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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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복지지출은 공짜 점심일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논술 학원 선생님 분들 중 많은 분들은 과거 운동권이셨던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가 고3 겨울방학 때 논술 학원을 다니면서 배웠던 내용은 진보적인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당시에 굉장히 놀라웠던 자료는 OECD 회원국들의 GDP 대비 복지지출을 비교해놓은 표였는데, 우리나라가 GDP대비 복지지출이 가장 작은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2007년 자료에 따르면 멕시코 다음으로 작지만, 당시엔 가장 작았습니다.) 더군다나,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비슷한 경제 수준의 나라와 비교해서도 복지 지출 비중이 굉장히 낮은 편입니다.

(자료: OECD, 2007년)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복지를 확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특히 복지를 반대하는 논리의 중심에는 복지지출 증대가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복지지출이 늘리려면 증세가 필요하고, 증세는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실증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해 줄까요? 이 부문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린더트(Peter Lindert)에 따르면, 놀랍게도 복지 지출은 GDP에 대한 영향이 없다는 것으로 연구자들 간 합의(concensus)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이론과 실증의 차이가 나타났을까요?

  린더트는 Why the Welfare State Looks Like a Free Lunch라는 글에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 중 핵심적인 것 두 개만 뽑자면:

(1) 복지국가들의 조세 방법(부문별 세율 등)은 타 시장주의 국가들의 조세 방법에 비해 더욱 성장 친화적이다.

(2) 복지 수혜자들이 work and training을 회피하지 않게끔 하는 장치들을 복지 국가들이 고안해 내었다.

  한마디로 말해, 시장주의 국가들에 비해 복지 국가들은 조세 및 복지 제도를 더 합리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린더트는 이에 대한 이유를 복지 지출이 커질수록 복지정책의 경제적, 정치적 중요도 역시 증가하는 데에서 찾습니다. 즉 복지 예산이 커질수록 얼마나 효율적으로 복지예산이 집행되는지가 국가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국민들도 더욱 복지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 하의 복지 국가에서는 복지 및 조세 정책에 관하여 정치인들이 신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복지 예산을 전부 재산세로 충당한다거나 하는 엉망인 제도 하에서 복지지출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다면 GDP에 굉장히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은 린더트도 인정합니다. 다만 린더트가 강조하는 것은, GDP에 악영향을 끼칠 정도로 엉망인 제도를 가진 복지 국가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린더트는 복지 국가로의 이행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통해 복지 및 조세 제도가 효율적으로 변하는 사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린더트의 연구를 통해 본다면 우리나라 역시 복지 지출의 양적 변화 못지않게 복지 및 조세 제도를 올바로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 1. 린더트의 연구 결과는 정치적 결정을 내생 변수로 봐야만 하는 좋은 예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복지 정책을 고정(ceteris paribus)시키고 복지 예산만 변화시키는 식으로 복지 예산 증대의 결과를 추론(extrapolate)하면 안 될 것입니다.
  • 2. 우리나라의 국방비 비중이 높아서 복지지출이 낮은 것은 아닌지 질문하셔서 찾아봤는데, 그 영향이 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0년의 경우 국방비가 GDP2.7%이고, 반면 세계 평균 2.5%네요.
  • 3. 스웨덴이 복지지출을 늘리기 시작한 시점에 얼마나 잘 살았는지에 대해 질문하신 분이 계셨는데, OECD는 복지지출 자료를 80년까지 제시해서 그 이전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1980년 당시에 스웨덴의 GDP대비 공공 복지지출은 이미 27.2% (현재 27.3%)였고, 1인당 GDPOECD base year기준 달러로 $20363 였습니다. 한편 2001년 한국의 1인당 GDPOECD base year기준 달러로 $27865입니다.
  • 4. 린더트는 복지 제도의 특정 부문들은 GDP를 직접적으로 올리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로 보육에 대한 지원은 여성의 노동 공급을 늘리고, 공공 의료 서비스는 노동생산성을 올립니다. 이는 양의 외부효과에 대한 보조금 지급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댓글 9개:

  1. 밑에서 두 번째 문단에 관련해서 그렇다면 정치 참여의 정도 내지 정책 결정과정에 대한 관심과 복지지출의 규모 간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복지지출이 커질수록 투표율이 올라간다든지, 아니면 시사토론 프로그램(예컨대 100분토론) 시청률이 올라간다든지.

    그리고 덧2에 관련해서 생각이 드는게 한국은 다른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징병제를 택하고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뜬금없는 생각. 똑같은 국방비를 쓰더라도 군대를 의무로 가는 사람들 먹이고 입히는데 쓰는 것과 직업이 군인인 사람들 월급 주는 것과는 다르게 봐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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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첫번째 질문에 대해: 제가 글을 잘 못 써서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복지예산이 클수록 그만큼 그 나라에서 복지정책이 갖는 중요성이 커지고, 그러므로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이 복지정책이 올바로 시행되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였습니다.

      두번째 질문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 다르게 봐야한다는 것인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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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참고로 Choiecon님 댓글 보고 밑에서 두 번째 단락을 의미가 좀 더 잘 통하게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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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 첫번째, 두번째 모두 글에 대한 반박 내지 질문이라기 보다 그냥 '그렇지 않을까요?'하고 든 생각을 적은 것이었어요.

      두번째에 대해서는...그냥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 봤을 때 미국의 경우 '병사'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직업'이 되고 그렇기에 구직을 하는데 있어 '군대'라는 직장을 고려하는 폭이 넓어지잖아요. 카투사로 복무한 이들에게 듣기로 미군의 경우 병사들 중에는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혹은 집안 빚을 갚으려고 입대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결국 이것이 복지의 측면에 있어서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그러니까 모병제 국가의 국방비 지출은 징병제 국가의 그것에 비해 더 복지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어요. 별개로 똑같은 1원의 국방비 지출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승수효과도 징병제와 모병제에서 다를 것 같기도 하고...저도 잘 정리가 안되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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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토론해야 할 문제는 복지예산을 늘리느냐 줄이느냐가 아니라 미시적 차원에서 복지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이겠네요. 또한 복지에 대한 경제학적인 분석은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계량적인 접근보다 어쩌면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모형을 만들고 예측하는 structural approach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그 모형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만드느냐가 관건이겠지요. 경제학 모형 만드는 건 어쩜 낚시를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호수의 물고기를 모두 낚으려면 호수의 모든 표면에 낚시줄을 던져야겠지만(게다가 현실 경제가 계속 변하듯 고기들도 계속 헤엄쳐서 위치를 바꾸고요), 고기들이 몰려있는 몇 점만 잘 찍어도 노련한 낚시꾼은 거의 다 낚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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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합리적 기대 논의와 큰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복지예산이 늘어남으로써 사람들이 rational하게 반응하여 자신들의 효용에 영향을 크게 줄 복지정책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정치인으로써의 optimal decision이 바뀌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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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Choiecon // 그 예산이 어떻게 쓰이든지 GDP 대비 비중이 비슷하다면 과도한 국방비 지출 때문에 복지지출이 적다는 말은 반박할 수 있겠지요.

    복지예산을 전부 재산세로 충당하는 것을 안 좋은 재원 조달 방법의 예로 드셨는데 그 이유를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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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린더트의 연구를 보면, 재산세로 재원을 많이 조달하는 경우 GDP가 심히 감소하는 실증적 결과가 있구요.

      이론적으로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자본이동이 노동이동보다 용이하고 따라서 세금에 대해 탄력적으로 반응할 것이기에 자본에 세금을 많이 부과하면 자본이 국외로 유출되기가 쉽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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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좀 뜬금없지만..
    국방비에 대해, 복잡한 부분에 대해서 차치하더라도, 한국의 국방비는 선진국 가운데선 꽤 높은 편인거 같아요. OECD 자료를 보면, GDP 대비 국방비가 2%를 넘는 나라는 미국, 영국, 한국 밖에 없고, 국방비 지출 금액으로도 전체 7위 수준이더군요. 많은 국가들이 국방비로 GDP의 1% 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1대1로 서로 영향받는 건 아니겠지만, 복지수준이 우수한 선진국들의 국방비와 복지비의 추세를 비교해 보는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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