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환영회식사

2013년 8월 10일 토요일

경제학 저널의 경제학적 분석

   대학은 학문을 위한 공간입니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나 행정 업무도 근본적으로 따져 보면 지식 탐구 과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학술 활동이 이루어지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은 논문의 저술과 출판일 것입니다. 수개월, 때때로 십 수년에 걸친 연구과정이 하나의 글(article)로 요약되어 주변 이들에게 검증을 받고 또 공유가 됩니다. 출판된 논문은 그 연구자의 성과입니다. 그래서 보통 학자의 일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저널에 게재하는 것을 일컫지요.

   논문을 싣는 것에도 경쟁이 있습니다. 전 세계 학자들이 내놓는 논문의 수는 매년 어마어마합니다. 하지만 지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편집자들은 좋은 논문을 미리 선별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AER이나 JPE와 같은 유수 저널의 투고 통과율은 7%가 채 안 된다고 하니 그 경쟁의 세기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저명한 저널에 실린 글들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출판된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저작자에게 큰 이력이 됩니다.

   우리 경연 필진들에게도 논문이 비단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겠지요? 오늘은 한 번 경제학자들의 논문 투고 과정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1) The “Dismal Science”

   경제학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일은 ‘어렵다’와 ‘오래 걸린다’ 두 가지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 경제학은 유난히 논문 출판이 어려운 분야로 손꼽힙니다. 자연 과학의 경우 석사생 심지어 학부생의 논문이 제1저자로 탑 저널에 실리는 경우가 빈번한 반면 경제학은 박사 과정 졸업생 중에도 출판 이력을 가진 학생이 매우 드물지요. 그만큼 하나의 논문에 투입되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크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들 조차 예외는 아닙니다. 에커로프는 정보경제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Lemon Market 논문을 게재하기 까지 무려 네 번이나 거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참고1) 그가 처음 받았던 거절 사유는 “trivial stuff”였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샤프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준 CAPM도, 폴 크루그먼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준 Monopolistic Competition도 한 때는 심사위원들로 부터 비참하게 퇴짜를 맞았었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경제학도들로서는 논문을 싣는 것이 참으로 고난의 길이라 할만합니다.

  또한 경제학 저널은 길고 긴 출간 소요시간으로 유명합니다. 연구자가 논문을 제출한 시점에서부터 수정을 마치고 게재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평균 2년 이상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최근 들어 더욱 악화되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참고2) 그렇다면 다른 분야는 어떠할까요? 자연과학 분야의 저널인 Nature지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1차 리젝션 까지 보통 1주일이 소요된다고 하고 모든 심사위원들은 규정상 또 다른 1주일 내에 심사결과를 제출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또한 각 분야 탑 저널 기준으로 물리학은 평균 1.3개월이고 수학은 평균 5.5개월, 정치학은 7.6개월, 철학은 5.8개월 그리고 경제학은 26.3개월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참고3)

2) “Why Papers Fail”

   그렇다면 왜 경제학에서는 유독 저널의 투고 기간이 길고 어려워진 걸까요? 같은 사회과학 분과 안에 속해 있는 정치학이나 방법론이 유사한 수학과 비교할 때 소요기간이 훨씬 긴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를 분명하게 논증한 글은 잘 없는 것 같은데 제 입장에서 생각한 몇 가지 가설을 써볼까 합니다. 다수의 투고자와 소수의 명망 있는 저널이 각기 경쟁하는 양상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투고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논문을 제출할 저널을 고르는 것이 선택변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시장에는 상이한 특성을 가진 저널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어떤 저널 A는 명성이 높은 대신 게재 확정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저널에 출간되기 까지 거듭 수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투고자는 아이디어를 보다 세련되고 정교하게 표현하기 많은 시간을 투입하여야 합니다. 반대로 어떤 저널 B는 명성이 낮은 대신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빠른 시간 내에 게재확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투고자들의 무차별 곡선도 그릴 수 있겠지요? 이때 다른 자연과학과 비교되는 경제학의 특성은 적시성의 필요가 낮다는 것입니다. 사회변화가 기술변화 만큼 빠르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대다수 투고자의 입장에서는 논문을 신속하게 게재할 유인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학 학계에서는 신속성이 높은 저널보다는 스크리닝 과정이 엄격한 저널들의 비중이 높을 것입니다.

   한편 저널 편집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스크리닝의 엄격함과는 별개로 저널 편집인은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보다 단축할 수도 늘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심사를 해본적은 없지만-_- 사실 한 논문을 읽고 검토하는데 경제학만 유독 수십 개월이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 조사에서도(참고2) 논문 검증에 직접 투입된 시간은 하루 이틀 남짓하고 나머지 수개월은 프로세스가 지체되는 것 때문에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명문 저널들이 이런 지체를 방치하느냐? 저는 역선택의 문제(Adverse Selection)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널 편집인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많은 논문이 투고 되는 것 보다 양질의 논문만 소수 오는 것을 원할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저널 게재 프로세스 기간을 길게 잡는 것은 논문의 질에 자신 있는 투고자만 지원하도록 유도할 것입니다. 논문의 질에 자신 있는 투고자는 심사 후 게재 확률이 높기 때문에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손해 보는 것이 적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없는 투자자는 괜히 오랜 프로세스에 붙들리고 게재도 못하는 것 보다 빠른 결과를 내는 저널에 투고하는 게 유리할 것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경제학은 상대적으로 적시성에 대한 필요가 적기 때문에 편집자들의 입장에서도 프로세스 소요 시간을 늘리는 것이 비용보다 이득이 높을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경제학 학계의 구조적 특성입니다. 경제학은 대학교 뿐만 아니라 민간 및 정부 연구소의 비중이 높은 분야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대학 교수들의 논문이 실리는 저널과 이들 연구소에서 내놓는 논문은 출간 과정 자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보통 연구 기관들은 자체 간행 채널을 이용하지요. 이는 아예 학계 밖 연구가 존재하지 않는 정치학, 수학이나 아니면 민간연구 논문들이 학술 저널에 함께 실리는 물리학, 공학 등과 대비되는 경제학의 특성입니다. 이때 주목할 것은 경제학 연구기관들이 주로 적시성이 높은 연구 수요를 충족하는 데 주력한다는 점입니다. 경기 불황에 대한 정책 과제나 금융 위기에 대응한 새로운 금융 제도의 필요성 같은 것들이 이에 속합니다. 실제로 우리 학교 교수님들도 보면 이런 주제의 논문들은 한국은행이나 KDI를 통해 출간하실 때도 있으시지요. 이처럼 경제학도 신속함을 요하는 주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2차 시장에서 상당부분 흡수되기 때문에 학술저널의 경우 더욱 적시성의 필요가 낮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지금까지 경제학 논문 투고 과정의 특성을 여러 원론적 개념을 곁들여 설명해 보았습니다. 아직 저는 직접 겪어 보지 못했습니다만 참으로 길고 고된 과정임을 짐작이 됩니다. 한참 논문을 쓰느라 고군분투 하고 있을 박사 과정 선배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사실 위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투고 과정이 길기로 만만치 않은 분야가 하나 있는데 이는 통계학입니다. 18.8개월이라고 하니 그래도 경제학보다 8개월 밖에(?) 안 짧은 셈입니다. 이를 문제로 인식하였는지 얼마 전 통계학의 유수 저널인 Annals of Statistics에서는 길고 긴 R&R(Revise & Resubmit)과정을 폐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논문이 투고되면 심사위원들은 게재or거절 여부만 단번에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보다 신속한 논문 간행을 도모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합니다.

   과연 경제학도 언젠가 이런 움직임이 있을 날이 올까요? 아니면 현재의 구조가 공고하게 유지될까요? 물론 저야 학계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니 전혀 짐작을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내심 전자를 바라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인가 봅니다.



참고1: Gans and Shepherd (1994) "How Are the Mighty Fallen: Rejected Classic Articles by Leading Economists", The Journal of Economic Perpectives

참고2: Ellison (2002a), "The Slowdown of the Economic Publishing Proces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참고3: Ellison (2002b), "Evolving standards for Academic PublishingL A q-r theory",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댓글 2개:

  1. 재밌는 글이네요. 거시경제학을 바꿔놓은 P.Romer의 내생적성장이론 논문 역시 출판까지 엄청나게 시간을 잡아먹어서, 심지어 그거 때문에 조교수 정년 심사시 '논문 업적 부족'으로 테뉴어를 못받을 뻔 했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역선택 문제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 도 있고'라는 생각이 드는게, 제가 전에 듣기로 Job Market 논문을 쓰면 일단은 '상향지원'하는 것을 권한다더군요. 탑저널이든 그렇지 않은 저널이든 대부분 심사 기간은 어지간히 길기 때문에 일단 되든 안되든 좋은 저널에 먼저 내 보고 (기다리면서는 다른 연구 하다가) 리젝 먹으면 코멘트 반영해서 필드 내 조금 수준이 낮은 저널로 다시 내고 이런 식으로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하기 때문에 탑저널 통과율이 낮은 이유도 그 저널이 탑 저널이기 때문에 이런식으로 '일단' 내고 보는 논문의 수도 적잖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퀄러티가 실제로는 아주 좋지는 않더라도 일단 저널에 투고 한 다음에, 'Submitted to AER / JPE' 뭐 이런식으로만 써 놓아도 어느정도 '포장'이 되는 효과도 있을 것 같고.

    아무튼 재밌는 글 고맙습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앗 잠시 초고를 올린사이 읽어보셨군요 참고자료를 다시 달았습니다

      말씀해주신 부분도 타당한 것 같습니다. 사실 역선택 이야기를 쓴 것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탑저널의 소요시간이 하위 저널의 소요시간보다 길게 유지된다는 거에서 출발한 것이었는데, 자세한 내부사정을 더 살펴보아야 겠지요.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