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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0일 토요일

모두가 경제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살아온 지도 어언 3년차. 그동안 대한민국 제일의 경제학부에서 최고의 은사님들께 다방면의 경제학적 접근방식을 배워왔다. 내 짧은 소견에 경제학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비춰져 왔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현란한 수식들, 그리고 그 복잡함 속에 숨어 있는 간단 명료한 직관, 그리고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결론.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의 기틀을 잡은 이후 2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천재들의 헌신으로 쌓아온 드높은 상아탑은 분명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일 것이다.
 
  그런 내 개인적인 감상을 떠나서, 상아탑 바깥으로 나가 경제학 전공자로서 명함을 내밀 때면 늘 무언가 기대에 가득찬 시선을 받기 마련이었다.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 경제학이란 뭐랄까 원피스라도 숨겨둔 보물 지도 같아 보이는 모양이다. 지난 몇 년 간 세상 사람들은 경제 공부에 열광해 왔다. 몇 년 전까지 베스트셀러 서가에서 내려올 줄 모르던 ‘지금 당장 경제공부 시작하라’ 라는 책을 굳이 예로 들 것도 없이 그정도는 누구나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는 트랜드였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도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어린 마음에 경제학이 갖고 있는 신비스런 ‘아우라’에 이끌려 경제학을 전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때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경제학을 공부하면 세상의 진리에 어느정도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의 부(富)가 움직이는 법칙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물론 이 말도 꽤나 돌려 말한 셈이다) 너무 작은 표본이긴 하지만 내가 살면서 만난 가장 많은 ‘경제학 무지자’집단, 즉, 군대에 있을 때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나를 보며 경제학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자산, 혹은 어느 주식에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냐고 물어보곤 했다. 농담 조로 나중에 내 돈 좀 맡아서 크게 불려달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사실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인지하는 경제학의 범위는 그정도일 것이다. 경제 → 돈 잘버는 기술 → 자산 투자, 이정도로 요약하면 적당할까?
 
  물론 내 공부가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사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전공자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럴 때마다 ‘돈버는 게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으니 그런 거 하실 때 조심하세요...’라고 기어들어가듯 조심스레 말하곤 했던 것이다. 스스로 인정하기에 조금 슬프긴 하지만, 사실 그정도는 경제학의 수요 공급 곡선도 잘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마 그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으레 ‘에이, 그래 너혼자 잘먹고 잘살아라!’ 라고 말했던 걸 보면 말이다.
 
  한때 경제공부에 미쳤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던 심정이 나와 얼마나 다를까? 물론 읽은 책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시절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라는 책도 함께 있었다) 제대로 된 경제 서적으로 경제학의 기초를 익힌 사람들이라면 결국 나와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제학을 공부해서 애초에 기대했던 큰 수확을 거둬들일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고 본다. 첫째, 경제학의 달인이 되어 노벨상을 수상한다. 둘째, 그럴싸한 경제학 서적을 써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셋째, 경제학을 잘못 이해하고 어설프게 들어간 투자가 ‘우연히’ 대박을 내 벼락부자가 된다. 요약하자면 ‘천재, 사기, 천운’, 셋 중 하나라고 할까? 하지만 내게 경제학으로 잘사는 법을 묻는 비전공자들에게 ‘엄청 똑똑하거나, 말을 엄청 잘하거나, 운이 엄청 좋으면 되요~’라고 얘기하면 그들이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일 지는 조금 의문이다.
 
  사실 그래도 경제학을 공부하고 나면 부가 어디로 모이는지 정도는 어렴풋이나마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경제학이 이론을 전개하는 대부분의 시장인 ‘완전경쟁시장’에선 특정 한 자산의 수익률 널뛰기가 단기적으로 랜덤워크를 따른다. 영원한 고수익은 없고, 영원한 저수익도 없다. 그리고 그 수익률의 변동은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들어간다. 하지만 완전경쟁시장이 아닌 곳에선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완전경쟁시장의 가정을 깨뜨리는 3대 조건, 정보의 비대칭성, 독과점, 외부효과가 존재하는 시장에선 조금은 직관적인 예측이 가능해진다. 정보 우위에 있는 경제 주체가 더 많은 이득을 가져갈 확률이 높고, 독과점 하에서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으며, 외부효과가 존재할 때 경제 법칙에 어긋나는 결과를 예상해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특정 자산의 수익률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우습게도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가정들을 완화시킬 때 경제학이 비로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학문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부문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어설픈 조언은 하지 않는다. 누구 물 한번 먹어보라고 일부러 하는 말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 많은 세월을 살아보진 못 했지만 그래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을 들어보자면 세상 사람들이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 즈음에는 대부분 이미 상황이 종료돼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까? 정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가에는 이미 현대·기아차 그룹의 내수시장 독점력이 반영돼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FTA 등의 시장 개방으로 인해 내수 시장에서 독점력이 약화되는 것과 반대로 미국·유럽 등지에서 수출경쟁력을 얻게 되는 사실도 반영돼 있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수출경기가 부진한 것도 반영돼 있으며, 연기금 등의 거대 기관 투자자의 투자 흐름으로 인한 기업 가치 변동과 상관 없는 주가 변동도 반영돼 있다. 그 외에도 일반 투자자에게 공개되지 않은 고급 정보들도 소수의 큰 손들에 의해 은연중에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정량화 하기 어려운 각종 요인들이 시장에서 수많은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의해 자연스레 균형을 찾아간다. 수많은 전문 투자자들이 나름대로의 탁월한 방법을 이용하여 각종 요소들을 계량화하고 그를 통해 주가의 추이를 예상해보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할수록 주가의 움직임은 더욱 더 첩첩산중으로 빠져들 뿐이다.
 
  이야기가 잠깐 산으로 갔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현대·기아차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글쎄, 잘 모르겠다!’라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는 건 중간에 복잡한 설명 과정을 생략하면 전공자나 비전공자나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차이점을 들자면 아마도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감히 투자할 엄두를 못 낼 것이고 비경제학을 모르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투자할 용기를 낼 수 있으리란 전망 정도랄까?
 
  잠깐, 그럼 경제학을 공부하는 게 아무 짝에 쓸모 없다는 결론으로 흘러가는 건가? 내 개인적인 소견으론, 적어도 일반인 수준에선 그렇다. 두 가지만 알면 된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묻는다면 첫째,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이 얽혀있어 어떻게 될지 잘 몰라요, 라고 답한다. 둘째, 그냥 냅두면 시장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해결할 겁니다, 라고 답한다. 이렇게만 답해도 경제학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 여기서 강세는 첫째 답변이 아니라 둘째 답변에 있다. ‘Let it be’. 경제학을 아무리 연구하고 탐구해도 이 이상의 진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물론 그 답을 내릴 때까지 중간 과정이 생략돼 있긴 하지만 결론은 마찬가지니 읽어봐야 머리만 아픈 복잡한 일들은 몰라도 상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학을 공부하려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재산을 유지하고 증식시키는 데 경제학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가정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 학문적인 흥미로, 상식을 쌓기 위해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이 없다. 다만, 경제학이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물론 경제학을 공부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조금 더 넓어질 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새로운 부동산 정책에 의해 집값이 폭락하고, 남유럽에 재정위기가 터지고 미국 재정 적자가 심화될 때 그에 대해서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보다는 할 말이 더 많을 것은 분명하다. 또 그 사태의 전망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주관적 확률 분포를 가지게 될 것이고, 그에 걸맞게 자신의 자산을 더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확률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일부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자산 규모라는 건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다. 자산 관리보다는 차라리 부채 관리가 더 의미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니 경제학이 설령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마법의 학문이라 할지라도 투입 대비 산출이 떨어질 수 있다. 하물며 경제학의 실상이 그게 아니라면 오죽하겠는가. 그런 복잡한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겨버리고 (전문가는 위험 관리 측면에서는 그나마 좀 낫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차라리 경제학을 공부할 그 시간에 파트 타임으로 일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들이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

2013년 3월 14일 목요일

책 추천-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특별한 관점을 담아 현실을 분석하거나, 어떤 현상에 대한 최신 이론들을 소개하는 그런 글이 아닙니다. 편하게 오며가며 부담없이 전철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쉬운 책 한권을 추천하는 그런 글입니다. 빡빡하게 진행되는 학기 초다보니 부담없이 읽어주시기를 바라며.. 다음 포스팅부터는 '알맹이가 있는' academic(?)한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대학원 진학 시 필요하기 때문에 이번 달과 다음 달에 텝스 시험을 신청해 놓았고,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텝스 공부를 시작하고자 텝스 문제집 몇 권을 샀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입학하던 8년 전,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일괄적으로 실시하는 텝스 시험을 쳐봤던 것이 유일한 텝스 응시 경험입니다. 그 이후에는 텝스 문제를 구경해 본 적도 없었고, 따라서 구체적으로 문제 유형이 어떻게 되는지도 잘 모르고 다만 토익 점수에 비해 텝스 점수는 보통 100점 정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만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집을 펴 보니 처음에 "진단평가"라는 제목의 챕터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현재 영어실력을 진단해볼 수 있는 일종의 모의 mini test같은 챕터였습니다. 일단 듣기부터 시작했습니다. 문제도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 긴 지문의 경우 두번씩 들려주느니라 오히려 문제를 풀기가 수월했습니다. 다만 꽤 헷갈리게 만드는 보기들이 있어서 몇 문제 틀리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생각보다 꽤 평이하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문제의 '문법 part'가 시작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따로 영문법을 의식하고 공부해봤던 적이 없는지라 생각보다 문법 파트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저는 충격적으로 스무개의 문법 문제 중 무려 열개를 틀리고 말았습니다. 반타작을 한 셈이었죠. 그런데 제가 틀린 문법 문제중에는 정말 쉬운 문제인데 제가 생각을 잘 못해서 틀린 문제가 두 문제 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 저는 그 "쉽지만 틀렸던" 두 문제를 맞았다고 채점하고 스무개의 문법문제중에 열두개 맞았다고 문제집에 적어놓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이런 행위를 합리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문제는 내가 몰라서 틀린게 아니야. 지금 시간이 촉박하고 피곤한 가운데 문제를 빨리 풀다가 실수한거야. 그러니까 이 문제에는 X표시를 할 필요가 없어!"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공부하면서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저의 이러한 행동은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텝스 문제집을 펴보고 제가 몇 점 맞았는지 감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 텝스 시험도 아니고 그냥 도서관에서 30분 정도 시간 내서 풀어본 텝스 문제집의 점수가 제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그 텝스 문제집에서 몇 개 틀리는지를 두고 친구와 내기를 한 것도 아닙니다. 한 마디로 저는 제가 문제집에서 틀린 두 문제를 은근 슬쩍 맞았다고 표시할 이익이 거의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199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시카고대학의 노동경제학자 베커의 부정행위에 대한 이론 SMORC(Simple Model of Rational Crime)를 생각해봅시다. 실제로 내용은 굉장히 복잡합니다만 SMORC의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결국 "인간은 부정행위의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여 부정행위의 편익이 더 크다고 생각하면 부정행위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정직성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다른 모든 결정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비용편익분석만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지요. 다양한 실험 및 관찰을 통해 그것을 입증하고 논문으로 만드는 것이 어려워서 그렇지 그 정도 발상은 경제원론 수업만 들은 신입생도 사실 할 수 있는 수준이죠. 

다시 문제로 돌아와 봅시다. 제가 틀린 문제들 중 두 문제를 맞았다고 허위로 기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억지로 몇가지를 생각해낼 수 있었지만,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것은 한가지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아 그래도 스무개 중에 열개나 틀린 것은 좀 심했다. 그래도 열두개쯤은 맞아야 내 마음이 조금은 더 안정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일종의 자기 기만 효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제가 설령 스무 문제 중에 열두개를 맞았다고 가정한다하더라도, 그것 역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모여있다는 학교의 졸업반 학생에게는 마찬가지로 상당히 부끄러운 점수입니다. 따라서 열개 맞은 것을 열두개 맞은 것으로 고치고 제가 원래 열두개 맞았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믿는다고 하더라도 저의 효용에는 거의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정도의 점수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마 스무 문제 중에 열일곱개 정도 맞췄으면 조금 아쉽지만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자기 기만을 통해 유의미한 자기 위안을 얻으려면 적어도 일곱개 정도는 더 맞았다고 채점을 하는 것이 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이렇게 소심하고 쪼잔하게 겨우 두개만 더 맞았다고 조작을 한 것일까요?

또 다르게 생각해봅시다. 제가 열일곱개를 원래 맞췄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저는 이러한 부정채점을 하지 않았을까요? 텝스보다 훨씬 쉽고 저에게 익숙한 토익시험을 가정해봅니다. 토익은 대학교 다니는 동안 적어도 1년에 한번씩은 꾸준히 시험을 쳐왔고, 문제의 유형도 저에게 익숙할 뿐더러 텝스보다 훨씬 쉬운 시험입니다. 저는 거의 항상 토익은 950점 정도는 꾸준히 맞아왔습니다. 보통 문제집을 풀면 스무 문제에서 세문제 이상 틀리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집이 실제 시험보다 어려운 것을 감안하더라도 보통 스무 문제를 풀면 한두문제 정도 틀리더라구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스무 문제 중에 한두개 정도 틀릴 때라 하더라도 제가 텝스 문법문제를 채점할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부정채점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누가 감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요. 비단 영어시험뿐만이 아니라, 교과서 "개념-check" 문제같은 것들을 풀 때도 이렇게 아주 작은 사소한 부정행위를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만약 자기 기만을 통해 안도감과 자신감을 얻는 것이 기대되는 편익이라고 할 때, 아무도 저를 감시하지 않고 저의 부정행위로 인해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도 않는 이러한 상황이라면, 스무문제를 다 맞았다고 허위로 채점하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게 저 자신에게는 가장 큰 효용을 주는 행위일것입니다. 이러한 SMORC의 관점에서 판단하자면, 열문제 틀린 것을 여덟문제 틀렸다고 조작하는 저의 행동은 효용극대화랑은 거리가 먼 행위일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비이성적인, 그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최근 출판된 베스트셀러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은 '퍼지요인'이라는 것을 그 이유로 제시합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두가지의 동기부여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정직하고 존경받을 만한 인물로 봐주기를 원하고, 자기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자기가 도덕적인 사람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를 '자아 동기부여(ego motivation)'이라 합니다. 한편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얻고자 하는 마음도 있는데 이를 '재정적 동기부여(financial motivation)'이라 합니다. 이 두 동기부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서 어느 정도 이득도 챙기면서 도덕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부정행위를 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성향이라는 게 이 책의 주장입니다. 퍼지요인에 따르면, 저는 스스로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허용되는 수준의 작은 부정행위로 이득을 얻은 셈이지요.

이 책은 어떠한 상황에서 어떤 motivation이 더 강하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사람들은 왜 부정행위를 하는지, 그리고 '왜 틀린 두 문제를 맞았다고 채점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부정행위를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하는지, 이런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제학의 틀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뇌과학의 틀을 가지고 와서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식 밖의 경제학]과 [경제 심리학]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댄 애리얼리가 쓴 책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알맹이 없이 첫번째 포스팅을 마무리짓기는 좀 찝찝하니 책 안에 있는 내용 중 한 가지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밑에 있는 그림을 봅시다.

 상당히 재미있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직관이나 SMORC의 관점과는 정반대로 '우리가 부정행위를 할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의 크기'나 '그 부정행위가 발각될 가능성'은 현저하게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거의 부정행위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영향이 없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내용을 다양한 실험 결과를 통해 귀납적으로 논증하고 있습니다. 물론 귀납논리의 한계 상 그것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인간의 심리와 사회 현상에 대해 몇 번의 실험 및 몇백. 몇천 명 수준의 sample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등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한 통찰이 상당히 설득력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심리학적 방법론이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도 어느덧 20년도 넘었고 행동경제학은 더 이상 '새로운 분야'라고 하기에는 우리 경제학도들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주제이기는 합니다만, 그것을 잘 적용하여 연구에 이용하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P.S 1 
대부분의 거대한 부정은 특별히 예외적으로 비도덕적인 소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 각각의 아주 사소한 부정행위들이 뭉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은 나름대로 책 말미에 그에 대한 해결방안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리차드 탈러의 nudge와 상당히 유사해서, 지속적으로 도덕성을 상기시키고 부정행위를 하는 방법을 조금 불편하게 만들고 거기에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감시의 강도에는 별로 영향을 받지 않지만 감시의 유무에는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더군요.) 행동경제학자가 쓴 책이라 당연히 그런 해결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겠지만, 실제로도 그 성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해주세요! 쉽게 쓰여져서 서너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