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환영회식사

2012년 7월 11일 수요일

포괄수가제에 대하여

최근 의료계에서는 포괄수가제 시행 여부를 두고 정부와 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첨예한 갈등을 빚다가, 며칠 전 의협이 잠정적으로 포괄수가제 시행을 받아들이기로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예비 간호사인 동생과 상의할 기회가 있었고, 제 생각을 이 글을 통해 정리해보았습니다. 다음은 2012 5 22일 연합뉴스 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노환규, 포괄수가제[1] 사실상 반대

(서울=연합뉴스) 이주연 기자 = 대한의사협회는 22일 포괄수가제 시행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노환규 의협회장은 이날 시내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괄수가제는 진료량이 늘어날수록 순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에 정부가 급증하는 의료비를 통제할 좋은 제도이며,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좋은 재료를 쓰거나 치료기간이 길어질수록 진료원가가 높아지는데 진료비가 고정돼 있다면 의사들은 비용을 아낄 수 밖에 없다" "조기퇴원 강요, 치료 생략, 싸구려 의료품 사용, 신기술 배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포괄수가제 시행의 보완점으로 ▲적정한 수가 개선 ▲환자의 경·중 분류 ▲과소진료 방지를 위한 행위료 분리 ▲진료 질 평가를 위한 모니터링 등을 내놨으나 정부가 수용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 회장은 "의사들이 정부가 정한 원가 이하의 진료수가로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과잉진료라는 편법을 동원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과잉진료를 없애려면 포괄수가제보다 진료수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리하자면,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 원가 이하의 진료수가가 매겨져 있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과잉진료를 통해 자기 밥그릇을 챙길 수밖에 없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위별 수가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지 질환별로 총 수가를 정해버리는 포괄수가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여러모로 탄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행위별 수가가 낮다는 핑계로 과잉진료를 한 의사가, 행위별 수가가 높아진다고 과잉진료를 하지 않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위의 기사의 주인공인 노환규 의협회장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따르면 2010년 전문의 평균연봉이 9200만원이라고 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매우 힘들고, 또한 중요하기에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의사 개개인의 풍요와 환자들이 받는 의료서비스의 적절성 중에서는 분명 후자를 더 중요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 낮은 행위별수가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환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어느정도 감내하면서(분명 왠만한 사람들보다는 풍요로운 생활수준을 영위하는 직업이므로), 행위별수가 상향을 요구했다면 훨씬 더 납득할만하고 믿을만한 근거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의협의 논리대로라면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하지 않더라도 포괄수가를 정부의 현재 안보다 더 높인 후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면 되는 일입니다. 좋은 재료를 쓰거나 치료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진료원가가 높아지는 것을 반영해서 진료비를 설정하면 되는 것이지요. 결코 포괄수가제 자체에 대한 반대 근거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차후 의료 서비스 가격 설정의 주도권을 정부에게 내어 주지 않기 위한 의협의 이익 추구 행위로 보입니다.
위의 기사에서 의협회장은 좋은 재료를 쓰거나 치료기간이 길어질수록 진료원가가 높아지는데 진료비가 고정돼 있다면 의사들은 비용을 아낄 수 밖에 없다”, “조기퇴원 강요, 치료 생략, 싸구려 의료품 사용, 신기술 배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의사 본인입니다. 의사 본인의 입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이 하락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분노가 일었습니다. 지금보다 월급이 낮아지면 범인을 좀 더 많이 놓칠 거라고 경찰관이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노 회장은 2012 7 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는 수술 연기였지만 다음엔 수술 중단이 될 것이다[3]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어떤 제도든지 시행되었을 때 부작용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그것을 고려하여 제도를 다듬는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다만, 그 부작용의 발생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당사자(포괄수가제의 케이스에서는 의사)가 부작용을 일으킬거라고 협박하면서 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월급이 낮아져서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경찰관들의 업무능률이 떨어지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월급이 낮아지기도 전에 우리 범인 덜 잡을 겁니다!”라고 경찰관이 말하는 것은 납득하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다 적고 보니 경제보다는 윤리에 포커스를 맞춘 글이 되어버렸습니다만, 경제학에서 다루는 많은 문제들 속에도 이와 같은 부작용 여부 결정 당사자의 문제가 분명 존재할 거라는 생각에 이 글을 게시합니다.



참고자료

2012년 5 22일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5/22/0200000000AKR20120522042700017.HTML?did=1179m

2012년 7 3일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1697&CMPT_CD=P0001


[1] 포괄수가제는 환자에게 제공하는 진찰·검사·수술·투약 등 진료의 횟수와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한꺼번에 지급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행위별수가제(fee for service)가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그 횟수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이에 따라 진료 횟수가 늘어날수록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나고 의사 수입이 증가하는 만큼, 과잉진료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안된 것이 포괄수가제입니다. 유럽 등 의료선진국은 대부분 건강보험의 재정지출 한도를 미리 정하는 포괄수가제를 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맹장수술·제왕절개 등 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를 확대적용할 계획입니다(네이버 지식사전 발췌).
[2]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보편적인 생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3] 실제로 수술이 연기되지는 않았지만, 의협은 포괄수가제에 반대하여 수술 연기 방침을 공표한 바 있습니다.

댓글 11개:

  1. 행위별 수가를 높있다고 과잉진료가 줄어들지는 않으리라는 글쓴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환자는 자신의 병의 심각성과 치료비용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정보비대칭으로 생기는 이익을 고수하려고 하는 의사들에게 비판하는 취지에도 공감하거요. 하지만 포괄수가제를 여러 질병에 도입한다면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이 높아질 때 병원측에 돌아오는 이익은 고정된 반면 비용은 증가하므로 인센티브 왜곡이 생겨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한 것 같아요.
    음~ 그렇지만 지금 포괄수가 대상으로 지정된 병들이라면 치료가 간단하고 기간이 짧으며 누구이게나 비슷비슷한 것들이라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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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의문인 점은 왜 병원 경영진들이 반대하지 않고 의사협회가 반대하는 것인가 입니다. 병원측의 "환자 1인당 매출"이 고정되어 있다면 당연히 비용을 줄여야 이익이 많아지고, 그런 인센티브를 갖는 것은 병원 측에 고용된 의사들이 아니라 병원 경영진일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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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병원측이 비용을 줄이려다 보면 의사들 월급인상이 더디어질 수 있고 인력감축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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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amboTango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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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Webspider019님께서 언짢게 생각하신 이유는 알겠지만, 포괄수가제의 결과 병원이 새로운 진료기기 등에 대한 투자를 줄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우려가 됩니다.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MRI의 경우 점점 더 해상도가 좋아져서 어느곳이 문제인지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다고 하는데요,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기기를 새롭게 들여놓지 않게 되겠지요. 기존의 진료비 책정이 효율성을 만족시키는 수준이었다는 가정하에, 이러한 투자는 진료비의 상승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포괄수가제는 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구요. 물론 현재 책정된 진료비가 적정수준인지는 의문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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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고 쓰고나서 보니 flyingbunny님의 댓글과 별로 차이가 안나는군요 ㅜㅜㅜ. 그리고 flyingbunny님의 말씀처럼 이와같은 걱정은 포괄수가제가 다른 진료부문에 까지 적용될 때를 가정하고 생각해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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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기술 도입에 발맞추어 포괄수가를 조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떤 질환에 대한 의료서비스에 드는 비용이 변하지 않을 때, 과잉진료를 막기 위한 상한을 두는 것이 포괄수가제의 의의이니까요. 연속적으로 신기술이 마구 들어오는 상황이라면 포괄수가를 계속 수정해나가야 겠지만 그 정도로 신기술 발전이 빠를 것 같지는 않다는게 제 추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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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런거 보면 차라리 외국 어느 국가처럼 의사들을 공공의료기관에서 죄다 (계약직) 공무원 신분으로 고용하고, 의료보험에서 직접적으로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대신 의료서비스의 질에 대해서는 고객(국민)의 평가 등에 의해 엄격히 사후평가를 하고요.. 그렇게 되면 상당히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면서 과잉진료문제도 줄어들겠죠.. 의료서비스 질이 일정수준 이하로 평가된 의사는 급여를 감봉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주인 대리인 문제도 해결할수 있을것이고. 다만 이행과정이 쉽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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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특정 직업들(의사, 간호사, 경찰관 등)은 효율성을 잃지 않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면서 국영화를 하는 것이 답일 것 같아요. "이윤"과 "생명, 건강, 안전" 등의 가치 중 "이윤"을 우선순위에 두는 가치전도현상을 막기 위해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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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솔직히 말하면 제가 경찰관이더라도 월급 쥐꼬리만큼 주면 잡았던 범인도 놓아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찰관 입장에서는 화날 것 같아요.

    "너넨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지! 돈 적게 줘도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깐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안 그럼 넌 사람이 덜 된 거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시민들)은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면서 자기 주머니에서 돈 빠져나가는 건 왜 아까워하죠? 특히나 '시민'의 안전의 수혜자는 '시민'인데요. 왜 '사명감'은 경찰만 느껴야 하나요? '사명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경찰에 돈을 더 주면 안되나요?

    의사들에게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생명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보조금이라도 지급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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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답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이 댓글을 올려주셨을 당시,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답을 미루고 있었어요. 하지만 포괄수가제 시행으로 인한 의사들의 수입감소를 문제삼아 포괄수가제 결사반대로 대응하는 것이 맞았을까요? 포괄수가제에 반대하는 논리가 그것이라면 포괄수가를 좀 더 현실적으로(높게) 책정해달라는 요구를 하거나 MamboTango님 말씀대로 보조금을 지급해달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포괄수가제가 행위별 수가제보다 "바가지 진료비 문제"를 없애는 데 더 용이하다는 이유를 반박하지 못한다면요.

      더불어,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의사라는 직종은 이미 고소득직종의 대표격입니다. '적정한 소득수준이 어느정도인가'는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 저는 경제적으로 이미 최상위 계층에 속해있다고도 할 수 있는 의사들이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에 불쾌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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