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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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8일 수요일

경제민주화를 위한 순환출자 규제?

 소위 "경제민주화"라는 바람을 타고 대기업의 순환출자 제한 여부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을 위시한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은 경제민주화 3호 법안으로 순환출자 규제법을 발의하였습니다. 헌법 제119조 1항과 2항의 조문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되,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국가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짧은 조문 속에 한꺼번에 담겨있지만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결국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아마도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재벌"에 대한 견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참 멋진 말입니다. 시장원리를 존중하면서도 시장실패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적절히 개입하는, 이상적인 경제시스템을 지향하는 것이니까요. 소수의 개인 혹은 집단에 의한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경제민주화를 위해 빼어든 무기인 "순환출자 규제"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습니다.

순환출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의 모습

 순환출자가 무엇인지는 위의 사진을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대기업 총수가 A라는 기업의 대주주이고 나머지 기업의 소액주주라고 합시다. A기업이 계열사 B의 지분에 투자를 하여 대주주가 됩니다. 또, B는 C의 지분에 투자를 하여 대주주가 되지요. 마찬가지로 C가 D, D가 A에 지분 투자를 하게 되면, 순환출자의 고리가 완성됩니다. 대기업 총수는 A기업 외의 다른 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낮더라도 강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삼성의 경우는 A기업에 해당하는 것이 삼성 에버랜드가 됩니다.
 원래 순환출자는 상호출자 금지를 피해가기 위한 편법으로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두 회사가 상호간의 지분 투자를 통해 실제 투자된 현금에 비해 자본금을 부풀리는 것이 상호출자인데 이를 법으로 규제하자 법을 회피하기 위해 사이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이지요. 우리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를 이용하여 얼마나 자본금을 부풀렸는지는 알아봐야 하겠지만, 세계 각지의 투자자들이 우리 기업들에 투자를 하고 있고, 또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 대기업들이 속 빈 강정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즉, 순환출자 규제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는 빈부격차의 심화입니다. 경제적 상위 계층은 잘 먹고 잘 삽니다. 필요한 것은 경제적 중하위 계층이 잘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소비자로서의 중하위 계층을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 실질소득의 증가가 필요합니다. 생산자로서의 중하위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막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순환출자 규제는 일자리 창출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기업의 힘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인 것 같습니다.

 순환출자 규제가 대기업의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기 위해서는, 순환출자 제도가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초래하고 있었어야만 합니다. 얼마 전 화두였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오랜 시간 동안 저해된 것이 과연 총수일가가 쥔 과도한 의결권 때문일까요? 좀 더 많은 주주들에게 의결권이 분배되었다면, 혹은 서로 혈연이 아닌 집단이 대주주였다면 대기업이 지금까지 행해온 걸로 알려져 있는 많은 횡포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독점기업으로서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되면 지배구조에 무관하게 하부 기업들을 착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협상력의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준법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 또는 위법, 편법 행위에 대한 페널티의 설계 및 개선, 대기업의 횡포가 가시화되어 있는 산업부문에 대한 중소기업 보호업종 지정 검토, 정경유착 근절 등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더 적절한 방향으로 보입니다. 이런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인지 새누리당의 이번 법안은 대기업 때리기에 편승하여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법안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차후 포스팅에서 이 글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세계 각국의 악덕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살펴보고, 지배구조 개선이 경제민주화에 정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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