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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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1일 토요일

지하철 자리 배분문제

심각한 주제가 많은 우리 경연 블로그에, 약간은 가볍고 좀 병맛 넘치는(!) 글을 하나 써보려 합니다. 평소에 지하철 타면서 자주 했던 생각을 가볍게 적는 것이니 내용이 좀 이상하더라도 너그러이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ㅠ

살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일이 참 많습니다. 시간대에 따라 (특히 출퇴근 시간대!)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기도 하지요. 사람들로 가득찬 지하철을 타면서 저는 다음과 같이 괴이한(?) 상황을 보곤 합니다.

 저는 지금 유동인구가 매우 많은 어느 역에서 긴 줄 뒤쪽에 서 지하철을 기다립니다. 지하철이 오는군요. 사람들이 가득하네요. 벌써부터 짜증이 치솟습니다. 지하철이 서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군요. 지하철에 탑니다. 뒤에 아저씨는 자꾸 밀고, 꾸역꾸역 밀려 들어가는데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어, 그런데 이상하네요. 문 주변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져 밀지 말라고 서로 아우성치는데 지하철 칸 가운데쪽을 보니 비교적 널럴하게, 여유롭게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하철을 이용하시다 보면 종종 겪으시는 상황일 거라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생각할 때 한 칸 안에서 이렇게 한쪽에 몰려 승객들이 '균일하게(uniformly)' 분포하지 않는 상황은 분명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딴소리지만 버스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는데, 그래서 어떤 버스 기사님들은 이런 상황에서 '탑승자를 균일하게 분포시키기 위해' 차를 좌우로 슬쩍슬쩍 흔들거나 급정거/급출발을 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지하철은 이게 안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마 이런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탑승하기 이전에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사람들이 솨~빠져나가면서 생긴 공간을 '선점'하려 들겠지요. 특히 문과 비교적 가까운 통로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여유롭게 공간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안쪽(곧 객차의 가운데 쪽)으로 밀리지 않으려 애쓸 것입니다.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면 내릴 때 한층 더 많은 인파를 뚫고 나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고 재수 없으면 아예 제가 원하는 역에서 내리지 못할 수 도 있으니 문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들이 내리는 역이 유동인구가 적은 역일수록 내릴 때 더욱 수고롭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으면 사람들 인파에 몸을 싣고 자연스레~ 내리면 될테니까요.) 그럼 아예 문 옆에 기대 서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면 대신 '객석 앞에 서 있다가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놓치게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결국 '최대한 쉽게 내리면서 재수 좋게 앉을 수 있는 기회도 갖고 있으려면' 문에서 가까운 좌석 앞 쪽에 서 있어야 합니다.

 결국 기존에 탑승하고 있던 문쪽에 가깝게 서 있던 승객들과 새로이 탑승하는 승객들 간에는 '들어가려는 자와 방해하려는 자'간의 신경전이 객차의 문 주변에서 벌어집니다. 개별 승객들은 작은 신경전을 벌이지만 이 신경전들이 모이면 장애물이 되고 승객들의 이동을 막게 되지요. 이 가운데서 어부지리를 보는 승객들이 있습니다. 바로 객차 가운데 쪽에 서 있는 승객들입니다. 이들은 문쪽에 서 있던 승객들이 대신 싸워주는(!) 덕에 비교적 널럴한 공간을 차지하고 서 있습니다. 물론 대신 내릴 때 문쪽에 밀집된 승객들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내릴 역이 유동인구가 많다면 이것도 별 문제가 안됩니다. 문쪽에서 아귀싸움을 하는 승객들 중 누군가가 알아서 길을 내 줄테니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심지어는 좌석에 빈 칸이 생겼는데 문쪽에서는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진짜 이상한 상황을 보기도 합니다.

상당히 희한한 광경이지만, 분명 현실에 실재하는 광경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경제주체들간의 유인이 서로 부딪치면서 자원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사실 저도 답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문가에 서 있는 기존 승객들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더라도 나중에 내릴 때 문제가 없도록' 만들어 주는데 있을 겁니다. 어떤 해결책이 가능할까요.

댓글 11개:

  1. 지하철 안쪽 바닥에 움직이는 차 안에서는 서있기 힘들지만 멈춰있을 때는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한칸 높은 길을 만드는겁니다. 중앙통로와 문을 십자 형태로 가로지르게.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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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방금 든 생각인데, 지하철 이용객들끼리 제스쳐를 정해서(예를 들면 뿌잉뿌잉...)자기가 내리기 2~3정거장 전부터 뿌잉뿌잉을 하고 있기로 하면 뿌잉뿌잉 안하는 사람들이 안으로, 뿌잉뿌잉하는 사람들이 밖으로 쉽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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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하철 안이 fighting club으로 바뀔 것 같아요....(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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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결국 지하철의 각 자리 혹은 스탠딩포인트의 가치가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겠군요. 따져보면 지하철 문 바로 앞 좌석에서 앉아서 가는 것이 최적의 상황이고, 사람들 틈에 갇혀서 굉장히 불편하게 가는 것이 최악의 상황일 것 같아요.

    가장 단순한 해결방법으로는 지하철의 정차시간을 약간 늘려서 어느 포인트에 서 있든 수월하게 나갈수 있도록 하면 지하철의 각 스탠딩포인트의 가치가 비슷해져서 어느정도 균일분포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물론 정차시간을 5초~10초 정도 늘려서 늦어지는 교통은 그 댓가이고..(정차시간이 10초 정도씩 늘어난다고 칠때, 6정거장 기준으로 1분정도 느려지겠군요. 이게 감내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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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지나다가 재미있는 주제에 나름 묘안이 떠올라서 댓글을 남겨 봅니다.
    버스에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각 열차칸마다 내리는 문과 타는 문을 나누는 것은 어떨까요? 칸 마다 문이 네 개니까 1, 4번으로는 타고 2, 3번으로 내린다던지 하는 식으로요.
    그러면 열차 내에 한 방향의 '흐름'이 생겨서 방향이 부딪히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차 가운데만 비는 것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러니까 막 열차에 타는 사람은 지금까지 타고 왔던 사람에 비해서 더 멀리까지 가서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면
    내리는 문 < 바로 다음 정거장에 내릴 사람 < 타고 있던 사람 < 바로 이전에 탄 사람 < 타는 문 식으로 말입니다.
    열차 내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역이 가까워져 올 수록 내리는 문에 가까이 서야한다는 구상인데, 실제로는 앉아서 갈 수도 있으니까 꼭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차 내에 승객들이 미는 방향이 한 방향이라 부딪히지 않으니까 앉아 있다가 내리기에도 수월할 것 같은데요.
    적용하려면 사람들이 지금의 방식 대신에 내리고 타는 문을 구분하는 이 방식을 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겠네요. 혈관 내 판막 같이 한 방향으로만 젖혀지는 커튼을 달면 될까하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치는데요.
    제 이 황당한 대안은 그다지 경제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작성되지 않았지만 ^^; 이런 주제도 경제학적인 표현으로 작성된다는 것이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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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예전에 설계 전공수업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없도록 신개념 지하철을 만들어 보겠다던 어떤 학생의 발표 내용이 생각나네요. 그때 낸 아이디어가 뭐였냐면, 아예 지하철에서 문이란 개념을 없애는 거였죠. 즉, 역에 도착하면 지하철 한쪽이 완전히 개방되는 구조로 만들면 문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위치에 의한 기회나 가치의 문제를 최소화 하는 아주 공대적인 해결 방식이었죠 ㅎ

    ..물론 좌석 문제는 고려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무도 이 방안에 대해 머라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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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현재 철도경영학과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위에 언급하신 방안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연락으로 들으면 좀 더 좋겠습니다만 혹여 이메일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제 이메일은skawhdgns98@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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