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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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3일 월요일

빚에서 빛으로

기사링크: '떡국 대신 라면으로' 설 쇠는 체불 노동자들


 얼마 전 마음이 아픈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포근한 설을 보내는 동안에도 이 기사가 문득 문득 떠오르더군요.

 기사의 박 씨가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민등록 말소란 무엇이며, 이는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2009년 10월에 폐지된 무단전출 직권말소제도는 주민등록 상의 주소와 실제 주소가 일치하지 않거나 주소가 불명확한 사람들의 주민등록을 읍/면/동사무소에서 직권으로 말소할 수 있는 제도였습니다. 따라서 채무자가 몰래 종적을 감추는 경우 채권자가 민원을 제기하면 읍/면/동사무소에서 채무자의 주민등록을 말소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한편 2010년 10월부터는 '주민등록말소자'들이 일괄적으로 '거주불명등록자'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박 씨는 정확히 말하면 '주민등록말소자'가 아니라 '거주불명등록자'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새로운 제도로 '거주불명등록자'들은 선거권과 각종 사회보장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되었으나, 주민등록등본/초본 발급 등 일부 서비스는 여전히 제한됩니다. 물론 일정한 거주지가 생기면 이들은 1~10만원의 비용으로 '재등록'할 수 있습니다.

 박 씨가 체불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주민등록등본' 등의 서류를 구비할 수가 없어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재등록'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선 집이 없어서겠지요. 가까운 친척이나 사회복지기관에 거처를 마련하기도 어려운가 봅니다. 어쩌면 폭력적인 불법 추심이 두려워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0년 거주불명등록제도 도입은 훌륭한 발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거주불명등록자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법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다 더 개선할 때가 아닐까요? 국민행복기금의 비용과 편익은 따져 보아야 알겠지만, 이 기금 덕택에 일부 거주불명등록자들이 '재등록'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거주불명등록자들이 많이 남은 것을 보면 행복기금의 사각지대도 상당했나 봅니다. 박 씨처럼 일을 해서 가정의 재기를 꿈꾸는 사람들의 법적이 권리를 찾아주는 일이 국민행복기금보다 더 효율적이고 공평하며 지속가능한 가계부채 정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거주불명등록자들의 권리를 늘리는 것은 크게 보면 채권자의 채무자의 '계약'에서 채무자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결과'가 너무 나빠지지 않도록 그의 책임 한도(liability limit)을 축소하는 것이겠습니다. 직관적으로, 효과는 대출의 사회 전체적 규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작용하겠지요. 현재 가계금융이 완전히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는 사회복지를 축소시키겠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가계 대출이 일어나고 있다면,  사회복지가 증대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 추측으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환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하여 과도한 가계 대출이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문단에서 말하는 '사회복지'란 현재 거주불명등록자 신분인 사람들의 복지개선과는 별도로, 미래의 잠재적인 채권자/채무자들의 복지를 말합니다.

 간단한 문제 제기로 2014년 첫 글을 시작합니다.

 (제 글에 잘못된 정보나 논리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1개:

  1.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요새 언론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섬노예'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경찰력이 그들에 대한 구제를 위해 개입하기 어려운 측면 중 하나가 섬노예로 팔려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민등록 말소자이기 때문이라더군요. 기존의 주민등록제도가 사회적 복지제도나 공적 구제의 사각지대를 낳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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