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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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당신이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은?


바로 전 글에서 roundmidnight님이 기회의 평등을 논할 때, 지능에 의한 소득 차이는 보전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를 간단한 게임이론 모형을 통해 보이셨지요. 이 모형에서 '기회의 평등'이란 사후적으로 관측된 소득을 다시 동일하게 나누는 것으로, '소득재분배'란 사전적으로 정해진 세율에 따라 세금을 걷어 이전하는 것으로 정의하셨습니다. 핵심은 천재가 노력하는 상황에서 범인이 직면하는 유인체계였던 것 같습니다. '기회의 평등' 상황에서는 범인이 노력하지 않는 편이 더 높은 효용을 얻지만, '소득재분배' 상황에서는 노력하는 편과 효용이 동일했습니다. 바로 노력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었죠. ‘기회의 평등정책 아래서는 범인이 얻는 효용이 관측되는 소득의 격차가 커질수록 늘어나며, 천재의 전략이 주어진 아래에서 범인은 실제 효용격차는 같지만 태만할 때 관측되는 소득의 격차가 늘어나, 얻게 되는 몫이 커지는 것입니다. 반면 소득재분배의 상황에서는 범인이 소득 이전으로 받는 몫은 천재의 관측되는 소득에 정비례하므로, 자신의 전략과는 관계없이 천재가 어떤 전략을 택하는지에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니 일부러 태만할 유인이 발생할 이유가 없었죠.

하지만 설정하신 모형에서 말하는 기회의 평등결과의 평등’과 구분하기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 다 노력을 했을 때 같은 소득을 받는 것 뿐 아니라 한쪽이 노력을 하고 한쪽이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관측되는 소득을 동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같은 주장을 다른 근거를 들어 하고 싶습니다.
 
원래 이 논의는 John Roemer기회의 평등개념을 접하고 블로그 구성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작되었습니다. Roemer는 인간의 소득을 결정하는 요인을 환경적인 요인과 노력 요인으로 나누고, 오직 노력에 의해 소득이 결정되는 사회를 이상 사회로 꿈꿉니다. 그는 환경적 요인을 부모의 소득, 지능, 외모 등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모든 요소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노력또한 완전히 개인이 통제하지 못한다고 보아, 노력의 leveldegree를 나누어 구분합니다. 노력의 절대적인 수준이 아니라, 같은 환경 집단 사람들에서 몇 분위 안에 드는 노력을 하느냐가 진짜 노력을 가늠할 기준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우선 저는 뢰머가 말하는 degree of effort 개념에 실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뢰머는 사람들을 상황에 따라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같은 사람들끼리는 동일한 소득을 받는 것이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사회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상황은 IQ 이외에는 동질적이고, IQ80인 그룹과 120인 그룹이 있을 때 80 그룹 중 소득이 상위 10%, 50%, 90%인 사람과 120 그룹 중 소득이 상위 10%, 50%, 90%인 사람의 소득이 동일해야 하는 것이죠. 같은 그룹 내에서의 상대적인 위치가 진짜 노력을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상황이 같은데 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노력을 할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저는 뢰머식의 기회의 평등개념이 인간의 개별성을 인위적으로 희석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봅니다. 지능에 따른 소득 차이를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지능을 개인의 소유로 볼 것인가와 직접 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위에서 말한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노력을 하는 이유는 개인의 선호가 달라서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여가와 소득 사이의 선호가 개인마다 다른 것이죠. 그렇다면 왜 부모의 소득, 지능, 외모, 체력 등 다른 요소는 개인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 선호의 차이를 특별히 개인의 고유한 엑기스로 인정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간의 자기 정체성은 여가와 소득 사이의 선호도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능, 외모, 사회관계 등 온갖 요소를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회의 평등을 위해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 중 일부에 대해서는 그것이 소득에 미치는 효과를 보정해야 하겠지만, 과연 재능까지 포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기정체성이 희석되는 문제 이외에도, 사람들이 자기 재능을 따라 직업 선택을 할 유인을 없애 효율성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일반 대중이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분노하는 상황 또한 누군가 재능은 없는데 인맥으로 성공한 때이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 때문에 성공한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편 노력과 능력이 정말 쉽게 구분되는 개념일까요? 저는 머리가 좋은 것과 공부를 좋아하는 것을 실제로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을 정말 잘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수학 수업을 들으면 바로바로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일까요, 아니면 수리적 사고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수학적인 바탕을 많이 쌓아왔고 그것이 반영된 결과일까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하고 각각 자신의 그룹에서 같은 백분위에 위치할 때, 그것이 두 사람의 동일한 '노력'의 결과이며, 동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만일 노력의 실체가 노력에 따른 '비효용'이라면) 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사회 전체 후생에 얼마나 기여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개인적 비효용을 얻었느냐'를 기준으로 사회적 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강한 기회의 평등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적 세계와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중립적인 정부경제적 행위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나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자발적 거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연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세계에서 기회의 평등을 인간의 손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준의 부의 재분배가 필요할 텐데, 과연 완력 없이 가능할지 걱정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이란, 사람들의 초기 '상황'을 인위적으로 동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오직 '사회 전체 후생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를 기준으로 보상받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댓글 12개:

  1. 부모의 재산은 예로 드신 체력, 외모, 지능 등과 달리 노력과 상관 관계가 현저히 떨어져 보입니다. 인맥도 경우에 따라 다르겠구요. 자기정체성의 정의가 다시 될 필요는 있지 않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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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다듬어지지 않은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부모의 재산이나 인맥은 비교적 노력과 구분하기 쉽고, 그래서 '기회의 평등'이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이들이 개인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체력,지능 등의 요소보다 용이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정체성' 자체에는 부모의 재산이나 인맥 또한 포함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재산수준 자체로만 보면 와닿지 않지만, 실제로 개인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그리고 부모의 재산수준이 개인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인) 가정환경, 부모님의 가치관 등은 개인과 떼기 어려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기 정체성'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를 개인의 소유로 인정하는 것과 '기회의 평등'을 동시에 완전히 달성할 수는 없으며, 어느 정도 절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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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달해주신 답변 잘 보았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은 노력과 비노력의 한 점에 놓여져 있으며 부모님의 재산과 여가는 노력이 0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라서 노력에 비율만 예상할 수 있다면 기회의 평등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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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모든 노력이 생산적으로 쓰인다는 조건 하에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사회가 개인이 생산해 낸 만큼 보상을 주되, 그 중 개인이 노력해서 얻어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노력에 의한 부분에만 보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력을 구분해내는 것,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생산은 대부분 여럿이 함께 하므로) 그 이전에 팀웍에서 개인이 기여한 만큼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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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또한 저는 뢰머식의 ‘기회의 평등’ 개념이 인간의 개별성을 인위적으로 희석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봅니다. 지능에 따른 소득 차이를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지능을 개인의 소유로 볼 것인가와 직접 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여가-노력 trade off가 개인의 선호 차이에서 비롯된다는건 이해하는데, 그래서 그것이 기회의 평등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뢰머가 말하는 기회의 평등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이란 순수히 개인적인 요소에 의해서만 소득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노력한데에 대한 disutility'에 대해 결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노력 level자체가 아닌 노력에 대한 disutility라는 것은 1단위 노력에 대한 disutility가 사람마다 다를 것 같기 때문에 그렇게 놓은 거구요. 즉 노력이 a고 거기에 대한 cost function이 c(a)라면 이 c(a)에 따라 보상받아야 할 것 같아요 (c, a는 사람마다 다르구요).

    그리고 재능과 노력의 차이는, 동일한 노력에 대한 disutility에 대해 더 실력이 뛰어난 만큼을 재능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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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력에 대한 disutility에 의해 소득이 결정된다면,
      엄청난 disutility를 감수하며 노력했으나 output을 하나도 못 이끌어낸 사람이 거의 disutility를 느끼지 않으며 막대한 output을 생산한 사람보다 더 많은 소득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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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Incentive 문제를 배제한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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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 지능이 높아서 같은 disutility로도 더 높은 성과를 얻는 사람에게 이 성과를 인정해줄 것인가 여부는 지능이라는 '자산'을 본인이 소유한 것으로 인정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2) incentive문제를 뺀다면 지능이라는 '자산'에서 오는 수익을 개인에게 인정해줄 것인지 노력이 따른 '비효용'만큼만을 인정할 것인지는 가치 판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 incentive문제는 사실 두 단계인데, 우선 자신이 가장 재능있는 것을 열심히 하게끔 유도하는 문제, 그리고 human capital을 쌓아나갈 수 있게 유도하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Human Capital을 생각한다면 노력과 재능을 분리하기가 특히 어려운 것 같고요. (현재의 disutility뿐만 아니라 그만큼의 재능을 쌓느라 느꼈을 과거의 disutility도 고려해야하므로)
    4) 사람 사이의 효용 차이는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가-소득 선택의 차원에서는 누가 상대적으로 더 여가를 선호하고 누가 소득을 더 선호하는지 말할 수 있지만, 노력 자체에서 느끼는 비효용이 누가 더 클지는 비교할 방법을 모르겠어요. 뢰머가 사용한 '자기 그룹에서의 소득분위'가 같으면 똑같은 비효용을 느꼈을 것이라는 가정은 (뢰머를 열심히 읽은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지만--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지적 부탁드러요)제가 보기에 정당화가 되지 않은 임의의 기준인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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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편 disutility를 보상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자기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normative하게도)임금을 덜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 같은데, 저는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난쟁이가 임금을 받는다면 grumpy가 제일 많이 받아야 된다는 뜻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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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기회의 평등, 혹은 결과의 평등과 같이 '평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논의함에 있어서, 경제학을 넘어선 철학적인 영역을 피해가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념에서의 '평등'이라는 개념이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모두가 서로 다른 개성이 있는 존재이며, 어떠한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가하는 '결과적 평등' 문제는 어떠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 그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가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오늘날에는 이건희 회장같은 사람이 최홍만 선수보다 (최홍만 선수도 돈을 적게 버는 것은 아니겠지만,) 훨씬 많은 돈을 벌겠지만, 만일 석기시대였다면 최홍만 선수 같은 사람이 가장 대우를 받고, 이건희 회장은 뒷방 늙은이에 지나지 않을까요?

    이와 더불어 '기회의 평등' 역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이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부를 이용해 더 많은 기회를 살 수 있고, 또한 부유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을 보다 쉽게 습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에서 아무리 기회의 평등은 그것을 아무리 추구한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결국, 누가 얼만큼 많이 버는가, 그리고 누가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인위적인 조작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여기는 부분은 결과적으로 똑같은 소득을 보장하거나 똑같은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했을 때 얼마나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한가와 관련된 '계층간 유동성'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이 얼만큼의 돈을 버는가의 하는 부분(결과적 평등)은 개인의 특성과 사회의 성격과 같이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또한 아무리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를 준다고 해도 계층 간 이동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기회의 평등 역시 의미가 없어집니다.
    결국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노력했을 때,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평등'의 핵심이며, 결과적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 역시 '계층 간 유동성 확대'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빈부격차는 존재하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동등한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보다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 평등의 문제에서 보다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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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씀하신대로 계층 간 이동성이 사회의 '평등'의 정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완전한 평등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데에 동의하고, 그래서 현실에사는 사회를 평등에 보다 '가깝게' 만드는 정책이 실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계층 간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이동성만 보장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늘 하위 그룹에 남아있을 것이고, 사회에 완전한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를 반드시 개인 탓으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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