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환영회식사

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세상이 원하는 인재?

- 시험을 보는 이유에 대한 짧은 생각-

 중고등학교 때 종종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을 만한 질문. 이제는 대학생들도 재수강을 고민하며 중얼거리는 질문: 시험은 왜 보는 걸까요? 그리고 그 시험 결과는 왜 학생들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요?

 시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불만을 나열해 보면 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줄 세우기 간편하다는 이유로 사용하는 오지선다 OMR 카드 방식의 정기고사는 더더욱 그러하지요. 학생들이 관심있는 주제를 깊게 공부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얕게 샅샅이 공부하도록 유도합니다. 창의적인 학생들에게 오히려 불리할 수 있습니다. 주관식 평가라고 완전무결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문제가 제시되냐에 따라 응시자의 성적이 크게 좌우되며 평가자와 가치관이 다른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내신평가' 타입의 정기고사가 전반적으로 가지게 되는 문제를 거시경제학 시간에 배우는  '유동성제약'에도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유동성 제약'에 직면한 기업은 장기 프로젝트에 마음껏 투자하기 어렵고, '유동성 제약'에 직면한 부모들은 자녀의 인적자본에 마음껏 투자하기가 어렵지요. 거시경제에서 배우는 '유동성 제약'이 '돈'에 대한 것이라면, 시험 공부에서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학생들은 정기고사 스케쥴에 맞추어야 좋은 '성적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공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학생들 마음에 자연스러운 호기심이 생겼을 때 가장 공부의 효율이 높아진다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이는 인적자본 축적에서의 효율성 저하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예컨데 과학 시간에 배운 자기장 이론이 재미있어서 대학생용 물리학 서적을 깊게 공부하고 싶어도, 다음주에 있는 중간고사에서 열세 과목을 시험본다면, 마음편히 대학생용 물리학 책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정규 교육 기관에서 주기적으로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학생들이 자신이 과목의 핵심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앞으로의 공부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지표로 사용하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 본인에게 제공하는 '정보'로서 의미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시험의 누적된 결과를 학생에 대한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험 결과는 왜 학생들의 미래에 이리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걸까요? 가면 갈수록 수시 모집의 비율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수시에서 논술이나 구술고사, 수상경력 등의 지표가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학생부의 비중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평범하게는, 학생들의 합리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은 미시 이론에서 말하는 Principal-Agent 모형과는 다릅니다. 학생들의 인적자본은 그대로 학생들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합리적인 학생들이라면 추가적인 유인이 제공되지 않더라도 인적자본 축적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겠지요. 하지만 Pass/Fail 제도로 운영하는 과목을 듣는 학생들은 "시험을 안 보니 공부를 안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따라서 학기초에 학생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구속'하는 방법으로 정기시험을 보는 방법을 선호할 수 있겠고, 이것이 제도화된 것이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이유는, 현대 우리 사회가 '천재보다는 범재를' 선호하는 사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시험 제도가 Principal-Agent 모형과는 다르다고 했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signalling 모형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고교 내신성적)이나 기업/대학원/전문대학원(학점)에서 어떠한 signal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는, 그 기관의 선호를 반영하겠지요. 정기고사 성적을 꾸준하게 좋게 유지한 학생은 '성실한' 학생입니다. 함께 일하는 team project를 운영하기에는 일의 성과에 변동성이 큰 '천재'보다, 꾸준히 열심히 일하는 '범재'가 더 많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읽은 교육경제학 논문에도 '교육이 사람의 인적자본 자체를 늘리는 것 이외에도 그 사람의 '성실성'을 길러주기 때문에 유용하다는' 비슷한 주장이 있었습니다(정확한 논문의 출처는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선 때마다 교육정책은 늘 뜨거운 감자가 됩니다. 어떤 정책을 의도대로 운영하려면,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의 배후에 있는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 글이 우리나라 교육이 왜 지금처럼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을 시작하는 하나의 씨앗이 되면 좋겠습니다.

댓글 5개:

  1. 천재보다 범재를 선호하는 현상과 대학에서 내신, 수능으로 선발하는 현상은 어떤관련이 있을까요? 대학에서도 천재보다 범재를 선호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답글삭제
    답글
    1. 사실 대학의 '주체'가 누구이고, 대학은 무엇을 '극대화'하는 주체인지에 대한 물음에 저는 아직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이 만일 학생들의 평균적 '기대임금'을 극대화하려 한다면, 대학은 사용자들의 선호를 반영할 것이고, 따라서 범재를 선호할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머리가 아주 뛰어나면서 성실한 학생이 가장 좋겠지요) 단 여기서 말하는 범재란 '천재성'은 없지만 '성실함'과 '충분히 높은 사고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삭제
  2. 우리 사회(특히 대학 등이)가 천재보다 범재를 선호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본고사와 분야별 경시대회(물론 여기서 좋은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꼭 천재는 아니겠습니다만..)와 같은 대회의 수상경력 등의 비중이 제한적이고, 마땅한 '잠재력' 측정지표도 크게 부족한 입시 제도의 특성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떤 사람의 진정한 잠재력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보니까, 개인의 실력을 '비교적 확실하게' 대표할 수 있는 Proxy 를 선호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천재' 보다는 '성실한 범재' 를 뽑게 되는건 아닐까요.
    (서울대학교의 경우도 제 기억으로는 단 10분~20분 정도의 짧은 면접이나 3시간에 걸친 논술의 비중을 합친 것이 사실상 당락을 크게 좌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전적으로 수능에 의해 좌우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과연 개인의 잠재력을 얼마나 10분간의 면접으로 잘 파악할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남지요.)

    대학마다 자율적으로 긴 기간 동안 학생들의 행동특성이나 발상력, 사고력 등등을 측정하면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대학교에는 진짜 분야별 잠재력이 높은 학생이 뽑혀질 것이라고 봅니다만.. (물론 한국의 경우 연줄만 있으면 어떻게든 활용해서 대학이든, 직장이든 취업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워낙 강해서, 이러한 문화가 없어지지 않는 한 저런 제도의 실효성은 떨어지겠지요.)

    답글삭제
  3. '공정한' 평가를 위해 '정확한' 평가를 위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다차원적인 능력을 1차원에 projection하는 '상대평가'에 자체 대해서도 약간의 회의가 듭니다.
    한편 어떤 기준이던지 1차원적 평가를 하게 된다면, 환경에 따라 그 사람의 잠재력이 발휘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대학에서 어떠한 학생을 선발할지 판단하는 이상적 기준은 '우리 학교의 환경에서 가장 많이 발전할' 사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답글삭제
  4. 천재보다 범재를 선호하는 이유로, 천재가 기존 기득권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인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 고위층, 정계 인사, 재벌 가문 등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집단들은 자신들보다 창의적이고 뛰어난 천재보다는, 자신들의 시스템 하에서 "부려먹기 좋은" 범재를 선호할 것 같고, 제가 그들이어도 그럴 것 같거든요.

    교육 시스템이 현재의 형태를 띠게 된 데에는 역사적인 요인도 많이 작용했을 것 같아요. 모든 시스템이 마찬가지겠지만, 그 시스템 종사자가 많아짐에 따라 시스템 변화를 막는 관성이 커지는 바람에 작금의 상황이 고착화되지 않았을까 싶구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