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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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6일 일요일

약탈적 금융사회(대안 편)

             요즘 금융권은 비가 올 때 우산을 빼앗아간다며 지탄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용도가 높은 고객보다 낮은 고객에게 더 높은 금리를 매기는 것, 경기가 좋을 때 대출을 늘리고, 경기가 나쁠 때 대출을 줄이는 행태[1] 모두 제가 배운 경제학으로 바라보면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저는 작년 10약탈적 금융사회라는 글을 통해서, 합리적인 판단 하에서 운영되고 있는 은행을 감정적인 근거만으로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현재의 실태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경제학도이자 금융권 취업 준비생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게 더 높은 금리를 매기는 이유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의 채무불이행 확률이 더 높다는 가정 하에서 채무자들의 기대원리금[2]을 일정수준으로 맞추기 위함일텐데, 기대원리금을 높이는 방법이 고금리밖에 없을까?’
높은 금리가 채무자들의 채무상환의지를 꺾는 효과를 갖지는 않을까?’

             신용도는 신상정보, 직장정보, 자체 거래정보(해당 금융기관의 여, 수신 내역, 연체 여부, 거래 기간 등), 한국신용정보 같은 신용정보회사로부터의 신용정보에 의해 판단된다고 합니다[3]. 이렇게 산출된 신용도를 바탕으로 채무불이행 확률을 추정한다면, 위와 같은 항목들이 크게 변하지 않는 이상 채무불이행 확률도 변하지 않고, 그에 따라 매겨지는 금리도 높은 상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의 채무불이행 확률이 더 높다는 가정을 비판없이 받아들여도 될까요? 채무자의 대차대조표와 거래내역보다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의 됨됨이, 경제활동과 채무상환을 위한 의지와 행동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 측에서 채무자의 경제활동의지를 다독여주고 행동을 직접 지원, 지도, 감시함으로써 채무불이행 확률을 줄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종전보다 낮은 금리 하에서 기대원리금을 원래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언급한 두 번째 의문이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금리를 낮추는 것이 채무상환의지를 높여 기대원리금을 더욱더 높이는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저신용자들의 기대원리금을 일정수준으로 맞추는 방법은 금리를 높임으로써 원리금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채무이행확률을 높이는 방법도 가능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입니다.

2-3일 전까지의 생각의 결과가 위와 같았고, 구체적인 방안 및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하여 생각하지는 않고 있던 중, 연체된 책을 반납하러 중앙도서관에 갔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갖다주고 나서 빈손으로 나오기 아쉬워 무심코 꺼내든 책이 데이비드 본스타인의 그라민은행 이야기였습니다. 서민금융에 주력한 은행이라고 얼핏 들었던 이름일 뿐이었는데, 책을 펴고 읽어보니 위에 적은 제 생각들이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더군요. 지금 절반 정도 읽은 상태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전율이 밀려옵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서민금융업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경제신문과 인터넷을 통해서는 그라민은행과 같은 사례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라민은행의 창시자 유누스 씨는 2006년 서민생활 개선의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데 말이죠. 대한민국 버전 그라민은행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금융기관을 도입함으로써 서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며, 어떤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것에 대하여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1] 본고에서는 금융시스템의 경기순응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2] (채무이행확률)*(원리금)
[3] 인터넷 서핑으로 찾은 내용이므로 누락된 사항이나 잘못된 사항이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개략적인 맥락이 중요하기에 검토 없이 실었습니다.

댓글 4개:

  1. "그라민은행 이야기"의 부록에 우리나라의 서민금융기관으로

    1. (사)한국 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조합
    2. (사)함께 만드는 세상 사회연대은행
    3. 아름다운재단
    4. 열매나눔재단
    5. SBS희망기금지원센터

    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알아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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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avid Roodman의 "Due Diligence"라는 책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 책은 반대로 Microfinance가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Due-Diligence-Impertinent-Inquiry-Microfinance/dp/1933286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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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윽 ㅜㅠ 중앙도서관엔 비치되어있지 않네요. 혹시 다른 책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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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코리아크레딧뷰로 라는 회사에서 새로운 신용등급분류법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마 글쓴이가 생각한 바를 실증하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 같네요

    관련 기사를 찾아보세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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