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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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가난 증명"



오늘도 자존심 따윈 내던져야 한다. 기초수급을 받으러, 장학금이나 복지혜택을 받으러, 턱없는 보험료를 낮추러….

누가 누가 더 힘들고 고통받는가, ‘고생의 올림픽’이 벌어진다. 남 앞에 가난하고 곤궁하다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도 힘든데, 일일이 공증 서류로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믿어주는 세상. 몇 끼를 굶었는지 위 엑스레이를 찍어 제출해야 할 날도 멀지 않았다.



한겨레 신문 12월 29일자에 "김한민의 감수성전쟁"이라는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마침 대학원 장학금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던 터라 여기에 있는 말이 와닿더군요.


그런데 저는 "가난증명"을 엄격하게 하는 현실이 전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 증명"을 대충대충 하는 장학금제도, 복지제도를 상상해봅시다. 그러한 제도 하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로 돈이 많은 사람도 장학금을 받고 복지혜택을 받는 것이며, 그로 인해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예전보다 "가난을 증명"해야되는 일이 많아진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복지제도, 장학금 제도가 이전보다 더 많아졌기 때문 아닐까요?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이 이전보다 좋아진 제도를 누리는데 "가난 증명"은 필연적으로 치뤄야할 대가이며, "가난 증명"이 엄격할 수록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제로 돌아가는 몫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댓글 5개:

  1. 별 생각 없었는데, 글쓴이 말이 백번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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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용하신 글 자체에 대해서는 타당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사회, 복지 혜택을 위한 '가난 증명'이 엄격한 사회, '가난 증명'이 방만한 사회를 비교한다면 두 번째가 가장 낫겠지요. 하지만 문제를 좀 더 크게 해석해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사이의 선택으로 놓는다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느껴집니다. '가난 증명'이 엄격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몫이 줄어든다는 말은, 걷는 세금이 동일하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소득세를 걷어 모두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점점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시대에 노골적인 선택적 복지는 자칫 계층 간 위화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득 격차의 어느 정도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어느 정도를 그의 운에 의한 것으로 돌릴지 사회적 합의부터 필요하다고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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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난 증명의 강도가 걷는 세금의 양에 변화를 주는 요소는 아닐 것 같으니, 복지예산 총액이 일정하든 변하든 간에 가난 증명은 엄격히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별적 복지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기업 회장님 입장에서 자녀의 보육비를 지원받고 안 받고는 그 가족 구성원 전체의 효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보육비를 돌려 어려운 가정을 지원한다면 그 가정의 효용은 크게 증가하겠지요. 파레토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완전 보편적 복지보다 선별적 복지가 옳은 것 아닐까요? 물론, 모든 사람에게 차고 남을만큼의 보편적 복지를 할 수 있는 재원이 있다면 불필요한 논의겟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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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실제 학교에서 본 사례를 이야기하자면.. 저소득층에 대한 학생급식제공(서울을 제외한 학교는 대부분 유료급식이죠..) 혹은 저소득층에 대한 방과후교육 수강권 등을 제공받는 학생들은 그 사실을 지극히 부끄러워하며 본인의 형편이 어려운데도 이러한 저소득층 혜택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아마도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이라는 것에 대한 반 아이들의 비웃음, 따돌림 때문이 아닌가 싶군요.)

    가난 증명이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러한 개인 정보를 수혜자 소속 집단의 외부에서 관리하거나, 혹은 수혜자 소속집단 내에서 관리한다면 개인 정보가 최대한 노출되지 않거나 이로 인한 교우관계의 불이익이 없도록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적어도 저소득층 초, 중, 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가난 증명' 에 대한 혜택 제공에 대해서는요.)

    물론 바우처 제도 및 전산화처리 등으로 인해 예전보다는 누가 저소득층 학자금 지원, 방과후 수강증 등을 받는지에 대해 보다 덜 알려진 편이긴 하지만, 실제로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학교나 기타 기관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의 신상정보에 대해 그다지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는 듯합니다.

    요약하자면 가난 증명은 엄격한 증빙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하되, 그 증명과 그에 따른 수혜자의 정보는 가능한 한 노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정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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