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환영회식사

2012년 10월 10일 수요일

약탈적 금융사회?

며칠 전 제윤경 씨의 『약탈적 금융사회』라는 책을 통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요점은 경기침체, 집값 하락 등의 외부환경 변화에 따른 채무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채무자가 너무 일방적으로 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8월 올라온 Karam Jo님의 글 『실패에 대한 책임은 너만 지어라?』에도 이와 비슷한 견해가 담겨있었죠. 하지만 저는 과연 유사시 은행[1]이 지금보다 더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하는가에 대해 끝끝내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는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의 리스크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아 보았습니다.

채권, 채무관계는 계약입니다. 채무불이행 시 담보를 압류하고, 그 처분액으로 채무를 상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계약 안에 들어있고, 그 내용에 채권자와 채무자가 모두 동의했다면 디폴트 시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다면 그 반론은 필연적으로 계약이 불공정했음을 주장해야겠지요. 계약은 협상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협상력의 차이가 계약에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자금시장의 공급 측면에서 다소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은행의 협상력이, 완전경쟁에 가까운 상황에 처해 있는 자금 수요자 개개인의 그것보다는 훨씬 강할 것입니다. 이는 채권, 채무 계약이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어지는 권한만큼 그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말인데요. 돈을 빌린 사람은 자기 소유가 아닌 돈의 일시적인 처분권한을 얻습니다. 은행은 그 대가로 일정기간, 일정량의 이자를 수취할 권한, 만기 시 대출금을 돌려받을 권한, 채무불이행 시 담보 압류 및 매각을 통해 손실을 보전할 권한을 얻게 되지요. 차입자의 권한이 곧 은행의 의무(책임)이며 은행의 권한이 차입자의 의무라고 할 수 있겠고요. 따라서 양자의 권한의 크기를 비교했을 때, 그 권한의 크기가 같다면 책임이 공정하게 분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2]. 현재가치법으로 계산하고, 대출금리로 현금흐름을 할인하면 두 권한의 현재가치는 같아집니다[3]. 오히려 담보가치 하락과 그에 따른 개인의 파산신청 등의 리스크를 고려한다면 은행의 권한이 좀 더 제한적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이러한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서 채권 추심 행위 등이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4].) 독자분들께서는 이 문단 내용에 따르면 은행이 금리를 아무리 높게 잡아도 책임은 공정하게 분배되는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하실 것입니다. 금리가 높다면 차입자가 내야하는 비용이 많으므로 대출을 받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과점체제 하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반론을 하신다면, 그것 역시 타당하겠지만 그것은 책임의 분배 문제가 아니라 독과점에 따른 가격 형성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가격(금리)을 통제하거나 신규은행의 진입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지 현재의 책임 분배 상황에 손을 대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최근 하우스푸어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매체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할지, 민간 부문에서 부분적 채무 탕감을 통해 해결할지는 모르지만 그 골자는 채무상환능력을 잃어버린 하우스푸어를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과거 은행의 영업경쟁이 어떠했으며, 집값의 상승기조가 어떠했든간에 하우스푸어는 장차 대출 원리금을 초과하는 수익을 얻기 위해 자금을 빌려 집을 산 사람들입니다.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개인의 자산 증식을 위해 내린 의사결정의 결과가 좋지 않자, 금융권이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고 몰아가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계부채 1000조 시대, 그 충격파를 줄이기 위해서 각종 해결책을 정부 및 채권채무자가 합심하여 내놓는 것은 국가경제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나, 마치 은행이 큰 잘못을 했기 때문에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양해야겠습니다.


[1] 이하 본문에서는 은행채권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2] 공정한 책임의 분배는 다음 비례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A의 권한 : A의 책임 = B의 권한 : B의 책임에서 외항과 내항이 끼리끼리 같은 경우이므로, A, B 양자의 권한이 같아야만 비례식이 성립하게 됩니다.
[3] 채무불이행 확률이 있지만, 어차피 담보 처분 후 채무상환액을 초과하는 금액은 채무자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 물론 인권을 유린하는 채권추심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 보장 측면에서 근절되어야 합니다.

댓글 17개:

  1. 또한 채무불이행 시 은행이 감수해야하는 손실이 더 커진다면, 대부자금시장 모형에서 동일 금리에 대한 대부자금공급이 감소함으로써 균형 대출금리의 상승, 균형 대부자금량의 감소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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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깔끔하고 논리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은행과 채무자 사이의 관계만 분석한다면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중들의 불만의 숨겨진 원인 중 하나는' 은행이 빈자들에게는 높은 이자를 부자들에게는 낮은 이자를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빈자'들이 평균적으로 채무불이행 위험이 더 크니 리스크 프리미엄이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금리 격차의 원인에는 협상력의 차이도 내재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대기업이 다른 은행으로 떠나면 은행의 수입이 급격히 줄지만 서민 하나가 은행을 옮기는 것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대기업 협상력의 근원은 대출의 '수요과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협상력의 차이와 리스크 프리미엄을 분리하기 매우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요.
    결국 자금조달비용 차이 때문에 빈부격차가 확산되는... 그런 문제도 함께 고려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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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lyingbunny님 말씀처럼, 빈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부자들에게는 낮은 이자를 요구하는 상황에 대한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돕니다.은행이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한, 리스크가 높을수록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건 매우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니까요(설령 협상력이 같더라도 금리의 대소관계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은행들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복지와 분배 기능을 갖춘 비영리기구처럼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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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금리가 높기때문에 대출자가 상환을 능력이 없다면 대출받지 않으면 그만입니다.라는 부분이 지극히 자본주의적 마인드가 여실히 보이는 부분이네요. 자리에 앉아서 단순히 금융서적들만 들여다보며 삶을 살고 있는건 아닌지 묻고싶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은행이 과점형태로 자금을 소유하고 있고 이를 사회의 선순환을 위해 사용하지않고 자신의 부만을 축적하고 있는 점이 경기침체를 집값하락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의 단기수익만을 올리려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발상을 옹호하는 글로 보여 저로서는 읽기 거북하네요. 구성상은 상당히 요지를 잘 전달된 글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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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행업계의 과점체제가 문제인 것은 저도 동감합니다. 하지만 은행이 갖는 "규모의 경제"의 특성, 은행업계의 안정성이 전체 경제시스템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 등을 감안했을 때 현재의 독과점 체제를 수많은 은행이 경합하는 완전경쟁체제로 만드는 것이 더 나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기업이 자신의 부가 아닌 사회의 선순환을 위해 자금을 사용하는 경우를 제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소위 "사회적 기업"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기업이 이윤극대화를 위해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은행은 유독 사회의 선순환을 위해서 자금을 사용해야 합니까? 독자분께서 말씀하신 것이 옳다 그르다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은행 뿐 아니라 모든 업종의 많은 기업들이 사회의 선순환을 위해서 자금을 사용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현재의 패러다임 하에서 은행업을 콕 찝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은 단기수익 뿐 아니라 장기수익도 극대화해야합니다. 제가 은행 담당자라면 리스크와 이윤을 계산했을 때 사회의 선순환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현재의 상태보다 수익률을 높여준다면(장기든 단기든간에) 그런 방향으로 은행 경영을 해나가겠습니다. 작금의 상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 수익률이 리스크에 비해 굉장히 작다고 계산된 결과가 아닐까요?

      저는 자본주의적 마인드, 자유주의적 사고 등의 개념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직 학생 신분이므로 자리에 앉아서 금융서적들을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만 다른 일들도 많이 하고 있구요. 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신다면 글의 가정이나 논리를 공격해주시면 더 생산적인 토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도 많은 분들께 많은 것을 배우고자 글을 쓰는 것이니까요.

      졸필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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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글 잘 읽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저도 글쓴이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고, 글 자체도 요지가 분명히 전달되도록 잘 쓰셔서, 심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동의하며 읽었습니다.

    은행이 가지고 있는 상당한 독점력에서 비롯한 (자금 수요자에 비해) 강력한 협상력이 채권 채무 계약의 불공정성을 제기할 근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언급하며, 이에 대해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통해 답을 하셨는데, 이에 대해서는 은행의 본질 측면에서도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행이라는 금융중개기관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금융거래에 수반되는 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을 핵심 기능으로 한다는 점에서, 즉 은행의 존재 이유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은행이 자금공급 측면에서 가지는 상당한 독점력은 정당한 것이 된다고 봅니다.
    (쓰고 나서 보니 바로 위의 댓글에서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셨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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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평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우리모두 유념해야 할 사항은, 사회의 필요에 의해 나타난 소위 '정당한' 독점이라고 하더라도, 독점에 의한 폐해가 만연할 때 그 폐해를 정당화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도 그런 이유에서 고민한 끝에 쓰게 된 것이구요.

      요새 부채에 대한 고찰이 담긴 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최근에 읽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부채, 그 첫 5000년"이라는 책이 제게 고민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제 글과 배치되는 내용인데도, 반박하기 어려운 책이었어요. 이에 대한 고민은 아마 한번 더 글로 적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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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요즘 저도 가계부채에 관심이 많아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잘 읽었습니다. 복잡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잘 써주신 것 같습니다:-D.
    저 역시도 오늘날 부동산 침체로 인한 높은 가계부채와 가계부담을 은행의 잘못으로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주체들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이윤이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장점이자 근본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글에서 지적하신 바처럼 이미 행해진 계약의 결과, 즉 대출원리금이나 대출로 인한 책임분배 자체에 대해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자본에 대한 소유권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다만 독점구조나 서민들에 대한 정보의 부족으로 금리가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이 될 때에는 정부가 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아니면 방글라데시의 Grameen Bank와 같은 마이크로 파이낸싱처럼 시장 자체에서 그러한 독점현상을 위협하는, 서민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금융기관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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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라민은행이나 마이크로 파이낸싱, 요새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들의 수익구조가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보입니다. 은행 관계자분 말씀엔, 정부의 압력 때문에 서민지원을 하는 은행은 결국 부실을 떠안게 된다는데, 서민지원을 전문적으로 한다면 더 큰 부실이 생기는 건 당연할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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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하우스푸어는 그 규모가 너무 크다보니까 마치 '대마불사'랑 비슷한 모양새를 지니게 되는군요...
    잘못했으니까 너네가 책임져라고 말하면 깔끔하게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러면 국가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조금은 두루뭉술한 얘기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 사람들이 일이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쉽게 말하면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 한 아둔한 사람들이지만 조금 부드럽게 말하자면 그 사람들 역시 이 시대의 피해자겠지요. 빌려준 은행들 역시 그건 마찬가지고요.

    큰 부담을 진 채무자에 대해 그다지 관대한 시각을 갖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그 큰 부담을 은행이나 채무자 중 누가 더 여유롭게 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면
    은행쪽에 조금은 무게가 쏠리는 게 사실이네요 사실 논의가 정치적으로 흘러가면 약자보단 강자에게 짐을 몰아주는 게 유혹적으로 보이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게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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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우스푸어 문제가 대마불사의 문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더불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은행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찬성하구요.

      어쨌든간에 이러한 사태를 야기한 현재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잘 엄두가 나지 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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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안녕하세요^_^ 동태적거시경제이론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입니다.
    저도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글 잘 읽었습니다! 하우스푸어는 개인의 자산 증식을 위해서 투기 결정을 했으므로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에는 크게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 문제를 공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데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하우스리스푸어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대마불사의 전례를 남기는 것이 차후에 좋을 게 없죠.
    그러나 제3자인 공적영역과 달리 거래상대방이었던 은행이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쓰신 것과 같이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은 예금을 풀해서 대출을 하지요. 그러니까 은행은 예금자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셈으로, 은행의 중요한 역할 중 다른 하나는 리스크를 관리(risk-managing)하고 대출자를 감시하는 일(monitoring)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우스푸어 문제에 있어서 은행은 대출 감시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봅니다. 은행 역시도 하우스푸어 채무자들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불패를 믿었고 안일하게 주택담보대출을 해 주었습니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담보를 처분하면 되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은 (담보가치에 손실이 없는 한) 리스크 프리했죠. 채무자가 원리금 상환을 못 하면 담보를 처분하니 손실이 없는데다 부동산 활황에 편승해서 차익을 보니까 리스크 관리를 해야하는 은행들이 리스크를 더 취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높은 접근성은 부동산 활황을 부채질했을 것이고요.
    어쨌든 책임의 문제를 떠나서 원리금상환 부담을 완화해주어서 조금 적더라도 회수하는 쪽이 은행에게 낫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 봅니다. 특히 담보가치 손실이 예상되는 시점이라면 은행이 믿는건 담보 뿐이니까 자연스레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되겠죠.
    주택가격 하락기에 은행이 지는 부담이 없는 유인구조는 앞으로도 호황기에는 은행이 다시 주택담보대출을 지나치게 확대할 소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고민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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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택가격 하락기에 은행이 지는 부담이 없다는 말씀은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파산, 개인회생 등의 사태가 발생하면 은행은 대출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되니까요. 호황기에 주택담보대출을 은행이 확대하고자 하더라도, 투자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금융소비자들이 안다면 대차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은행의 과도한 마케팅이 자금 수요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점도 있겠지만, 자금 수요자들이 좀 더 보수적인 선택을 했다면, 마케팅 비용 증가에 비해 대출확대가 적으므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자연히 마케팅을 다시 줄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막대한 대출을 떠안지 않고는 집을 사거나 빌리지 못할 정도로 비싼 부동산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경제학개론 강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르네요.

      "요새 하우스푸어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전 하우스푸어가 되는게 소원입니다. 지금은 렌트푸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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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WebSpider님 글 잘 쓰시네요 2기로 활동 지원하고 싶으면 답글 세개가 필수라고 해서 왔습니다. WebSpider님이 10월 12일에 다신 답글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런 맥락에서 저는 궁극적으로 금융기관의 '자금 중개기능'이 국가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요.(하지만 그 시점은 정말 먼 미래가 될 것이라 봅니다.)

    금융기관이라는 단어 자체가 '돈을 융통해주는 기관'이라는 뜻이기는 하지만, 저리로 돈을 빌려와서 상대적으로 고리로 대출해주고 차익을 챙기는 전통적인 금융기관의 수익모델이 금융기관의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극히 작아졌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돈이 안된다는 얘기죠. 이런 흐름은 점차 강화될수밖에 없는 것이, 결국 일종의 수수료인 대출과 이자사이 spread를 많이 수취하려면 돈을 빌리려는 사람과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이 만나기 어려워야하는데, 발달된 기술은 그런 어려움을 제거해버리니 금융기관이 그 사이에서 돈을 챙기기는 극히 어렵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은행에 가서 처리하는 '전통적인 은행의 업무'는 모두 컴퓨터에서도 처리할 수 있고, 사실상 요즘 은행산업에서 지점은 그러한 의미에서 거의 의미가 없죠. (큰 돈 대출할 때나 동전 입금할 때 빼고는 사실 별로 갈 일이 없죠.) 그냥 부담이되는 존재일뿐. (지점이 거의 없는 산업은행이 민영화되면서 다른 경쟁 은행보다 그러한 이점을 더 활용하여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겠죠.)결국, 대출을 통해서는 돈이 안되니까 은행이 자꾸 새로운 수입 모델을 찾고 그런 맥락에서 파생상품이나 M&A등이 강조되어왔던 것이 지난 30년 간의 흐름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과격하게 이야기하면, 은행이 대출을 통해 이자를 얻는 것은 이미 '봉사활동'이나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렇다고 은행이 진짜 봉사단체인 것은 아니니까 어떻게든 수익을 내기 위해 나타난 경향이 "당장 돈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담보를 잡고 대출해주는 것"이죠. 담보가 없으면 대출 안 해주고. 딱 우리나라 상업은행들이 이러한 수준인데 이런 경향이 이미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죠. 대기업들이야 주식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면 되고, 실제로 70년대 이후 이런 경향이 강화되어왔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중소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죠.

    많이 돌아왔네요. 은행은 대출을 통해 이제 큰 이득을 아예 볼 수 없는 구조고, 그 속에서 그나마 이득을 챙기려면 당장 돈이 급박한 사람 또는 기업을 대상으로 장사할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꾸려고 하니 결국 지속적으로 부담이 가중됩니다. 이에 덧붙여 은행은 돈벌이도 안되는데, 기업에 대출해 줄 때 꼼꼼히 사업을 따질 필요가 없죠. 어차피 담보만 잡아두면 되는데.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였지만, 앞으로 더 자원배분을 왜곡시키고 큰 피해를 유발할 것이고, 결국에는 이를 감당할 수 없어,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자금중개기능을 전담하는 시기가 올거라 봅니다. 다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런 날이 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올 것이라고 보는 것이, 사람들은 정말 대다수가 그런 피해를 직접 체감하기 전까지는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않거든요. 아직은 그런 수준까지는 많이 여유가 있다고 보고요. 상황이 심각해져서 비자발적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보다 미리 대비할 수 있으면 좋겠고, 저는 그것이 경제학자들이 해야 될 임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점에서 다소 아쉽네요... 제가 너무 Roubini처럼 암울하게 생각했나요ㅠ 사실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인데 글을 쓰다보니 횡설수설했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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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행이 진짜 봉사단체인 것은 아니니까 어떻게든 수익을 내기 위해 나타난 경향이 "당장 돈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담보를 잡고 대출해주는 것"이죠.

      라고 말씀하신 대목에서, 돈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담보를 잡고 대출해주는 것을 통해서 은행이 어떤 수익을 얻으려 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은행이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덕분에 담보를 매각하더라도 원리금을 초과하는 액수는 채무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는 예금으로 조달한 돈을 대출해줘서 예대마진을 챙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서요. 단순히 예대마진의 축소는 필연적이니 예금과 대출을 모두 "양적으로" 확장시킨다는 말씀이신건가요?

      자금중개기능 이라는 것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무제한의 손실을 떠안을 capacity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졸필에 대해 칭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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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우선 정말 졸필 아니에요ㅎㅎ 보면 볼수록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음.. 저 위에 표현은 제가 엄밀하지 못하게 썼네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담보를 통해 원리금이 보장이 되는 만큼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위험의 크기가 신용대출에 비하면 훨씬 작은 데 비해 금리 차이는 신용대출과 그렇게까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행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상품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유동성이 필요한 사람은 주택담보대출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웹스파이더님이 리플 달아주신 것처럼 예대마진 챙기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엄밀하게 따지면 신용대출보다 오히려 예대마진은 적지만), 위험이 현저히 떨어지기에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죠. 많이 할 수만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졸필은 제가 달은 리플이 졸필이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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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적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수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양적 확대를 하면 할수록 금융기관 입장에서 남는 장사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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