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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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3일 목요일

‘7000원 때문에 자살한 할머니’ 읽고 든 두 가지 생각

8월 9일자 한겨레신문에 난 기사를 요약하면 혼자 사는 한 할머니의 ‘부양비’가 56만원으로 산정되었는데 1인 가구 최저 생계비가 약 55만3000원이어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양비’는 부양의무자인 딸과 사위의 소득의 일정부분으로 계산되는 것입니다. 즉, 딸 부부가 56만원 정도는 할머니에게 줄 여력이 된다고 산정되었기 때문에 그 할머니에게 생계비 지원이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지요. 그 할머니는 이전까지 39만원 정도를 생계비로 받아왔었기 때문에 그 충격에 자살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제가 이 기사를 읽고 가졌던 궁금증은 우리나라의 복지체계가 7천원에 한 사람의 생명이 좌우될 만큼 허술한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궁금증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의 자료를 보고 바로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링크의 “보충급여의 원칙”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요, 한 사람의 “소득인정액” (할머니의 경우에는 부양비가 해당되겠지요)과 기초생활비 지원액이 합쳐져서 최저생계비가 되도록 지원한다는 뜻입니다. 즉, 만약 돌아가신 할머니의 부양비가 56만원이아니라 55만 3000원 이었어도 여전히 할머니에게 돌아갈 생계지원비는 0원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요. 결국 7천원이라는 수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기사의 헤드라인은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면이 큰 것 같습니다. 사실 기사에 따르면 딸 부부의 소득의 대략 15% 정도가 부양비로 산정될 텐데 할머니가 이전처럼 39만원을 지원을 받으려면 딸 부부의 소득이 264만 원 정도 감소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397,000*100/15) 그렇다면 정확한 기사제목은 ‘264만원 때문에 기초수급자 제외되어...’ 와 같이 되어야 할 텐데 아무도 이런 기사에 주목하지 않겠지요. (참고로 딸 부부의 월 소득은 대략 800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회의 약자에 주목하는 것은 좋지만 이처럼 선정적인 기사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것은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할머니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단지 “자식이 800만원이나 벌면서 배부른 소리 한다”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은 부모들의 마음도 있을 것이고 자식들과 사이가 벌어진 경우도 있을 텐데 단순히 자식의 소득의 일부를 부모의 소득으로 간주하는 것은 불합리한 면이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이를 "가족부양 우선의 원칙"이라고 지칭합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일정 연령이상이 되고 본인의 소득이 없다면 자식의 소득과 상관없이 기초생계비를 지급하는 일종의 보편적 복지정책을 사용하면 어떨까라는 것입니다. 재원부족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차치하면 이러한 정책이 현재의 선택적 복지정책보다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재원부족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단순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바로 소득자에 비례하여 세금을 더 매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이 고소득자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일까요. 제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예전에는 “800만원 버는 사람은 56만원 정도를 부양비로 지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을 “800만원 버는 사람에게 56만원을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으로 바꾸는 식의 정책일 뿐입니다. 그들의 어머니는 55만3000원을 생계비로 받고 남은 7000원은 다른 사람에게 지원되겠지요. 물론 이러한 금액은 단순한 예시일 뿐이지만 간단한 정책의 변화가 사실상의 추가적인 부담은 거의 없이 더 합리적인 복지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의 논쟁에서 저는 보편적 복지의 장점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든 예가 보편적 복지의 한 가지 장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러한 보편적 복지가 무조건적인 재원부족이나 불합리한 세금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댓글 5개:

  1. 사회 안정망이 모든 사람을 구제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한 제도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요.

    노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가족부양우선의 원칙 그리고 기초 생활 보장 등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가지 제도 만으로도 모든 노인들을 적어도 먹고 살 수는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위의 예에서와같이 가족부양우선의 원칙이 작동될 경우 자녀에게서 자신의 생활비를 뺏어(?)와야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경우는 사회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모아놓은 재산이 없거나 국민연금을 포함 한 연금보험을 들지 못해 자력으로 생활을 해 나갈 수 없는 노인을 둔 가정(자식)들 중 소득수준이 충분히 높은 사람들, 즉 위의 예에서와 같이 부양노인이 기초수급대상자 아닌, 만을 모아서 그들에게만 따로 세금을 거두면 될까요? 그런데 이건 가족부양우선의 원칙과 다른점이 없군요.

    그렇다면 ‘이렇게 추린 노인 수 x 최저생계비’만큼을 모든 국민으로부터 세금으로 거두면 어떤가요? 이 경우 부모는 없지만 소득수준은 충분히 높은 사람의 경우 제도 시행 이전까지는 부담할 필요가 없었던 돈을 세금으로 내야 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노인x 최저생계비’를 세금으로 거둘 경우는 부담이 더욱 늘어나겠지요.

    급하게 생각해 본 위의 두 예는 일단 보편적 복지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는 못하겠네요. 그런데 자력으로 생활이 불가능 한 노인인구는 전체의 몇 퍼센트 정도가 될까요? 망자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본문의 예는 왜인지 저에게는 어린이들이 부끄러워 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하던 것과 차이가 없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편적 복지는 가장 최적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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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렇다면 ‘이렇게 추린 노인 수 x 최저생계비’만큼을 모든 국민으로부터 세금으로 거두면 어떤가요? 이 경우 부모는 없지만 소득수준은 충분히 높은 사람의 경우 제도 시행 이전까지는 부담할 필요가 없었던 돈을 세금으로 내야 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노인x 최저생계비’를 세금으로 거둘 경우는 부담이 더욱 늘어나겠지요."

    제가 생각한 것도 이러한 방법과 비슷합니다. 단, 노령 연금의 측면을 강조한다면 모든 국민이 아니라 일정 연령 이하의 국민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전면적 보편적 복지는 아니지만 현재보다는 보편적 복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완전한 보편적 복지제도, 즉 소득이 충분한 노인들에게까지 지원금을 주어야 할 이유는 딱히 떠오르지 않네요. 극단적인 예로 이건희회장에게도 한달에 50만원을 주어야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무상급식의 경우는 가장 문제가 되는 "부끄러움"을 방지할 수 있다면 선택적 지원이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지나가는 생각은 급식비를 학교 수업료 항목에 포함시킨다음 대학교 장학금 신청하듯이 소득에 따라 수업료를 지원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것입니다. 대학교 장학금 신청하는 것 (한국 장학재단에 개인정보 입력하고 소득분위에 따라 장학금 제공받는 현재의 방식)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대학생들은 없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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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선별적 무상급식이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그 수혜자가 "아이들"이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점퍼 브랜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게 아이들이잖아요?

    모든 아이들에게 밥을 공짜로 주면 좋지만, 공짜로 주지 않아도 잘 먹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돈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과 한 번 확대한 복지를 축소하는 것은 매우 큰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보편 vs 선별 논란의 핵심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들보다 훠어어어얼씬 더 중요한 것이 일단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원이 문제라면 선별적 복지를 통해서 일단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고, 상대적 박탈감 등에 따른 부작용이 생긴다면 차차 보편화하는 것이 수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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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좀 이상한 생각을 하나 추가: 만일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자기 소득의 10프로씩을 부모 부양에 사용한다면, 모두에게 소득의 10프로를 세금으로 걷어 이를 자녀 소득에 비례하여 분배한다면, 두 가지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선 부모님이 오래사시고 적게사시는 데에 따른 리스크가 감소하여 전체 사회후생이 약간 늘고, 둘째로 부모자식간 용돈을 주고받는데에서 오는 심리적인 효과가 없어지겠지요. 만일 용돈울 주고받는 것이 '선물의 경제학'처럼 부모자식간 도리를 다한다는 뿌듯함과 심리적 연대를 낳아 추가적 효용을 발생시킨다면 (노후자금의 공적관리 도입할 때) 손실이 생기겠고, 부모는 자식에게 짐을 준다는 죄책감을 자식은 경제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면 이익이 생길 것 같네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후 자금을 국가에서 걷어서 나누어준다면 모두에게 똑같이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사회정서상 부자 자식은 부모에게 공적자금 이외에 추가적 용돈을 드리게 될 것 같고요~(물론 안드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은 제도 시행 전에도 안드렸을 사람) 결국 재분배를 확대하는 것!

    양쪽 의견 모두 타당한 논거가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굳이 골라보자면, 돈을 벌어서 내 부모를 잘 모셔 보겠다는 것도 하나의 강한 근로동기 중 하나인 점을 생각할 때, 저는 노후에 대한 '보편적 복지'에 우려가 더 많이 듭니다. '보편적복지'가 '선택적복지'보다 자금 규모가 큰데 이를 어떻게 투명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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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모의 수명에 대한 보험은 없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예컨데 현재 연령과 기대수명의 차가 20년이라면, 20년동안 50만원씩 납부하고, 부모가 살아계신 동안 49만원씩 받는 식으로요~ 결국 처음엔 1만원씩 내는 셈! 연금 보험 중에 비슷한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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