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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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0일 토요일

모두가 경제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살아온 지도 어언 3년차. 그동안 대한민국 제일의 경제학부에서 최고의 은사님들께 다방면의 경제학적 접근방식을 배워왔다. 내 짧은 소견에 경제학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비춰져 왔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현란한 수식들, 그리고 그 복잡함 속에 숨어 있는 간단 명료한 직관, 그리고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결론.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의 기틀을 잡은 이후 2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천재들의 헌신으로 쌓아온 드높은 상아탑은 분명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일 것이다.
 
  그런 내 개인적인 감상을 떠나서, 상아탑 바깥으로 나가 경제학 전공자로서 명함을 내밀 때면 늘 무언가 기대에 가득찬 시선을 받기 마련이었다.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 경제학이란 뭐랄까 원피스라도 숨겨둔 보물 지도 같아 보이는 모양이다. 지난 몇 년 간 세상 사람들은 경제 공부에 열광해 왔다. 몇 년 전까지 베스트셀러 서가에서 내려올 줄 모르던 지금 당장 경제공부 시작하라라는 책을 굳이 예로 들 것도 없이 그정도는 누구나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는 트랜드였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도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어린 마음에 경제학이 갖고 있는 신비스런 아우라에 이끌려 경제학을 전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때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경제학을 공부하면 세상의 진리에 어느정도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의 부()가 움직이는 법칙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물론 이 말도 꽤나 돌려 말한 셈이다) 너무 작은 표본이긴 하지만 내가 살면서 만난 가장 많은 경제학 무지자집단, , 군대에 있을 때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나를 보며 경제학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자산, 혹은 어느 주식에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냐고 물어보곤 했다. 농담 조로 나중에 내 돈 좀 맡아서 크게 불려달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사실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인지하는 경제학의 범위는 그정도일 것이다. 경제 돈 잘버는 기술 자산 투자, 이정도로 요약하면 적당할까?
 
  물론 내 공부가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사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전공자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럴 때마다 돈버는 게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으니 그런 거 하실 때 조심하세요...’라고 기어들어가듯 조심스레 말하곤 했던 것이다. 스스로 인정하기에 조금 슬프긴 하지만, 사실 그정도는 경제학의 수요 공급 곡선도 잘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마 그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으레 에이, 그래 너혼자 잘먹고 잘살아라!’ 라고 말했던 걸 보면 말이다.
 
  한때 경제공부에 미쳤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던 심정이 나와 얼마나 다를까? 물론 읽은 책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시절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라는 책도 함께 있었다) 제대로 된 경제 서적으로 경제학의 기초를 익힌 사람들이라면 결국 나와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제학을 공부해서 애초에 기대했던 큰 수확을 거둬들일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고 본다. 첫째, 경제학의 달인이 되어 노벨상을 수상한다. 둘째, 그럴싸한 경제학 서적을 써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셋째, 경제학을 잘못 이해하고 어설프게 들어간 투자가 우연히대박을 내 벼락부자가 된다. 요약하자면 천재, 사기, 천운’, 셋 중 하나라고 할까? 하지만 내게 경제학으로 잘사는 법을 묻는 비전공자들에게 엄청 똑똑하거나, 말을 엄청 잘하거나, 운이 엄청 좋으면 되요~’라고 얘기하면 그들이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일 지는 조금 의문이다.
 
  사실 그래도 경제학을 공부하고 나면 부가 어디로 모이는지 정도는 어렴풋이나마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경제학이 이론을 전개하는 대부분의 시장인 완전경쟁시장에선 특정 한 자산의 수익률 널뛰기가 단기적으로 랜덤워크를 따른다. 영원한 고수익은 없고, 영원한 저수익도 없다. 그리고 그 수익률의 변동은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들어간다. 하지만 완전경쟁시장이 아닌 곳에선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완전경쟁시장의 가정을 깨뜨리는 3대 조건, 정보의 비대칭성, 독과점, 외부효과가 존재하는 시장에선 조금은 직관적인 예측이 가능해진다. 정보 우위에 있는 경제 주체가 더 많은 이득을 가져갈 확률이 높고, 독과점 하에서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으며, 외부효과가 존재할 때 경제 법칙에 어긋나는 결과를 예상해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특정 자산의 수익률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우습게도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가정들을 완화시킬 때 경제학이 비로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학문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부문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어설픈 조언은 하지 않는다. 누구 물 한번 먹어보라고 일부러 하는 말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 많은 세월을 살아보진 못 했지만 그래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을 들어보자면 세상 사람들이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 즈음에는 대부분 이미 상황이 종료돼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까? 정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가에는 이미 현대·기아차 그룹의 내수시장 독점력이 반영돼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FTA 등의 시장 개방으로 인해 내수 시장에서 독점력이 약화되는 것과 반대로 미국·유럽 등지에서 수출경쟁력을 얻게 되는 사실도 반영돼 있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수출경기가 부진한 것도 반영돼 있으며, 연기금 등의 거대 기관 투자자의 투자 흐름으로 인한 기업 가치 변동과 상관 없는 주가 변동도 반영돼 있다. 그 외에도 일반 투자자에게 공개되지 않은 고급 정보들도 소수의 큰 손들에 의해 은연중에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정량화 하기 어려운 각종 요인들이 시장에서 수많은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의해 자연스레 균형을 찾아간다. 수많은 전문 투자자들이 나름대로의 탁월한 방법을 이용하여 각종 요소들을 계량화하고 그를 통해 주가의 추이를 예상해보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할수록 주가의 움직임은 더욱 더 첩첩산중으로 빠져들 뿐이다.
 
  이야기가 잠깐 산으로 갔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현대·기아차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글쎄, 잘 모르겠다!’라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는 건 중간에 복잡한 설명 과정을 생략하면 전공자나 비전공자나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차이점을 들자면 아마도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감히 투자할 엄두를 못 낼 것이고 비경제학을 모르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투자할 용기를 낼 수 있으리란 전망 정도랄까?
 
  잠깐, 그럼 경제학을 공부하는 게 아무 짝에 쓸모 없다는 결론으로 흘러가는 건가? 내 개인적인 소견으론, 적어도 일반인 수준에선 그렇다. 두 가지만 알면 된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묻는다면 첫째,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이 얽혀있어 어떻게 될지 잘 몰라요, 라고 답한다. 둘째, 그냥 냅두면 시장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해결할 겁니다, 라고 답한다. 이렇게만 답해도 경제학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 여기서 강세는 첫째 답변이 아니라 둘째 답변에 있다. ‘Let it be’. 경제학을 아무리 연구하고 탐구해도 이 이상의 진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물론 그 답을 내릴 때까지 중간 과정이 생략돼 있긴 하지만 결론은 마찬가지니 읽어봐야 머리만 아픈 복잡한 일들은 몰라도 상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학을 공부하려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재산을 유지하고 증식시키는 데 경제학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가정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 학문적인 흥미로, 상식을 쌓기 위해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이 없다. 다만, 경제학이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물론 경제학을 공부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조금 더 넓어질 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새로운 부동산 정책에 의해 집값이 폭락하고, 남유럽에 재정위기가 터지고 미국 재정 적자가 심화될 때 그에 대해서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보다는 할 말이 더 많을 것은 분명하다. 또 그 사태의 전망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주관적 확률 분포를 가지게 될 것이고, 그에 걸맞게 자신의 자산을 더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확률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일부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자산 규모라는 건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다. 자산 관리보다는 차라리 부채 관리가 더 의미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니 경제학이 설령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마법의 학문이라 할지라도 투입 대비 산출이 떨어질 수 있다. 하물며 경제학의 실상이 그게 아니라면 오죽하겠는가. 그런 복잡한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겨버리고 (전문가는 위험 관리 측면에서는 그나마 좀 낫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차라리 경제학을 공부할 그 시간에 파트 타임으로 일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들이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

댓글 1개:

  1. 경제학과 돈 버는 일?
    저는 경영학을 함께 전공하고 있다보니 두 개를 많이 비교해서 생각해보곤 합니다. 예전에 경영대 모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회사의 성장률을 Y축에 회사의 R&D 투자규모를 X축 두고 데이터를 점으로 찍습니다. 그러면 우상향하는 점들의 모임이 나타나겠죠? 경제학에서 하는 일은 여기에 회귀선을 그어 경향성 혹은 원리(principle)을 찾는 것이고, 경영학에서 하는 일은 각 점들의 deviation을 추적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대체적인 경향은 차치하고 왜 특정 회사들이 더욱 좋은 성과를 냈는지 추적하여 배울점을 찾는 것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케이스 스터디나 질적 요소가 상당히 중요시 되는 것 같구요.

    그런의미에서 돈을 버는 지식에 가까운 것은 경영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투자든 사업이든 초과수익을 거두려면 남들 보다 더 앞선 성과를 내야하는데 아무래도 그런 면은 경영학이 더 중시하고 있지요.
    애초에 학문의 관점 부터 다르달까요?
    경제학은 오히려 초과수익에 부정적이고, 적절한 조건 하에 시장균형에 도달하면 초과수익은 사라진다는 입장인게 재밌습니다. 경영학은 어떻게 하면 초과수익을 달성할까 열심히 고민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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