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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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2일 일요일

지방대 채용할당제, 학벌 블라인드 채용제는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지난 17일 제주대에서의 간담회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비명문대 출신들의 구직난 해소를 위해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대해 지방대 졸업자 채용할당제 및 학력·학벌 블라인드 채용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채용할당제는 말 그대로 채용하는 신규직원 중 일정분을 지방대 졸업생들에게 할당하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학력·학벌 블라인드 채용제는 입사서류에 출신학교를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관련기사: 문재인, "지방대생 위해 학력 블라인드 실시할 것")

지방대 졸업자 채용할당이나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면 물론 지방대 출신들의 구직난은 개선되겠지만, 반대로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의 구직난은 심화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는 피해를 주고, 누구에게는 이득을 주는 정책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책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안된 두 정책 중 어떤 것이 좀 더 나은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먼저 할당제를 살펴봅시다. 이 정책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아마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우선 이 정책이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이 정책이 효율성을 개선시키려면 아마도 할당제를 통해 뽑히게 된 지방대 졸업자들의 생산성(일하는 능력)이 할당제를 통해 못 뽑히게 된 서울지역 대학 졸업자들의 생산성보다 높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기 위해서는, 할당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고용주가 기대되는 생산성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인해서도 지방대학 출신들을 뽑기를 꺼려하고 있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기대 생산성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채용을 한다면,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황에서의 채용이 할당제라는 새로운 제약조건이 주어졌을 때의 채용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가져다 줄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고용주가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을 선호하는 이유가 오로지 일을 더 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면 이 정책은 효율성을 개선하지 못할 것이고, 반면에 그렇지 않다면 효율성을 개선할 여지가 있습니다.

저는 아마 후자가 사실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직원들의 대부분이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일 것이므로, 아무래도 예상되는 생산성이 동일하더라도 자기들과 유사한 부류인 사람을 뽑고 싶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을 때 일종의 시너지로 인한 생산성의 추가 향상도 있을 것이나, 그러한 생산성의 향상분 이상으로 차별이 있지 않을까 추측만 해 봅니다. 만약 제 추측이 맞다면, 그리고 지방대 졸업생에 대한 할당 비율이 지나치게 크지 않다면 (지나치게 크다면 오히려 생산성이 더 높은 서울지역 졸업생들이 뽑히지 못하므로), 할당제가 그 조직의 효율성을 늘릴 것입니다.

또한 할당제가 형평성을 개선시키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고용주가 지방대 출신들을 꺼리는 이유가 생산성만의 차이에 의해서라면 이를 차별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입니다. 수능 성적이 낮아서 대학에 못 간 것을 두고 차별이라고 할 수 없듯이요. 반면 고용주가 생산성뿐만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해서 지방대 출신의 채용을 꺼려한다면 이는 지방대 출신에 대한 차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사실일 경우, 할당제가 차별을 없애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블라인드 채용은 어떨까요? 우선 이 제도가 형평성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지 생각해 봅시다.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생산성 외의 다른 이유로 인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문재인 고문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입사원 선발 때 서류전형에서 지방대학 출신 또는 비명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원자를 배제하면 실력과 상관없이 학력ㆍ학벌 차별이 생기고 모순된 문제점이 파생한다… KBS의 경우 정연주 전 사장이 실제 실행한 블라인드 채용 이후 지방대 출신이 30%로 늘어났다 지방대 출신들도 똑같은 기회를 주면 대등한 경쟁이 가능하다.”

정말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것이 지방대생과 비지방대생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고, "대등한 경쟁"을 시키는 것인가요? 오히려 심각한 역차별을 하는 것이겠죠. 예를 들어 채용이 학벌과 토익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때 한 학생은 서울대 출신에 토익이 900점이고, 한 학생은 비명문대 출신에 토익이 910점입니다. 블라인드 채용이 이루어진다면 후자의 학생이 뽑힐 것입니다. 이게 바람직한가요? 블라인드 채용은 학벌에 상대적인 강점이 있는 학생에게 그 장점을 완전하게 앗아가는 제도입니다

더욱더 심각한 역차별 현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학교마다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필요한 실력의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명문대에서 3.4의 학점을 얻는 것은 비명문대에서 3.6를 얻는 것보다 힘들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되면 후자의 학생이 선택되겠죠.

효율성 향상 역시 기대하기 힘듭니다. 대학 졸업자들의 기대 생산성을 비교하는 데에 학벌 및 학점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비유하자면, 대학 입시에서 언수외를 잘하는 학생이 지나치게 선호받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 갑자기 정부가 모든 대학들에게 언수외를 무시하고 탐구영역 성적으로만 학생들을 뽑게끔 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 해 시험치는 모든 학생들은 언수외의 중요성을 몇 년 전부터 인지하고 뼈빠지게 공부해 왔는데 말이죠.

정리하면, 전 블라인드 채용제는 정말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채용할당제의 경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나, 할당량이 지나치게 크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심각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19개:

  1. 블라인드 채용을 하게 된다면, 대학교 학점을 아예 보지 않아야 공평한 것이겠죠 -_- 절대적으로 동감합니다. 대학교 간판을 보지 않는다면 전부 필기시험이나 면접시험으로 채용하는게 공평하겠네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교수님 말씀이 생각나네요. 대입에서 기본적으로 보던 많은 요소를 배제하고 뽑다 보니, 실력이 있는 학생이 붙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확실한 Proxy 인 내신이 높은 학생만 뽑게 된다고 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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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학력은 대졸/고졸 등에 쓰이는 말이니, 본문 중 "좋은 학력"이라는 말은 "좋은 학벌"로 고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블라인드 채용제의 초점은 학벌이 평가요소로 고려될 수 없다는 데 있죠. 학벌로써 무엇을 평가하는 건가요? 아니, 학벌이라는 게 어떤 '능력'을 대표해줄 수 있나요? 학벌은 (원칙대로라면) '수학학습능력'에 따라 결정됩니다. 기업에서 채용할 때 수학학습능력을 보고서 뽑나요? 오히려 수학학습능력이 높으면 직무능력도 높을 것이다는 가정이 있었던 것이죠. 핵심은 직무능력이나 적응력 등이겠죠. 만약 직무능력과 수학학습능력의 연관관계가 엄격하게 증명된다면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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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일 수학학습능력과 직무능력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면, 유능한 직원을 채용할수록 이익인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왜 학벌을 보고 뽑았던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통제된 '실험'이 불가능한 사회적 현상에서 상관관계가 엄격하게 증명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벌은 매우 불완전한 지표이지만, 관찰 가능한 다른 지표들보다는 낫기 때문에 차악으로서 고려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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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학벌이라는 건 결국 '얼마나 고등학교 때 사회가 요구하는 학습 능력을 충실히 길렀느냐'는 걸 반영하는 척도겠죠. 원칙적으로는 교과과정을 잘 따라가서 내신관리도 잘 해야 하고 수능도 잘 쳐야 하고 논술도 잘 봐야 소위 명문 대학에 들어가 좋은 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거니까. 지금까지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에 있어 '학벌'이라는 요소를 중요한 고려 요소로 고려해 왔다면, 그건 경험적으로 '좋은 학벌을 가진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많을 수록 회사에 이익'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A라는 대학 출신들을 뽑아보니 일도 잘하고 회사생활에 적응도 더 잘하더라...는 평가가 많다면 그 대학 출신들을 더 선호하겠죠. 좀 더 밀어붙여본다면, 고등학교 때 사회에서 요구하는 교육을 잘 받아 대학에 들어간 이들을 뽑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도 더 이익이더라는 뜻이라 봅니다. (사실 대학에서 4년 동안 배우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일 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안된다면, 더더욱 위의 얘기가 유의미하겠죠.)

      직무능력이나 적응력을 드셨는데 그럼 기업 입장에서 신입사원 채용시 무엇으로 그것들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일단 생각나는건 어학성적, 자격증, (남자의 경우) 군 복무 여부, 인턴 경력 등등이 있겠는데 이들도 중요한 요소지만 이것들이 '학벌'보다 더 기업 입장에서 생산성을 잘 측정해 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몇몇 분야는 있을겁니다. 사업 분야에 따라 높은 수준의 외국어나 전공 지식을 요구하는 업무들이 있으니까. 그런 분야에서는 학벌보다 다른 요소에 더 높은 가중치를 줘 신입사원을 뽑겠지요.)

      요컨대 제 생각으로는, 기업에서 신입사원 채용시 학벌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 왔다면 그건 '수학학습능력이 높으면 직무능력도 높을 것이다는 가정' 때문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수학학습능력이 높았던 애를 뽑으니 기업 입장에서 부려먹기도 좋더라는 경험' 때문일 거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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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Choiecon : 그게 가정(가설)이라는 겁니다. 결국엔 증명이 안 된 거잖아요? 증명이 되었다면 그건 정리겠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학벌에 따른 채용에는 '수학학습능력과 직무능력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라는 가정이 있다는 것이죠.
      1. 그렇다면 이 가정이 증명되어야겠죠. 최소한 그런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증명의 시도는 커녕 대충 지금껏 그래왔고 그게 나름대로 효과적이었다고 얼버무리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2. 말씀하신 것처럼 '경험적으로 그렇더라'라는 주장이 유의미하고 제대로 작동하려면('경험적으로 그렇더라'라는 건 솔직히 실증적인 경험 연구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요) '수학학습능력과 직무능력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명제여야 하겠죠.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보인다는 게 문제죠(헤게모니라는 건 지배에 대한 피지배자의 동의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비명문대 출신들의 학벌 비판을 단순하게 출신성분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3. 현대(근대)사회는 매우 복잡한 사회입니다. 복잡성을 감축하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가 (충분히 복잡한) 이론입니다. 미국에서 사회과학이 어떤 목적으로 태동했겠습니까? 학벌을 단순하게 경험적으로 그래왔다고 말하는 건 정말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더 심하게 말해 그건 단순하게 억압이라고 말하고 싶고, 또 사회적인 퇴보라고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리에게 주어진 이론이라는 수단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지는 못할 망정, 상식에 안주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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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 가장 먼저, '학계의 해당 주제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분명 노동경제학계에서 많이 다뤄졌을만한 주제인데 아직까지 유의미한 연구결과가 없는건지 있는데 제가 모르는건지. 만약 그런 시도조차 없다면 그건 학계의 무능을 탓해도 할 말 없겠군요.

      2. 여기 블로그의 댓글에서 저는 어떤 Theorem을 대고 그걸 proof 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이 블로그의 목적은 여러 경제현상들에 대해 이러이러한 설명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각자의 의견(추측)을 서로 나눠보는데 있으니까요. '경험적으로 그렇지 않을까'라는 말은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그게 설득력 있지 않을까 하는 제 추측일 뿐입니다. 제게 지금 그걸 증명해 낼만한 데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여기서 실증적으로 증명을 해야 할 의무는 없겠죠. 그게 무책임하다 내지 결국 기존 학문체계 안에서 상식에 순응해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정당화라고 하신다면 전 더 할 말이 없는데,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은 아닌 듯 합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실증적인 문제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데이터 없이 지금 이런 논의를 하는 것에 있어 '정리'와 '증명'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결국 각자가 가진 '가설'에 대해 이러이러한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없어 보인다를 말할 수 있는 정도겠죠. 만약 제 의견에 대해 의견이 다르시다면 '그건 증명이 안되었으니 가설일 뿐이다'라고 비판하는게 아니라 '그 가설은 이러이러한 면에서 타당하지 않다'라고 비판하시는게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걸 별다른 근거 없이 '억압'이며 '사회적 퇴보'라고 비난하신다면 상당히 억울할 뿐 아니라 토론에 있어 무례하기도 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제가 그래서 '기업이 신입사원을 학벌로 뽑는 것이 정당하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억압이겠지만, 저는 존재하는 현상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가설을 제시했을 뿐인데 그걸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건 가설일 뿐이며 상식에 안주한 억압이요 사회적 퇴보라고 비난하는 것이 정당합니까?)

      3.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말씀의 근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어떤 점에서 실상은 그렇지 않아보이는지. 제가 보기에는 '수학학습능력과 직무능력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가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다고 생각하실 뿐더러, 이 가정에 대해서도 동의하시지 않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가정'에 대한 님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증명이 된 정리나 명제를 제시하신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4. 제 두번째 댓글의 질문에 대한 답도 부탁드리죠. 학벌(그리고 학점)이란 요소를 뺀다면 신규 노동자 채용시 '직무능력'과 '적응력'을 기업 입장에서 주된 기준으로 삼을 때, 이것들을 무엇으로 측정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지

      ps
      그리고 이 댓글에서 헤게모니와 비명문대의 출신성분 이야기라든지 (복잡한 이론에 기반한) 미국에서의 사회과학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왜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야긴지는 알겠는데 영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기서 지금 경제학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으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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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 학계의 상황을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 의도도 아닐뿐더러 제 능력 바깥입니다. 학벌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주제인데, 이를 경험 상 그래왔다고 옹호하게 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자인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에서의 논의가 원천 차단됨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사회라고 언급한 것은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공적으로 특별하게 논의가 오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2. 직접 증명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가설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논리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학벌을 결정짓는 '수학학습능력'과 채용에서 기준이 되어야 할 '직무능력' 간에는 논리적인 연결관계가 있지는 않다는 게 저의 요지였습니다. 그 관계는 상관관계로서 밝혀져야 하겠죠. 그런데도 경험적으로 그래왔다는 말로써 학벌을 옹호한다면 그건 설득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그래왔다는 말은 반대의견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구요. (나의, 또는 우리의) 경험 상 그렇다고 말씀하시면, 저 또한 (저의, 또는 제 주위의) 경험 상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르게 할 말이 없습니다.

      3. 헤게모니 얘기를 한 건, 비명문대 출신들이 학벌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학벌과 관련된 사회적 합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지금까지 채용이 그런 식으로 이뤄져온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건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아보인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4. 적응력은 단순한 예시였음을 말씀드립니다. 전 이 분야에 그리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은 사람으로서, 단지 이 포스팅을 보고 제 의견을 개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채용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라 블라인드 채용제에 대한 단순한 우려인 것으로 보입니다(저는 블라인드 채용제에 대한 우려의 근거로서 제시된 것에 문제제기한 것일 뿐입니다). 본문에서 다루지도 않은 내용을 능력 밖이기도 한, 대안 제시를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서로 중요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학벌과 관련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필요가 일단 제기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반면, 본문이나 Choiecon님께서는 그런 필요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본문의 우려나 Choiecon님께서 대안을 요구하시는 것도 마땅한 대안도 없고, 지금껏 적당히 작동해왔고 나름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니 지속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우선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는 일단 사회적으로 재논의할 필요성이 일단 제기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있고(헤게모니 이야기는 이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흔들리고 있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면 새롭게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제 위에서 경험 상 그래왔다는 말은 논의를 원천 차단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벌은 그렇다 하지만 채용 문제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채용은 전적으로 기업 내부 문제이고, 이게 직접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는 사실 별로 없습니다(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기업이 굉장히 비합리적인 채용 기준을 채택하고 있어서 시민의 노동할 권리/의무를 상당히 침해한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요).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는 우수 인적 자원이 희소자원이겠지만, 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희소자원이겠습니다. 그리고 우수 인적 자원 양성의 책임이 상당부분 국가에 있는 것처럼, 정책 주체로서 국가는 또한 일자리 창출의 책임도 상당부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시민은 (국가를 경유하여) 기업에 채용 절차를 투명하게 할 것을 어느 정도 요구할 수 있겠죠. 블라인드 채용제는 이런 맥락에서 요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벌을 채용 기준에 넣는 게 왜 투명한 게 아니냐는 물음에는, 어떤 기업도 (특수목적 대학을 제외하고는) 어느 학교 출신 우대함 등의 기준이 공개적인 채용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는, 또는 내부적으로는 그런 기준이 있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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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어투가 격했다면 사과드립니다. 특정 대상을 목적으로 할 말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입장 차이가 확인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더이상 댓글을 남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댓글은 Choiecon님에 대한 응답입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제 댓글에 응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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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필진 중 한명으로서, 이렇게 관심 가져주시고 또 본인의 생각을 성의껏 밝혀주신 점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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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김우석 님, 글쓴이입니다. 댓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학력' '학벌' 혼동한 부분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김우석님의 지적에 대한 제 생각 몇 가지를 적어 보겠습니다.

      1. 학벌로써 무엇을 평가하는 건가?
      물론 수학학습능력과 큰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학학습능력은 또 고등학교 때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아 왔는지, 지적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등과 큰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업들이 이것이 직무능력과 상관관계가 크다고 '가정'(김우석님의 표현을 빌리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학벌과 직무능력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증명된 바가 없다면, 학벌 블라인드 채용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벌과 직무능력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증명된 바도 없지만, 반대로 상관관계가 '없다고' 증명된 바도 없습니다. 더욱이 학벌로 인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증명된 바도 없습니다.

      그러면 원점이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제 생각엔 아닙니다. 학벌 블라인드 채용은 기업의 자유를 제약하는 정책입니다. 자유의 제약이 정당화되려면 좋은 이유가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증명의 책임은 블라인드 채용을 주장하는 쪽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3. '경험적으로 그러하다'는 무의미한 논증 방식인가?

      적어도 이 경우에 있어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귀류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학벌이 실제로 직무능력과 관련이 없고, 지금 학벌이 좋은 지원자가 선호를 받는 이유는 직무능력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파악한 선지적인 경영자가 존재한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이 경영자는 학벌이 가장 안 좋은 사람들만 채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장은 그렇게 평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벌이 안좋은 사람들이 낮은 임금으로 고용이 가능하기 때문이겠지요. 반면에 직무능력은 동일하기 때문에, 이 경영자의 회사는 성공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기존의 회사들은 도태되겠죠.

      하지만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러한 경향성이 관측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4. 학벌과 직무능력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 바가 실제로 없나?

      저도 관련된 연구를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학력과 임금의 인과관계(상관관계가 아닌)는 경제학에서 수십년동안 연구가 진행되어 왔고, 미국의 경우 1년의 추가적인 교육이 임금을 8%정도 늘리는 것으로 학계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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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본문에 대한 의견을 적자면, 저도 MamboTango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쿼터제는 MamboTango님 말씀대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데
    (실제로 분야에 따라 해당 지역 출신 대학에 대해 쿼터 또는 가산점이 존재하는 곳도 있다고 알고 있고.)
    블라인드 채용은 정말 위험해 보이는군요.

    굳이 문재인 씨 의견대로 따라가 보자면, '학벌'을 평가요소로 삼아 공공기관/공기업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니 학벌은 빼고 다른 평가요소들로 신입을 채용하자는 것 같은데,

    1. 만약 '학벌'이라는 기준이 신규 채용자의 생산성을 현재까지 비교적 정확히 반영해 왔다면, 이를 무시한 새로운 방식의 신규 채용은 공공기관/공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손해로 돌아감.

    2. 만약 '학벌'이라는 기준이 공정하지도 못할 뿐더러 신규 채용자의 생산성을 정확히 반영해 오지 못했다면, 문재인 씨의 공약이 설득력 있을 수 있겠죠. 근데 학벌을 가리고 '블라인드'로 채용을 하려면 다른 어떤 '공정'하면서도 노동자의 생산성을 비교적 잘 반영하는 '효율적'인 채용 기준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MamboTango님의 말씀대로 학벌에 대한 블라인드를 시행하게 되면 '학점'도 블라인드 처리해야 할텐데요, 그럼 무엇이 신입직원 채용의 주된 기준이 되어야 할까요. 설마 지원자들 전부 유급 인턴이라도 시켜서 업무 능력을 재 볼 생각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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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lyingbunny//각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집단이 이미 특정 학교 출신들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우석 님 말씀대로 "기업이 인력을 채용하는 기준이 투명해야하는가?" 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또 한가지는,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 출신학교와 토익점수 중 어느것이 좋은 인재를 뽑는 데 효과적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만약 출신학교가 토익점수보다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면, 블라인드 채용제도는 구직자와 고용주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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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우선 게시글 및 댓글들 잘 읽었습니다. 몇가지 생각들 덧붙입니다.
    Politically incorrect하지만, 글자수를 줄이기 위해서 "학벌이 좋은 사람=명문대생", "학벌이 좋지 않은 사람=비명문대생" 으로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1. 국내외 학술지에서 20년 이상 축적된 연구결과들
    - 직무수행능력을 가장 잘 예측하는 지표로서는 IQ와 성실성(Five Factor Model 중 conscientiousness)이 있다.
    - IQ와 성실성은 SAT 점수와 양의 관계가 있다.
    = 정리하면, IQ와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SAT에서 고득점을 할 확률이 높고, SAT 고득점은 좋은 학벌로 이어지기에, 명문대생은 낮은 사람보다 IQ와 성실성이 더 높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또한, IQ와 성실성은 직무수행능력과 양의 관계를 갖기에, 명문대생은 직무수행능력이 높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2. 문제는, 이것은 평균적인 경향이라는 점이다. 하루의 수능으로 대학이 결정되는 특성으로 인해, 비명문대생 중에서도 명문대생보다 IQ와 성실성이 높은 학생이 있을 수 있다. 만약, 학벌이 IQ와 성실성을 잘 예측하고, IQ와 성실성이 직무수행능력을 잘 예측한다고, 학벌로 인재채용을 한다면, 평균적으로는 성공적일 수 있으다. 하지만 비명문대생은 높은 IQ와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채용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3. 이러한, positive outlier 비명문대생을 도와줄 수 있는 제도로, 블라인드제도가 제시되었다. 만약, IQ와 성실성을 채용단계에서 측정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검사가 있다면, 그리고 그 검사의 신뢰성이 학벌보다 높다면, 블라인드 제도는 인력채용의 효율성을 높여줄 것이다.
    (*삼성의 경우, 싸트시험이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Mambo Tango님은 "학벌에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는 학생들이 역차별 당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학벌이 고3시절의 IQ와 성실성을 반영하고, 싸트시험이 현재의 IQ와 성실성을 반영한다면, 역차별을 어떤 맥락에서 말씀하시는것인지요?)
    (*문제는, 과연 공기업이 블라인드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공무원으로서의 직무수행능력을 잘 예측해줄 시험을 개발할 수 있는가이다.)

    4. 문제는, 비명문대생은 평균적으로 명문대생에 비해 IQ와 성실성이 낮다는 점이다. 실력이 없는 비명문대생들이, 효율성의 잣대로 모두 버림받는다면, 지역균형발전을 꾀하는 정부로서는 큰 고민이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 할당제가 블라인드제도와 더불어서 시행되는 것이다.
    즉, 할당제는 생산성 이외의 측면에서 '차별'받는 비명문대생을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으나, 이러한 비명문대생은 블라인드제도로 구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할당제를 블라인드제도와 더불어 시행한다는 것은, 생산성이 낮은 비명문대생도 구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정리하면,
    학벌은 직무수행능력을 잘 예측하는 IQ와 성실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채용단계에서 사용될 수 있는 좋은 정보 중 하나이다.
    문제는, 이는 평균적인 경향으로 IQ와 성실성이 높은 비명문대생은 학벌이라는 기준으로 무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IQ와 성실성을 잘 측정할 수 있는 대체시험을(삼성의 싸트와 같은) 개발할 수 있다면, 고 3시절의 IQ와 성실성을 측정하는 학벌보다는, 채용시점의 IQ와 성실성을 측정하는 대안 시험으로 인재를 채용하는 제도가 효율성을 제고할 것이다.
    ((Mambo Tango님은, 학벌외의 기타 정보가 부재한 상황을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대체시험은 분명 등장할 것 같음. 대체시험 없이 블라인드제도를 시행한다면, 그럴것 같지는 않지만, 글쓴이의 의견에 공감함))

    실력이 낮은 비명문대생까지 구원하기 위한 제도가, 블라인드제와 병행되는 할당제로 생각된다. 서로 보완적인 제도이기에, 블라인드제도와 할당제는 병행될 것으로 예상함.

    (따라서, 학벌이 직무수행능력을 반영할 수 있나 등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본 논의의 본질적 질문이 될 수 없음)



    ***그밖에 게시글과 댓글들에서 제기된 부가 이슈에 대한 생각입니다.
    - 대학교를 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평가에 의해서 계산된 학점을 평가항목 중 하나로 삼는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음. 학점 기제는 허용된다면, 이는 곧 수정될 것으로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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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깔끔하게 자료제시해주시니 잘 정리되고 좋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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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잘 읽었습니다. 싸트같은 시험이 새로 도입될 수 있다면 저도 학벌 블라인드 채용도 일리있을 것 같네요.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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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설득력이 있는 의견 같은데 문제는 그럼 ('평균적'인 경향에서 벗어난, 유능한 비명문대생을 구제할 수 있는) 공공기관/공기업의 채용자와 구직자, 나아가 (공공 서비스의 이용자이며 동시에 비용을 치르는 납세자이기도 한) 국민들이 모두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안정적인 '대체 시험'이 개발될 수 있느냐겠군요. 다만 저는 이 가상의 시험이 현실적으로 개발될 수 있을지 회의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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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 "'평균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유능한 비명문대생을 구제할 수 있는"
      -> 시험은 간단히 IQ와 Conscientiousness를 측정할 수 있는 시험이면 됩니다. (이 외에 공무원 직무수행 능력을 잘 예측할 수 있는 변수로 밝혀진 construct이 있다면 포함시키면 되고요.) 간단한 IQ 테스트와, BIG 5 성격 테스트, PSAT에서 쓰이는 논리력 시험 정도를 혼합시켜도 될 것 같습니다.

      2. "채용자와 구직자, 나아가 국민들이 모두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안정적인 대체 시험"
      -> '학벌'기재가 낳는 폐해가, 이 대체시험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비용보다 크다면, 쉽지 않더라도 진행시켜야겠지요. 대안이 완벽한지보다는, 현재와 대안과의 비교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명문대생'에게 이로운 학벌 기재를 없애는 것은(그리고, 고3때의 IQ와 성실성을 나타내는 학벌보다는 현재의 IQ와 성실성을 나타내는 시험 성적으로 지원자를 평가하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보다 다수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기 쉬울 것 같군요.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행시의 1차관문인 PSAT, 혹은 전문대학원을 가기 위한 LEET/MEET, 혹은 많은 입사에 기재가능한 TOEIC/TOEFL, 혹은 명문대 진학을 위한 논술,구술면접, 혹은 수능시험 등이 reliable, valid test인지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특정 집단에게 특별히 유리한 시험이 아니라면, 정부의 정책을 무효로 만들만큼 큰 반발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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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제가 보기엔 주장에 큰 문제점이 있는데요. 일단 IQ를 측정하는 시험이야 여러가지 정형화된 방법이 있고, IQ 점수는 개별 시험에 따로 대비를 하지 않아도 대체로 비슷한 점수가 나오니, 정부와 공공기관이 개별적으로 시험을 만들어서 시행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성실성을 측정하는 시험은 어떻게 만들껀가요?

      성실성 측정 시험은 결국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만 고득점이 가능한 형태의 시험이 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런 종류의 시험은 반드시 대부분의 기관이 다 같이 특정한 어떤 시험을 사용하기로 협의를 해야만 제대로 성실성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각 기관마다 서로 시험을 만들어서 수백, 수천개의 시험이 난립하면, 구직자는 그 어떤 것에도 많은 노력을 투입하기 어려우니까요. (한우물 파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럼 결국 대충 하는 사람 사이에서 그나마 좋은 성적을 보인 사람을 뽑는 시험이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결국 성실성 보다는 IQ나 공부 스킬을 테스트하는 시험에 가까워진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성실성을 측정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그리고 모두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시험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TOEIC 입니다. TOEIC은 워낙에 쉬운 시험이기 때문에, 990을 받아봤자 영어를 전혀 읽거나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만 증명할 수 있을 뿐, 실제로 영어 실력이 "충분히" 우수한지 여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990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상당히 소수이기 때문에, 성실성 측정의 지표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TOEIC에는 약간의 차별적인 요인은 존재합니다만(경제력과 상관관계가 있는 유학여부에 의해 점수가 크게 영향받는다는 점, 역시 경제력과 상관관계가 있는 어릴적 영어학원 수강경력이 점수에 영향을 준다는 점, 수능에서 이미 고득점을 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쉽게 990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 등), 그래도 성실성의 지표로 삼기에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을 투입해서 990을 받는 사람도,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거주한 이상 언젠가는 노력을 했었다는 이야기거든요.

      게다가 공기업에서는 TOEIC 외에도 자체적 성실성 테스트를 시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사 같은건 업무와 별 관계는 없지만 거의 순전히 성실성을 측정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시험이죠. 이처럼 이미 비슷한 용도로 기능하는 시험이 여럿 있는데, 굳이 다른 것을 추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출신학교를 보지 않고 평가하는 제도는 단순히 명문대생에게 부여된 이로움을 제거하는 차원의 제도가 아니고, 실제로는 명문대생에게 뚜렷하게 새로운 불이익을 부여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잘못된 제도입니다. 동일한 수준의 전공 이해도를 가진 학생이라면, 서울대에서 받는 학점이 지방대에서 받는 학점보다 월등히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당 그룹 안에서의 상대적 서열인데, 그러면 대체로 더 성실하고, 머리도 좋고, 공부하던 가라가 있는 집단 내에서 상위권으로 치고가기가 더 힘들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가리고 학점만 반영하게 되면, 다른 조건이 같은 경우 서울대 4.15/4.3은 지방사립대 4.45/4.5에 밀려 떨어지게 됩니다. 전자가 해당 학점을 얻기 위해 월등히 많은 노력을 투입했고, 그 결과 전공 이해도 역시 월등히 높은 것은 거의 뻔한 일인데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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