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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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2일 일요일

김축구와 강부자, 그리고 소비자잉여



 
  김축구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하는 어린이입니다. 하지만 김축구네 가족은 형편이 매우 어려워서 김축구는 용돈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김축구가 정말 간절히 축구화를 사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김축구는 차마 만원짜리 축구화를 살 수가 없습니다.
  강부자는 재벌그룹의 세살배기 딸내미입니다. 그녀는 축구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문방구에서 언뜻 본 축구화의 코빼기가 꽤 괜찮게 빠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익숙한 손동작으로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김축구가 그렇게 원하던 축구화를 신어보지도 않고 사버립니다.

  다음날 영어학원을 가려 축구화를 신어보던 그녀는 축구화가 편한 신발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익숙한 손동작으로 축구화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등학교 경제에서부터 시장에서는 그 물건을 가장 원하는 사람들에게그 물건이 배분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도 강부자가 김축구보다 축구화를 더 원했다고 생각이 되나요? 무언가 이상하지요?

  이를 답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에서 가장 원하는 사람들에게물건이 배분된다는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수요곡선 상에서 그 물건을 가장 원하는 사람이맨 왼쪽에 위치해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수요곡선의 높이가 곧 그 사람이 그 물건을 소비하는데서 오는 유보가격이자 한계편익을 나타내주기 때문입니다. (편의를 위해 그 물건을 한 사람당 최대 하나만 수요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두 번째로 원하는 사람은 첫번째 사람 바로 오른편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격이 형성되면, 그 가격보다 그 물건에 대한 한계편익이 높은 사람은 그 물건을 사게 되고 낮은 사람은 사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장의 수요자들 중 한계편익이 높은 사람들, 가장 원하는 사람들에게 물건들이 배분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계편익의 단위가 무엇이냐에 집중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한계편익은 유보가격으로 측정이 되기 때문에 결국 그 단위는 돈, 이를테면 1원이 됩니다.
 
  위의 사례를 통해 봅시다. 김축구는 축구화의 한계편익이 1만원보다 작았습니다. 예를 들어 5천원이라고 합시다. 반면 강부자는 한계편익이 1만원보다 컸습니다. 예를 들어 3만원이라고 합시다.
 
  이것이 강부자가 김축구보다 더욱 축구화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나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원의 한계효용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김축구는 가난하고 강부자는 부유합니다. 따라서 1원은 강부자보다 김축구에게 훨씬 큰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주관적인 효용을 재는 단위를 유틸이라고 한다면, 김축구는 1원당 100유틸을 부여하는 반면 강부자는 1원당 1유틸을 부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축구에게 축구화의 진정한 한계편익은 5천원*100유틸/=50만유틸인 반면 강부자의 그것은 3만원*1유틸/=3만유틸이 되어 김축구가 마음속으로는 축구화를 훨씬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위 사회의 소비자잉여를 이야기 할 때에도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의 소비자잉여만 생각한다면 유틸/원이 일정하므로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가격상한제가 원단위로 잰 소비자잉여는 줄이는게 확실하더라도 유틸로 잰 소비자잉여를 늘리는지 줄이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의 경우, 투기꾼이 부자일 가능성이 높고 실수요자가 상대적으로 가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가격상한이 도입된다면 실수요자 층에서 추첨 등의 방식을 통해 원단위로 잰 한계편익은 높지만 유틸로 잰 한계편익은 낮은투기꾼들을 제치고 분양을 받음으로써 진정한 소비자잉여는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댓글 12개:

  1. 김축구와 강부자로 비유한 처음 논의는 경제학을 공부하다보면 한번 쯤 떠올렸을 만한 생각인데 그로부터 '사회잉여 계산'에 관한 뚜렷한 결론을 도출해 낸 점이 멋지네요! 그런데 말이죠... '사회 총효용' 계산에 축구화를 파는 사람까지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은 단순화를 위해 축구화를 직접 제작해 판다고 가정) 강부자가 축구화를 사면 돈을 더 많이 받으니까 판매자의 효용은 더 높아지겠죠. 판매자 효용의 증가 정도가 (유틸 단위) 김축구와 강부자가 축구화에 부여하는 가치위 차이보다 크다면 사회총효용은 강부자가 축구화를 사는 쪽이 낫겠지요. 이 상황에서는 축구화를 강부자가 가져가는 것과 김축구가 가져가는 것 중 어느 게 더 사회적으로 바람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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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글에 생산자잉여까지 추가하여 생각을 하셨더니 재밌는 일이 벌어지네요. 글쎄,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사회 총 효용을 최대화하는 것만 생각하면 강부자가 가져가는 편이 났겠네요. (그래야 하는지는 또 별개.)

      그런데 flyingbunny님이 말씀하신 두번째 상황 - 김축구가 축구화 사는 상황 - 은 이미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시장에선 강부자밖에 축구화 못삼) 정부가 추가적으로 개입하는 것 - 강부자에게 세금을 매겨 생산자의 효용 감소분을 지원해보는 것 - 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가격상한을 하는 대가로 생산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꼴이겠네요. 이 경우 강부자의 1원의 한계효용이 충분히 낮고 생산자의 1원의 한계효용이 충분히 높은 것을 가정할 경우 정부가 개입을 하는 경우 사회총잉여가 높아지겠네요. 그리고 이는 우리가 상정하는 상황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가정입니다. 이 둘 중 하나라도 만족이 안 되면 우리가 이런 논의를 안 해도 되니까요.

      다른 얘기지만, 생산자잉여에 관해 보론하자면, 이 논의가 생산자 쪽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한 명으로 이루어진 기업가를 상정하면, 그 기업가가 부자냐, 가난하냐에 따라 '유틸 단위로 잰' 생산자잉여는 차이가 날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학을 공부하다보면 한번 쯤 떠올렸을 만한 생각'이라고 하셨는데 (sampling bias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에서 충분히 소화가 안되고 (되나요?) 있다는 점이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들 - 소위 시장이 가장 좋다는 - 이 경제학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도처에 너무 많아서 경제학 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수업에서 많이 논의되었던 성과공유제 같은 경우도 일부는 '경제학에서 듣도 보도 못한 사회주의 원리' 라고 하니까요. 멀리 나갈 필요도 없이, '수요독점도 시장 실패의 일부' 라는 것만 인지해도 저렇게 단정적으로 말하진 못할 것 같은데요. 이전에 코즈정리에 관해 flyingbunny님이 말씀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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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재답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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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omogeneous agent에 입각한 피상적 분석의 한계를 잘 나타내준 아주 좋은 예인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장수요곡선에서 좌상측에 있는 수요는 소득이 가장 높은 사람들의 수요이고 우하로 수요곡선을 타고 내려올수록 점점 더 가난한 사람들이 더 포함된 수요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전체의 총 유틸러티를 증대시키는 제도를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여기서 가격상한제에 대해서는, 상한으로 정한 가격에 어차피 김축구 아빠가 김축구에게 축구화를 사줄 수 없는 경우에, 강부자에게 축구화 살 때 보조금을 주는 꼴이 될 위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이 아니라 성적만 보고 주는 장학금도 부유한 집 자녀들이 공부를 더 잘하기 유리한 환경하에서는 이런 위험이 있을 것도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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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습니다. 정말 그 부분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강부자에게 세금을 걷거나, 만약 가능하다면 일급 가격차별 비슷한 것을 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예로 든 아파트 분양시장의 경우, 수요자의 재산 상황에 근거하여 분양가를 다르게 매기는 등의 방법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정확하게 가격 차별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도 비슷한 예가 발견되는 듯 합니다. 실제로 다주택소유세대에겐 (재산이 많을 가능성이 높죠) 분양을 확률적으로 제한하는 제도가 있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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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이유는, 제가 어느새부턴가 유보가격(Reservation price)을 저도 모르게 효용(Utility)과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선호체계와 효용함수의 관계를 공부할 때 분명, 효용함수의 '값(절대수치)'은 무의미하며 상대적인 효용 차이(그것도 동일한 선호체계 하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여러번 음미했던 적도 있는데도 어느새 효용의 '값'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었던데다가 그 값을 유보가격과 동일시하는 더 큰 잘못(?)까지 범하고 있었네요.

    유틸단위로 예시를 들어주셨는데, 인간의 선호체계를 제대로 반영한 유틸단위의 정의만 내리더라도 노벨 경제학상을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축구화 장수와 김축구, 강부자의 예에서, 각자의 선호체계가 너무도 다르기에 어떤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한 근거를 대기가 어렵지만, 본능적(?)인 판단으로는 김축구가 축구를 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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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미흡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느새부턴가 유보가격(Reservation price)을 저도 모르게 효용(Utility)과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경제 때부터 그런 식으로 가르쳐서 (적어도 제 교과선 그랬어요) 그렇게 각인이 되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 미시에서도 효용 '값'에 의미가 없는 것처럼 가르치다가도, 소비자 잉여, 생산자 잉여에서 다시 그런 논리가 스믈스믈 나오는 것 같습니다. (explicit하게 그 둘을 동일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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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준구교수님의 재정학책을 보면 공공재 생산의 적정수준문제를 풀 때 사용하는 “사무엘슨 해”에 대한 설명에 다음과 같은 각주가 달려있습니다. “소비자가 마지막 한 단위의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을 보통 한계효용이라고 부르나, 서수적 효용의 개념을 채택하고 있을 경우 이를 구체적 단위에 입각하여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한 단위를 소비하기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 어려움을 우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바로 그 금액을 한계편익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이준구 재정학 P102-
    이 설명을 읽으면서 저는 flyingbunny님의 지난번 글을 떠올리게 되었는데요, 한계효용과 한계편익의 관계는 생활수준과GDP와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수량화 하기 어려운 것을 우회적으로 수량화 하기위한 시도에서 생겨나는 괴리, 혹은 의미의 손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GDP보다 더 나은 지표를 찾기위해 여러 경제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는 것 만큼이나 효용의 지표 또한 많은 경제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을텐데, 어떤것들이 있을까요?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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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므로 마지막 한 단위를 소비하기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 어려움을 우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바로 그 금액을 한계편익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좋은 reference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비슷한 것을 찾다가 결국 찾아내지 못했는데, 이런 식의 논리였군요. 이러한 '우회'가 있음을 인지하고, 이 것이 어떤 해석상의 discrepancy를 낳을 수 있는지 잘 아는 분들에겐 이러한 우회가 유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엔 대중들은 물론, 경제학자들도 때로는 저러한 '우회'가 존재했음을 가끔씩은 까먹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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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여러 분들의 댓글을 읽고 다시 의문이 하나 들었습니다. 과연 '사회총효용'응 증가시키는 것이 의심할 바 없는 최고의 목표일까요? '사회총생산' 극대화보다 좋은 목표일 수는 있지만 여기에도 논란의 여지는 있을 것 같아요. '사회총효용 극대화'를 최종 목표로 한 정책은 (우리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배웠던) '생산 의욕 감퇴'나 어쩌면 '불공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테니까요. '재산권 보장'과 맞물려 있는 문제라 쉽지 않네요. 물론 효용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파레토' 기준을 도입하면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려면 너무 기준이 보수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고요. 가장 바람직한 목표 변수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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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이 생각을 많이 해 봤었는데, 다음번에는 '목표변수' 라는 것을 키워드로 염두에 두고 한번 글을 써 보아야 겠네요. 습관적으로 우리는 효용극대화를 문제로 해를 풀고 있는데 이러한 '효용' 을 단순한 '인생에 대한 만족감' 으로 본다면 과연 우리는 효용극대화대로 행동을 하고 있는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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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확실한건 gdp최대화 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이번 주 글 쓰고 이게 눈에 딱 띄네요. 다음엔 사회효용함수에 대해서 공부좀 제대로 해보고 써봐야겠어요. 이 쪽에 관심이 많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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