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환영회식사

2012년 5월 30일 수요일

재수 나쁘면 재수 비용 드립니다.

  (경제원론이나 비슷한 수준의 경제학 수업을 들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입니다)
 
바야흐로 6월 모의고사의 시즌이 다가왔다. 중간 평가를 앞두고 설렘과 긴장에 싸여 있을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이번 글을 시작한다.
 
얼마 전 블로그 필진 중 한 분과 대화를 하다가 대학 입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나에게 왜 대학 입시에는 보험이 없을까라고 물었다. 위험기피적인 개인들 사이에 위험한 사건이 있다면, 위험중립적인 기업에겐 늘 보험 상품을 판매하여 이윤을 얻을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왜 대학 입시에는 보험이 없는지.

1.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문제 때문일까? 대학 입시에 보험이 생긴다면, 상대적으로 붙을 확률이 높은 학생들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험사의 비용 부담이 증가하므로 보험료를 높일 수밖에 없고, 결국 그렇다면 더더욱 떨어질 확률이 높은 학생들만이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결국 보험료는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보험 상품이 사라진다. 하지만 보험사가 신호(signal)’를 활용할 경우 이 문제는 대체로 해결된다. 이제까지 쌓아온 모의고사 성적이나 내신 성적, 기타 수상 실적이 좋은 학생들일수록 보험료를 깎아주며, 합격이 어려운 학교를 지원할수록 보험료를 높이는 것이다. 대입의 경우 학생의 합격 확률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가 쉬워 역선택의 문제는 많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2.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문제 때문일까? 대입 보험에 가입한 학생들은 위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학에 붙지 못하면 재수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위로금까지 주는 보험이 있다고 하자. 보험에 가입한 학생은 이제 대학 입시에 붙거나 붙지 않거나 무차별해질 것이다. 이 경우엔 학생의 위험 부담도 줄여주면서 학생이 공부도 열심히 하게 하는 최선(First-best)의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도 차선(Second-best)의 해결책은 존재하며, 이는 위험을 원래 수준과 0 사이의 적당한 수준으로 낮추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떨어질 경우, 재수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또한 보험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여기까지 경제학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의문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내 나름대로 이유를 더 생각해 보았다.
 
3. 대학에 떨어진다는 것을 상상하기 싫어서일까? 보험에 가입하려면 내가 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지, 재수를 하게 될 경우 그 비용은 얼마나 될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대입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계산을 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심리적 비용)를 수반할 것이다. 대입을 가까이에 앞둔 시점에는 여러 대학의 입시 정보나 수능 시험 준비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시기이므로 학생과 학부모의 심리적 안정의 가치가 올라가고, ‘주의(Attention)’가 희소해지는 시기이다. 만일 할인율이 충분히 작아 현재가 미래보다 많이 중요하다면, ‘불합격 상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보험 가입에 따른 유의미한 추가적 비용으로 작용할 것이다.
 
4. 예산제약이나 손실회피 때문일까?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부분의 대학은 경쟁률이 2:1을 넘는다. 떨어질 확률이 상당히 큰 것이다. 따라서 보험 상품이 만들어질 경우, 보험료가 매우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한편 비행기 사고와 같이 보험 상품이 제공되는 대부분의 상황은 위험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작고, 따라서 보험료가 낮다. 보험료가 높아지면 두 가지 효과가 생기리라 예상된다. 우선, 일반적인 서민 가정이라면 소비를 줄이거나 대출을 받아서 보험료를 내야 할 텐데 이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둘째로, 심리학에서 연구된 손실회피경향 때문에 사람들은 보험료라는 확정된 손실을 대학 입시에 수반된 기대 손실보다 크게 인식하여,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한편 역선택의 문제 때문에 합격 확률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들은 보험에 가입하기가 어려워, 보험료를 여러 해에 분산해서 지불하도록 하는 것도 어렵다.)
 
p.s.
3번과 4번 이유를 약간 변형하면 요즘 논란이 되는 노인보험(장기요양보험, 연금보험 등)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노후를 상상하는 데에 심리적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보험 가입을 계속 뒤로 미루게 되고, 노인보험은 보험료가 비싸지기 때문에 예산 제약과 손실 회피 심리에 부딪치는 것이다.

댓글 11개:

  1. 위의 설명에 추가해 배수진, 혹은 irreversible commitment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예를 보아왔고, 저 또한 자주 그러지만 중대사에 대해 차선의 선택가능성을 배제하여 더욱 열심히 노력할 유인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도 하니까요. 물론 실패해서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봤지만…
    각설, 이런 이유로 인해 이 보험 상품의 수요 감소, 혹은 역선택 가능성의 증가 등을 통한 기대이윤하락이 실제로 이 보험상품을 시장에 내어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저 또한 그 필진 A님과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역시 둘은 하나보다 좋네요 여러 방면에서… 요즘들어 Lexicographic Utility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혼자서는 도달 불가능한 효용수준의 영역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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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이 설명 설득력 있는 것 같은데요.
      근데 P.S가 뭔가...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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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시 이번에도 제목 작문력에 감탄하게 되네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 수험생은 학원에 다니는데 쓰는 돈이랑 보험가입에 내는 돈이랑 적당히 분배해야 되는데 현실은 학원에 다닐 돈도 부족할거같네요. 만약 돈이 더 있었다면 보험에 가입하는게 아니라 족집게 과외를 받을것같아요. (이게 제가 생각하는 수험생의 preference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험가입 하는 사람은 족집게 과외하고도 돈이 남는 굉장히 부자밖에 없을거같구요. 근데 그정도 부자는 사실 재수비용 지원따위 별로 신경안쓰지 않을까요?그래서 가입할 사람이 없을거같아요...

    또 다른 이유: '입시실패'를 어떻게 정의할수 있을까요? 사실상 유일한방법은 모의고사 점수를 이용하는거고 그 결과 모의고사 점수가 지나치게 중요해집니다. 학생들은 모의고사를 최대한 잘봐야 1등급 고객이 될수 있습니다. 무슨말이냐면 예를 들어서 실력이 비슷한 두명이 있다고 가정하고 한명은 모의고사 평균이 480 한명은 460이라고 해요. 그럼 첫번째 사람은 스카이 지원했다 떨어지면 보험회사에서 물어주는데 둘째사람은 누가 상향지원하랬냐고 안물어준다는 거죠. 그렇다면 평소에 모의고사 잘보는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공신력있는 모의고사를 고1때부터 여러번 쳐야 될텐데 지금여건은 그렇지 않죠. 학생에 대한 정보수집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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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시 읽어보니 입시 실패를 대학 떨어지는걸로 정의하고 대신 높은 학교 지원하면 보험료많이받는걸 제시하셨군요. 그래도 역시나 모의고사 중요성은 마찬가지겠죠? '똑똑한'학생이 스카이 지원할 때는 돈을 덜받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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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사실 본문 1에 있는 내용도 제가 이야기 했던건데...학생의 평소실력(내신+모의고사 수회의 성적)과 대학 입시 난이도에 따라 보험료를 매기는 시스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우선 한국은 1년에 최소 2회의 모의고사를 수능 주관 기관인 평가원이 치도록 하잖아요? 저 고3 때는 6월, 9월이었는데 요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ㅋㅋ 여기에 대부분의 인문계 고3 수험생들은 1년에 10회 이상의 사설 학원 주관 모의고사를 치릅니다. 전 한 20번 가까이 쳤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2회의 '공인된' 모의고사와 수회의 사설 학원 모의고사들의 성적 중 일정 횟수 이상을 내도록 하면 어느 정도 정확히 학생의 '수능 잘 볼 가능성'을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 입시라는 것이 사실 누적된 데이터도 많고 해서 모의고사와 실제 수능 점수간의 상관관계 같은 것은 이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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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가 주목한것은 공인 모의고사가 2회 밖에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학원모의고사를 쳤을때 받은 인상은 실제 수능하고 괴리가 있다는 것이었거든요. 학생의 실력에 대한 불확실한 지표를 사용할 수록 보험료가 올라가게 되고 가입을 원하는 사람도 줄어들거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은 보험제공자가 모의고사를 직접 출제할수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생명 제 2회 모의고사'이런식으로 말이죠

      제가 제기한 첫번째 이유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한 보험업에 대한 법적 규제같은것도 있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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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보험사가 주관하는 모의고사...재밌는 생각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보험사가 모의고사를 주관하면 그 정확도가 굉장히 좋아질 것 같은데요. 사설 학원 모의고사야 사실 수능과 비슷하게 내야 할 유인이 크지 않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이윤'이 걸린 문제가 되니까...

      첫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데, 그래도 부자들 역시 손실을 보는 것을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단 한푼이라도...더군다나 한국의 입시는 제 생각에 불확실성이 굉장히 커서 (이게 올 해 수능이 물수능일지 불수능일지 알 수가 없으니. 아니 그보다 수능 시험장 가는 길에 차가 막힐지 않을지, 밥을 잘못먹어 체하는건 아닌지 그런 불확실성도 크고) 족집게 과외를 받는다고 명문대 갈 확률이 유의미하게 올라가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실제로 선행연구 중에도 그런 거 받는 것이 대학 합격률을 올리려는 목적보다는 '남들이 다 하니까' 내지 '부모의 심리적 만족'의 목적에서 받는다는 것도 있는 걸로 알고 있구요. 그렇다면 부자든 가난한 이든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돈을 들여 충분히 그 불확실성에 대비할 유인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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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왜 대학 입시에는 보험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했던 필진 당사자입니다ㅋㅋ

    사실 이 문제를 모 교수님께도 면담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여쭤 봤었는데...이런 답을 주시더군요. '글쎄, 일단 위험의 크기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기 때문 아닐까. 교통사고나 산재, 화재 났을 때 입는 손실하고 대학 입시 떨어졌을 때 손실을 비교해보면 말야. 보험이 있는 분야들의 손실은 사고가 났을 때 그 규모가 좀 많이 크잖아.'

    음...이것도 맞는 말씀이긴 한데, 사실 의문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어요. 왜 입시에는 보험이 없는걸까요.
    아무튼 이 주제로 혹 저랑 더 토의/(짧게라도) 페이퍼 작성 하실 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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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까도 함께 이야기했듯, 보험이 제공되는 다른 위험한 상황들과 비교했을때 실패확률 자체가 매우 크므로, 위험 자체가 작고, 따라서 위험을 줄여주어서 발생하는 잠재적 이윤도 작아진다는 점도 큰 이유로 작용할 것 같아요. 예컨데 실패확률 1퍼센트에 실패시 피해액 500인 경우와 실패확률 50퍼센트에 피해액 10인 경우 기대값은 같지만 위험은 첫 번째 경우가 더 크니까요. 두 경우 모두 5가 기업 입장에서 offer할 수 있는 보험료의 최저수준이지만 첫 번째 경우에 아무래도 사람들의 보험에 대함 지불용의가 더 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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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보험회사 입장에서 기대수익보다 기대비용이 커서 일텐데요.. 그럴 것 같은 이유을 짚어보면

    1. 현실에서 보험이 제공되는 것들을 보면, 위에서 flyingbunny님이 말했듯, 실제로 invoke되는 확률이 굉장히 작은 것들인 것 같아요. 이게 두 가지 영향이 있는데, 하나는 위에서 제시한 개인이 기분나쁜 정도의 차이(효용함수 그려보면 이게 나타나요)이고, 하나는 보험사에서 들여야 하는 (보험료 외) 비용의 차이도 날 것 같아요.

    어떤 아이가 대학에 떨어졌으면, 그것에 대해 보험금 판정을 위해 많은 업무가 필요할텐데 불이 났을 경우보다 대학에 떨어지는 애가 발생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업무가 쩔것 같아요.

    2. 업무가 계절을 엄청나게 탈 것 같아요. 수능 끝나고 폭발적 업무량. 반면 노동공급은 비탄력적이므로...

    3.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경우가 많아서.

    4. 개인의 입장에서 보험료가 적절한지 판단하는 데에 엄청난 정신적 비용.

    5. 이런 사업 자체가 전례가 없어서, 이러한 보험을 제공하는 데 대한 이윤이 굉장히 불확실 -> 보험회사에서 위험회피 -> 기대수익이 기대비용보다 더 커도 안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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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강제가입제도를 만들면 고등학생이나 부모님들이 좀더 맘편하게(?) 수능에 임할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에 대수능 보험제도를 만들게 된다면 여러가지 효과가 경합하게 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1. 도덕적 해이 - 학생들이 고3기간에 수능공부/대입에 매진할 유인이 다소 경감됨. 그런데 고3학업이 사실상 개인의 생산성과 별 연관성이 없으며 단지 노력수준을 선별하는 신호발송적 과정이라고 생각하다면 꼭 부정적인 결과라고 볼수는 없을지도..

    2. 고등학교 기간의 전반적인 만족도 증가? - 이유는 한번에 대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다소 경감되므로.. 고등학생과 고등학교 학부모의 전반적인 만족도 증가

    3. 개인의 평균적인 학업기간 증가 - 가령 실업보험이 어느정도 개인의 평균실업기간을 늘려주었다면 대입보험 역시도 평균대입수험기간을 늘리리라는 것은(적어도 줄이지는 않을듯)예측 가능 : 이 경우 비효율성 증가

    1번 효과야 미묘하니까 그렇다 치고, 2,3번 효과가 경합할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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