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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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위험’은 꼭 나쁜가?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위험 기피라는 용어를 참 많이 듣습니다. 일반인들의 관심을 특히 많이 받는 금융경제학에서는 어떻게 하면 기대수익률을 최대한 올리면서 위험을 낮출 수 있는지가 중요한 이슈이지요. 그러다보면 위험이란 마치 본질적으로 나쁜 것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분배 정의의 문제에 관해 Dworkin, Cohen이나 Roemer와 같은 학자들은 ‘Luck Egalitarianism’을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경제적) 행위를 통해 얻는 결과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 , 그리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결정됩니다. Luck Egalitarian들은 그 중에서 상황과 운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그래서 책임이 있는, 부분만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도록 사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Luck Egalitarian’들이 의 영향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일반적으로 말하는 위험을 줄이는 것은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Luck Egalitarianism에서는 개인이 참여를 선택하는 ‘gambling’과 어쩔 수 없이 닥치는 ‘brute luck’을 구분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자면,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은 기회를 주기 위해 사회적으로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담배의 해로움을 잘 알면서도 자유의지로 줄담배를 피우다 (담배로 인한 고정된 즐거움을 얻는 대가로 폐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도박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폐병에 걸린 환자에게는 굳이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문득 위험이 전혀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학교의 예를 들자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공부를 한 만큼만 시험 점수가 나오는 세상인 것이지요. 과연 그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더 행복할까요? 우리가 이상으로 삼아야 하는 사회는 그러한 사회일까요?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책임을 회피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언제나 누군가는 꼴등이 될텐데 이 학생이 나는 운이 나빴어라고 말할 근거가 줄어드니까요.
 
얼마전 작가 Elizabeth GilbertTED에서 한 작은 강연을 들었는데, 그녀의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한다면 심지어 일등에게도 이는 무거운 부담이 됩니다. 과거 그리스 시대에는 천재성이 신이 인간에게 깃들어서 발휘되는 것이라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천재성이 개인의 속성으로 여겨지면서 창의적 영감이 필요한 사람들이 느끼는 심적 부담감이 커졌다고 Gilbert는 주장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설을 기억하시나요? 인간의 효용함수가 자존감육체적 만족의 두 요소의 함수이고 (u=f(x,y) s.t. x=self respect, y=physical desire) ‘자존감이 우선하는 사전편찬식 선호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자존감이라는 요소를 잘 정의한다면, 이것도 충분히 그럴듯한 설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이유에 능력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와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게 작용한다는 점, 사람들이 종종 신념을 위해 자신의 이익과는 겉으로 보기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고 싶은 욕구가 매우 큰 것이지요. ‘자존감은 사람들이 관측된 결과를 보고 자신의 투입의 사회적 위치를 역으로 추정한 결과에 의존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기서 투입Luck-Egalitarian사회에서는 노력만을,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에서는 능력노력모두를 포함합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예로 다시 돌아간다면, 학생들이 자신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혹은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시험 점수를 보고 얼추 판단을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한 가지 더 가정을 더합니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을 좋게 평가하는경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심리학을 잘 모르지만,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optimism bias에 대해 많이 연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위험을 없애는 것이 오히려 최소사회자의 최대 수혜원칙에 위반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확실성을 줄여 이제는 스스로를 좋게 평가하려해도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위험이 아예 없는 사회보다는, Luck-Egalitarianism이 보장된 사회가 위에서 제가 말한 기준으로는 보다 덜 빡빡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개인이 선택해서 도박을 할 여지는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얻은 결과의 책임을 온전히 지게 된다는 점은 그대로입니다.
 
미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적이 중하위권인 학생들은 시험 기간에 술을 더 많이 마신다고 합니다. 능력은 있는데 단지 술을 마셔서 성적이 나쁠 뿐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위험이 선호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이 덜 다듬어져 모형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그래도 함께 생각해보는 작은 단서가 되면 좋겠습니다. ‘노력’ ‘능력그리고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댓글 7개:

  1. 글을 읽고 문득 올림픽 양궁 시합이 생각났습니다. 양궁에서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워낙 오랫동안 메달을 독식하는 바람에 규칙이 점차 엉성하게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세트제를 활용한다든가(총점이 높더라도 세트 경기에서 지면 패배), 경기 당 쏘는 활 수를 줄이든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운이 작용하는 여지를 넓혀서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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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저도 글쓴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동기부여차원을 주목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성과는 내재적인 능력과 후천적인 노력의 합으로 나타내집니다. 만약 대학 입시 시험이 그 사람의 성과를 적나라하게 밝혀준다면 당연히 내재적인 능력이 앞도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유리할 것입니다. 반대로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어차피 노력을 해도 불합격할 것을 알기에 공부를 잘 하지 않을 것이구요. "나는 해도 안될꺼야" 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러나 운이 작용하여 내재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이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면 어떨까요? 자신의 능력에 자신 없는 사람들도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노력을 투입해서 얻을 기대값이 높아졌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안주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공부할꺼구요. 사회 전체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게되니 바람직할 것입니다. (교육부 장관의 입장에서...ㅋㅋ)

    물론 모든 일이 너무 운에만 좌우된다면 안되겠지만 적정한 정도로 인위적인 불확실성은 남겨두는 게 경쟁을 보다 촉진하기 좋지 않을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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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확실성이 사람들을 노력하게 한다! 재미있는 답글 감사합니다. 모형으로 만들어보일 수도 있을까요?
      '공부'가 공공재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필요한 양보다 사람들이 대체로 공부를 덜 한다고요...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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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회 전체적으로 더 공부를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만약 공부총량이 어떤 정책의 중요한 목적 함수로 쓰인다 가정(?)한다면 저러한 논리도 구성해볼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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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글과 댓글을 보면서 '운도 실력' 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다소 과한 해석일수도 있지만, '노력' 이 커질수록 평균산출물이 커지는 것은 물론, 산출물의 Var도 커질수 있다고 보면 다소 무리한 해석일까요?^^

    예컨대 100명의 도전에서 1명만 커트라인을 통과할수 있는 극악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시험(혹은 경기)이 있다고 칩시다. 만약 이 시험이 정확히 노력과 타고난 재능에만 비례한다면, 잠재적인 100명의 도전자중 실제로 노력해서 경기를 치르는 경쟁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나머지는 해봐도 안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지 않으려 하겠죠.) 하지만 불확실성이 큰 상황, 게다가 노력에 Var이 비례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한 유인동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교시험을 예로 들자면, 시험범위가 비정상적으로 넓은데 일부 부분에서만 시험이 출제된다고 하는 경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을 경우 0점이지만, 노력을 어느정도 기울이게 되면 재수없으면 0점을 받을수도 있지만, 운좋게 커버가능한 단원 위주로 시험문제가 나와서 100점을 받을수도 있는 것이지요. 어떠한 경기나 시험에 따른 보상이 충분한 유인동기를 갖는다면, 노력에 따라 Var이 어느정도 비례할 경우 당해 경쟁의 경쟁률 및 평균노력수준이 증강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운도 실력이라는 얘기는, 노력을 어느정도 해야 결과의 편차도 크게 나와서 운이 따를수도 있다는 얘기로 해석해도 될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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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력과 산출물의 분산의 관계는 어떠한 경향성이 있다기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시험이 객관식일 경우 공부를 안하고 찍을 때의 분산이 공부를 많이 한 때의 분산보다 커질 것 같거든요. 저는 '운도 실력'이라는 말을 분산과는 상관없이 결과의 기대값과 노력, 그리고 결과의 기대값과 직접 관측되지 않는 재능의 관계로만 해석하곤 했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기대값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분산이 커지는 것을 반길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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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공부를 아예 안 한 사람
      2)공부를 딱 반만 한 사람
      3)공부를 아예 다 한 사람

      의 성적 분산을 생각해보면, 3이 제일 작을 것 같긴 한데
      1과 2 중에는 어느 사람이 더 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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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편의상 능력=노력+재능+... 라 정의하고,
    투입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사회를 가정했습니다.

    1)자신의 능력과 타인의 능력을 모두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계측가능
    2)자신의 능력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계측 가능하나 타인의 능력은 계측불가
    3)자신의 능력은 계측불가능하나 타인의 능력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계측가능
    4)자신의 능력과 타인의 능력 모두 계측불가

    의 네가지 경우를 생각해보면,

    1)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참여할 인센티브가 없는게 확실하고
    2)는 반복게임이 아닐 때만 참여할 인센티브가 있고
    3)은 자기가 자기자신을 모르니까 계속 도전해볼 인센티브가 있고
    4)역시 도전할 인센티브가 있어보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계량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현실에서는 계량 못한다고 보는 쪽이기 때문에, 투입한 만큼 결과가 도출되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1등을 했다 해도, 내가 얼마의 투입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므로(시간의 양과 질, 정신상태, 건강상태 등 투입량을 결정하는 요소가 매우 많음)열심히 해야하고, 마찬가지로 이번에 꼴찌를 했다 해도, 내가 투입할 수 있는 투입량이 어디까지이며, 내가 얼마를 투입하고 있는지 사실 모르기 때문에 계속 도전할 유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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