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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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4일 수요일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잡설 1.
경연에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6월에 한창 시험때문에 바쁠 때 제가 글을 올리는 날이어서 은근히 안 올리고 넘어갔다가 시험 끝나고 올리려고 했는데, 당시에 제가 관심갖고 조사하던 게 data를 돌려보니 제 생각이랑 다른 결론이 나와서 엎어버리고 여차여차 하다보니 7월 것도 안 올리고 넘어갔습니다. 일단 8월은 제 날짜에 올렸는데, 두달 안 올린 글은 이번 달 안으로 두번 정도 더 포스팅을 해서 채워놓도록 하겠습니다.

잡설 2.
경제학 전공자들이 아니더라도, 모든 분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에 책 한권 추천합니다.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라는 책인데, 개인적으로 제가 최근에 읽었던 많은 책들 중 가장 많이 공감하고 충격받은 책입니다. 밑에 글은 안 읽으셔도 어쩔 수 없지만 책은 꼭 한 번 사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가격은 17000원, 페이스북 페이지도 있습니다. (
https://www.facebook.com/pages/%EC%A0%9C%EB%A1%9C-%EC%84%B1%EC%9E%A5-%EC%8B%9C%EB%8C%80%EA%B0%80-%EC%98%A8%EB%8B%A4/337844056287107?fref=ts) 책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저까지 12명밖에 안 된 것은 좀 아쉽네요.



본문

예전에 경영대 금융 동아리에서 활동을 할 때, 동아리 동기 중에 물리학과 박사과정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군대도 안 가고 계속 공부를 했던지라 내년 말 정도가 되면 이제 박사님이 됩니다. 수학이나 물리학 전공을 하는 분들 중 이렇게 금융권에 관심 있는 분들이 간혹 있고, 이 친구도 그런 케이스였죠. 전혀 다른 background를 가진 탓에 어떻게 보면 너무나 기초적인 경제상식이나 회계지식을 그 친구가 잘 몰라서 다른 동아리원들이 알려주기도 했었지만, 반대로 저희가 손도 못 대는 아주 복잡한 파생 상품 수식이나 트레이딩 기법을 너무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작년을 마지막으로 저와 이 친구는 동아리 활동을 끝냈고, 그러다보니 올해 들어서는 가끔 동아리 행사 때나 얼굴 보는 게 전부가 됐습니다. 매일같이 만나다가 두세달에 한번 정도 보게 되니 참 생소할 지경이었죠. 그런데 올해 초쯤에 술자리에서 그 친구가 저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면서 물어보는 겁니다. "태준아 근데 경제성장은 왜 해야 되는거냐? 그냥 지금의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면 안되는거야?" 저는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당연한 그 질문에 저는 도저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제 성장은 학부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많았던 주제들 중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앞으로 평생 공부해야 할 기업재무보다도 더 좋아했던 주제기도 했구요. 2010년에 고시한다고 학교를 쉴 때 이지순 교수님이 이 수업을 강의하신 뒤, 3년동안 이 수업 개설을 안 하셔서 학교 수업으로는 못 들었지만 따로 교과서까지 사서 읽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주제였는데, 정작 그 친구의 당연한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관심은 있었지만, 정작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문제 의식을 갖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 것인가? 성장을 하지 못하면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이 현재 선진국 국민이 누리는 소비 생활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 역시 그 나름대로 문제겠지요. 그러나 아주 critical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하지 않으면 현재의 통화. 금융 시스템은 멈추고 그래서 현재의 경제 체제가 유지될 수가 없다는 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일반적으로 실질 이자율은 실질 성장률과 1:1 대응되는 변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rough하게 이야기하자면 실질 이자율은 제가 돈을 지금 빌려줘서 희생해야 하는 유동성에 대한 대가의 성격과 그 돈을 가지고 굴려서 얻을 수 있는 수익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이제 돈을 가지고 굴려서 수익을 얻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상태에서 돈을 빌려주고 빌려받는 행위는 '호혜'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누군가 선심쓰고 "나는 일단 당장 돈 안 쓸테니 니가 그 돈 지금 쓰고 나중에 본전만 보장해줘."라는 행동양식을 모든 사람이 보일 때만 대출과 차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이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하겠죠. 저는 이 지점에서 작년에 화폐금융론을 들을 때 이필상 교수님이 내셨던 문제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균형 이자율을 구하는 어떤 문제였는데 답이 0%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학생들은 "뭐 이런 허접데기같은 문제가 있어?"라고 불평하면서 문제를 풀어냈는데, 교수님이 나중에 시험 채점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자율이 0%인 상황에서 아무 대가없이 본전만 받고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이 없으므로 두 주체 간 대출.차입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군가가 답을 써주기를 바랬는데, 아무도 그렇게 쓴 학생이 없어서 다들 2점씩 깎았다고 하셨을 때 저조차 너무 어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의미를 알거 같습니다. 노교수님은 너무나 간단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않는 부분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이런 문제뿐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부채가 있고 성장이 멈추면 그 부채에 딸린 이자 상환이 안 되면서 채무 불이행이 늘어나고 그 결과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이 감소하고 소비가 줄어드는 연쇄적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금융시스템과 현대의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죠.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입니다. 우리의 모든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릴 변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책 내용은 너무 방대해서 이 책의 저자가 만든 동영상 두개로 일단은 넘어가고자 합니다.

http://socoop.net/endofgrowth/whokilled.html

http://socoop.net/endofgrowth/300years.html

(한글 자막 있습니다.)


대충 내용은 에너지, 물, 광물이 바닥나면서, 특히 그 중에서도 석유가 바닥나면서 경제 성장동력이 멈추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절대 아니고, 유명한 1970년 [성장의 한계]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왔던 내용들이죠.) 최근의 금융위기의 본질적 원인도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면 자원의 문제로부터 상당부분 기인한 것이며, 동시에 현재의 금융위기는 그러한 자원고갈에 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앗아가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양자가 동시에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셈이죠. 본질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지난 250년간의 급속한 성장의 본질은 '화석연료 혁명'이었으며 지속적으로 그러한 에너지를 제공해줄 수 있는 다른 대체 자원이 없으면 이러한 성장은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그런 대체자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런 대체자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그들도 지적하는 것은 절박하게 그런 대체자원을 찾는데 엄청난 노력이 투입될만큼 기존 자원의 가격이 매우 높은 수준까지 올라야 한다고 한다는 점입니다. 만일 그 상황이 된다면, 대체 자원을 설사 언젠가 찾아낸다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저 개인적으로는 드는군요. 좀 더 이론적 배경이 궁금하신 분은 Weil의 [경제성장론] 교과서 17장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환경오염의 문제는 더욱 본질적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원고갈, 환경오염, 현재의 금융시스템이라는 3가지 요인은 모두 한 데 얽혀있으며, 성장이 멈추는 시대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모든 현재 생활 방식의 붕괴를 수반합니다. 이렇게 야밤에 컴퓨터를 두들기며 잉여력을 발휘할 수도 없을 것이고, 스마트폰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운송수단을 통해 자유롭게 지구 반대편을 여행다닐 수도 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수반할 것이고 몇십년 몇백년 전으로 (물질적 수준이) 퇴보하는 듯한 결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마 우리 세대는 인생의 말년이나 되어서야 이런 위기를 경험할 수도 있고, 어쩌면 위기를 겪지 않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고통을 겪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 가까운 우리 후손이 이런 시대를 겪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석유만큼 쉽게 퍼올릴 수 있고, 석유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주는 획기적인 자원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요. 이런 대전환 시대를 대비해서 고통을 최대한 축소시키고 새로운 삶의 기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이 책은 논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경제학 서적이면서, 동시에 철학 서적이고, 자원과 관련된 서적이며, 역사서이고, 동시에 인류학 서적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학문에 대한 저자의 엄청난 내공에 감탄하면서 재밌게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다른 학문에 전혀 조예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경제학과 경제사의 전반에 대해 조명한 1장과 최근 세계 금융. 통화 시스템의 위기를 살펴 본 2장은 대학다니면서 배운 경제학의 엑기스만 정리해서 요약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훌륭합니다. 기껏해야 110쪽 정도의 분량에 그런 내용을 담는 것은 보통 내공으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겠죠. 그리고 이 사람의 본업은 환경 전문가 겸 환경 운동가이기 때문에 아마 뒤쪽은 더 훌륭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그 쪽에 대해서는 내공이 없으니 추측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시카고 학파의 거두였던 로버트 루카스는 "이런 질문들(경제성장과 관련된)이 인류 복지에 대해 함축하고 있는 바는 실로 엄청나다. 일단 이런 것들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어렵다."고 1988년에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경제학에 많은 분야가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이 더 잘 먹고 더 잘 돈 쓰면서 더 행복하게 사는 것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생각할 때 '성장'이라는 문제는 가장 본질적인 것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댓글 1개:

  1. 저도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경제성장은 필요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이 금융으로까지 이어지니까 정말 흥미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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