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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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5일 수요일

4천원인생 - 현실을 비추는 창(窓)이자 경제학적 고민을 일으키는 촉매

 한겨레21 기자들이 쓴 4천원인생이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열악한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네 명의 저자가 기자 신분을 숨긴 채 한 달 간 실제 노동자 생활을 한 뒤 적은 수기이다. 감자탕집, 가구공장, 할인마트, 난로공장에서의 노동일기는 우리에게 "경제학"이라고 이야기하는 학문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난로공장에서의 일화 중,

 공장은 철수, 원식, 지원, 영순, 은숙이 아닌 그냥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라는 대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배운 경제학에 따르면, 공장주의 입장은 너무나 당연하다. 철수와 원식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을 때 생산성의 차이가 거의 없다. 지원, 영순, 은숙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오랜 시간 근속한 사람과 몇 일, 몇 주 일한 사람의 작업능력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너트를 조이는 일의 반복은, 그 반복횟수의 밀도가 다를 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장은 현재 인력을 대체할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보충할 수 있는 한, 현재 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경제적 유인(incentive)이 없다. 따라서 생존에 급급한 수준의 낮은 임금, 직원들 간 대화의 암묵적 금지. 관리 상태가 엉망인 공장 화장실, 그 흔한 의자 하나 놓아주지 않는 것 모두가 합리적 판단의 결과이다.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생산량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고[1], 일자리는 항상 초과공급 상태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4천원인생은 우리의 감정을 동요시킨다. 책 속 노동자들의 삶은 안타깝고, 부당해 보인다. 저임금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현 상태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혹자는 4천원인생을 단순히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한 글로 매도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저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타당한 논리에 의해 도출된 경제학적 원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이 기반하고 있는 가정이 올바르지 않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재화의 소비로부터만 효용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재화의 소비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건강한 정신과 육체 등으로부터도 많은 기쁨을 얻는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외부효과로 취급하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현실을 보면 "외부"효과가 "내부"효과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300쪽 가량의 지면에 빼곡히 등장하는 저임금 노동자들 중 행복해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삶의 이유, 목적은 평생 동안의 탐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어려운 문제이다. 다만, 인간이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으로서 인격을 상실한 채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이유와 목적에 결코 부합하지 않을 거라는 직감, 확신이 든다. 분업은 단위 시간당 생산되는 재화의 양을 증가시켰음에 틀림없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자가 삶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감소시켰을지도 모른다. 또한 일자리에서의 소소한 대화, 쾌적한 화장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작업할 수 있는 의자 한 개는 생산량 증대에 비견되는 행복의 증대를 이루어낼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의 소비자와 기업은 별개의 경제주체이지만, 사실 기업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곧 소비자이며, 기업이 만든 재화를 소비하는 것이 곧 노동자이다. 노동자들에게 고임금을 줌으로써 구매력을 높이고, 대량생산을 유지했던 포드주의(Fordism) 축적 체제가 죄수의 딜레마의 형태를 띠는 "자본가의 딜레마"를 해결함으로써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했던 것에서 짐작해보건대[2], 경제학의 경제주체 구분(생산자와 소비자)을 현실에 아무 비판 없이 적용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 증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수 있다.

 현실과 이론 사이의 괴리를 직시하고 그 간극을 줄여나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경제학도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론 학습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짐으로써 실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창(窓),  이론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촉매로서 작용할 만한 "4천원인생"을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하며 글을 마친다.





[1]하지만 근무환경 개선을 통해 불량률을 대폭 감소시킨 기업들의 사례가 종종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기도 하다.
[2]류동민, 자본주의 호황의 원천 '고임금', Economy Insight, 2011

댓글 4개:

  1. 저임금 직장의 근무환경 개선은 기업가 입장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효과가 있겠지요. 기존 경제학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자 증가를 불러올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즉, 근무환경 개선 의무화 등의 제도가 실업자 증가로 이어질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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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무환경 개선 의무화보다는, 포드 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영자의 패러다임 전환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 구성원 모두가 잘 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측정할 수 없는 효용까지 합한다면 이윤극대화를 위해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보다 더 기업에도 이익일 거라는 어렴풋한 "믿음" 때문이지요.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자 증가로 이어지는 것 역시, 경영자의 마인드가 그대로인 채 제도가 도입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선구자적 기업, 인물이 등장해야 제 믿음을 뒷받침할 사례가 될텐데, 아직 제가 애용하는 매체들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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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현재의 상황에서 다른 조건이 동일한 채 '근무환경 개선 의무화'만 도입된다면, roundmidnight님이 말씀하신대로이겠지요. 보다 체계적인 복지 정책이 필요할 것 같고, 그러한 정책의 배경에 webspider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을 더 잘 반영하러 노력하는 경제학'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책 추천 감사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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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는 것은 동태적 거시경제이론 수업에서도 엄청 강조되었던 내용이지요 :)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밖에서 보는 현실과 직접 겪는 현실 역시 무척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하루종일 투명인간으로 사는 마트 종업원 분들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나네요. 열 시간 넘게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 생활의 반복...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 중, 우리가 체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 전혀 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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