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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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중산층은 붕괴하고 있는가?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F.Fukuyama) 는 중산층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며, 최근 세계적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로 인해 그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중산층이 최근 들어서 붕괴하고 있는지 필자는 어제 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왠지 이 주제를 잘 연구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 선행연구를 찾아봤는데 역시, 내가 생각해 낸 ‘재밌는 주제’라면 제가 맨 처음일 리가 없겠지요. <중산층의 추이, 이탈원인과 대책> (강성진, 이우진 공저. 2010, 고려대학교 경제연구소.) 라는 연구 보고서가 있더군요. (해당 주제에 대해 가장 최근의 연구이고 기존 문헌 연구나 실증 분석도 이해하기 쉽게 잘 된 것 같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훑어보시길 추천합니다. 2장을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위 보고서는 제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논의의 전개 방향이 달랐어요. 우선 여러분은 중산층 붕괴 현상을 검증하려면 데이터를 어떻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위 보고서의 2장 2절에서는 중산층의 비중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현재 중산층인 가구가 앞으로 어떤 소득분포를 차지할 것인지의 이행행렬(Transition Matrix)을 구해서 분석하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중산층 붕괴는 일단 현재의 중산층이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이 어떻게 되는지도 중요하겠지만 그 미래 소득의 분포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금 소득분위가 전체 소득 분포에서 중상 정도 구간에 있는데 미래에는 이 소득보다 더 높은 등급으로 갈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더라도, 그 기대되는 소득의 분포가 더 넓어진다면 중산층은 오히려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요? 
특히 여기서 제가 생각한 것은 첨도(kurtosis)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중산층일 때 미래에 기대되는 소득의 분포가 어느 방향으로 치우쳐져 있는지 (a direction of skewedness)가 중산층이 붕괴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만약 현재의 중산층이 10년 뒤에 중산층(또는 상류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계산되더라도 이상치(outlier)등의 존재로 인해 분산이나 첨도가 아래쪽으로 크게 나온다면 그건 중산층 붕괴현상의 징후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한 점은 과연 데이터를 분석할 때 해당 가구 소득의 추이만을 보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중산층 붕괴를 거론할 때 많이 나오는 얘기가 ‘나는 지금 중산층인데 내 자식은 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중산층 붕괴 현상을 볼 때도 그렇다면 세대 간 소득 이동성 (Intergenerational Income mobility) 문제가 중요하겠지요. 위 보고서에서 사용한 노동패널데이터(KLIPS)는 기존 가구에서 자녀등이 분가해 나갈 때 그 추이도 함께 조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부모가 중산층일 때 분가해 나간 자녀 가구의 소득 추이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만 이 2세대 가구는 20~30대 젊은 연령대라는 것을 고려해 소득의 절대적 수준보다 그 상승 추세에 초점을 맞춰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기존의 중산층에서 분가해 나간 가구가 중산층에 재진입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에 초점을 맞춰서요.

여기까지가 중산층 붕괴현상에 관한 저의 짧은 의견이었습니다. 굳이 후쿠야마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사회가 얼마나 안정적이냐를 판단하는데 있어 그 사회의 중산층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생활 수준을 영위하는지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실증분석 능력이 있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KLIPS나 다른 자료를 통해 위 두 가지 주장을 한 번 검증해 보고 싶은데 이건 미래의 과제로 일단 남겨야 할 것 같네요. 중산층 붕괴가 실재하는지, 혹 이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지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ps.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같이 오면서 이 글을 쓰는데 좋은 토론을 나눠주신 블로그 필진 A님께 특히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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