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환영회식사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이건희 회장은 중소기업과 협력을 원할까?


이 블로그의 첫 스타트를 끊었던 gbsky님의 성과공유제에 관련된 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다음의 대목이었습니다.

“이처럼 대기업의 실적이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에 힘입어 크게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면에서,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기술혁신에 대한 적절한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기실적으로 평가받는 대기업 실무자들’에 의해 업무가 주도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청관계’에서는 기술혁신에 대한 유인 제공보다는 당장의 제품단가를 낮추기 위한 가격 후려치기가 먼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대기업 내에 존재하는 일종의 주인대리문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착취적 관계로 전락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쉽게 말하면 삼성전자의 20년 뒤를 보면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것이 삼성전자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20년 뒤의 실적에 전혀 관심이 없는 실무자들은 지금의 실적을 올리기에 급급하여 중소기업을 착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상당히 일리 있어 보입니다. 또한 이는 이러한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삼성전자와 중소기업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결론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 글의 댓글에도 밝혔듯이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를 다시 예로 들면 건실한 기업을 오래 유지해 나가려는 이건희 회장과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실무자 간의 주인-대리인 문제는 수긍이 되었으나 “과연 이건희 회장이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원할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건희 회장이 실무자들에게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기업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이 회장이 실무자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아서 난처해하고 있는 모습도 상상하기 힘들었고요. 단적인 예로 gbsky님의 글에서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익공유제를 이건희 회장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라며 폄하하였습니다.

저의 생각은 삼성전자의 장기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이건희 회장조차 중소기업과의 이익 공유를 통한 협력관계 유지 및 기술개발 지원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 주장에 대한 몇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 조금 정리가 되었으므로 여기서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글로벌 경쟁의 심화입니다. 경쟁 업체가 세계 단위로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격화되고 새로운 상품의 출시 주기가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장기적인 기술발전에 중심을 두는 것은 그리 현명한 전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의 삼성은 혁신성은 떨어지지만 아이폰과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그리고 그보다 뛰어난 하드웨어를 장착하고도 아이폰보다 가격은 비슷한 (혹은 보조금 등을 포함하면 더 저렴한) 제품, 즉 갤럭시S를 신속히 출시하여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경쟁의 격화는 기업이 상대방의 전략에 대해 단기적인 대응, 특히 추격자 전략 (follower's strategy)를 사용하면서 더 낮은 생산비용을 통해 가격을 낮추어서 대응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증대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자랑하는 일본의 전자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둘째, 기술 발전의 불확실성, 불연속성입니다. 소니는 아날로그 TV에서 우월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으나 디지털 TV가 출시되면서 삼성전자에게 TV시장 지배력을 잃게 되었고 세계 철강산업의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었지만 역시 새로운 공법이 개발되었을 때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신일본제철이 이를 채택하여 미국을 앞지르게 됩니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의 포항제철이 이후 신일본제철을 다시 앞질렀고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기술개발”이 장기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니가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우수한 아날로그 TV기술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디지털TV 기술이 대세가 될 것을 예견하지 못했고 (불확실성), 아날로그 TV와 디지털 TV의 기술은 별개였던 것입니다 (불연속성). 현대에는 기술발전의 주기가 점점 짧아져서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연속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소기업과의 이익공유를 통해 협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비용절약을 통해 최대한 많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여 이후 기술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신속한 전환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최근 바이오, 제약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현재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 보다 신사업 발굴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셋째, 기술의 일반적 적용 가능성입니다. 쉽게 말하면 삼성전자가 중소기업을 도와줘서 그 중소기업이 훌륭한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면 이 중소기업은 다른 기업에게도 자신의 기술을 이용하여 제품을 납품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괜히 남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되겠지요. 대안으로 독점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 등이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독점계약을 맺는 대신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더 높은 단가를 요구하게 되겠지요. 이 때문에 지출되는 비용을 생각하면 (높은 단가, 계약 이행 감시 비용) 차라리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구조를 유지하면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익공유제/성과공유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즉 이 제도가 중소기업에게는 좋아 보이지만 삼성전자에게는 기업의 생존에 해가 되는 제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이러한 제도가 과연 국가의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삼성이 살아야 한국이 산다”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8개:

  1. 매우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결국 하청기업은 봉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우려스럽습니다. 세계화가 양극화를 초래하는 이유 중 하나를 보는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
  2. 기술 발전의 불확실성, 불연속성 때문에 대기업 오너 입장에서 대중소기업 상생을 주도할 유인이 줄어든다는 말씀에 대해서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TV와 제철 산업의 사례를 근거로 제시해 주셨는데 산업지형(기술의 트렌드)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이유가 중소기업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아서요. 중소기업과 협력하는 것보다는 비용절약을 통해 많은 현금성 자산을 확보함으로써 기술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라면, 소니와 신일본제철이 글로벌 경쟁에서 패배했던 것 역시 현금성 자산이 부족했기 때문인가요? 오히려 대기업보다 역동적인 중소기업을 잘 활용하면 신사업 발굴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다른 이유들에 의해, 삼성의 글로벌 리더로서의 위상을 추격자 전략만으로도 지킬 수 있다면 이건희 회장 입장에서 현재의 착취적 구조를 유지하려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MamboTango님 말씀처럼 안타까운 현실이 되겠네요.

    답글삭제
  3. 좀 식상한 생각이지만 대기업이 (하청)중소기업과 이익공유를 통한 상생을 꾀하는 것이 내쉬전략이 될지는 몰라도 우월전략은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중소기업과의 이익공유+상생을 통한 [기술진보+변화에대한 적응력] 이라는 가치는 장기에나 창출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단기에는 중소기업을 '여전히 착취하는' 대기업이 단기이윤극대화 및 사업확장 등을 통해서 경쟁력을 갖지 않을까요? 그리고 요즘의 추세로 볼 때 길어야 10년, 짧게는 2~3년만 대기업이 경쟁력이 감퇴해도 순식간에 시장에서 밀려나 버리는 것도 현실이구요.

    국내의 모든 기업이 상생전략을 취하게 된다면 대기업이 이익공유 등의 상생전략을 통해 장기적으로 체질개선 및 역동성증가 등을 꾀할 수 있으므로 개별기업이 상생전략을 취하는 것이 내쉬전략이 되어 내쉬균형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생전략이 우월전략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제 짧은 생각입니다.

    답글삭제
  4. Webspider님께 답변하자면 중소기업과 협력을 하면서 신사업 발굴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재벌들이 혁신의 기미를 보이는 중소기업들을 인수해 버리는 것이 일종의 "싹수를 잘라버리는" 전략이라고 하더라구요. 미국만해도 구글이 굉장히 많은 신사업에 진출한 기업들을 인수하였지요.(위키피디아에 구글의 기업 인수 역사만을 정리한 페이지가 있을 정도)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 오히려 대기업은 혁신적인 중소기업을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중소기업 사장이라도 뭔가 혁신적인것을 개발하면 대기업에 갖다주기 보다는 제 사업을 해서 성공하고 싶을 것 같구요.
    그렇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독점 계약을 맺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너희의 혁신은 우리가 가진다. 대신 평소에 잘 해줄게" 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입장에서는 평소에 잘 해주는 것만 받고 혁신을 안할 유인이 있겠지요. "혁신에 대한 노력"이라는 요소는 관찰이 불가능하니 대기업 한테 "아 해보니까 잘 안되네요 ^^;" 라고 말하면 되는거구요. 이를 알고 있는 대기업은 아예 이런 계약 자체를 맺지 않을 거구요.

    답글삭제
  5.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을 했을 때 신사업 발굴을 하는 주체가 중소기업이라면 그러한 중소기업은 대기업 입장에서 경쟁자이며,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대기업과 그 과실을 나누기보다는 독식하고자 하는 유인을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는 다만 대기업 입장에서 혁신적인 중소기업과의 지속적인 교류 및 협력이 대기업 기술개발 부문에 '신선한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즉, 중소기업이 발굴한 신사업에 포인트를 맞춘 것이 아니라, 대기업 입장에서 중소기업과의 교류를 통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지요. 이 블로그를 통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지신 필진 여러분과 교류함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해보게 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생각을 공유하는 우리 블로그와 대중소기업 사이의 관계는 분명 이질적이겠지요? 제가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답글삭제
  6. 시각을 바꿔서 사회후생(Social Welfare)의 측면에서 본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모두 상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일단'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비로운 사회계획자(Benevolent Social Planner)는 각각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혼자' 가는 것보다 '협력'하는 것이 각자에게 이득이 되게끔 메커니즘을 짜야겠죠. 문득 수학적으로는 인센티브 양립 조건 (Incentive Compatibility) 에서 사회후생 극대화 문제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그냥 듭니다.

    답글삭제
  7. 철강산업과 티비산업의 예는 제가 다른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임을 밝힙니다

    답글삭제
  8. 철강산업과 티비산업의 예는 제가 다른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임을 밝힙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