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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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6일 수요일

생산성 향상의 어두운 뒷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 이왕이면 그 결과를 얻어내는 데 들이는 자원을 적게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자원이 시간이 되었든, 돈이 되었든, 다른 물질(원재료)이 되었든 말이죠. 한마디로, 우리는 (비윤리적, 불법적이지만 않다면) 일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일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일까요? 일의 효율이 계속해서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림 1. Gregory Clark, A Farewell to Alms, 2007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평균 1인당 산출량은 계속해서 증가해 왔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생산 과정에서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도태된 결과겠지요?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인간의 속성, 그리고 그림 1과 같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추세를 고려했을 때, 앞으로도 우리가 각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살아갈 거라는 가정에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추가적으로, 한 사람이 소비하고자 하는 재화의 양에 한계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아무리 밥을 많이 먹는 사람도 하루에 밥을 10끼 이상 먹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요. 소유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재화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의상 완전고용상태에서 논의를 시작해 봅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1인당 산출량은 계속 증가하는데 1인당 수요량은 결국 일정한 양에 수렴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인구의 증감에 관계없이 초과공급이 발생하고[1], 기업은 생산을 줄이겠지요. 생산을 줄이는 과정에서 노동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데 이는 곧 실업의 발생을 의미합니다. 실업이 경기변동에 의한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영구적인 현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현재와 같이 노동을 통해 얻은 임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사회구조가 유지된다면 실업자가 발생함과 동시에 그들이 소득을 잃게 되므로 기업의 재화에 대한 수요 역시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업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의 양 역시 더 줄어들고, 실업은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겠지요.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 기업은 생산량 및 고용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 노동 공급자의 소득과 그에 따른 수요를 고려함으로써 완전고용상태를 유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1인당 노동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습니다. 대부분의 업종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은 최소시간 이상의 연속적인 투입이 필요합니다. 잦은 근무교대는 많은 의사소통비용을 유발시켜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인당 재화 수요량이 포화된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각자 일하는 시간을 줄여가며 모두 일하는 상황은 인간이 일의 효율이 높아지는 방향을 추구한다는 위의 가정에 부합하지 않게 되지요. 따라서 기업은 효율성을 극대화와 수요의 극대화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의사결정을 하고자 할 것이고, 아마도 그 결정은 불완전고용상태를 초래할 것입니다. 전 인류가 먹고 남을 음식을 생산할 수 있는 사회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부만 일하고, 그 일부가 일해서 생산된 재화가 전 인류에 고루 배분된다면 참 이상적이겠지만, 공산주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렇게 되면 재화를 배분하는 집단이 그 권한을 남용할 수 있고, 노동의욕 역시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인류가 생산하는 재화의 총량이 전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인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미 그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면 최소한의 living standard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빈곤층의 존재가 곧 지금까지의 논의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겠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면 언제 닥칠지 모를 그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생산성 향상에는 어두운 뒷면이 있을지 모릅니다!




[1]노동 이외의 다른 생산요소들이 "충분히" 있다는 가정도 깔려 있습니다.

댓글 4개:

  1. 간과하기 쉬웠던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하신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여러 가지 생각이 나지만 한 가지 이유만 얘기하자면


    생산성이 증가해서 여가 시간이 증가합니다. 여가시간의 증가는 삶의 질의 향상을 가져다주고요. 예를 들어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농기계, 비료 등) 적은 시간을 일해도 많은 생산을 할 수 있어서 남은 시간에는 여가를 즐길 수 있습니다. 컴퓨터의 발전도 회사 업무 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쳤구요. 과거에 비해서 일인당 업무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생산성 증가가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여가로 이어지고 삶의 질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여기에 관련해서 생각난 것은 생산성 증가 = 재화의 양 증가는 아닐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생산성 증가 -> 업무 시간 감소 -> 재화의 양은 동일 // 이렇게 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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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대부분의 업종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은 최소시간 이상의 연속적인 투입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생산성 증가에 따라 모든 사람의 노동시간이 일정량 감소하고 여가시간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의 사람만 "적은" 시간 일을 하게 되겠지요. 이 때, 복지제도를 포함한 재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생존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roundmidnight님의 표현대로 하자면
      생산성 증가 -> 업무 시간 감소 및 실업자 증가 -> 재화의 양은 동일 -> 재분배에 관한 문제 발생 //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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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oundmidnight님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생산성 증가가 바로 재화의 증가와 실업 증대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생산성을 증가시키려는 움직임이 임금격차와 만성적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타당한 경고인 것 같아요. 저는 요즘 '경제학의 목표 변수는 무엇인가'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결국 webspider님이 경고하신 극단적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어떻게든 재분배 정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재분배 정책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특정 방식의 재분배 정책이 경제를 왜곡하는 효과가 얼마나 큰지 이러한 왜곡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고, 재분배정책 자체가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단순히 '다 같이 잘 살아야 좋은 사회지.'라는 문구에서 더 나아가, 재분배 정책은 왜 필요하며, 필요하다면 이를 어떻게 이를 '강자'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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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소위 "강자"들의 목적함수가 자기 자신과 그 주위 사람들의 행복 및 부의 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사회적 약자들의 행복은 그들의 삶의 목적에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일부의 강자들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따라서, 재분배 정책의 필요성을 그들이 느끼기 위해서는 재분배의 개선이 없을 경우 사회 시스템이 더이상 유지되기 어렵고 그들의 이권 역시 위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수개월 전 화두가 되었던 버핏세, 해외 부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도 어찌 보면 위기감을 미리 느낀 선각자들의 "수습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이 1인 1투표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무력 충돌 전에 새로운 정치세력과 기성 정치세력의 충돌이 선행될 거라는 희망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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