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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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가난 증명"



오늘도 자존심 따윈 내던져야 한다. 기초수급을 받으러, 장학금이나 복지혜택을 받으러, 턱없는 보험료를 낮추러….

누가 누가 더 힘들고 고통받는가, ‘고생의 올림픽’이 벌어진다. 남 앞에 가난하고 곤궁하다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도 힘든데, 일일이 공증 서류로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믿어주는 세상. 몇 끼를 굶었는지 위 엑스레이를 찍어 제출해야 할 날도 멀지 않았다.



한겨레 신문 12월 29일자에 "김한민의 감수성전쟁"이라는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마침 대학원 장학금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던 터라 여기에 있는 말이 와닿더군요.


그런데 저는 "가난증명"을 엄격하게 하는 현실이 전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 증명"을 대충대충 하는 장학금제도, 복지제도를 상상해봅시다. 그러한 제도 하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로 돈이 많은 사람도 장학금을 받고 복지혜택을 받는 것이며, 그로 인해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예전보다 "가난을 증명"해야되는 일이 많아진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복지제도, 장학금 제도가 이전보다 더 많아졌기 때문 아닐까요?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이 이전보다 좋아진 제도를 누리는데 "가난 증명"은 필연적으로 치뤄야할 대가이며, "가난 증명"이 엄격할 수록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제로 돌아가는 몫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2012년 12월 19일 수요일

금융 제국 흥망사 - 제 1부-

아래는 제가 쓰고 있는 논문인 '금융제국 흥망사' 에서 주요한 부분만을 발췌 후 정리한 것입니다.




금융제국 흥망사

0. 서장

1973년 3월의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1) 붕괴는 여러 모로 의미를 갖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비교적 안정된 금융거래 및 환율안정을 구가할 수 있었던 고정환율제도 자체의 붕괴로 인한 환율불안정 및 금융위기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이 가장 큰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제 1 강대국’ 미국이 기축통화의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함으로써 ‘금융 제국’ 으로 이행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아마도 의도적인 결과는 아니었겠지만.)

‘금융제국’ 이란, 이 글에서만 쓰이는 특별한 용어로서, 그 정확한 의미는 단순히 금융중심지로서의 강대국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따라서 세계 2차 대전 이전까지 세계금융의 중심지로서 강대국이었던 대영제국은 정확히 말해 이 글에서의 금융제국에 속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가리키는 금융제국의 정확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제조업 등 비금융산업의 경쟁력이 경제성장률의 주된 동력이 아니어야 한다.
2)경상수지는 대체로 적자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럼에도 비슷한 1인당 GDP 수준의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했어야 한다.
3)당해 국가의 통화 혹은 채권은 적어도 안전자산으로서 큰 매력을 가져야 한다.
4)환율제도는 반드시 변동환율제도(그것이 자유변동환율제이건 관리변동환율제이건 관계없이)를 유지해야만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금융제국이란 ‘금융산업’이 경제성장의 주요한 동력으로서, 실물부문에서의 낮은 경쟁력(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해외자본의 유입 및 지속적인 통화증가 등으로 이러한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할 수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축통화(미국의 경우 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국가라고 할지라도, 완전한 고정환율제도 하에서는 이러한 금융제국은 절대로 유지될 수 없음을 어렵지 않게 보일 수 있다.
가령, (브레튼우즈 체제와 같은 완전한 고정환율제도 + 현재와 같은 자유로운 자본이동) 하에서 미국이 경상수지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공급을 크게 증가시켰다고 가정하자. 이 때, (미국/기타 선진국) 으로 구성된 대국-2국 개방경제의 모형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미국 및 기타 선진국의 국가별 위험도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고, 자본이동이 자유롭다고 하면, 미국 및 기타 선진국 간의 이자율 간에는 다음과 같은 유위험이자율평가(UIRP)가 대체적으로 성립한다:

R = R* + (ee - e ) / e
(단, R = 기타선진국의 이자율, R* = 미국의 이자율, ee = 기대환율, e = 현재환율)

이러한 유위험이자율평가가 성립할 경우, 달러화의 공급이 증가하였다고 하더라도 결국 고정환율제도 하에서 미국은 동일한 명목가격의 달러화에 대해 일정한 실물자산을 교환해 줄 의무가 생긴다. 가령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미국은 명목화폐 35달러에 대해 무조건 금 1온스를 태환해 줄 의무가 존재하였다. 그런데 태환을 위한 실물자산인 금의 실질가치는 여전한 반면, 달러화의 실물자산에 대한 실질가치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국제투자자들은 공급이 증가한 달러화를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에 대해 금 1온스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러한 금태환 요구에 대해 준비자산(금)이 충분하다면 실제환율과 기대환율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외국의 수익률 R과 미국의 R* 는 동일하게 유지되므로 차익거래를 통해 금융산업이 이익을 꾀할 여지가 남지 않게 된다.2) 또한 미국이 더 이상 달러화를 고정된 가치를 가진 실물자산으로 태환해 줄 여력이 남지 않게 될 경우,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국화폐의 평가절하를 단행해야만 할 것이고 이러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경우 결국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완전한 고정환율제도 하에서는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가 통화를 기대가치( ee )로부터 오랜 기간 이탈시킬 수가 없게 된다. 즉각적인 실물자산으로의 태환요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제국, 즉 변동환율제도를 사용하며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보장하는 경우에는 어떠한가? 위의 가정과 같이 UIRP 가 성립한다고 가정하고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통화량을 증가시켰다고 하자.  R = R* + ( ee - e ) / e  공식에서, 예상된 미국의 통화량 증가정책은 기대환율을 당장 장기균형 수준까지로 하락시킬 것이다(기타 국 입장에서의 환율하락 = 미국$화의 가치하락) 그러나 실제 환율하락에 의한 경상수지 악화를 우려한 국가들(특히 대미 수출에서 흑자를 유지하여 경제성장을 높게 유지할 수 있는 중국 등)은 달러화를 매입하여 이를 다시 미국의 채권 등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세계 전체의 외환시장에 대한 달러화 공급증가의 충격을 어느 정도 완충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금융산업이 아닌 제조업 등이 경제성장의 추동이 되는 국가가 충분히 존재하는 한 달러화의 가치는 실제 공급량에 비해 턱없이 적은 비율로 하락한다. 따라서 ‘금융제국’ 은 통화량증가율에 비해 통화의 가치 하락폭이 현저히 낮은, 즉 통화주조차익을 챙김으로써 세계 각국에 대한 부채 및 적자를 감내할 수 있으며, 이는 국내총생산수준에 비해 높은 소비를 유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3)

1. 금융제국의 출범 - 불안한 출발(1973~1984)

1960년 후반. 과열된 미국의 경기가 진정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경기후퇴 및 경상수지적자로 인해 미국이 언젠가는 화폐가치를 하락시키고 통화공급을 증대시켜야 할 것이라고 판단한 각국의 투자자들이 고정된 태환율(35$=금 1온스)로 달러화를 매도하기 시작하자, 미국의 각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정환율제도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웠다(이는 고정환율제도 하에서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는 장기간 동안 보전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 결국 달러화의 금태환 중지(1971년 8월) 및 달러화의 평가절하(1971년 12월)에도 불구하고 달러화 투매현상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결국 1973년 3월 19일 각국은 변동환율체제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로써 고정환율제를 바탕으로 한 브레튼우즈체제는 무너지고, 또한 금융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 셈이었다.

금융제국의 설립을 1973년 3월로 본다고 하여도, 물론 처음부터 금융제국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제조업분야의 경쟁력은 여전히 저조하기 짝이 없었고, 여전히 환율을 일정한 목표대에서 유지하기 위한 관리변동환율제도가 각국의 재량하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금융산업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61~72 AVG.
AVG without irregular
GDP percent change based on chained 2005 dollars
2.3%
6.1%
4.4%
5.8%
6.4%
6.5%
2.5%
4.8%
3.1%
0.2%
3.4%
5.3%
4.23%
4.6%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73~84 AVG.
AVG without irregular
5.8%
-0.6%
-0.2%
5.4%
4.6%
5.6%
3.1%
-0.3%
2.5%
-1.9%
4.5%
7.2%
2.975%
3.65%
출처: Bureau of Economic Analysis

위의 표에 기술된 바와 같이, 1972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기 직전까지 1961~1972년도의 경제성장률을 평균하면 4.23%이며, 경제가 크게 침체했던 irregular 인 1970년을 제외할 경우 평균경제성장률은 4.6% 이다. 그러나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갓 설립된 미국(금융제국)의 1973~1984 평균 경제성장률은 2.975% 에 불과했으며, 최악의 경제위기 중 하나였던 1974~1975 오일쇼크를 제외한 AVG without irregular 를 측정한다고 하여도 3.65%에 불과하였다. 이래서는 미국 경제가 규모적으로 크게 성장한 점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금융제국’ 이 설립 초기에는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추정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1976~1978년의 짧은 경제호황 이후에 미국경제는 또다시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상대적인 저성장으로 고심하게 되고, 이때 폴 볼커(Paul volker)의 유명한 급랭정책4)으로 인해 미국경제는 짧은 침체기를 맞기까지 하였다. 폴 볼커의 급랭정책으로 인한 충격이 진정되고 인플레이션이 급락하면서 1983~1984년 미국경제는 짧은 회복기를 거치게 되지만, 1984년 후반부터 다시 미국경제의 성장은 다시 저조해지기 시작하였고, 제조업분야의 경쟁력 악화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아니하였다. 이에 따라 시도된 것이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통해 쌍둥이 적자 문제5)를 해결하기 위한 플라자 협정 혹은 플라자 합의이다.


2. 위기와 극복 - 플라자협정과 위기, 이후의 경제호황 (1985~1999)

흔히 플라자협정 이전의 변동환율체제를 비협조체제(각국은 기본적으로 독자적인 환율관리정책 수행), 플라자협정 이후의 변동환율체제를 협조체제(각국은 미국의 중앙은행과 협의하여 외환시장개입을 공개적, 협조적으로 수행)라고도 한다.6) 이러한 환율정책의 공조체제로 인하여 미국에 대한 경상수지 흑자가 높은 국가(독일, 일본 등)의 화폐가치가 점차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달러화가치는 점차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미국의 경상수지 개선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루브르협약으로 인해 더 이상의 달러화가치 하락이 좌절됨에 따라(1987년 2월) 환율정책 및 공조를 통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해결 노력은 좌절되고 말았다.

아마도 이때만 해도 미국은 자국의 경제체질 및 ‘금융 제국’ 의 운영메커니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틀림없다. 자국의 제조업경쟁력 악화는 단순히 환율조정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상승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7), 미국이 경상수지의 악화는 단순히 달러화 공급 증대와 달러화가치 유지를 통한 화폐주조차익 및 자본유입을 통한 국제수지 보전으로 대응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가장 편리하면서도 이익이 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였다.

자국화폐의 달러화 대비 가격상승으로 인해 수출에 제동이 걸리고, 기업들의 부동산-주식 등의 투기거품이 심해짐에 따라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일본경제는 1989~1990년 사이에 그 거품(Bubble)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긴 침체에 빠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제 1의 교역국8)이던 일본의 침체로 인해 1991년 미국은 짧은 침체를 겪게 된다. 이후 미국경제는 1992년부터 비교적 무난한 경제호조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 중에 IT 산업의 빠른 성장세가 미국경제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9), 은행산업과 금융산업의 분리를 통해 투자은행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성장하는 것에 제동을 걸었던 글래스-스티걸법이 1989년을 기점으로 크게 유명무실화했다는 것 역시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이라 하겠다.

실제로 1980년 후반부터 투자은행들은 글래스-스티걸법의 허점을 이용해 우회적으로 상업은행의 업무 분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으며10) 상업은행 역시도 상업은행의 자회사가 증권인수 및 일부 부동산-보험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우회적인 산업확장을 시작하였다. 미국의 규제당국은 이러한 금융통합을 묵인(黙認)하는 태도를 취하였을 뿐이었다. 이어 1994년 리글-닐 주간은행업 및 지점설치 효율성법을 통해 IT 산업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금융통합이 가속되어갔으며, 결국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 금융서비스 현대화법(Financial Services Modernization Act of 1999)은 증권회사와 보험회사가 은행을 매입하는 것은 물론, 상업은행이 투자은행의 업무에도 종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글래스-스티걸법의 생명을 끊었다. 이로써 금융기관은 더 이상 주체하지 못할 만큼 거대해지고, 이에 따른 초대형 투자은행들의 사회-경제적인 파급력은 주체할 수 없게 되어 정관계(특히 금융정책 및 감독권한을 가진 미국 연방준비은행 및 미국 재무부 고위관료)에의 로비행위는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11) 진정한 금융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 셈이다.

금융제국의 모순이 드러나는 것은 좀 더 뒤의 일이지만, 어쨌든 1990년대는 미국이 진정한 세계 제 1의 유일한 초강대국이자, 1인당 GDP가 비슷한 수준(2만$~4만$)의 국가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경제성장률을 유지한 해로 기록되게 된다.


‘91
‘92
‘93
‘94
‘95
‘96
‘97
‘98
‘99
2000
AVG
AVG without irregular
GDP percent change based on chained 2005 dollars
-0.2%
3.4%
2.9%
4.1%
2.5%
3.7%
4.5%
4.4%
4.8%
4.1%
3.42%
3.82%

1991~2000년 기간 동안 미국경제는 연 3.42%의 성장률을 기록하여, 1973~1984의 경제성장률(2.975%)을 크게 추월하였으며, AVG without irregular 역시도 연 3.82%(1991년의 일본 경기침체 발 경기후퇴 제외)를 기록하여 1973~1984년의 AVG without irregular 3.65% 를 추월하였다. 미국경제가 1991~2000년 사이 양적으로도 크게 성장했음을 감안할 경우, 10여년 전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유의하게 상승하였음은 분명 금융제국의 청신호처럼 ‘보였다’.















2012년 12월 5일 수요일

4천원인생 - 현실을 비추는 창(窓)이자 경제학적 고민을 일으키는 촉매

 한겨레21 기자들이 쓴 4천원인생이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열악한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네 명의 저자가 기자 신분을 숨긴 채 한 달 간 실제 노동자 생활을 한 뒤 적은 수기이다. 감자탕집, 가구공장, 할인마트, 난로공장에서의 노동일기는 우리에게 "경제학"이라고 이야기하는 학문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난로공장에서의 일화 중,

 공장은 철수, 원식, 지원, 영순, 은숙이 아닌 그냥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라는 대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배운 경제학에 따르면, 공장주의 입장은 너무나 당연하다. 철수와 원식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을 때 생산성의 차이가 거의 없다. 지원, 영순, 은숙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오랜 시간 근속한 사람과 몇 일, 몇 주 일한 사람의 작업능력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너트를 조이는 일의 반복은, 그 반복횟수의 밀도가 다를 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장은 현재 인력을 대체할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보충할 수 있는 한, 현재 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경제적 유인(incentive)이 없다. 따라서 생존에 급급한 수준의 낮은 임금, 직원들 간 대화의 암묵적 금지. 관리 상태가 엉망인 공장 화장실, 그 흔한 의자 하나 놓아주지 않는 것 모두가 합리적 판단의 결과이다.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생산량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고[1], 일자리는 항상 초과공급 상태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4천원인생은 우리의 감정을 동요시킨다. 책 속 노동자들의 삶은 안타깝고, 부당해 보인다. 저임금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현 상태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혹자는 4천원인생을 단순히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한 글로 매도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저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타당한 논리에 의해 도출된 경제학적 원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이 기반하고 있는 가정이 올바르지 않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재화의 소비로부터만 효용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재화의 소비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건강한 정신과 육체 등으로부터도 많은 기쁨을 얻는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외부효과로 취급하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현실을 보면 "외부"효과가 "내부"효과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300쪽 가량의 지면에 빼곡히 등장하는 저임금 노동자들 중 행복해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삶의 이유, 목적은 평생 동안의 탐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어려운 문제이다. 다만, 인간이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으로서 인격을 상실한 채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이유와 목적에 결코 부합하지 않을 거라는 직감, 확신이 든다. 분업은 단위 시간당 생산되는 재화의 양을 증가시켰음에 틀림없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자가 삶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감소시켰을지도 모른다. 또한 일자리에서의 소소한 대화, 쾌적한 화장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작업할 수 있는 의자 한 개는 생산량 증대에 비견되는 행복의 증대를 이루어낼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의 소비자와 기업은 별개의 경제주체이지만, 사실 기업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곧 소비자이며, 기업이 만든 재화를 소비하는 것이 곧 노동자이다. 노동자들에게 고임금을 줌으로써 구매력을 높이고, 대량생산을 유지했던 포드주의(Fordism) 축적 체제가 죄수의 딜레마의 형태를 띠는 "자본가의 딜레마"를 해결함으로써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했던 것에서 짐작해보건대[2], 경제학의 경제주체 구분(생산자와 소비자)을 현실에 아무 비판 없이 적용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 증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수 있다.

 현실과 이론 사이의 괴리를 직시하고 그 간극을 줄여나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경제학도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론 학습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짐으로써 실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창(窓),  이론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촉매로서 작용할 만한 "4천원인생"을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하며 글을 마친다.





[1]하지만 근무환경 개선을 통해 불량률을 대폭 감소시킨 기업들의 사례가 종종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기도 하다.
[2]류동민, 자본주의 호황의 원천 '고임금', Economy Insight,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