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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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7일 월요일

군대 가면 머리 굳나 아니면 군대 가서 사람 되나?



 일전에 저는 ‘군복무의 사회적 보상에 관하여’(http://econreality.blogspot.kr/2012/09/blog-post_18.html)라는 쪽글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글은 위 글의 짤막한 후속 의문 제기 정도가 되겠습니다.

제 지인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군 복무를 전후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최근에 관심이 가는 문제 중 하나는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개인이 인적자본을 쌓는데 있어 군대를 간다는 것은 ‘단절’의 측면이 있고 ‘축적’의 측면이 있습니다. ‘단절’의 측면은 우리가 흔히 듣는 ‘군대 가면 머리 굳는다’라는 점입니다. 군대가서 2년간 총 들고 있는 사이 바깥 세상의 사람들은 자격증도 따고 어학연수도 가고 교환학생도 가고 인턴도 하고 그렇게 스펙을 쌓습니다. 근데 2년간 바깥 사회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다보면 군대 간 사람들은 위와 같은 인적자본축적을 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실제로 저는 제 주위 여러 복학생들이 복학 직후 이 점에 있어서 괴로워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자신은 2년 동안 군대 가서 멈춰 있었는데 바깥 사람들은 그 사이 뭔가 많이 쌓아놓은 데서 오는 좌절감, 초조감 같은 거죠.)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적자본의 축적은 약 2년의 군 복무 기간 동안은 거의 중단되는 반면, 군대를 가지 않은 이들은 계속 쌓이기 때문에 전역 후 일정한 격차가 존재하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군대’는 다른 종류의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상사 모시는 법’ ‘부하를 이끄는 법’ '단체 생활 하는 법' ‘인내하는 법’ ‘요령’등등 입니다. (이건 여담인데, 저는 어른들과 술자리에서 잔에 술 따를 때 상표를 보이지 않도록 해서 따라야 한다는 소리를 군대 회식 자리에서 처음 들었습니다ㅋㅋ 전역하고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위와 같은 예절을 지키는 분야/회사들도 분명 있긴 있더군요.)
맥락에 따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만, 저는 군대 간 남자들이 군 복무 중 익히는 이러한 점들이 전역 후 노동시장에서 분명 양의 효과를 미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흔히들 경영인들로부터 듣는, ‘군대 갔다 온 애들이 일 시켜보면 더 빨리 터득하고 조직 생활도 잘한다’하는 부분입니다. (각주1)

요컨대 앞의 문단이
(1) ‘군대 가면 머리 굳는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다음 문단은
(2) ‘군대 가면 사람 된다’라는,
우리가 꽤 자주 듣는 군대에 관한 상반된 두 개의 문장으로 요약이 됩니다.

군대가 노동시장에서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한국에서의 기존 연구는 엄동욱(2009)의 것이 현재까지는 거의 유일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베트남전, 걸프전 등을 전후해 군 복무자(Veteran)가 그렇지 않은 이들과 노동시장에서 어떤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지 연구한 바가 꽤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의문은 대충 이런 겁니다.

하나는 노동시장에 진입시 군 복무 경험자에게 (1)과 (2)중 어느 효과가 더 큰가 하는 점입니다. 엄동욱(2009)의 분석은 노동패널데이터(KLIPS)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는데 그 결론이 (2)가 더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민서 노동방정식으로 분석해 보니 군대 복무 경험이 노동 시장에서 양의 효과를 갖더라는 거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설사 엄동욱(2009)의 민서 노동방정식 분석이 옳더라도 위와 같은 결론을 바로 도출하는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젊을 때 2년의 인적자본축적의 변화는 단순한 한 시점에서의 임금 뿐 아니라 이후 임금의 상승/하강 변화 폭에도 (노동자의 생산성 이외에) 영향을 주리라 생각되고 특히 그 영향은 노동시장 진입후 초기에 크지 않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군 복무자가 군 면제자 보다 초봉이 낮았더라도 군 복무 경험이 이후 진급 등에 있어 유리한 점이 있어 임금의 상승은 더 가파를 수 있지 않을까요. 거꾸로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겠지요. 군 복무 경험이 초봉은 높였는데 이후 임금 상승 폭은 낮춰버리는. 저는 두 가지 모두 충분히 현실에서 실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이를 포함해서 분석해야 ‘군 복무 경험이 노동시장에서 미치는 영향’을 더 정확히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은 ‘가교환경가설(The bridging environment hypothesis)’이 한국 군대에도 적용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가교환경가설이란 미군의 경우 백인과 소수인종(흑인, 히스패닉 등)으로 분리해 군 전역 후 노동시장에서 이들의 성과를 비교했을 때 소수인종들에게 직업 선택 및 전환에 있어 군대가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하더라는 점입니다. 좀 거칠게 말해, 군대 가기 전에는 교육이나 직장이나 시원찮던 이들이 군대 가서 대학 교육을 추가로 받았든 돈을 많이 받았든, 하다못해 고생하고 정신이라도 차렸든 어떤 이유에서든 전역 후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얻더라는 점입니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돈이 많은 미국 군대의 경우 부대에 대학 캠퍼스가 들어와 있어서 군 복무 중에 부대에서 대학 수업을 들으며 학점을 따는 경우도 있고,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하면 전역 후 대학 등록금을 군이 대주기도 하더군요.) 어떤 계기가 되었든 군 복무 경험이 소득이 낮은 이가 보다 높은 계층으로 점프하도록 돕는 '가교'같은 역할을 함으로서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의 효과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위 가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우리가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로도 위와 같은 ‘가교환경가설’을 확인할 수 있는지, 예컨대 부모의 소득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전역 전/후 노동시장에서 다른 기회를 갖게 되는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론에서 보곤 하는 군 복무 미담들이 진짜 노동시장에서 존재하는지 보자는거죠. 집안의 소득이 낮거나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은 군 복무자의 경우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군 복무를 했다는 사실이 복무하지 않은 경우보다 이후 노동시장에서 양의 효과를 갖는지 보는거죠.

위 두 가지 의문에 관련해 청년패널조사(Youth Panel 이하 YP)에서는 조사 대상자들에게 군 복무 여부와 복무 기간, 복무 시 했던 일, 전역 시 상태를 묻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열어보니 조사대상자 5,000여명 중 약 1,000명 정도가 ‘군대 갔다 왔다’라고 응답했더군요. YP의 경우 2001년에 시작되어 2006년에 1차 조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따라서 위 6년간의 데이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위 1000명에 대해 이후 노동시장에서 임금 변화 등에 대한 제한적인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YP는 이후 2007년부터 2차 조사가 진행 중이고 현재 4차년도 자료까지 쓸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조군으로는 '군대를 가지 않았다'라고 1차년도에 답한 남성들 중 이후 군 복무를 이유로 조사가 중단된 이들을 제외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만, 일단 '군대를 가지 않는 이'들을 추려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점은 ‘군 복무 경험자’와 ‘군 면제자’가 임의 표본(Random Sample)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군 복무 여부는 신체검사를 통해 등급을 나눈 후 ‘국가’가 결정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두 표본은 군 복무 여부 외에도 건강상태에 있어 당연히 유의미하게 다르게 됩니다. 따라서 표본 선택의 문제(Sample Selection Problem)가 발생하겠죠. (만약 남미의 어떤 나라처럼 특정 신체 등급 이상인 이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군 복무할 사람을 결정한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텐데요ㅠ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남은 숙제가 되겠습니다.(각주2)

막 써 놓고 보니 거의 리서치 프로포절에 가까운 글이 되었네요.

개선점이나 비판 등 모든 코멘트 환영합니다.

(각주1)
위 두 개 효과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라고 볼 수 도 없습니다. 대학가에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복학생 학점 버프 효과'를 생각해 봅시다. 복학생들은 대부분 복학 첫 학기에 역대 커리어 하이 학점을 찍곤 합니다. 군대 가기 전 방어율 2점대 돌부처 오승환급 학점을 기록하던 사람이 복학하더니 방어율 4점대로 활활 불을 지르는거죠. 여러 이유가 있겠는데 아마 가장 큰 이유는 '군대도 갔다왔는데 이제 정신차리고 공부해야지!'하는 일종의 각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군대에서 여러 경험을 하며 터득한 것들이 복학 후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된 점도 있을테구요. 문제는 대부분 이 복학생 버프 효과가 한 학기에 그친다는게....ㅠㅠ

(각주2)
sample selection bias를 어떻게 통제하는지는 사실 추후 공부해 봐야 할 문제라서 지금은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그냥 '상식적'으로 떠오르는 방법은 직종을 생산직/사무직 이런 식으로 뭔가 기준을 정한 후 구별해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전자의 경우가 후자보다 건강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겠지요.

추가

이 주제에 대해 몇 개 논문을 찾아봤는데 제 생각과 달리 의외로 미국에서도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제법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고 리뷰를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목록만 몇 개 적습니다.

Can Compulsory Military Service Raise Civillian Wages? Evidence from the Peacetime Draft in Portugal (D.Card and A.Cardoso 2012 American Economic Journal : Applied Economics)

Evaluating the Cost of Conscription in The Netherlands. (G.Imbens and W.VanderKlaauw 1995 Journal of Business and Economic Statistics)

Long Term Consequences of Vietnam Era Conscription: New Estimates Using Social Security Data. (J.Angrist, S.Chen and J.Song 2011 American Economic Review)

댓글 4개:

  1.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위의 논의 이전에 먼저 해결되어야할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군대가면 머리가 굳는다'와 '군대 가면 사람된다'라는 두 가지 패러다임만으로 군복무자 일반을 설명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즉, 군복무자의 입대 전 상황(자발적으로 입대하였는지 혹은 반강제적(부모님 압력, 실연의 아픔, F학점 등등)으로 입대하였는지를 고려해야 하며, 또한 입대 후 어떤 군생활(자기계발 기회의 유무, 선임병과의 관계 등)을 보냈는지 또한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것들이 군복무 효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설령 어떤 통계적인 결론을 도출하였다 할지라도 어쩌면 그것은 무의미한 결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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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지적이십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단 군 복무를 하는 이들에게 있어 군 입대 전에 입대를 결정하는 요인과 입대 후 복무 중 환경이 동질적이지 않은데서 오는 문제를 지적하신 것 같은데요. 어쩌면 이 주제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실증 연구들이 부딪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똑같이 2년 군 복무를 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내용의 군 복무를 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일단 전방이냐 후방이냐, 편한 보직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 군번이 꼬였느냐 풀렸느냐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사소하게는 부대에 도서관이 있느냐 없느냐, CD player반입이 되느냐 안되느냐, 연등(취침 시간에 공부하는 것)이 가능하냐 아니냐, 야간에 근무를 서느냐 안서느냐, 생활관이 구막사냐 신막사냐 같은 아주 작아 보이는 문제들도 군 복무가 인적자본의 형성에 다른 영향들을 미칠 수 있겠지요. 늘여세워보면 이런 요인들은 아마 수백개는 될겁니다.

      제 생각에 실증연구의 의의는 제한된 데이터로부터 (매우 복잡한) 현실의 제약들을 최대한 통제하면서 어떤 인과관계를 찾아내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정보들을 모두 담고 있는 데이터가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런 자료는 실재하지 않고 현실에 존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몫은 잘 추출된 된 데이터로부터 군 복무자와 비복무자들을 추려낸 다음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내는 '기대되는' 차이를 보는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댓글을 단 분께서 지적하신 문제들을 통제하려 노력하는 것이 다음 단계겠지요. 그러나 데이터의 부족함으로 인해 위와 같은 제약들을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더라도 (과도하게 비약적인 결론을 내지 않는 한) 저는 그것이 '무의미'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실증연구란 데이터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면서도 데이터를 통해 '기대되는 인과효과'를 보여주는데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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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June Myoung Lee님 말씀이 와닿습니다. A라는 사람이 군복무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비교-대조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이미 Choiecon님께서도 Sample Selection 문제를 언급해주기도 하셨네요.

    커리어에 있어서 그 사람의 "능력"이 미치는 영향이 가장 막대할 거라고 생각되므로 패널 데이터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능력(적어도 군복무 전의 능력이라도)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요?

    군복무 후의 능력 차이도 그것이 군복무에 따른 변화에 의한 것인지, 사람마다의 잠재력 차이에 의한 것인지의 문제도 있고... 현실적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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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에 언급한 D.Card and A.Cardoso(2012 AEJ)를 조금 읽어 봤는데
      이들은 입대전에 노동한 이들을 연구대상으로 항 '능력'의 문제를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특정 해에 태어난 군집(cohort)들 중에 18~20세 때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던 이들을 뽑아낸 다음 21~22세에 군 복무한 이들(이들의 21~22세의 노동기간은 공백이겠죠)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따로 regression을 돌려 시간이 흐를수록 임금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및 군 복무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계수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것 같더군요. 이렇게 하는데에는 군 복무 이전에 풀타임 노동한 이들이 받은 wage에 개인의 ability가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전제가 있는거겠죠. 다만 한국의 패널데이터로 Card et al의 방법을 유사하게 따라하기에는 데이터가 너무 작아진다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포르투갈의 경우 고용부에서 사기업에 취업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매해 실태조사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기에, 특정 년도에 태어난 남성을 대상으로 위와 같이 실험/대조군을 설정하는데도 상당한 관측수가 보장되더군요. 또 각 개인의 신분증번호를 통해 매년 개인의 노동시장에서 변동추이도 추적할 수 있다고 논문에는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고용부에서도 그런 데이터가 있는지도 알아봐야겠습니다.)

      더 선행연구를 읽어보고 고민해봐야겠네요.

      위의 3개 페이퍼 중 Card et al과 다른 2개 중 하나를 읽고 리뷰를 1,2월에 각각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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