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든지, 만약을 대비한 비축제도를 활용한다면 물가 관리에 있어서도 정책 공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은행 총재의 서별관 회의 참석, 물론 문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보다 정책공조를 위한 여러 노력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과 같은 통화정책을 통한 자의적인 경기부양은 결코 없어야겠지만, 마찬가지로 완전히 중앙은행이 외따로 떨어져 정책의 재량권을 좁히는 것도 새로운 금융환경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통화정책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댓글 1개:

  1. 쭉 블로그를 재밌게 읽으면서 제 글에도 리플을 답니다 ㅋㅋ
    한국은행이 시장의 예상과는 달리 4월 기준금리를 동결하였습니다. 또한 그간 장기간 완화적 통화 기조를 유지했다는 것을 피력하기도 했는데요.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속이 탈 노릇이지만 앞으로의 전개과정이 어찌 될지 재밌습니다. 한편으론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회복은 언제 쯤이나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참 답답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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