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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내가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

몇 주 앞서서 roundmidnight님과 flyingbunny님이 기회의 평등에 관하여 글을 써 주셨습니다. 그 중 flyingbunny님의 글은 제목에서부터 "당신이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은?"이라고 묻고 계셨는데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해 답해보고자 합니다.
 
최근(오늘)에 flyingbunny님이 언급한 John Roemer의 "Equality of Opportunity"를 조금 읽어보니 '기회의 평등'이란 개념이 상당히 넓게 정의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회의 평등의 개념의 핵심을 추려 말하면 다음 과 같습니다: 각 사람이 그의 합당한 보상만큼을 가져가는 것. (실행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동의를 하고 나면, 그 다음 사람들 간 논란이 주로 일어나는 부분은 '합당한 보상'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우선 이 보상의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각 개인의 생산성입니다. 이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인 능력주의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생산성은 자신의 노력 여하뿐만 아니라 타고나는 것, 환경적인 것에 대한 영향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roundmidnight님과 flyingbunny님의 글에서 논의가 되었던 지능을 예로 들자면, 태어날 때부터 지능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생산성이 대체로 낮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능이 태어날 때부터 낮은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므로, 저는 개인의 생산성으로 보상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각 개인이 노력한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도서관에서 매일 열 시간씩 똑같은 강도로 공부한 개인들은 같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도 올바른 기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똑같이 열 시간 공부를 했더라도, 주의가 산만하게 태어난 사람은 열 시간 공부를 하는 것이 엄청난 고역이었을 반면에 집중력이 높게 태어난 사람은 아주 수월하게 열 시간 공부를 해치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가 산만하게 태어난 것이 그 사람의 책임은 아니므로 저는 이에 따라 보상하는 것은 옳지 않게 느껴집니다. (사실 노력의 정도라는 것이 애매모호한 개념인데, 저는 이런 식으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세 번째는 어떤 환경이 주어졌을 때, 같은 환경이 주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특정 개인의 노력의 상대적 위치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이 Roemer의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아까 지능이 낮은 사람들 중에서 노력의 상대적 위치가 상위 25%인 사람은 지능이 높은 사람들 중에서 노력의 상대적 위치가 상위 25%인 사람과 동일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듣기에 그럴듯한 제안이지만, 저는 이에 반대합니다.
 
제가 반대하는 이유를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국 학생과 한국 학생을 생각해 봅시다. 미국과 한국의 다른 교육문화로 인하여, 한국 학생들은 미국 학생들보다 대체적으로 노력의 정도가 높습니다. 따라서 특정 한국 학생과 미국 학생의 노력의 정도가 동일하다면, 그 미국 학생의 자기 그룹에서의 노력의 상대적 위치는 한국 학생의 그것보다 더 높을 것이고, Roemer의 기준에 따른다면 한국 학생은 미국 학생보다 보상을 적게 받아야 합니다. 이에 동의할 수 있나요? Roemer 본인도 상당히 고민되는 이슈라고 인정하고 있는데, Roemer는 결국 상기의 미국 학생이 한국 학생보다 더 ‘자발적 노력’을 많이 했다는 이유에서 자신의 기준은 틀리지 않았다고 변론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발적 노력’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노예들과 지주들을 생각해 봅시다. 노예들은 지주가 강제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100의 노력을 하고, 지주는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0의 노력을 합니다. 이 경우에 100의 노력을 하는 노예는 0의 노력을 하는 지주와 동일한 보상을 받아야 하나요? 노력의 자발성이 없는 만큼 노예의 노력은 저평가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저는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합당한 보상에 대한 궁극적 기준은 ‘노력을 하느라 힘든 정도(disutility of effort)’입니다. 이렇게 보상을 하면 위에서 발생하는 난점들이 해결되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기회의 평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블로그 멤버들과 얘기하던 중 지능도 기회의 평등에 포함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태어날 때 부터 부자로 태어난 사람과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의 차이를 사회에서 보정해 주는 것이 "정의롭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똑똑한 (예를 들어 좋은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도 보정해 주는 것이 옳지 않냐는 질문입니다. 제가 먼저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다른 멤버들도 여기에 대한 논의를 전개시켜 나가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군요.

  논의의 초점을 좁히기 위해 몇 가지 가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먼저 선천적인 차이는 지능의 차이 단 한가지라고 가정합시다. (지능의 차이를 보정해 준다면 외모의 차이, 성격의 차이, 건강의 차이, 키의 차이 등 수많은 차이들도 보정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어렵지 않냐는 질문은 일단 접어두고 논의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지능의 차이는 완전히 관측 가능하다고 가정합시다. 예를 들어 유전자의 어느 한 부분이 지능의 차이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라고 가정합시다. 또한 지능은 "천재" 와 "범인" 의 두 가지로 완전히 분류된다고 가정합시다.

  이러한 가정 속에서 저는  지능도 기회의 평등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지능의 차이가 우리가 기회의 평등에 흔히 포함시키는 부모의 경제력의 차이와 다른 점이 거의 없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능의 차이를 그렇다면 어떻게 보정해 줄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천재"와 "범인"의 소득 격차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둘의 소득차의 원인은 지능에서 날 것으로 생각하여 둘의 소득차를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각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지능에 대한 보정의 방법일 것입니다. 즉, 지능으로 얻은 소득은 똑같이 나누어 가지라는 것입니다.

  저는 소득을 좌우하는 데에 지능 이외에 "노력"이라는 요소가 존재하고 "천재" 집단의 지능의 효과가 발휘되는 것은 그들이 열심히 노력했을 때만 가능한 상황을 상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분배를 주관하는 사람은 노력의 정도를 관측할 수 없고 노력에 따른 "무형적" 비용 또한 관측할 수 없는 상황을 또한 상정하였습니다.

 링크된 저의 짧은 글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위와 같은 분배 방식은 천재집단이 노력을 하지 않는 쪽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이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열심히 노력할수록 그 대가가 "범인" 집단에게 흘러가니 노력의 인센티브가 별로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보인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경제력만을 고려한 분배의 방식은 천재집단을 노력하게 만들면서도 분배의 효과는 첫번째 방식에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굳이 "지능의 효과를 통제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 보다는 적당한 경제력에 대한 분배규칙을 세우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쓴 글은 간단한 내쉬 균형을 이용하여 이를 보였습니다. 앞으로의 기회의 평등이라는 주제에 대한 논의가 더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012년 7월 17일 화요일

상속세는 공짜점심(Free lunch)일까?

1. 형평이론의 가정


사회효용함수를 가정하거나, 적어도 개인의 효용함수를 모조리 파악할 수 없는 이상, 우리가 어떠한 분배상태가 타당한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분배는 타당하지 않다' 는 소거법을 사용해서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지표로 삼을 만한 것을 알 수 있는데, 가령 우리는 자기자신의 노력수준(투입, input)과 관계없이 산출물(Output)이 평등한 소득분배의 상태를 소득평등도가 높다고는 할지언정 공평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초기조건이나 인적자본의 약간의 차이로 엄청난 소득분배의 차이가 나타나는 상황도 공평하거나 타당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소거해나가면 결국  J. Stacy Adams 의 형평이론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인데, 이는 결국 개인의 '투입 input 대비 산출 output 의 비율' , 즉 O/I 가 일정할 경우 공평하다고 느낄 것이라는 행동양식의 가정이다.

가령 동질적인 개인을 가정하자. 먼저 A라는 사람의 경우, 25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하고, 25년간 5억이라는 금전적 비용을 들여서 평생의 순급여가 25억에 달하는 직장에 취직했다고 하자. 이 때 개인이 25년이라는 시간가치에 부여하는 금액을 편의상 15억이라고 할 경우(1년 = 6천만원), 그의 O/I 는 시간적 기회비용과 금전적 기회비용을 합쳐서 25억/20억 = 1.25 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B라는 사람, 즉 박사과정을 위해 32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하고, 32년간 9억이라는 금전적 비용을 들여서 교수직에 취직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이 사람의 투입비용은 32년의 시간가치인 19억2천만원 + 금전적비용 9억 = 28억2천만원인 셈이다.  형평이론에 따를때 이 사람이 교수직에 취업함으로써 얻는 평생의 순급여는 28억2천만*1.25 = 35억2500만원이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때 포함되는 순급여는 가능하다면 물질적 편익만이 아니라 무형적 편익(명예, 사회적 인식, 지위 등)도 포함된 가치로 계산함이 타당하다. 단 동질적인 직업 간에는 (LG전자의 대기업사원과 삼성전자의 대기업사원 등)  여가로 인한 편익을 제외한 무형적 편익은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무형적 편익(지위, 명예 등)을 계산하는 방법은 보상임금격차나 지불용의기준으로 계산하는 방법이 가능하므로 여기에 굳이 싣지는 않겠다. 예를들어 '상대적으로 사회적지위가 높은 판검사나 경제관료 등이 대기업으로 이직할 경우 어느정도의 연봉이 제시되면 이직하는지' 를 명예와 지위라는 무형적 편익에 대한 지불용의의사 혹은 역(-)의 보상임금격차로 생각하여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형평이론의 중요한 점은 이러한 O/I  의 공정성이 단순히 사회적인 형평성을 제고하는 것 뿐 아니라, 사람들의 경제적인 동기유발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즉, O/I 가 사람간에 비교적 공평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 효율적인 노동(Efficiency labor)을 하려 할 것이고(이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기대되므로), 따라서 무임승차 및 도덕적 해이의 유인이 경감되어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증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2. 상속세는 Free lunch 인가?





이러한 형평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상속세는 단순히 자본에 대한 과세 혹은 재산에 대한 과세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외부성을 치유하기 위한 교정과세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1)O/I 가 개인간에 현저히 불평등함을 가정해보자.
2)O/I 가 현저히 높은 개인은,  산출물( Output)이 어느정도 이상으로 증가하게 되면 산출물로부터의 한계효용이 급격히 체감함을 생각할 때 근로 및 인적자본축적의 유인동기가 그리 커지지 않는다. 따라서 근로의욕과 인적자본축적을 적정수준에 비해 저해할수 있다.
3)반면 O/I 가 현저히 낮은 개인은, 노력수준이 증가하더라도 산출물의 증가(임금소득, 사회적 지위 등)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노력동기가 저해된다. 따라서 근로의욕과 인적자본축적을 적정수준에 비해 저해할 수 있다.

(그저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노력하지 않아도 높은 보상이 보장되는 개인은 당연하게도 노력으로 인한 수고로움을 감수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노력하더라도 별 보상이 없는 개인은 당연하게도 노력해보아야 돌아오는게 없으므로 노력하지 않는다. A+를 80% 주는 과목과 A학점을 1%만 주는 과목이 있다고 할 경우, 이러한 과목 수강생의 노력수준은 A학점을 30~40%주는 과목에 비해 현저히 낮을 것으로 예측되고 또한 나의 성적분포표를 볼때  실제 대학생들의 노력수준, 행동양식을 살펴볼때 당연하게도 실증된다.)


이 때, 상속세가 거의 부과되지 않거나 상속세가 부과되더라도 각종 불법-합법적인 수단을 통한 (ex. 자식에게 소규모 회사를 상속하여 낮은수준의 상속세만을 납부한 뒤 소규모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편법상속) 부의 대물림이 이어질 경우, 개인의 산출물(Output)은 부모의 사회적-경제적 수준이라는 초기조건에 크게 좌우되게 되고, 노력수준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부의 세습에 대해 적절한 교정과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면 형평이론에 따라 개인간의 O/I 가 크게 불공정해짐으로써 개개인의 노력동기를 크게 저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상속세율을 증가시키면서 상속세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될 경우의 이득은 다음과 같다.

[ 장점 ]

첫째. 외부성 치유의 효과이다. 가령 개인간의 O/I 가 크게 불공정할 경우, 개인의 노력수준을 저해함으로써 인적자본축적과 근로의욕수준을 저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앞서의 가정대로 상속세가 개인의 노력동기를 유발하기 위한 교정과세로서 기능하는 이상, 상속세는 외부의 불경제를 최소화시킴으로써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유도할 수 있다.

둘째, 이중배당금 효과이다. 상속세가 교정과세로서 기능하는 이상, 상속세의 수입을 늘리게 되면 그만큼 타 부문의 비효율적인 조세를 감소시킴으로써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가령 자산의 상속에 대해서는 높은 세율을 부과하면서 근로소득세의 세액공제범위를 증대시키거나 근로소득세율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조세로 인한 비효율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에 대해서는 '차선의 정리' 와 같은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 즉 경제전체의 비효율성이 존재하는 이상, 근로시장의 왜곡을 줄인다고 하여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증가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셋째, 자산선택 및 투자선택 왜곡 치유의 효과이다. 상속세가 포괄주의로 운영되어 어떠한 편법을 사용하더라도 조세회피가 불가능하거나 조세회피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면, 기업은 현재 및 가까운 미래의 당기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산선택 및 투자선택을 행하게 될 것이고,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소규모 회사에 비효율적으로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투자선택을 행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노력동기 뿐 아니라 기업의 세전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도 포괄주의로서의 상속세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넷째, 교정과세로서의 역할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상속세 자체는 중립세에 가깝다. 개인 및 기업이 축적한 총자산의 세습에 대해 일정비율로 과세하므로, 적어도 물품시장 및 근로시장에서 왜곡을 일으킬 가능성은 극히 적다.
(단, 이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자기 다음 세대가 누릴 금전적인 편익의 수준이 개인의 효용함수에 반영되어 있다면, 개인이 추가 1단위 근로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실질적인 한계세율은 [근로소득세율] + [(상속할 예정인 자산/개인의 총자산)*상속세율]   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여가-소득 평면에서도 상속세는 중립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러한 장점을 감안할 때, 비록 비판은 존재하지만 상속세를 증가시키면서 효율적으로 운영할 경우, 상속세는 일견 거의 Free Lunch 에 가깝게 운영될 수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해 보이는 교정과세로서의 상속세 역시도 단점은 존재한다.


[단점]

첫째, 개인의 자산축적에 대해 (실질적인) 과세로서 기능하므로, 특히 부자의 저축수준을 저해할 수 있다. 단, 자산감소의 효과가 반드시 저축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중소규모의 기업의 경우 상속세가 과중하게 부과될 경우, 상속세 부담으로 인하여 기업의 자본규모를 매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대기업의 독점도가 심화될 수있다.


물론 첫번째 단점의 경우, 상속세로 인해 부자의 저축수준이 감소했다는 가정을 지지하는 실증연구는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두번째 단점의 경우, 중소기업 규모로 운영되어 일정기간(10년이상) 운영되는 회사는 직원인력 등을 감축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상속세를 감경해 주는 방식으로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 단점을 고려할 때, 상속세는 Free lunch 는 아니더라도 '포괄주의' 로 운영될 경우 거의 유일하게 조세로 인한 편익이 조세로 인한 비용을 상회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과세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물품세나 근로소득세가 포괄주의로 운영되어 개인의 선택을 왜곡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기껏해야 '중립세' 정도가 당해 조세의 효율성 한계이다. 반면 상속세의 경우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면 기업의 자산선택에 대한 왜곡을 일으키지 않을 뿐 아니라, 교정과세로서 개인의 노력수준 저해라는 외부성을 치유하고 타 부문의 조세부담도 경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문제되는 점은 현재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이전되는 순자산에 대하여 조세회피 없이 정률로 부과되는 '진정한 포괄주의에 입각한' 상속세 구조를 설계하는 것인데, 이 점이 가장 큰 난제라고 하겠다.

이에 대하여

1)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하여 상속세와 동일하게 정률로 과세
2)주식을 상속시, 상속후 1년 이내의 주가상승분에 대하여도, 상속세와 동일하게 정률로 과세
(2번과 같은 방법이 거론되는 이유로는, 일부러 상장주식의 가치를 떨어뜨린 다음 주식을 상속시켜 주고, 이후에 당해 기업에 대한 지원을 증가시킴으로써 주식가치를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동일한 자산상속에 대한 상속세 부담을 절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3)해외차명계좌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국제적인 협력을 증진시킨다. 최근에 한국-스위스의 조세조약 개정안으로 인해  스위스은행의 한국인 비밀계좌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음 기사를 참고하라: http://magazine.hankyung.com/money/apps/news?popup=0&nid=02&c1=2002&nkey=2012070200086067622&mode=sub_view
4)통상적인 기업의 순자산액 대비 상속액을 산정하여, 기업의 상속여부에 관계없이 정률로 상속세를 징수한다.

이 중 3)의 방법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방법은 그 자체로서 일정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조세구조를 복잡하게 하여 또 다른 조세회피를 유도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보다 효율적인 '포괄주의' 로의 상속세 이행방안을 생각해 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독자의 분석에 감히 맡기는 바이다.

2012년 7월 9일 월요일

Why Inequality Matters?



Flyingbunny님의 이번 포스트를 읽다가 필자는, 여러 매체를 통하여 불평등, 혹은 양극화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은 알고 있었고 적게나마 그 양상 등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 적 또한 있었지만, 정작 불평등도의 심화가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는지, 특히 어떤 경로로 경제성장1)을 저해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서 이 주제 - 왜 불평등이 문제인가 - 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 하였는데요, 이번 포스트에서는 조사를 통해 찾게 된, 적어도 이 분들의 의견이라면 저의, 그리고 여려분들의 의견을 정립하는 데에 있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세 경제학자분들 - Daron Acemoglu, Joseph E. Stiglitz, 그리고 Mark Thoma -의 의견을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Why does inequality matter에서 Mark Thoma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소득을 얻는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나머지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완벽하게 불평등한 사회 모두 최대속도의 성장을 이룰 수 없으므로, 성장을 최대화 하는 수준의 불평등도는 위의 둘 사이 어디인가에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Mark Thoma가 말하는 최적수준의 불평등도가 존재할 지는 의문이지만 불평등도의 양극단 부근에서 성장이 느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은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상당수 나라의 분배구조변화가 극소수에게 대부분의 부가 편중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2), 앞으로 불평등도는 우리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conomic power begets political power에서 Daron Acemoglu는 1. 사람들은 불평등도가 높은 사회를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2.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그룹은 그렇지 못한 그룹에 비하여 더 많은 자원을 자녀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으므로 불평등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기회의 평등 또한 달성하기 어려워지며, 가장 중요하게 3. 경제력은 정치권력을 낳고 정치권력은 또다시 경제력을 낳기 때문에 지나친 불평등도는 문제가 된다고 말합니다. 로비와 선거자금제공 등을 통한 금융부문과 정치가들 사이의 관계는 금융규제완화를 가능케 하였고, 이는 금융업계종사자들 중 최상위임금소득계층의 임금이 다른 산업의 같은 계층에 비하여 훨씬 빠른 속도로 상승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이는 또한 근래의 금융위기의 발생과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Acemoglu의 예시는 세 번째 불평등도로 인한 문제점이 어떻게 경제발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Of the 1%, by the 1%, for the 1%에서 Joseph E. Stiglitz는 1. 불평등도의 증가는 기회의 감소를 가져오며 기회평등의 감소는 ‘사람’이라는 자산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만들고, 2. 독점력 및 특수이해집단을 위한 조세특례 등 불평등도 증가를 가져오는 왜곡은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이러한 불평등도 증가는 또 다른 왜곡을 통해 경제의 효율성 저하를 심화시키며3), 가장 중요하게 3. 현대경제는 정부가 주축이 되어 투자하는 사회기반시설, 교육, 그리고 기술 등을 필요로 하지만, 최상위 소득계층은 이러한 것들을 정부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충당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의 조세부담으로 돌아올 정부의 이러한 투자를 원치 않고 이는 (현재의 미국과 같이) 부의 편중이 심한 국가일수록 정부에 의한 투자가 적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불평등도는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이유의 경우, 금융위기가 전개되고 있을 당시 보조금을 받아 회생한 금융기업들이 곧바로 보너스잔치를 벌였던 일을 떠올린다면 이것은 그렇게 비관적인 예측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경제성장과 평등주의에 기반 한 소득분배의 공평성, 즉 불평등도의 완화가 서로 상충관계에 있는 듯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논쟁합니다. 하지만 위의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하여 불평등도의 완화는 반드시 달성되어야 할 목표임에, 즉 경제성장과 불평등도의 완화는 함께 추구되어야 할 목표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1) 왜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불평등도 문제만큼이나 복잡하고, 방대한 소재이기에 이번 포스트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2) Income inequality in America에서 볼 수 있듯 많은 분석들이 이것이 사실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 이 글에서 Stiglitz는 수많은 재능 있는 젊은 인력들이 천문학적인 금액의 보너스를 좇아 더욱 생산적이고 건강한 경제를 만들 수 있는 산업이 아닌 금융업에 발을 들이는 현실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 미국의 경우, 상위 1%의 연소득은 미국경제 전체의 25%이고, 그들의 부는 전체의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 How does inequality matter - 이곳은 이 주제에 관한 “금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