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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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7일 금요일

똑똑할수록 민주적이다?

‘(민주화가 덜 된 사회에서) 시민들의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그 사회는 더욱 민주적으로 변한다라는 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뜻 생각하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되어 민주화를 촉진하리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교육이 기존의 권위, 통치구조에 개인을 더욱 순응하게 만들어 민주화에 장애가 될 것이라 생각할 수 도 있을 겁니다.

이에 관해 최근에 읽은 The EconomistEconomic Focus 기사가 있습니다.
(http://www.economist.com/node/18864777이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NBER 워킹 페이퍼에 따르면, 케냐에서 60여 초등학교의 여학생들에 대해 장학금을 받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무작위로 나눈 후 그들이 성장해 감에 따라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갖게 되는지 연구했다고 합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오래 교육을 받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장학금을 받아 고등교육을 더 오래 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독립적이고 전통의 권위에 대해 덜 수용적이었다고 합니다. (케냐라는 국가와 여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 기존의 주어진 여성에 대한 성 역할에 대해 더 저항적이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현상이 곧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더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었다는군요. 즉 교육이 개인들로 하여금 보다 더 사회적으로 적극적인 삶을 추구하도록 만들기는 했으나 그것이 시민활동이나 정치 공동체에 대한 참여를 높였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교육을 더 받을수록 민주주의에 대해 경멸하고 비민주적이지 않은 체제 (예컨대 엘리트 독재와 같은)를 선호할 가능성도 있다고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중요한 점은 단순히 교육을 몇 년 더 받았느냐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북한과 같은 국가에 들어가 위의 케냐에서의 연구와 같은 실험을 시행한다면 학생들이 민주화에 대해 더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교육이 민주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려면 단순히 양적인 교육 연수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질적인 질문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공식적인 부문 : 해당 국가는 민주주의에 대해 학생들에게 어떤 의식을 갖도록 의도하는가.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과정에서 정치 공동체,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가.

비공식적인 부문 : 교실 밖의 영역에서 학생들은 정치 공동체, 민주주의에 대해 교육 받을 여건이 얼마나 잘 조성되어 있는가.
 
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저는 한국의 1980년대 대학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국에서 대학이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연구할 때 에만 집중한다면 교련교육을 받고 (매우 극우적인) 국민윤리 수업을 의무로 들어야 했던 한국의 대학 교육은 민주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 보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클럽, 세미나 등으로 대표되는 의 비중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1980년대 한국의 대학생들이 한국의 (절차적) 민주화를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케냐의 연구 사례에 대해서도 보완할 점을 똑같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에 대해서는 교육학이나 정치학 전공자도 아니고 해서 어떤 식으로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에 대해서는 저는 사회의 다양성을 측정하는 방법들을 사용하면 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육기관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교실밖 교육은 일차적으로는 새로운 연결망이 많아질수록,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 새로운 연결망들이 기존의 것보다 더욱 다른 환경의 사람들을 연결할 때 더 잘 이뤄질 가능성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케냐의 경우도 이후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대학에 갔을 때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얼마나 더 사회적 관계의 연결망이 많아지는지, 또 얼마나 다른 지역, 소득, 종교 등을 가진 학생들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는지를 측정해 본다면 교육이 개인의 민주화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더 잘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써놓고 보니 이게 경제학 블로그에 적합한 글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Degrees of democracy (The Economist. 2011.06.23.)

Education as Liberation?
(Willa Friedman, Michael Kremer, Edward Miguel, Rebecca Thornton. 2011. NBER Working Paper)

댓글 10개:

  1. 혹시 교육 정도의 국민들 간 편차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소수의 몇몇 학생만 교육을 굉장히 많이 받으면 본인들이 엘리트라는 생각이 강화되어서 민주주의를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을 듯 한데요. 교육의 분산 정도를 control하고 교육년수를 민주주의 정도에 대해 회귀돌려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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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리있는 주장이네요...분산의 정도라기보다, 한 국가 안에서 국민들의 교육을 받는 연수 분포의 치우침(skewedness)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걸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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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민운동 등에 참여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하신 1,2의 경로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것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치참여를 통해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이 두 요소에 의해 주로 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 케냐의 여학생들의 경우,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선호는 증가했지만, 엘리트사회로 진입하면서 시민활동을 통해 개인적으로 얻을 수 이익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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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시민운동 등에 참여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하신 1,2의 경로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것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치참여를 통해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이 두 요소에 의해 주로 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 케냐의 여학생들의 경우,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선호는 증가했지만, 엘리트사회로 진입하면서 시민활동을 통해 개인적으로 얻을 수 이익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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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글을 써놓고 보니 2,3,4 저자 모두 (특히 Labor, Development, Political Economics쪽에서) 유명한 대학 경제학과들의 이름있는 경제학 교수들인데 논문의 가장 주저자인 1 저자는 처음 보는 이름이라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버클리 경제학과 박사과정생이군요. 박사과정생이 교수 3명과 공동 연구를 하면서 1 저자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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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혹시 이름이 Friedman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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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안그래도 저 영어 이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럼 나도 경제학자들 중에서...(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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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분의 이름을 따서 폴 최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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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직관적으로 생각하자면 '제도권' 고등교육을 받고 제도권의 선호되는 일자리에 취직할수록 민주주의적이기 보다 엘리티시즘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보입니다. 다만 초-중등 교육의 확산으로 인한 문맹률 저하 및 기본적인 교양의 강화는 민주주의의 확산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경제사에서도 초등교육의 증가와 민주주의의 확산은 비교적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요. (오히려 대학원이상의 초 고등교육은 비민주적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일까요? ^^;)

    경제사 부분에 관심이 많다면 한번쯤 탐구해 볼 주제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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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민주주의가 현대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을 쉽게 만들어주는, 경제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거래비용을 줄여줄 수 있는 '제도'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제도의 확산에 냉전시대 이후로 계속된 미국의 전 세계에 대한 간섭정책이 관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같네요.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건, 오늘날에는 정치체제가 어떻든 민의를 대체적으로 반영(또는 통제)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때, 민주화의 '정도'를 구분하는 것이 어떤 함의가 있는지(특히 민주주의가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것은 전혀 다른 논의가 되기 때문에) 조금 궁금하기도 합니다.

    곁다리로, 더 많은 민주화가 모든 이들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실현하기가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니 로드릭에 따르면 이른바 세계화에는 trilemma가 존재하는데, 민주주의 국민국가, 고차원의 세계화는 두 가지를 택하면 어느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하는 그런 구조를 가진다고 합니다. 세계화가 진행될 수록, 확실히 어떤 측면에서는 민주적 요소를 침해받는 면이 있다고 보이네요. 이를 테면, 한미FTA때 문제가 되었던 여러 이슈들은 국민들의 동의가 실질적으로 있었다고 판단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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