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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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월요일

그들의 세계


1917년의 맨하탄 어딘가, 이탈리안들의 축제로 복잡한 거리. 크림색 중절모를 적당히 기울여 쓴 남자가 노점상들에게 물건을 요구하며 거만한 걸음을 옮긴다. 그의 움직임을 쫓아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지붕을 오르내리는 젊은 남자. 이윽고 크림색 중절모는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벽 뒤에 숨겨놓았던 흰색 타월로 둘러싼 권총을 찾은 젊은이는 그 건물의 옥상 문을 연다. 복도의 깜빡이는 램프, 전구를 살피다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던 크림색 중절모는 흰색 타월 안에서 발사되는 총알을 맞고 쓰러진다.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2, 1974

지하경제, 어떤 곳일까요??

흔히 지하경제라고 부르는 우리 경제의 한 부분은 이탈리아의 마피아, 우리나라의 조폭 등으로 대표되는 1. 불법경제, 합법적 시장에서 이루어지지만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태어나는 2. 보고되지 않은 경제(불법입니다), 그리고 행정상의 어려움, 또는 실수로 생겨나는 3. 기록되지 않은 경제, 등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지하경제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넘어 그 규모가 상당하다는 점과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다는 점, 그럼에도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이겠지요.

우리나라의 지하경제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요? 위의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지하경제에 국한하여 그 규모를 분석한 Friedrich Schneider et al. (2010)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규모는 2007년 기준 명목GDP대비 25.6%로 멕시코, 그리스, 그리고 이탈리아에 이어 OECD국가 중 4위, 조사한 120개국 중 75위(1999~2006년 평균)에 랭크되었습니다. 이 수치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명목GDP의 25.6%는 정말 대단한 규모네요.

여기서 잠깐, 지하경제의 규모는 어떻게 알아내는 것일까요? 지하경제는 그 특성상 정부기관에게 그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그 규모의 직접적인 계산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좋을 텐데요, 하여 경제학자들은 예의 계량적 추정방법 등을 사용하여 이를 알아냅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제가 아직 공부를 덜 했습니다ㅜ)하겠지만, Edgar L. Feige의 The underground economies, 1989에서는 discrepancy method, currency ration method, 그리고 transaction method를, Friedrich Schneider et al.의 Shadow economies all over the world, 2010에서는 M0, 경제활동참가율, 그리고 노동인구증가율을 사용하여 지하경제 규모를 추정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하경제가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일까요? 학부 미시 시간에도 나오듯, 상대가격을 왜곡시키는 조세의 부과는 사람들의 선택에 혼란을 가져와 경제의 효율을 저해합니다. 그 정의상 조세부과가 불가능한 지하경제의 경우, 적어도 이러한 범주 내에서 ‘드러난 경제’에 비하여 효율적일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겠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지하경제의 존재는 경제 전체(= 드러난 경제 + 지하경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하경제의 존재가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자명한 이야기일 수 있겠습니다. 명목GDP의 25%나 차지하는 지하경제의 존재는 정부의 재정확보를 어렵게 만들 것이고, 정직한 국민으로부터 부정직한 국민에게로 소득을 이전시킬 테니 정직하게 일하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에 더하여 경제지표의 관측을 부정확하게 만들어 정부의 잘못된 정책처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적어도 저에게는 꽤나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특정년도의 한 경제성장이 대부분 지하경제에서 이루어 졌다면 그 경제의 공식 성장률은 매우 낮을 것입니다. 이때 정부에서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확장적 정책을 사용한다면 실제 경기는 과열되고 말겠지요(Edgar L. Feige의 The underground economies에서는 기록된(관측된) 경제와 기록되지 않은 경제(지하경제)를 포함한 실제 경제가 capacity output에 있을 때 완전고용정책은 stagflation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기안정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에게 지하경제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관심을 갖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를 이해하기위해 보아야 할 자료가 많아 아쉽지만 이번 포스트는 이렇게 간략하게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지하경제는 탈세만큼이나(사실 탈세 또한 지하경제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이 주제, 꽤나 흥미롭지 않나요?



참고문헌

Feige, E. L. et al. (1989). The underground economies: Tax evasion and information distor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Schneider, F., Buehn, A. and Montenegro, C. E. (2010). Shadow Economies All over the World: New Estimates for 162 Countries from 1999 to 2007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 No. 5356, World Bank, Washington D.C.

박명호, (2010). 우리나라 자영업자 가구의 소득탈루율 추이분석. 한국조세연구원, 서울

김현숙, (2006). 자영업자 사업소득 추정방법에 대한 소고. 한국조세연구원, 서울

정재호, (2010). 산업연관표를 이용한 부가가치세 탈루규모 추정. 한국조세연구원, 서울

댓글 5개:

  1. 사실 제가 방학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드라마를 좀 정주행했는데, 2005년에 방영했던 '제5공화국'이었습니다. 이덕화님 연기가 좀 짱이었죠.

    아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니고...

    거기 보면 김재익 경제수석의 건의로 5공 정권 때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드라마에서 김 수석이 전두환에게 금융실명제를 건의하면서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면 지하경제에서 도는 거액의 자금들이 다 드러나게 되고 이에 대해 과세함으로서 국가 재정이 튼튼해질 뿐 아니라 경제 정의의 실현에도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아시다시피 정치자금 등의 문제가 걸리면서 금융실명제 도입은 이후 김영삼 정권에 가서야 이뤄집니다만.

    이렇게 금융실명제등이 '전격적'으로 도입 될 때 해당 국가의 지하경제 규모는 크게 축소될 것 같은데요, 이것이 경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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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하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순히 개인이 직면하는 조세율을 왜곡시킨다는 데 있지 않고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외부불경제가 큰 산업을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게 만든다는 데 있지 않을까요? 이탈리아와 같이 마피아의 세력도가 큰 국가의 경우, 각종 범죄율의 증가로 인한 사회적 안정성의 저해, 마약 등 불건전한 약품의 남발로 인한 국민의 건강저해 등.. 지하경제를 자영업자들의 탈세 혹은 조세회피행위를 위한 영업으로만 새긴다면 맞는 말씀입니다만, 실제로 외부 불경제의 경제적 효과가 다른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압도할 수준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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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나라 유흥업소들에서 이루어지는 불건전한 (?) output이 GDP대비 몇프로 정도 될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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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오....좋아요를 50개쯤 눌러주고 싶어요.

      이거 누가 경제학 쪽에서 '제대로' 연구하면 굉장히 재밌을 듯.

      (찾아보니 여성학 쪽이나 법학 쪽 연구기관들에서 실태조사를 하는데 보니 2~4% 정도로 정확하지 않은것 같아요. 말이 GDP의 1~2% 오차지 실제로는 몇 조 단위씩 조사가 차이가 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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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DP에서 2~4 percentage point인가요? 그래도 연구된 바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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