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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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0일 목요일

모든 사람이 게임의 달인이 된다면?


             먼저 게임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Ben Polak의 Game Theory 강의 발췌).

             여러 사람이 1부터 100까지의 숫자 중 한 개의 숫자를 각자 종이에 적는다.
             종이에 적은 숫자의 평균을 구한다.
             평균의 2/3에 제일 가까운 숫자를 댄 사람이 승리한다.

             독자 여러분이라면 어떤 숫자를 적겠는가?

             모든 사람이 똑똑하고, 다른 사람들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 게임의 정답은 정해져있다.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1을 적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100을 내더라도 그 2/3 66이므로, 66에서 100 사이의 수를 적어서는 이길 수가 없고,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면 44에서 66 사이, 28에서 44 사이, 의 수를 적으면 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1을 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을 실제로 했을 때 정말 1을 적은 사람이 이길까? 아니다. 여러분의 예상대로 보통은 1보다 큰 숫자를 적은 사람이 승자가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1보다 큰 숫자를 적었기 때문이다. , 위의 붉은 글씨는 현실과 다르다.

             요 근래 들어 필자는, “게임이론에 대한 연구는 왜 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러 유형의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게임 참가자들이 갖는 Payoff Strategy에 대한 고찰은 일반적으로 게임의 승률을 높여줄 것이다. 자나깨나 축구 전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축구를 더 잘 할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게임이론이 제시하는 최적전략(높은 승률의 전략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듯)이 현실에서 유효하기 위해서는 위의 붉은 글씨와 같은 가정이 만족되어야 한다. 따라서 게임이론 연구자들은 현실에 부합하는 가정을 하거나 혹은 가정에 맞는 현실을 만들고자 하는 유인을 가질 거라고 생각된다. 이 글은 후자와 후자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쓰여졌다. 위의 게임의 예를 보자면, 모든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이 똑똑하다는 것을 게임 참가자 모두가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게임이론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활발해지고 관련된 글, 영상 등의 매체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아하, 이런 게임엔 이렇게 대처하는게 정답이구나!’라는 것을 알아갈 것이다[1]. 또한, 여러 게임에 대한 정답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똑똑해지고”, “다른 사람도 똑똑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이렇게 게임이론의 가정을 만족시키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게임이론이 이끌어낸 정답은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경제학에서 주로 쓰는 용어를 빌리자면, 게임이론의 연구 및 교육, 홍보는 게임이론의 가정을 현실화함으로써 이론적 결과를 실현시키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2].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점은, 게임이론의 연구결과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 좋은 것일까 하는 점이다. 게임이론에서 다루는 많은 간단한 게임들(1:1)의 경우, 선공, 후공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여러분도 많이 해보았을 배스킨라빈스 써리원게임이 대표적인 예이다[3]. 게임을 하는 두 명 모두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배스킨라빈스 게임은 선후공을 정하는 가위바위보에서 이미 승패가 갈리게 된다. 모든 사람이 게임이론의 가정을 만족시킨다면, 세상에는 선후공에 무관하게 랜덤하게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만 남을 것이고, 어차피 게임의 결과가 랜덤이라면 그 중 가장 간단한 게임(예를 들자면 가위바위보) 하나만 남을지도 모른다[4].

아인슈타인은 인류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E=mc^2”라는 등식을 창안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한 줄의 등식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데 디딤돌이 되었다. 게임이론의 연구 역시,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지 아니면 사람들을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게 만들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5]

 

[1] 게임이론 관련 서적의 매출과 게임결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인해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2] 비단 게임이론 뿐만 아니라 경제학 역시 이러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3] 배스킨라빈스 게임은 무조건 선공이 이기게 된다.
[4] 물론 수많은 술자리 게임들은 랜덤이든 아니든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긴 하겠다.
[5] 필자는 모르는게 약이라고 생각하나, 게임이론 연구자들도 먹고살아야 하므로 적절한 속도로 연구, 교육, 홍보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적절한 속도라고 하면배스킨라빈스 게임을 할 때 이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게 유지될 정도?(웃음)

댓글 9개:

  1. 게임이론에 대한 홍보가 이론의 현실성을 높인다는게 재밌는 측면이네요
    이 글과는 조금 동떨어진 질문이지만 다들 내쉬균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실세계가 내쉬균형에 있을까요? 또는 그곳으로 가고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저도 벤 폴락 강의 들었는데 거기에서 보면 회계감사인과 세금납부자간의 게임이 나오는데 세금회피적발에 따른 벌금을 높이더라도 세금회피자의 비율은 줄어들지 않는게 균형이라는게 나오죠 현실세계도 이럴까요?
    결국 사람들이 다 rational하지는 않을수 있다는 얘기로 돌아가는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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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장 간단한 예로, 가위바위보를 했을 때 특정패턴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 것만 봐도 내쉬균형의 반례겠지요. 수년 수십년간 가위바위보를 했지만 랜덤하게 내는 사람보다는 뭔가 패턴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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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간단하고 재밌네요.
    이거랑 관련해서요~ 정치학 쪽에서는 rational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체 population에 일부 섞여 있다면, rational한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모방해서 결국 rational한 사람만 있을 때보다 사회후생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식의 논의도 하더라고요. 예컨데 공유의 비극 같은 문제가 풀리는 거죠. 또한 사람들이 rational하더라도 정보수집 및 처리에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게임이론적 균형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bounded rationality 논의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특히 backward induction이 현실 세계 설명에 적합하지 않다는 실험적 연구 결과는 확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finite set game에서 사람들이 마치 infinite인 것처럼 행동하는 거요.

    하지만 게임이론 교육 보급률이 높아질수록 게임이론적 균형에 보다 가까워질 것이라는 주장 자체는 맞을 것 같네요. 정확히 그 균형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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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 공유지의 비극이 irrational한 행위를 통해 풀린다는 것은, 인간의 비합리성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key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과거 성인들이 "종교"라는 것을 창안하게 된 배경 중, 사람들이 finite set game을 infinite인 것처럼 여기게 하고픈 욕구도 들어있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많은 종교들이 내세 개념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종교들을 믿는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평판(각 종교마다 그 의미가 다르지만)"에 신경을 쓰게 되니까요.

      게임이론 교육 보급률이 게임이론적 균형과 현실의 거리를 좁힐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게임이론적 균형이 현실보다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죄수의 딜레마 같은?) 게임이론 연구에 배정되는 자원을 줄여야 할텐데 말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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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종교에 대한 생각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 참~ 게임이 infinite하지 않더라도 몇 번 지속될 지 불확실한 상황을 가정하고 푸는 논문도 본 적이 있어요. 이 경우가 현실에서 인간이 직면한 선택에 더 가까워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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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얼마 전에 Yale대학의 J.Roemer가 경제학부에서 세미나를 했었는데 (우리 블로그 필진 분들 중에도 저 말고 다른 두 분이 세미나에 오셨었죠.)
    그 분이 Nash Optimization이 아니라 Kantian Optimization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전자가 '다른 사람들의 최적 행동이 이러이러하다고 주어졌다(given)고 가정'하는 상태에서 내 최적 행동을 정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내가 다른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대로 행동을 하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내 기대대로 움직일 것이라' (Kant의 정언명제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Kantian이라는 이름을 붙인 듯 합니다.)는 뭐 그런 개념이었어요. 문득 위의 게임에서 이러한 최적화는 어떤 결과를 나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거 유명한 게임인데, 이름이 뭐였죠?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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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전에 사회대도서관 게시판에 심리학(사회학?)과에서 게임실험참가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붙인것을 본적이 있는데요-그리고 다른 책에서도 이런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제한사항이 "경제학 비전공자"더라구요. 저만봐도 그렇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다보면 자신의 행동도 homoeconomicus의 그것을 생각하며 결정하게 되지 않나요?? 그런점에서 webspider019님의 이번 글은 참 공감이 되네요. 그리고 이렇게 게임이론에서의 지식 등이 널리 퍼졌을 경우 그걸 역이용해서 다른사람들을 이기기도 쉬워지겠다 싶기도.... 그리고 flyingbunny님의 댓글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공부에는 끝이 없군요 진정...

    p.s.
    사회대도서관에서 경제학 비전공자, 혹은 경제학을 공부해 본적이 없는 사람을 찾는것은 매우 비합리적인 행동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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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재미있는 글이네요. 여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게임이론을 배우지 않더라도 직각적으로 게임에 대한 자각은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합리성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 하는 편향이 나타나는 것 또한 사실일거 같네요.

    합리성 과대편향 - 글쓴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가 최저숫자 1을 적어낼거라는 편견적 사고. 실제로 이러한 게임을 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직각적으로 1/2, 혹은 1/3에 해당하는 숫자를 적어내는 경향이 있음.
    합리성 과소편향 - 상대방의 비합리적 행동을 대비한 위험회피적인 성향. 이러한 경우에 오히려 비효율적인 결과가 발생할수 있겠지요. (서로가 계약위반을 할 것에 대비해 쓸데없는 위약조항을 많이 만들어놓아서, 나중에 서로 계약을 해지하는게 이익인데도 서로 계약해지를 못한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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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내쉬균형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내쉬균형이라는게 각각의 사람들이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전략을 유지한다고 ""가정"" 했을 때 가만히 있는 편이 최적인 상태이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가정해야 할까요? 그러한 가정을 합리화시키는 논리가 있나요?

    제게 드는 몇가지 생각은 decision이 continuous time에서 일어날 때.. (왜냐면 이 경우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동시에 전략을 바꿀 확률은 0이어서?)

    아니면 타성? 사람들이 쉽게 행동을 바꾸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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