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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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있을까?

 경제학에서는 최근 보건경제학 (Health Economics)이라는 분야의 연구를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건 경제학이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여러 경제 변수들과 건강 변수들의 관계를 보는 것인데 이 분야가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삶의 질"을 측정하는데 있어서 건강 변수가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격언처럼 건강이란 경제적 변수로 측정할 수 없는 삶의 질의 한 부분을,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한 부분을 나타내는 척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보건 경제학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주제 중 하나는 경제력과 건강의 관계입니다. 이는 쌍방의 관계가 될 수 있는데요, 한 가지 질문은 "경제력이 높으면 건강이 좋아질까?"이고 다른 한 가지는 "건강이 좋으면 높은 경제력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여기서는 전자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경제력이 좋으면 건강이 좋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를 정확하게 테스트하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건강을 종속변수에 소득을 독립변수에 놓고 회귀분석을 진행하면 윗 문단에서 언급한 건강이 소득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제대로된 추정치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를 계량경제학에서는 "역인과성" (reverse causality)라고 부르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학자/보건학자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해왔지만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문헌은 James P. Smith의 "The Impact of Socioeconomic Status on Health over the Life-Course" (Journal of Human Resources, 2007) 입니다. Smith는 단순히 현재의 건강과 경제력의 관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건강을 통제했을 때 현재의 경제력이 앞으로 일어날 "건강사건"과 관계가 있는지를 보려고 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두 사람 A와 B가 현재 건강상태가 똑같고 A가 B보다 소득이 높다면, 앞으로 5년동안 병에 걸릴 가능성이 A가 B보다 낮을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Smith의 논문의 결론을 얘기하면 현재의 경제력이나 자산은 앞으로 일어날 "건강 사건"과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식에 반하는 놀라운 결과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Smith 이외에 이 주제를 다룬 다른 연구들의 최근의 추세는 이와 비슷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인 듯 합니다. 즉,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없다"는 말이 맞는 듯 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한국에도 적용이 될까요? 제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Smith와 같이 경제력과 건강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정확히 식별하려는 노력을 한 한국의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직접 Smith와 비슷한 방식의 분석을 한국의 데이터를 사용해서 진행하였습니다. 제가 사용한 자료의 출처는 5년간 진행된 한국복지패널입니다.

  저의 연구가 Smith와 비교해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의 데이터를 사용했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 샘플의 크기가 Smith는 4000~7000개인데 비해 저는 11000개 정도로 더 큽니다. 셋째, Smith의 데이터는 1980~2000년 사이의 관측치인데 저의 데이터는 2006~2010년 관측치로서 과거의 추세가 최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지 알아보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를일이니까요. 넷째, 저의 연구에서는 Smith가 시도해보지 않은 몇 가지 추가적인 분석을 진행할 예정 입니다 (추가적 분석은 아직 미완료단계입니다)

  저의 연구의 결론부터 말하면 분석 결과는 Smith와 매우 유사하게 나왔습니다. 2006년의 소득이나 순 자산은 2006년에 건강했던 사람이 2007~2010년 사이에 병을 얻게될 확률과 유의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관계가 유의했던 변수들은 나이 (고령층일수록 병이 잘 걸립니다), 2006년의 자기자신에 대한 주관적 건강평가 (건강평가가 높을수록 병이 잘 안걸립니다), 교육 (교육 수준이 높을 수록 병이 잘 안걸립니다), 담배피는 양 (담배를 많이 필수록 병이 잘 걸립니다) 등 이었습니다.

  Smith의 연구와 정 반대로 대치되는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는 Smith의 경우 현재 취업해있는 사람은  미래에 병이 걸릴 확률이 낮아지는데 비해, 한국의 데이터는 정 반대의 결과, 즉 취업상태가 오히려 미래의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업무환경이 열악하거나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Smith의 분석에서 더 나아가 새롭게 시도해본 것은 "아동기의 경제적 생활상태"라는 미래의 건강 악화를 예측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분석 결과는 매우 관계가 깊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 정도"라는 변수와 미래의 건강과의 관계 또한 매우 유의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참고로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 정도"는 주기적으로 소득으로 잡히는 부분이 아닌, 결혼 할 때 집을 마련해 주었다던가 자동차를 선물로 주었다던가 하는 일시적인 증여의 성격의 부분을 말합니다.  결국 이는 "부모님의 재력"의 척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동기의 경제적 생활상태"나 "부모님의 재력"이 건강과 유의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결국 현재의 경제상태가 아닌 아동기 때의 경제상태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흥미로운 결과로 이어집니다. 즉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없지만 내 자식의 건강은 살 수 있다"라는 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아동기 때의 건강이 평생의 건강의 매우 큰 부분을 좌우한다는 많은 연구결과를 볼 때, 아동기때의 유복한 생활은 아동기 때의 건강을 향상시켜서 평생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해석이 가능할 듯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 또한 가능합니다. 건강의 상당부분이 유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면 부모가 좋은 "건강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좋은 건강으로 인해 경제력이 높아지고 그 자식은 좋은 건강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남과 동시에 유복한 아동기를 보내게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그 자식이 성년이 되어 좋은 건강을 누리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지만 마치 유복한 아동기가 그 원인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될 수 있습니다.

  아동기 때의 경제상태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지는 아직 생각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가진 자료로 식별이 불가능한 주제일 수도 있겠지요. 또한 이 외에도 Smith의 결론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다른 분석방법 들이 있을지도 생각해 보고있는 중입니다.

독자분들의 조언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정결과에 대한 데이터와 Smith의 논문은 요청시 보내드리겠습니다)
 

댓글 3개:

  1. 제 블로그 글이 도용되서 여기저기 알아보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성들여 쓰신 글이 출처가 제외된채로 도용되고, 그걸 돈벌이로 사용하다보면 오히려 님의 글이 검색 서비스에 전혀 노출 되지 않는 상황이 됩니다.

    제가 이와 관련하여 제 블로그에 글을 적어두었습니다.
    님께서 작성하신 글도 다수가 그렇게 불법으로 복제되었네요.

    http://resoneit.blogspot.kr/2012/11/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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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도 이에 대응하여 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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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슷한 직업환경 + 비슷한 생활습관(흡연/비흡연, 음주, 육식/채식 등등)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경제력을 변수로 놓고 측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하지만 유전적 소양은 통제변인으로 놓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부모님의 유전병력을 통해 본인의 유전적 소양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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