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위험 기피’라는 용어를 참 많이 듣습니다. 일반인들의 관심을 특히 많이 받는 금융경제학에서는 어떻게 하면 ‘기대수익률’을 최대한 올리면서 ‘위험’을 낮출 수 있는지가 중요한 이슈이지요. 그러다보면 ‘위험’이란 마치 본질적으로 나쁜 것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분배 정의의 문제에 관해 Dworkin, Cohen이나 Roemer와 같은 학자들은 ‘Luck Egalitarianism’을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경제적) 행위를 통해 얻는 결과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 운, 그리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결정됩니다. Luck Egalitarian들은 그 중에서 상황과 운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그래서 책임이 있는, 부분만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도록 사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Luck Egalitarian’들이 ‘운’의 영향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일반적으로 말하는 ‘위험’을 줄이는 것은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Luck Egalitarianism에서는 개인이 참여를 선택하는 ‘gambling’과 어쩔 수 없이 닥치는 ‘brute luck’을 구분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자면,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은 기회를 주기 위해 사회적으로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담배의 해로움을 잘 알면서도 자유의지로 줄담배를 피우다 (담배로 인한 고정된 즐거움을 얻는 대가로 폐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도박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폐병에 걸린 환자에게는 굳이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문득 위험이 전혀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학교의 예를 들자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공부를 한 만큼만 시험 점수가 나오는 세상인 것이지요. 과연 그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더 행복할까요? 우리가 이상으로 삼아야 하는 사회는 그러한 사회일까요?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책임을 회피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언제나 누군가는 ‘꼴등’이 될텐데 이 학생이 ‘나는 운이 나빴어’라고 말할 근거가 줄어드니까요.
얼마전 작가 Elizabeth Gilbert가 TED에서 한 작은 강연을 들었는데, 그녀의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한다면 심지어 ‘일등’에게도 이는 무거운 부담이 됩니다. 과거 그리스 시대에는 ‘천재성’이 신이 인간에게 깃들어서 발휘되는 것이라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천재성’이 개인의 속성으로 여겨지면서 창의적 영감이 필요한 사람들이 느끼는 심적 부담감이 커졌다고 Gilbert는 주장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설’을 기억하시나요? 인간의 효용함수가 ‘자존감’과 ‘육체적 만족’의 두 요소의 함수이고 (u=f(x,y) s.t. x=self respect, y=physical desire) ‘자존감’이 우선하는 사전편찬식 선호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자존감’이라는 요소를 잘 정의한다면, 이것도 충분히 그럴듯한 설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이유에 ‘능력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와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게 작용한다는 점, 사람들이 종종 신념을 위해 자신의 이익과는 겉으로 보기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고 싶은 욕구가 매우 큰 것이지요. ‘자존감’은 사람들이 관측된 결과를 보고 자신의 ‘투입’의 사회적 위치를 역으로 추정한 결과에 의존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기서 ‘투입’은 Luck-Egalitarian사회에서는 ‘노력’만을,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에서는 ‘능력’과 ‘노력’ 모두를 포함합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예로 다시 돌아간다면, 학생들이 자신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혹은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시험 점수를 보고 얼추 판단을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한 가지 더 가정을 더합니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심리학을 잘 모르지만,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optimism bias에 대해 많이 연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위험’을 없애는 것이 오히려 ‘최소사회자의 최대 수혜’ 원칙에 위반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확실성을 줄여 이제는 스스로를 ‘좋게 평가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위험이 아예 없는 사회보다는, Luck-Egalitarianism이 보장된 사회가 위에서 제가 말한 기준으로는 보다 덜 빡빡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개인이 선택해서 ‘도박’을 할 여지는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얻은 결과의 책임을 온전히 지게 된다는 점은 그대로입니다.
미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적이 중하위권인 학생들은 시험 기간에 술을 더 많이 마신다고 합니다. 능력은 있는데 단지 술을 마셔서 성적이 나쁠 뿐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위험’이 선호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이 덜 다듬어져 모형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그래도 함께 생각해보는 작은 단서가 되면 좋겠습니다. ‘노력’ ‘능력’ 그리고 ‘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