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환영회식사

2013년 7월 7일 일요일

저녁이 없는 삶

   우리나라가 살기 녹록하지 않은 이유를 대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대표적인걸 하나 꼽으라면 ‘야근이 만연한 문화’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정이 다가오는 어두운 밤 테헤란로를 걷다 보면 참으로 많은 사무실에서 불이 훤하게 켜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늦은 밤에도 미처 퇴근을 마치지 않은 사무실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지요. 주요 건물입구에는 택시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고, 도심 밖으로 가는 버스 안은 심야에도 만원입니다.

   물론 이 장면을 시시때때로 보는 저 또한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니 어찌 보면 야근(?) 대열에 동참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밤 늦도록 일하는 건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흔한 일입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은퇴를 앞두신 지금까지 저녁 7시 전에 퇴근하신 경우가 드뭅니다. 이제 막 취업을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 연수 생활 동안 새벽까지 밤을 새는 것이 다반사라 합니다. 한국의 직장인 하면 어째 밤늦게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다른 무엇보다 떠오르는게 우리의 현실이지요.

   실정이 이러하다 보니 지난 대선에서 야당 유력 후보가 ‘저녁이 있는 삶’을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가져온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는 많은 것을 함축합니다. 심야에도 멈추지 않는 업무, 반납되기 일쑤인 주말, 부족한 휴가, 그리고 업무의 연장선인 회식까지. 생각해 볼만한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족과 함께하는 느긋한 ‘저녁’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또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 야근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에서 매우 높습니다. 2011년 기준으로 2193시간이며 이는 OECD 평균보다 417시간 가량 높은 수치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가입 이후 이 부문에 있어서 줄곧 선두에 위치하다가 2008년 무렵에서야 겨우 멕시코에게 1위를 내주었습니다. 또한 고용노동부가 최근 6개 업종의 근로시간을 조사한 결과를 보아도 기업의 88.6%가 법정 연장근로 한도인 주 12시간을 초과해 근무했고, 39.9%는 휴일에도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는 특히 IT 같은 일부 업종에서는 더욱 두드러져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IT 개발자의 경우에는 연 평균 2906시간을 일한다고 하니 이는 독일, 노르웨이 등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그럼 일을 많이 하는 만큼 생산력이 높은가 하면 또 그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OECD에서 조사한 근로자 1인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보면 우리나라는 최하위권에 속하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볼 때 OECD 평균의 61.9%로 30개 국 중 28위 입니다. 야근이 만연한 현 노동 관행이 무척 비효율적이다라는 것을 시사하는 바입니다. 사실 비효율성을 떠나서 근로 시간의 과잉 그 자체가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건강문제와 가족문제, 삶의 질 저하, 문화 산업의 부진은 이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2. 원인은 무엇인가

   과잉 근로 문제에 관해 보다 중요한 이슈는 원인일 것입니다. 일단 많이들 지적되는 문화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으로 생각합니다. 상급자 보다 일찍 퇴근하기 어려운 문화가 주로 제시되는데,  기업이 이윤추구를 하는 집단이라면 이러한 비효율적인 관행에 대해 제재를 가할 유인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나라 안에서도 여러 산업군, 직군에 따라 초과 근무가 잘 발생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공존하는 것을 보면 문화 외에 다른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출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노동 공급 측면(Supply Side)입니다. 무엇보다도 최저생계 유지를 위해 근로자들이 어쩔 수 없이 과잉 근로와 야근을 선택한다는 것이 이에 대한 주요 논리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제로 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생각해 볼 때 이들은 임금수준에 따라 노동 공급 시간을 조절할 것입니다. 사실 경제원론에서 나오는 정태적 노동공급 곡선(후방굴절곡선)을 떠올려보면 시간당 임금이 낮을수록 대체효과가 우세하여 노동공급시간을 감소한다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기는 하지요. 그러나 이는 여러 현실적인 측면을 간과한 논리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한 시점에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소득을 거두고 소비를 합니다. 따라서 노동공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미래소득을 거두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하고 능력퇴보를 막기 위한 최저생계비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가 소득을 잇기 위해서는 가정을 꾸릴만한 비용도 충당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최저생계비가 미래 노동능력 확보를 위한 고정비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임금은 초과 근로를 통해 상쇄되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합니다.

  이는 실제로 노동계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생산직 근로자들의 경우 기본급 비중이 낮고 또 시간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연장근무와 휴일 특근 등 시간외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고 호소하곤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법정 최저임금이 비슷한 소득의 다른 국가들보다 상당히 낮은 것도 이에 대한 논거로 활용됩니다.


  두 번째로는 노동 수요 측면(Demand Side)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1인당 노동시간을 늘림으로써 사내 노동자의 수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것이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유리하다는 논리입니다. 한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서 100시간의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할 때, 10명이 10시간 투입하는 것보다 20명이 5시간 투입하는 것에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기업은 초과 수당을 주어서라도 5명이 20시간씩 일하도록 하는 것을 더 원할 수 있겠지요

  기업의 입장에서 후자가 유리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와 같이 고용이 경직된 나라에서는 최대한 정규직의 수를 줄이는 것이 경기 변동에 대응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불황 시 높은 해고비용을 감수하는 것보다, 적은 사람을 고용하고 호황 시 초과수당을 주어 1인당 업무량을 늘리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 있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무직에서 주된 인사관리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는 팀제 조직구조 (team-based)가 이를 촉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미국 권에서 주로 쓰이는 직무제 조직구조와 구분되는 것으로 직무 별로 뚜렷한 업무 분담이 정해져 있지 않고 팀 단위로 유연하게 업무가 그때그때 나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 소수의 인원이 오랜 시간 동안 일하는 것이 다수의 인원이 적게 쪼개서 일하는 것보다 조정비용이 적게 발생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본 것은 네트워크 효과입니다. 한 경제 내에서 야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가 발달하여 개인들이 더 부담없이 야근을 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우리나라는 어찌 보면 야근을 하기 좋은 인프라를 잘 갖추었습니다. 늦은 밤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전혀 불편함이 없고 24시간 여는 편의점, 미용실, 병원, 식당들이 주거지와 상업지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심야 인프라 자체가 밤 늦게까지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발생한 산업들입니다. 덕분에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야근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의 입장에서도 야근을 유도하기 어려움이 없는 것이지요. 양성 피드백과 유사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3. 우리는 ‘저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야간 근로 비율이 매우 높은 이유에 대해 여러 경제학적 원리를 곁들여 살펴보았습니다. 모 취업포탈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81.4%가 야근을 하고 있다고 답했고 일주일 야근 횟수의 최빈값은 5번이라고 합니다. 상당수의 근로자가 하루도 빠짐없이 평일에는 야근을 한다는 뜻이지요. 이는 분명히 비정상적인 수치입니다. 실정이 이러하다 보니 과잉 근로를 문제시 하는 사회적인 합의 또한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앞서 보았듯이 다양한 부분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부의 노력 역시 다방면으로 진행될 수 있겠지요.

  사실 밤낮없이 근면하게 일하는 것은 산업화 시대의 바람직한 가치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이것이 빠른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 성장 패러다임은 노동투입에서 인적 자본의 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의 상태는 오히려 과유불급이라는 말에 어울리지요. 우리에게도 가족들과 함께 느긋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들이 언젠가 올 수 있을까요? 그래도 근 10년 동안 조금씩 개선되어 오고 있다는 점은 조금 희망적입니다.

댓글 3개:

  1. 이 글을 아무래도 제 삶에 대입해서 읽다보니... 학생들의 '저녁'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학생들의 과잉공부(?)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만약 위에서 제시한 네트워크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면.. 중도3열 및 중전의 닫는 시간을 단축시키거나 강제 소등하고, 교내 위치한 각종 편의점들을 없애면 학생들의 과잉공부(?)가 강제적으로라도 줄어들 수 있을까요?ㅋㅋㅋㅋㅋ 밤새 공부할 공간이 사라지고, 밤새 식량을 공급해줄 곳이 사라진다면?

    답글삭제
  2.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지난 번 글도 그렇고 이번 글에서도 OECD 통계를 인용한 것이 눈에 띄네요. 혹 OECD의 어떤 보고서들을 참고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답글삭제
  3. www.oecd-ilibrary.org/statistics
    여러 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있습니다.
    국가별 비교 자료를 간편하게 따올 수 있어서 좋고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