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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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3일 화요일

아이 권하는 사회

아이 권하는 사회 

-영유아 보육비로 알아보는 정부의 역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경제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한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이렇게 말한다. “시장의 실패 때문에 비효율성이 초래되고 있다면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시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의 실패가 존재한다고 해서 정부 개입의 당위성이 자동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시장실패의 존재는 정부 개입의 필요조건이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이준구(2008), 미시경제학 제5)” 이 교과서에서 말하는 시장실패의 원인은 불완전경쟁, 공공재, 외부성 그리고 불확실성이며, 적절한 정부 개입의 예로 공공재 공급과 오염부과금이나 직접통제를 통해 외부성을 해소하는 것을 들고 있다. 이 글에서는 불완전 경쟁공공재문제는 논외로 하고, ‘외부성그리고 교과서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거래비용에 관련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나는 외부성이란 단어를 들으면 경제원론 시간에 처음 배웠던 코즈의 정리가 떠오른다. 거래 비용이 없다고 가정하면, 정부가 해로운 외부성에 세금을 매기든 그렇지 않든 이해 당사자 사이의 자발적 거래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달성된다는 간단한 정리였다. 이 정리는 경제학의 똑똑함을 한 번에 집약해 놓은 것 같았다. 시장이 얼마나 멋진 기구인지, 정부 개입의 효과가 의도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명료하게 보여 주는 정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덧 졸업 학년이 되어 이 정리가 포함된 코즈의 논문을 직접 읽어 보니, 정작 코즈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내가 신입생 때 느꼈던 바와 아주 달랐다는 인상을 받았다. 코즈는 세상에 거래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지적하고 있었다.
 
코즈의 논문을 읽고 매우 큰 감명을 받은 나는 거래 비용 감소를 위한 노력또한 교과서에 명시된 것들만큼 중요한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아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려면 이 역할이 매우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년 간 사회적 우려의 대상이 되었으나 아직도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저출산 문제,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인 높은 보육비 문제를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높은 보육비에 대한 정부의 대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십중팔구 보육비 지원일 것이다. 최근 정부는 파격적인 보육비 지원 정책을 마련했는데, 올해 혹은 내년부터 보육시설에 다니는 만 5세 이하 자녀를 둔 가정은 소득에 관계없이 매달 30만원 전후의 보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득 이전 정책은 많은 부모들이 보육비 지원 걱정을 덜게 할 수는 있으나, 사회 전체적인 보육비 부담은 변화시킬 수 없다. 보육비 지원은 결국 국고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리거나 다른 정부지출을 삭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육비 지원책에 따른 지방 정부의 재정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나는 만일 보육비 지원이 사회 후생을 높일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출산이 과거와 달리 긍정적 외부성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출산이 왜 사회 문제로 여겨지는가? 바로 미래의 생산 가능 인구가 부양 인구에 비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를 간단히 하기 위해 출산 결정을 하는 부모들이 경제적인 요인만 고려한다고 가정하자. 과거에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사회적 제도로 존재했다. 생애 전체의 가계부를 두고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한 부부를 상상해보자. 이들은 보육비를 지출로 훗날 자녀가 자신들을 부양해줄 것을 수입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부부는 다르다. 보육비는 여전히 지출로 인식되지만 자녀가 자신들을 부양해주리라 기대하는 부부들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이들이 온전히 스스로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안정적 노후를 위해서는 엄청난 정부의 복지 예산이 필요하며, 이를 감당하려면 미래에 납세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정리하면,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에는 변화가 없으나, 각각 자신의 부모를 책임졌던 과거와 달리, 전체 자녀 세대가 전채 부모 세대를 책임지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결국 출산의 비용은 온전히 개별 가정이 부담하지만 수입은 사회 전체에 돌아가기에 무임승차자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정부의 보육비 지원 정책은 사회적 수입과 사적 수입의 괴리를 완화시켜 사회 후생을 키운다.
 
 그렇다면 정부가 거래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는 저출산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나? 우선 영유아 보육 서비스는 부모가 서비스의 질을 직접 감시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영아의 경우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우며 유아들이 객관적으로 교육서비스의 질을 판단하여 부모에게 전달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영아 보육 서비스는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기 어려우며, 유아 보육 서비스 또한 신뢰 확보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낭비된다. 쉬운 예로, 조기 영어 교육에 회의를 품고 있는 부모들도, 저가의 유치원은 영어 유치원에 비해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영어 유치원에 보내게 된다. 이를 아는 일반 유치원들은 너도나도 영어 유치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서비스의 질을 정확히 관찰할 수 있다면 시장에서 이에 기반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비용에 비해 질이 좋은 유치원들이 살아남겠지만, 현실에서는 질 좋은 유치원이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보육 기관들의 질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제도를 운영한다면 이러한 비용이 감소할 수 있다. 아무래도 학부모 개개인보다 정부 기관의 감시 활동이 더욱 전문적이고 비용이 저렴할 것이기 때문이다. 돌봄 서비스 종사자를 정부에서 관리하는 아이돌보미사업이나 서울시가 2009년 이후 추진하고 있는 안심 보육 모니터링활동이 좋은 예이다.
 
 파격적 지출 계획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보육비 지원도, 규모는 작지만 거래 비용을 줄여 주는 정부 주도의 모니터링도 사회 후생 극대화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두 정책 모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보육비 지원은 예산 마련에 대한 대책이 부족해 비판을 받고 있으며,  모니터링은 '감시를 맡은 정부는 누가 감시하는가'의 문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어떠한 제도도 '파레토 최적'이기는 어렵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어떠한 정책이 근본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또한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세부 조정을 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육비 지원과 모니터링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댓글 11개:

  1. 저출산 현상을 "무임승차의 문제"와 결부시킨 것은 꽤나 흥미롭군요. 그런데 저는 저출산 현상이 "자녀가 부양을 해줄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일단 자녀를 낳아놓으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커다란 비용 (학원비, 대학등록금 등)을 들여가면서 자녀를 잘 키우려고 노력하죠. 만약 무임승차의 동기가 사실이라면 어차피 남들이 자녀를 잘 키우고 그 잘 자란 자식들이 세금을 많이 내면 나는 좋은 거니까 굳이 내 자녀를 잘 키울 동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출산의 중요한 동기는 일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는데 자녀양육이 직장생활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육비 지원/보육원 모니터링은 적은 비용으로 출산률 증가를 일으킬 수 있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애를 낳을지 안 낳을지의 결정은 일단 그 당시 들어가는 비용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10년후 학원비, 20년후 등록금 등을 생각하기 보다는) 일단 낳아놓고 대략 5년간은 걱정없이 키울 수 있다면 "일단 낳아보자"는 결정을 내리는 부부들이 더 많아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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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반론의 요지는 자녀 출산의 경제적인 동기가 "부양"에 대한 기대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 같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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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부양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고 무임승차의 문제 때문에 출산을 꺼린다면 굳이 내 자녀를 잘 키우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좋은 지적이네요.
      사실 양육의 경제적 비용이 올라간 가장 큰 원인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재화나 서비스와 달리 양육에 들어가는 노동시간은 절감하기 어렵기에, 산업이 발전할수록 다른 생산활동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입니다. 한편 여성에 대한 교육이 확대되어 다른 산업에서 여성들이 가지는 생산성이 올라가니 자녀 양육의 기회비용이 더더욱 커지고요. 하지만 이러한 추세를 인정하더라도, 자기 자녀가 자신을 부양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면 출산한 여성들이 노후 대비를 위해 저축을 그 만큼 덜 해도 되니 일을 덜 하고 그 시간에 자녀를 키울 유인이 현재보다 커지리라 생각됩니다.
      요지는, 여성이 가진 노동시간의 가치가 커져 양육의 기회비용이 상승한 것도 저출산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나, 이 원인 또한 '부양 기대'문제와 별도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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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자녀를 잘 키우려는 이유에는 부양 기대 (투자)도 있고 잘 키우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서(소비)도 있다면 첫 문제제기에도 답이 될 것 같아요ㅎ (사람을 물건에 비유하는 게 적절치 못할 수 있지만) 투자 가치는 떨어졌지만 소비 가치는 여전히 주니까요~ 한편 자녀를 한 명 더 낳는 것보다 이미 낳은 자녀를 잘 키우는 게 더 효용을 높여주는 소비이거나 더 수익률이 높은 투자일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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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또한 글에서 지적해주신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가 요새는 자녀로 부터 부양을 기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인데 사회 분위기를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기도 합니다.

    왜 부양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졌을까요? 저의 가설은 복지제도 발달이 한 가지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복지제도가 발달해서 자녀들이 "내가 안 돌봐줘도 우리 부모님은 먹고 살 수 있다"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 같아서요. 부모도 부양을 당당하게 요구하기가 힘들어 졌구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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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그 부분에서는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복지 부문이 커지면서 노인에 대한 복지가 양육에 대한 복지보다 커져서 인센티브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무임승차 문제 자체는 보육비 지원이 아니라 노인 복지를 줄여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들 때문에 노인 복지를 줄이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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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자녀양육은 이득과 손실을 따진 결과가 아니라고 댓글을 남기고 싶었는데, roundmidnight님의 댓글을 보고 생각해보니, "낳아놓고 5년간 걱정없이 키울 수 있다면 낳는다"라는 예 자체가 출산 후 5년 간의 고생과 자녀양육의 이득(경제적 정서적 등등)을 저울질한 결과이고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저런 식으로 생각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부모가 느끼는 자녀양육의 이득을 측정할 수도 있겠네요.

    flyingbunny님의 말씀처럼 자녀양육이 "투자"와 "소비"의 특성을 모두 가진다고 보면, 부모가 의사결정과정에서 자녀양육을 통한 수익률과 기쁨(효용)을 모두 고려한다는 것도 잘 이해할 수 있겠네요.

    자녀는 그럼 사용 가능한 기간(내용연수)이 부모의 잔존수명 혹은 자녀의 수명인 내구재가 될 수도 있겠군요! 시점에 따라 그 가치가 변하는 특성을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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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글을 읽으면서 느낀건데 우리나라의 저출산대책이 단순히 '육아비용' 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워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육아의 편익' 을 늘리는 것 역시도 저출산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수 있을텐데 말이죠.
    육아의 편익을 직접적으로 늘리기 위한 방안은 대부분 비현실적이어서 (ex. 부모공경의 문화를 확산시키자? 부모를 부모의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보살피도록 하자? 등)답을 하기는 어렵지만 가계가 부유해지고 순자산이 많을수록 육아의 편익은 늘어날 거라고 봅니다. 가장 좋은 예로 '상속의 동기' 가 있지요.. 부모가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당장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면 자녀는 유산상속의 동기로 부모를 더 자주 찾아뵙고 잘한다던가... 결국 가계부채가 줄어들고 가계의 순자산이 상당히 증가해야 자녀는 부모를 잘 모시도록 노력할 것이고 결국 육아의 편익은 커지고..

    그러고 보면 가계부채 문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안이 되겠네요. (가계부채가 줄어들면 개인의 신용이 회복되어 육아비용을 차입시장에서 조달하는 이자비용도 감소하고, 자녀가 부모한테 더 잘하게 되어 육아편익도 증가하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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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정리하면,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에는 변화가 없으나, 각각 자신의 부모를 책임졌던 과거와 달리, 전체 자녀 세대가 전채 부모 세대를 책임지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결국 출산의 비용은 온전히 개별 가정이 부담하지만 수입은 사회 전체에 돌아가기에 ‘무임승차자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정부의 보육비 지원 정책은 사회적 수입과 사적 수입의 괴리를 완화시켜 사회 후생을 키운다.'

    이 부분이 재밌습니다.

    출산에 대해 정부가 얘기하는 보육비 지원이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지만, 그 효과가 있을지 우려가 되네요. 적어도 고'소득' 부모들이 아이들을 더 많이 낳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제 기억이 맞다면 데이타가 그렇게 나왔던듯...) 고소득 여성일수록 아이를 낳는 데에 대한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일텐데, 그렇다면 재산이 많은 (소득이 아니라) 가구의 출산율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만약 이런 가구들도 출산율이 높지 않다면 보육비 지원은 심각하게 재고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전 출산율 그 자체를 올리는 데에 집중하기 보다는 태어난 아기들의 생산성을 늘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교육체계의 개편 등을 통해서요.

    또 이것도 중요한데, 그런 방안이 그 아기들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느끼시겠지만 현재 평균적인 한국 청년들의 삶은 윤택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이런 상황에서 인구만 많아지면 각 개인의 취업은 더욱 힘들어지고, 임금은 더 낮아지고... 태어나는 아기들만 고생스러울 것 같아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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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글을 읽으며 문득 든 생각인데, 과연 출산에 대한 '탄력성'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아기를 낳는데 드는 비용(출산비용)의 변화에 따른 아기에 대한 수요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을지.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소득효과를 제한) 보상수요에 따른 출산의 탄력성을 구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만약 과거와 현재의 출산에 대한 탄력성을 추정할 수 있다면 보다 글의 논지를 잘 지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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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거래비용감소를 위한 노력'도 그것이 모두를 위해 유익하다면 정부개입 없이도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측면은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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