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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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6일 수요일

순환 보직 제도는 왜 존재하는가? :아담스미스도 몰랐던 보직 배치의 비밀


Adam smith(1776)는 그의 책 국부론에서 영국의 핀 공장을 둘러본 후 발견한 분업과 특화의 효율성에 대해서 역설했습니다. 10명의 공장 근로자들이 분업과 특화를 통해 핀 공정의 각 단계를 전문화하여 생산을 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 각자 전 과정을 혼자 했을 때 1인당 20개도 만들기 어려웠던 핀을 1인당 4,800개나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공공기관은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분업과 특화의 이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컨대 소방서에서 구조대원으로 근무하던 직원이 시간이 지나면 사무직을 보기도 하고 반대로 사무직을 보던 직원이 구급 업무를 맡기도 합니다.

아담스미스에 따르면 분업제도를 실시하고, 나눠진 각 작업에 근로자들을 특화시키는 것은 근로자들이 맡은 작업을 실행하는 기술과 솜씨를 향상시켜 주고, 다른 종류의 일로 넘어갈 때 통상적으로 잃는 시간의 절약을 가져다 줍니다. 보직에 배치 받은 근로자는 시간이 지남에 그 직무에 숙련되어 가기 때문에 특화의 이득은 근로자가 한 직무에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 커지게 되지요. 하지만 소방관들을 비롯한 공무원들은 자신의 업무에 오래 머물러 ‘특화의 이득’을 누리기보다는 여러 보직을 순환하며 근무하는 ‘순환보직제도’를 통해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면서 생산성의 측면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특화의 이득’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공공기관의 인사 제도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소방 및 경찰, 군대 조직부터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외교통상부 등 다양한 공공조직을 살펴보아도 어느 곳에서나 대부분의 근로자들을 순환보직제도를 이용해 배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대로 분업 및 특화만이 가장 효율적인 조직 구성 원리라면 이와 반대되는 방식의 순환보직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현대 공공기관은 지난 세월 동안 막대한 문제점들이 노출되었을 것이며, 오늘날까지 건강하게 조직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순환보직제도가 현대 공무원 조직에서 유용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특화의 이득’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순환보직 제도’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찰한 다양한 연구들을 소개하도록 하고 추가적인 실증 검증이 필요한 가설도 간단하게 제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론은 순환보직은 근로자들의 톱니바퀴 효과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근로자 업무 성과에 있어 불확실성이 강하고 근로자의 노력 수준을 측정하기 어려울 때 기관은 근로자의 초기 생산성을 기준점으로 삼아 보상 방침을 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비해 올해 생산성이 얼마나 증대되었는지를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합시다. 만약 근로자가 작년에 자신의 보직에서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최고의 생산성을 발휘한다면, 올해 그는 인센티브를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미 작년에 최선을 다했기에 올해 그 보다 더 큰 생산성 향상은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근로자는 전략적으로 처음에는 낮은 노력을 투입해 낮은 생산성을 올리려는 유인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효과를 톱니바퀴 효과(Rachet effect)라고 합니다. 성적 향상 정도를 최종 성적에 감안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첫 시험을 고의로 망치는 학생이나, 회사나 군대에서 상사가 매번 어려운 일을  맡길까 두려워 거짓으로 자신의 무능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Ickes&Samuelson(1987)에 따르면 순환보직은 현재 업무에서의 생산성과 미래의 보상 체계를 독립적인 것으로 만들어 근로자가 자신의 현재업무에 대한 생산성의 정보를 숨길 유인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 온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Eguchi(2005)는 순환보직이 부패를 줄여준다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한 근로자의 개인적인 판단이 판단자 개인을 넘어서,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예를 들면, 은행원이 대출을 내줄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는 것 같은-근로자를 한 직무에 오래 배치하면 그 근로자가 사적 이익을 좇아 부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순환보직을 통해 이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직장에서도 감사 부분은 보직 순환이 상대적으로 높은 부서 중에 하나이지요.

  세 번째로 공동생산에 따른 조정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업무의 산출은 직무 독립적이지 않고 공동 생산물의 성격을 갖습니다. , 어떤 보직은 성질이나 목적 상 다른 보직의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거나 직접적인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경찰조직에서는 정보과에서 첩보한 범죄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수사과에서 수사를 하고, 형사과에서 검거에 들어갑니다. 또한 검거 후 형사과와 수사과의 범행 분석 내용이 민원실과 생활안전과 등의 부서로 전파되어 동일 범죄의 피해를 막고 홍보하는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직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공동 생산을 하는 경우, 직무 간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나 생산과정의 이해 부족 등으로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 발생하는데, 이를 기관 내 조정 비용(coordination cost)라 합니다. 자기 업무에 전문성을 갖춘 근로자가 다른 부서의 업무의 내용도 잘 알고 있다면 조정 비용이 줄어들고, 자신의 부서에서 해야 할 일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Aoki(1986)의 연구에 따르면 1970,80년대 일본에는 광범위한 보직순환이 이루어지는 수평적 구조의 기업이 많았는데 이는 전사적인 품질관리를 바탕으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기업운영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미국기업들은 독립적인 연구원들이 전문분야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독려했고, 부서 간 협력 업무도 적었기에 보직의 순환도 적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결국 이질적인 직렬 혹은 부서끼리의 공동업무가 많이 필요한 조직은 순환보직을 통해 근로자들이 다양한 업무를 익혀 조정 비용을 줄이려는 제도가 발달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더 넓은 관점에서 조정비용과 거래비용이 조직의 구성과 조직 내부의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 것으로는 Alchian&Demsetz(1972)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보비대칭이 존재하는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와 고용주간의 정보 탐색을 위해 순환보직이 사용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조직이 근로자에 대해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근로자를 가장 적합도가 높은 업무에 전문화 시키는 것이 우월 전략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조직은 근로자에 대해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며, 역으로 근로자도 자신의 재능에 대해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Ortega(2001)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조직이 근로자의 적성을 탐색하여 알맞은 자리에 
배치해 최대의 생산성을 얻기 위해 순환보직을 실시한다는 firm-learning theory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논문에서 직무에서 요구되는 비()인적자본(Non-human capital)의 수준, 근로자 개개인의 직무 적합도, 생산성 쇼크(Productivity shock)가 각각 평균이 0인 정규분포를 따르도록 할 경우, ()인적자본의 수준과 근로자 개개인의 직무 적합도의 편차가 클수록, 또한 생산성 쇼크의 편차가 작을수록 순환보직을 사용할 유인이 크단 것을 모델을 통해 증명하였습니다. 또한 Eriksson and Ortega(2006)에서는 Oretega(2001)의 연구 결과를 덴마크의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검증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논문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순환보직을 업무 강도의 균등화를 위해 사용한다는 가설도 실증적으로 검증해 볼만한 가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가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면서 생각해 본 가설인데요, 노동시장에서 일반적으로 근로자의 임금은 근로자의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지만 제도 때문에 근로자의 생산성 혹은 생산량과 관계없이 일정한 임금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무원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공무원은 일반적으로 직급과 호봉에 따라서 거의 비슷한 임금을 받게 됩니다. 물론 같은 직급과 호봉이라도 업무의 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제도적으로 업무강도에 따라 임금을 연동할 수 없다면, 장기적으로는 같은 연봉을 받는 근로자들은 비슷한 업무강도의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직원들이 불평불만이 늘어나거나 혹은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죠. 다만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업무를 기계적으로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순환보직을 통해 단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업무 강도의 차이를 줄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인사팀 직원들과 이야기해 보아도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요, 또 힘든 일을 하면 다음에는 좀 한가한 보직으로 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기관과 기업마다 너무 다양한 특성이 있어 직관적으로는 확실하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데이터를 통해 실증적으로 확인해 볼법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순환보직 제도에 숨겨진 경제학적 원리를 탐구한 여러 연구들과 저의 가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정보비대칭이 존재하는 노동시장에서 효율적인 인적 자원의 배치는 분업과 특화의 이득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의 고려가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효율적인 인적 자원의 배치 문제는 일률적인 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체의 특성과 근로자들의 특성에 따라 근로자들의 경력 이동의 동태적인 움직임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해답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우리의 경제적 직관과 어긋나는 새로운 형태의 인적 배치의 사례가 있다면 사업체와 근로자의 특성, 근로자의 경력 이동의 동태적인 움직임을 고려해 나름대로 그 제도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떠올려본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댓글 3개:

  1.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해주신 가설도 직관적으로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일단 듭니다. 저는 공무원 조직과 특성이 다른 조직, 예컨데 군대나 사기업 같이 성과와 승진이 중요한 곳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반대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대 장교들 사이에는 흔히 승진보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확한 은어는 잘 기억이 안납니다) 장교 본인이 명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쉽고, 장차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으며, 또한 상급자와의 인간관계를 잘 형성할 수 있어서 선호하는 보직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사기업에서도 경영전략실, 기획실, 해외영업실은 상대적으로 공보실, 총무실 보다 선호되곤 합니다. 물론 갓 입사한 직원들의 입사성적에 따라 희망하는 부서에 우선 배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수년 단위의 순환근무를 통해 모든 사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순환보직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일반 관리자(general manager)를 키우기 유리한 시스템이라는 것도 있겠습니다. 대체로 기업에서는 직급이 낮은 사원들은 기능부서에 속하여 특정 업무를 집적으로 수행하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보다 여러 부서를 총괄하여 관리하는 일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특히 사업부형 조직구조에서 두드러지구요. 기업에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단일한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것 못지 않게 다양한 부서의 일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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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밑에 포스팅을 보니 실버쏘온 님이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해주신게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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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꼼꼼하게 '순환보직'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글 같아요! 생각해볼 수 있는 웬만한 지점들은 다 언급해주신 것 같아서 글의 주제에 대해 특별히 보탤 말은 없는 것 같구요ㅎㅎ

    다만 글을 읽다보니까 조금 생각이 확장되서 한 번 상관관계를 알아보고 싶은 내용이 생겼어요! 본문에서 언급하신 공무원 조직도 그렇고, 사기업 중에서도 순환보직을 실시하고 있는 기업들을 보면 위에 TaeHoon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일반 관리자'를 키울 필요성이 높은 직장일수록 순환보직을 실시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이것은 본문에 나와 있었던 '조정비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구요.

    결국 제대로 써먹기 위해선 직원들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기업들일수록 순환 보직을 이용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순환보직을 실시할 필요성이 있는 기업일수록 직원을 교육시키는 데 많은 시간이 들 것이고, 이런 수년의 과정을 모두 거쳐 일반 관리자가 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직원들은 최대한 오랜 시간 기업에 붙들어 놓는 게 기업 입장에서는 좋겠죠. 지금까지의 생각을 따른다면 순환보직을 실시하는 직장은 직원들의 재직 기간이 길 가능성이 높고, 또한 그런 general manager의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재직 초기에는 연봉이 낮을 가능성이 높아보이거든요.

    주변의 사례들을 생각해볼 때 순환보직을 실시하고 있는 공공기관이나 일부 사기업들이 실제로 "연봉은 좀 박하지만 고용안정성은 좋아."라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아서 일단 직관과 부합하는 것 같기는 한데, 실제로 이런 가설이 맞는지 알아보고 싶네요.

    1. 순환보직 실시 여부와 직원들의 근무 기간
    2. 순환보직 실시 여부와 非장기 근속 직원들의 연봉

    혹시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봐서 따로 포스팅하거나 해볼게요. 어쨌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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