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환영회식사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보지 않을 자유


지난 번 환영회 자리에서 기회의 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webspider님께서 재미있는 질문을 하나 던져 주셨습니다.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기회의 평등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가? 당시 webspider님께서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다음과 같은 부연 설명을 하셨습니다. 나는 어떤 마을 공동체에 속해 있고, 그곳에서는 이장이 제일 잘 산다. 만일 이장이 나를 잘 보살펴준다면, 나와 이장 아들이 꼭 평등한 기회를 갖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못할망정, 새로운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어떤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서로 다른 소득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삽니다. 이 마을 이장 집에는 원래 울타리도 문도 없습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늘 마을이 고아 아이가 그 집 문 앞을 지나갑니다. 이장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밥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떠돌아다니는 불량배가 그 마을에 정착합니다. 이장은 불량배를 상대하기 싫어 집 둘레에 울타리를 칩니다. 울타리가 생기고 나서는 이장 눈에 고아 아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 일로 바쁜 이장은 고아 아이를 서서히 잊어버립니다. 고아 아이는 밥을 굶다가 어느 날 이장의 울타리 밖에서 죽게 됩니다.
 
울타리를 치는 일은 이장의 권리였을까요?
 
A90을 가지고 B10을 가지고 있을 때, AB에게 일정량(예컨대 20)을 줄 의무가 있는 것과 A가 이타적이기 때문에(여기서의 이타성은 A의 효용에 B의 효용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B에게 일정량을 주는 것은 단기적 결과는 같지만 다른 상황이며, 장기적으로는 결과조차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p.s. 본의 아니게 webspider님과 고아 아이 사이에 일종의 비유관계가 성립하게 되었네요. 너그러이 용서 부탁드립니다.
p.s.s. 두 질문 모두 저는 아직도 분명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네요.^^; 

댓글 3개:

  1. ㅋㅋㅋ 말씀 안 하셨으면 저와 고아 아이의 대응 관계는 못 보고 넘어갔을텐데...
    제가 식사 자리에서 그 말씀을 드릴 때에는, 자선이냐 의무이냐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은 채였었습니다. flyingbunny님 글 읽고 나니, 그 때의 제 생각의 초점은 이장이 아니라 "고아 아이"에 맞춰져 있었던 것 같아요. 울타리가 쳐질 것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단기적 결과가 장기적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니까요.
    울타리의 의미가 참 심오해 보입니다. 사유재산권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시야를 제약할 권리일 뿐인데도 그것이 고아 아이를 죽게 할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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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Webspider님 감사합니다ㅎㅎ

    저는 글을 쓰면서 사회의 Incentive 구조가 구성원들의 생산능력을 효율적으로 모아주는 기능을 하듯(WHY NATIONS FAIL이 주장하는 것처럼요) 사회의 계층 간 소통이 구성원들의 착한마음을 효율적으로 모아주는 기능을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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