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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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6일 수요일

생산성 향상의 어두운 뒷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 이왕이면 그 결과를 얻어내는 데 들이는 자원을 적게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자원이 시간이 되었든, 돈이 되었든, 다른 물질(원재료)이 되었든 말이죠. 한마디로, 우리는 (비윤리적, 불법적이지만 않다면) 일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일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일까요? 일의 효율이 계속해서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림 1. Gregory Clark, A Farewell to Alms, 2007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평균 1인당 산출량은 계속해서 증가해 왔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생산 과정에서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도태된 결과겠지요?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인간의 속성, 그리고 그림 1과 같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추세를 고려했을 때, 앞으로도 우리가 각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살아갈 거라는 가정에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추가적으로, 한 사람이 소비하고자 하는 재화의 양에 한계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아무리 밥을 많이 먹는 사람도 하루에 밥을 10끼 이상 먹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요. 소유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재화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의상 완전고용상태에서 논의를 시작해 봅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1인당 산출량은 계속 증가하는데 1인당 수요량은 결국 일정한 양에 수렴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인구의 증감에 관계없이 초과공급이 발생하고[1], 기업은 생산을 줄이겠지요. 생산을 줄이는 과정에서 노동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데 이는 곧 실업의 발생을 의미합니다. 실업이 경기변동에 의한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영구적인 현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현재와 같이 노동을 통해 얻은 임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사회구조가 유지된다면 실업자가 발생함과 동시에 그들이 소득을 잃게 되므로 기업의 재화에 대한 수요 역시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업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의 양 역시 더 줄어들고, 실업은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겠지요.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 기업은 생산량 및 고용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 노동 공급자의 소득과 그에 따른 수요를 고려함으로써 완전고용상태를 유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1인당 노동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습니다. 대부분의 업종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은 최소시간 이상의 연속적인 투입이 필요합니다. 잦은 근무교대는 많은 의사소통비용을 유발시켜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인당 재화 수요량이 포화된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각자 일하는 시간을 줄여가며 모두 일하는 상황은 인간이 일의 효율이 높아지는 방향을 추구한다는 위의 가정에 부합하지 않게 되지요. 따라서 기업은 효율성을 극대화와 수요의 극대화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의사결정을 하고자 할 것이고, 아마도 그 결정은 불완전고용상태를 초래할 것입니다. 전 인류가 먹고 남을 음식을 생산할 수 있는 사회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부만 일하고, 그 일부가 일해서 생산된 재화가 전 인류에 고루 배분된다면 참 이상적이겠지만, 공산주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렇게 되면 재화를 배분하는 집단이 그 권한을 남용할 수 있고, 노동의욕 역시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인류가 생산하는 재화의 총량이 전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인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미 그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면 최소한의 living standard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빈곤층의 존재가 곧 지금까지의 논의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겠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면 언제 닥칠지 모를 그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생산성 향상에는 어두운 뒷면이 있을지 모릅니다!




[1]노동 이외의 다른 생산요소들이 "충분히" 있다는 가정도 깔려 있습니다.

2012년 6월 3일 일요일

한계효용은 없다


안녕하십니까, ‘학부경제학, 정리한다!’의 Karam Jo입니다 : )

이번 포스트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분석할 때 사용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효용함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효용은 한 인간이 주변 환경을 통해 얻는 행복이나 만족(맨큐의 경제학), 혹은 소비자가 어떤 상품 또는 상품묶음을 소비할 때 얻는 만족(이준구∙이창용, 경제학 원론)을 숫자로 표현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느끼는 만족감에 따라 순서를 매길 수 있을 텐데요, 이렇게 정해진 순서에 따라 만족감이 클수록 더 높은 숫자를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매기고 나면, 각 상품에 대한 개인의 효용을 알려주는 효용함수를 얻게 됩니다.

하나의 상품을 하나, 둘, 그리고 세 개, … 이렇게 하나 씩 더 갖게 되면 여러분의 만족감은 어떻게 변하나요? 거의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에서처럼 먹는 것, 특히 필자가 사랑하는 추파춥스를 예로 들자면, 추파춥스를 계속해서 쉬지 않고 먹다보면 점점 그것을 먹기 싫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즉, 추파춥스를 계속해서 먹다보면 하나를 더 먹을 때 늘어나는 만족감의 크기가 점점 감소하게 됨을 의미하는데요, 이것은 소중한 추파춥스 뿐만이 아닌 다른 많은 상품에 대해서도 적어도 저에게는 나타나는 현상이고, 이를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believe it or not -
  1. 경제학에서의 ‘법칙’은 ‘다양한 곳에서 관측 가능하지만 왜 그런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의미 합니다
  2.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반성하세요. 먹을 것에 지나치게 욕심 부리다간 배탈 나고 상품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간 나쁜 사람 됩니다
  3. 경제학에서는 상품을 더 많이 갖는다고 해서 효용이 떨어지는 상황을 배재하고 있습니다. The more, the better라고도 하는데요, 위의 추파춥스를 예로 들자면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그걸 한꺼번에 먹을 필요는 없겠지요?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상품을 여러 개, 다양한 조합으로 가질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소중한 추파춥스와 키커 초콜릿을 등장시키기로 합시다. 추파춥스 두개, 키커 두개, 혹은 추파춥스와 키커 각 각 하나를 가질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조합을 선택할 것 같으신가요? 저라면 아마 추파춥스와 키커를 각 각 하나씩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상품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선택을 할 것 같은데요, 사람들의 이러한 성향을 경제학에서는 “소비자는 극단적인 상품의 조합으로 구성된 상품묶음보다는 여러 상품이 고루 섞여 있는 상품묶음을 더욱 선호한다.”(이준구, 미시경제학)라고 하며, 같은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상품묶음들의 조합에 대해 이러한 현상을 한계대체율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한계대체율 체감의 법칙이 위에서 말한 만족감의 크기에 숫자를 매길 때 고려해야 할 조건이 됩니다. 이에 더하여 선호체계의 완비성, 이행성, 그리고 연속성을 고려하고 나면(미시 교재를 참고해 주세요) 우리는 잘 알려진, 주어진 소득과 가격체계 하에서 최대한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상품묶음을 찾는 효용극대화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이 분석방법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선택이 어떠한 고려를 통해서 이루어지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고려하기 위해, 그리고 분석의 편의를 위해 같은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상품묶음들의 집합, 즉 무차별곡면(두 개의 상품을 고려할 때에는 무차별곡선, 세개 이상의 상품을 고려할 때에는 무차별곡면이라고 부릅니다)을 도입하게 됩니다.

선택의 대상이 되는 각각의 상품들이 여러개 씩 들어있는 임의의 상품묶음을 선택하고 나면 이것이 속해있는 무차별곡면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것이 주는 만족감을 알아낸 후 상품조합을 변화시켜가며, 즉 각각의 상품들의 개수를 바꾸어가며 이것과 동일한 만족감을 주는 상품묶음들을 모으면 그것이 무차별곡면이 됩니다. 이 곡면상에서 조금씩 움직여 가면 상품묶음 속의 상품 각각의 개수가 변하게 되는데요, 이것으로부터 그 선택 점에서 사람들이 각 재화를 상대적으로 얼마나 더 원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추파춥스50개와 키커 50개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파춥스를 하나 더 얻는 대신 키커 두 개를 포기할 수 있고, 그렇게 하더라도 같은 수준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이때 추파춥스 하나의 가치는 키커 두 개의 가치와 동일 할 것이고, 이는 그 상황에서 고려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상품의 개수로 추파춥스를 키커보다 두 배 더 원하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는 이 상대적 선호도와 시장이 평가한 두 재화의 가치, 즉 가격의 비율이 일치하는 재화묶음들 중 주어진 소득 하에서 살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수의 상품을 포함 한 재화묶음이 소비자의 최적선택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대부분의 미시 교과서는 이 조건이 만족되지 않을 때 재화묶음안의 상품수를 바꿈으로써 더 높은 만족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예시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최적선택의 도출과정은 효용이라는 수치화 된 만족감의 절대적 크기와는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효용함수는 서수적인 것입니다. 즉 만족감에 매기는 숫자가 만족감의 크기에 따라 커지기만 하면 되지 그것이 어떤 값을 갖느냐는 무의미하다는 것인데요, 우리는 위의 소비자의 최적선택문제 등을 경제모델을 통하여 풀다보면 눈에 보이는 숫자들에 현혹되어 가끔 이 사실을 잊게 됩니다. 특히 효용함수를 한 재화에 대해 편미분하여 그 재화의 한계효용함수를 도출하고 나면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각 상품묶음에서의 한계효용의 절대적 크기에 의미가 있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효용함수가 분석의 과정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절대적 크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다시 위의 최적선택문제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 우리는 최적선택이 되는 상품묶음을 찾기 위한 조건으로 상대적 선호도, 즉 소비자가 평가한 두 재화의 상대적가치가 시장에서 평가된 두 재화의 가치인 상대적 가격과 일치해야 함을 언급 하였습니다. 이 분석에, 앞서 만족감의 순서를 고려하여 임의로 도출한 효용함수를 사용하면 이 조건은 어떻게 표현이 될 수 있을까요?

무차별곡면의 도출과정에서 알 수 있었던 각 상품묶음 하에서의 사람들의 각 상품에 대한 상대적 선호도는 경제학에서 한계대체율(Marginal Rate of Substitution, MRS)라고 부르며, 이것의 정확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 한계대체율(MRS) : 소비자가 만족수준을 유지하면서 한 재화를 다른 재화로 대체할 때 교환되는 두 재화의 비율(맨큐의 경제학)
그리고 이 한계대체율은 무차별곡면의, 분석의 대상이 되는 점에서의 접평면의 기울기와 같고, 이는 상품이 두개인 경우 효용함수를 각 상품에 대해 편미분 한 후 그 점에서 계산한, 두 상품의 그 점에서의 한계효용의 비율과 같게 됩니다. 두 개의 상품, 추파춥스(c)와 키커(k)를 예로 들자면;
  • 소비량 : (추파춥스, 키커) = 
  • 효용함수 : 
  • 가격체계 : (추파춥스가격, 키커가격) = 
  • 소득 : 
  • 효용수준이 인 무차별곡면 : 
하에서 최적선택인 는 와 를 만족시키는 값이 됩니다.

이 경제모델을 통한 분석에서, 각 재화의 한계효용은 그 둘의 비율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언급하지만 이 비율은 앞서 조사한 그 선택 점에서의 각 상품에 대한 상대적 선호도이고, 는 그저 이 비율을 수학기호를 사용하여 적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지요.

경제모델을 통한 분석에서 우리는 Cobb-Douglas, CRRA, 또는 CARA효용함수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때 모든 것은 수치화 되어 눈앞에 펼쳐지게 되는데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효용함수를 분석에 적용하는 순간, 분석의 대상은 그러한 효용함수가 갖는 특징을 자신의 행동에서 고스란히 나타내는 특정인으로 한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Cobb-Douglas 효용함수를 이용하여 주어진 상품묶음 하에서 각 재화에 대한 한계효용을 알아낸 후 MRS를 도출하였다면 그 값은 Cobb-Douglas효용함수의 성격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그 상품묶음을 가지고 있을 때 각 재화에 대해 매기는 상대적 가치인 것입니다.



2012년 5월 30일 수요일

재수 나쁘면 재수 비용 드립니다.

  (경제원론이나 비슷한 수준의 경제학 수업을 들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입니다)
 
바야흐로 6월 모의고사의 시즌이 다가왔다. 중간 평가를 앞두고 설렘과 긴장에 싸여 있을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이번 글을 시작한다.
 
얼마 전 블로그 필진 중 한 분과 대화를 하다가 대학 입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나에게 “왜 대학 입시에는 보험이 없을까”라고 물었다. 위험기피적인 개인들 사이에 위험한 사건이 있다면, 위험중립적인 기업에겐 늘 보험 상품을 판매하여 이윤을 얻을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왜 대학 입시에는 보험이 없는지.

1.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문제 때문일까? 대학 입시에 보험이 생긴다면, 상대적으로 붙을 확률이 높은 학생들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험사의 비용 부담이 증가하므로 보험료를 높일 수밖에 없고, 결국 그렇다면 더더욱 떨어질 확률이 높은 학생들만이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결국 보험료는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보험 상품이 사라진다. 하지만 보험사가 ‘신호(signal)’를 활용할 경우 이 문제는 대체로 해결된다. 이제까지 쌓아온 모의고사 성적이나 내신 성적, 기타 수상 실적이 좋은 학생들일수록 보험료를 깎아주며, 합격이 어려운 학교를 지원할수록 보험료를 높이는 것이다. 대입의 경우 학생의 합격 확률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가 쉬워 역선택의 문제는 많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2.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문제 때문일까? 대입 보험에 가입한 학생들은 위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학에 붙지 못하면 재수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위로금까지 주는 보험이 있다고 하자. 보험에 가입한 학생은 이제 대학 입시에 붙거나 붙지 않거나 ‘무차별’해질 것이다. 이 경우엔 학생의 위험 부담도 줄여주면서 학생이 공부도 열심히 하게 하는 최선(First-best)의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도 차선(Second-best)의 해결책은 존재하며, 이는 위험을 원래 수준과 0 사이의 적당한 수준으로 낮추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떨어질 경우, 재수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 또한 보험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여기까지 경제학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의문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내 나름대로 이유를 더 생각해 보았다.
 
3. 대학에 떨어진다는 것을 상상하기 싫어서일까? 보험에 가입하려면 내가 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지, 재수를 하게 될 경우 그 비용은 얼마나 될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대입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계산을 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심리적 비용)를 수반할 것이다. 대입을 가까이에 앞둔 시점에는 여러 대학의 입시 정보나 수능 시험 준비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시기이므로 학생과 학부모의 ‘심리적 안정’의 가치가 올라가고, ‘주의(Attention)’가 희소해지는 시기이다. 만일 할인율이 충분히 작아 현재가 미래보다 많이 중요하다면, ‘불합격 상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보험 가입에 따른 유의미한 추가적 비용으로 작용할 것이다.
 
4. 예산제약이나 손실회피 때문일까?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부분의 대학은 경쟁률이 2:1을 넘는다. 떨어질 확률이 상당히 큰 것이다. 따라서 보험 상품이 만들어질 경우, 보험료가 매우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한편 비행기 사고와 같이 보험 상품이 제공되는 대부분의 상황은 위험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작고, 따라서 보험료가 낮다. 보험료가 높아지면 두 가지 효과가 생기리라 예상된다. 우선, 일반적인 서민 가정이라면 소비를 줄이거나 대출을 받아서 보험료를 내야 할 텐데 이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둘째로, 심리학에서 연구된 ‘손실회피’ 경향 때문에 사람들은 보험료라는 확정된 손실을 대학 입시에 수반된 기대 손실보다 크게 인식하여,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한편 역선택의 문제 때문에 ‘합격 확률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들은 보험에 가입하기가 어려워, 보험료를 여러 해에 분산해서 지불하도록 하는 것도 어렵다.)
 
p.s.
3번과 4번 이유를 약간 변형하면 요즘 논란이 되는 노인보험(장기요양보험, 연금보험 등)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노후를 상상하는 데에 심리적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보험 가입을 계속 뒤로 미루게 되고, 노인보험은 보험료가 비싸지기 때문에 예산 제약과 손실 회피 심리에 부딪치는 것이다.

2012년 5월 23일 수요일

페이스북 IPO 사태의 아이러니(1부)





최근 국제 뉴스면에 페이스북의 기업공개(IPO)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지난 18일 주당 38달러의 공모가로 총 1040억 달러 (약 121조)의 자금을 모았습니다.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 자신은 이를 통해 200억달러대의 부자가 되기도 하였지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38달러로 시작했던 주가가 현재까지 총 26.3% 떨어진 31달러대까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때 공모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만큼의 손해를 본 것이지요. 기업공개 주관사인 모건스탠리는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겼다는 혐의로 당국의 조사까지 받게 되었고요.
참고로 IPO 때의 공모가 및 공개주식 수는 주관사(underwriter)와 기업 (여기서는 페이스북)이 협의하여 결정합니다. 공모가를 너무 높게 잡으면 공개된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없겠지요. 기업의 가치에 걸맞지 않게 비싼 돈을 주고 주식을 사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반대로 공모가를 너무 낮게 잡으면 기업이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페이스북이 주당 10달러에 기업공개를 실시했다면 투자자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었겠지요. 주가가 30달러 정도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주식을 배정받은 사람들은 200%의 차익을 챙겼겠지요. 하지만 페이스북 입장에서는 주당 38달러로 내놓았을 때보다 1/4 정도의 자금밖에 조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적정선의 공모가를 결정하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금 조달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은 투자자들이 적정주가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가격에 공모가를 설정하는 것이겠지요. 주관사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끔 기업공개기업을 최대한 돕는 것이 임무이겠고요.
경제학에서는 흔히 경제주체들이 평균적으로 합리적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IPO에서도 평균적으로는 적정주가와 공모가가 적어도 비슷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야겠지요. 적정주가와 공모가가 얼마나 비슷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가 바로 첫날 수익률 (first-day return)입니다. 기업의 적정주가가 공모가와 일치했다면 IPO 첫날 그 회사의 주가가 더 오르거나 떨어질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공모가를 너무 낮게 잡았다면 첫날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고 공모가를 높게 잡았다면 첫날 주가는 오히려 떨어질 것입니다. 즉, 첫날 수익률이 0에 가깝다는 것이 공모가를 적정주가와 일치시켰는지, 다시 말해 기업이 자금조달을 극대화하였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첫날 수익률이 금융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게 됩니다. (이하 제시하는 통계는 모두 미국 주식시장에 관한 것입니다) 첫날 수익률은 평균적으로 강력한 양(+)의 값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IT열풍이 불던 99년에는 무려 평균 첫날 수익률이 72%였고 IT거품이 꺼진 2001년부터 2012년까지 3차례를 빼고는 모두 첫날 수익률의 평균이 10% 이상이었습니다. 2012년 현재도 평균 첫날 수익률이 16%에 달하고 있고요. 다시 말해 기업들이 평균적으로 공모가를 10% 높게 잡았더라면 자금 조달도 10% 늘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실현되지 못한 자금을 "Money on the tabl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돈을 더 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뜻이지요.
금융학자들은 왜 IPO공모가가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적정주가보다 항상 평가절하 (underpriced)되어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실제 가치보다 공모가를 낮게 가져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쪽의 이론에서는 주로 정보의 비대칭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Rock, 1984) 쉽게 말하면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충분히 낮은 가격에 주식을 제시하지 않으면 충분한 투자자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이 10%이상의 평가절하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행동경제학적으로 이를 설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많았는데요 예를 들어 첫날에 주가가 많이 오르면 언론에 화제가 되어서 기업 홍보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등의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이론은 바로 “스캔들”로 이 현상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주관사의 시장 조작입니다. 참고로 첫날에 주가가 많이 오른다는 것은 공모가를 낮게 설정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주관사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주관사는 “Road Show"를 통해 기업공개가 되는 회사의 주식을 구매하라고 홍보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날 주식이 많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홍보효과가 컸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요. 주관사의 시장조작은 대략 다음의 3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Spinning: 회사 운영진과 주관사와의 결탁관계. 회사운영진은 주관사가 공모가를 낮게 가져가는 것을 묵인하는 대신에 그 주관사가 다른 회사의 기업공개를 할 때 그들에게 주식을 배정해줄 것을 약속받는다. 주관사는 첫 날 주가 상승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고 회사 운영진은 다른 회사의 기업공개 때 받은 주식이 기업공개 첫날 가격이 상승하여 차익을 챙김. (불법임)
2)Laddering: 주관사가 단독으로 첫날 주가를 부양하는 방법. 특정한 사람/기관에게 주식을 배정해주는 대신에 그 대상자가 IPO이후 추가로 주식을 매수할 것을 약속받음. 그들의 추가 주식 매수로 주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하게 됨. 그들은 적절한 시기에 주식을 팔고 빠져나오고 개인투자자들은 이후 주가하락으로 손실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음.
3)Analyst Lust: 회사와 주관사와의 결탁. 주관사는 의도적으로 공모가를 낮게 가져가고 회사는 이를 묵인함. 대신 그 주관사에 속한 애널리스트가 나중에 그 회사의 주식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해줄 것을 약속함. 주관사는 IPO 당일 주가상승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고 회사는 이후에 추가 주식 공개(SEO) 때 그 주관사 애널리스트의 도움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현재의 낮은 공모가를 묵인함.
핵심은 IPO의 평가절하 현상이 주관사의 이익추구 동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시장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번 페이스북 IPO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첫 날 주가 상승률은 0.61%에 그쳤던 것입니다.
오늘은 IPO에 대한 논란과 주요 이론들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으므로 페이스북의 IPO 결과를 금융이론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는 다음 연재에서 쓰겠습니다. 아직 IPO를 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다음 연재 때까지 모인 자료들을 더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성장과 분배는 두 마리 토끼일까?



일반적인 담론에서 성장과 분배는 '두 마리 토끼'처럼 여겨집니다. 하나를 잡으려고 하면 다른 하나는 놓치게 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성장'을 좀 더 올바른 의미로 사용한다면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성장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아마도 GDP가 올라가면 국민의 평균적인 삶의 질, 즉 효용도 높아질 것 같기 때문에 그럴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국민들의 평균적인 효용'을 직접 측정할 것이지 GDP라는 변수로 측정할까요? 그것은  아시다시피 효용을 직접 측정하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것과 큰 관련성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GDP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효용이 주어졌을 때, GDP의 크기 그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장의 중요성을 이야기 할 때에는, GDP의 크기가 중요해서라기 보다는 국민의 평균적인 효용이 중요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GDP를 성장시키면서 효용이 떨어지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것이 GDP의 성장을 동반하는 분배정도의 악화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경제 내에 두명의 개인이 살고 있습니다. i번째 사람의 효용을 u_i= (c_i)^(1/2)로 나타낸다고 합시다. 여기서 c_i는 개인 i의 소비입니다. 이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상의 경제를 비교해 봅시다:
경제 1
c_1=100, c_2=100
-> GDP=200, 삶의 질 평균=10
경제 2
c_1=1, c_2=225
-> GDP=226, 삶의 질 평균=8
즉 분배가 나쁜 경제 2에서는, GDP는 더 높은 데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더 낮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여하튼 이러한 경우, 우리가 '국민의 평균적인 효용' 개선을 목표로 해야한 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경제 2 보다는 경제 1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경제의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성장'을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닌 효용 증대로 정의할 경우, 분배는 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극단적인 복지정책 등으로 차후 국민의 소득수준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리는 경우, 분배상태의 개선이 미래의 평균적 삶의 질까지 갉아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성장과 분배를 상반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는 것의 큰 이유중 하나는 '삶의 질'에 대한 지수가 GDP로써 잘못 정립되었기 때문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flyingbunny님이 얘기하였던 올바른 목표지수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미시경제학의 퍼즐




1. 시간선호율이란 실재하는가?
 
미시경제학에서 2기 이상의 효용극대화를 행하다 보면 암묵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 '시간선호율' 이다. 예를 들면, 흔히 우리가 간단한 효용극대화 문제를 풀때 접하는 다음 산식을 보도록 하자.
 
Max U = C1a * C2(1-a) , S.t. C1+(C2/1+r) = Y1 + (Y2/1+r)
 
이것은 우리가 미시경제학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2기간의 효용극대화식이다. 실제로 저 식에 1기와 2기의 노동공급의사 및 여가까지 추가해서 비교적 간단한 일반균형식을 만들 수 있으나 여기에서 고전적인 일반균형식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넘어가도록 한다.
그런데, 저와 같은 함수를 가정할 경우 우리는 필연적으로 '시간선호율' 을 사용하게 된다. 즉, 우리의 동태적 효용의 극대화를 위해서 1기의 소비와 2기의 소비에 각각 a , 1-a 의 가중치를 놓고 시간선호율을 도출하는 것이다. 가령 저 식의 효용극대화 조건을 간단하게 도출하면,
 
∴(a/(1-a)) * (1/(1+r))* C2 = C1
 
위 식이 어떻게 도출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독자의 기량에 맡기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저러한 일반항을 사용할 경우 [a/(1-a)] * [1/(1+r)] 이 개인의 시간선호율로 도출된다는 것이다. 혹은 [a/(1-a)] 를 단순히 미래에 대한 현재의 시간선호율로 정의할 수도 있다. 여하간 우리는 우리의 효용함수를 하나로 묶어서 사용할 경우 이러한 시간선호율의 '전제' 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진실로 '시간선호율'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이는 여러 측면에서 논파될 수 있지만 우선적으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반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시간선호율이 명시적으로 도출되는 효용함수의 특성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효용함수의 기수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중대한 오류이다.
 
즉, 우리는 U = C1a * C2(1-a) 이라는 함수의 특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장 간단히, 위 함수를 로그를 취하게 되면,

ln U = a*ln C1 + (1-a) * ln C2        --------식 1)
이 된다. 
또한 t기의 효용은 오직 t기의 소비에 의해서만 좌우된다고 할 때, 효용함수의 서수성을 가정한다면 Ut = CtB와 같은 식으로 나타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식 1)에 대입해 보면 어떻게 표현한다고 하여도 전체효용은 각 기간의 효용을 가중평균 합한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암묵적으로 효용의 기수성을 가정하는 셈이다. 시간선호율이 효용의 기수성을 가정할 경우에만 도출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효용의 기수성을 가정하게 되면 어떠한 일반화된 식을 사용하더라도 시간선호율이 도출되게 된다. 이것은 '시간선호율' 이라는 개념 자체가 합리적인 전제에 의해 손쉽게 도출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그렇다면 효용의 서수성을 전제하더라도 개인의 선택에 따라 시간선호율은 도출할 수 있지 않은가. 이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틀린 것이다.

가령, 우리는 이제 개인의 효용의 합을 전제하는 효용함수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자. 다만 각 기간의 효용함수는 주어져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식을 전제할 수 있을 것이다. 
t 기의 효용함수: Ut = Cta Lt(1-a) , S.t. Ct = w*(1-Lt) -∆St

(단, Ct = t기의 소비, 1= t기에 주어진 시간, Lt = t기의 여가, ∆St = t기의 저축변화율)

여기서 서수성을 가정했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총기간의 효용의 합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의 선택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자신의 시간선호율을 추론해 낼 수 있다.
서수적인 효용함수를 가정할 경우 시간선호율을 어떻게 추론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여기에서는 편의상 [Ut / Ut+1] 을 시간선호율로 정의한다고 하자. 즉 현재 기간이 다음기간보다 얼마나 선호되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선호율을 정의할 경우, 우리는 각각의 기간에서 현재 기가 다음 기보다 얼마나 선호되는지 추론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예를 들어, 1기에서 어떤 사람이 2천만원의 현재소비와 50일의 여가를 즐기고, 2기에서는 1000만원의 현재소비와 100일의 여가를 즐긴다고 하자.

이 경우의 시간선호율은  " 2(2a-1)" 로 도출된다. (간단한 계산이니 독자의 분석에 맡긴다. 이 경우 a >0.5인 경우 현재시간을 더 선호, a <0.5인 경우 미래시간을 더 선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언뜻 합리적이고 문제될 것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위 주장(둘째)의 맹점은 우리가 매 기간의 '동태적 효용극대화' 를 절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는 미래가 닥치지 않으면 절대로 '미래의 효용 또는 행복이 어떠할지' 에 대해서 정확히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의 효용에 대해서 우리가 현재처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①인간의 근시안적인 성향.
②미래의 불확실성. 우리는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저축을 예비한다지만 미래는 더욱 가혹할 수도, 풍요할 수도 있어 현재 저축보다 더 많이 필요할수도, 필요없을 수도 있다. 또한 미래는 당신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
③우리가 미래에 A라는 자원을 투입해서 얼마의 효용을 얻을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를 모른다. 우리는 t기에 여가를 더욱 선호하다가도, t+1기에는 소득을 더욱 선호할지도 모른다!

1번은 행태경제학적인 이론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2번 역시도 행태경제학 혹은 고전적인 미래불확실성 및 현재편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3번인데, 우리는 우리의 효용함수 자체를 모를 뿐더러 우리가 t기에 어떠한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는 있어도 그 다음 기에 무엇을 원하게 될지는 모른다.

[ 사 례 ]
 
예를 들어 (필자의 친구 이야기이다) A군은 2010년에는 고시를 합격해서 관청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이를 위해서 여가시간과 소득을 포기하였다(미래편향석 선호), 2011년에는 고시를 포기하고 유명한 대기업에 취직하였다. 높은 소득을 얻었지만 여가시간은 여전히 낮았다. 2012년에는 대기업을 나오면서 로스쿨에 진학하였다.(여가시간은 다소 늘었지만 소득은 잃어버렸다.) 이러한 3년간의 행태를, 우리는 효용함수를 전제함으로써 Calibration 방식으로 시간선호율을 어색하게 도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전제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적어도 '경제학적인' 분석으로는 의미가 없다. 2012년 시점에서 A군은 고시공부를 한 것을, 혹은 대기업에 진출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고, 2013년에는 대기업을 관둔 것을 후회할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현재 기간' 의 효용 말고는 알지 못하며 미래 기간의 효용을 유의미하게 고려할만큼 합리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성향은 위에서 열거한 1,2,3번이 심각할 수록 더욱 심해진다. 즉 인간의 근시안적인 성향이야 만국 공통이라고 치더라도 미래의 불확실성이 심해지고, 또한 미래의 여건변화가 심각하여 개인의 현재선호도가 지속적으로 변할 수록 우리의 선택은 합리적 선택과는 어긋나는 편향으로 이루어질지 모르며 이에 따라 점점 시간선호율은 쓸모없어지는 것이다!


 
2. 그렇다면 우리들의 선택체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앞에서 미래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심각해질수록 우리의 선택은 합리적 선택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 즉, 우리는 기껏해야 현재 기(t기)의 만족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으며, 미래의 효용에 대해서는 잘못된 가설을 세우고 나름대로 미래를 위한 선택을 행하지만 항상 t+1기에 가서는 적지 않은 후회를 남기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0기에서부터 t기까지의 여가,근로,교육 등의 선택을 놓고 우리의 '시간선호율' 이 마치 존재하는 양 결론을 내리게 되면 필히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t기까지의 미래에 대한 효용평가와 t+1기 부터의 미래에 대한 효용평가는 거의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설령 어떠한 개인이 일관적으로 미래지향적이거나 현재지향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미래에 누리게 될 효용을 유의미하게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유: 미래불확실성, 본인도 본인의 미래 효용함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음)
 
다소 재미있는 가정은 여기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개인이 스스로의 효용체계를 제대로 짐작하지도 못하고,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한다면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그렇게 될 경우, 개인은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첫째, 미래를 무시하고 현재의 효용극대화에만 신경쓴다. 쉬운 말로 풀어쓰자면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정도 되시겠다.
 
둘째. 미래의 효용까지 고려하여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즉, 다음 기의 미래에 여가가 더 필요할지 소득이 더 필요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근로소득' 이라는 것이 중립재나 비재화가 아닌 한, 어쨌든 소득이 가장 확실한 '효용지표' 로서 작용하는 것은 확실하며, 또한 미래의 여가시간은 현재의 선택과는 거의 무관하다. 이에 따라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사람들은 임금극대화 (Maximizing income)를 꾀하는 것이 일반적이게 될것이다.
 
임금극대화 혹은 소득극대화 모형에서 개인의 선택체계의 조건은 다음과 같게 된다.

 
①현재의 선택은 현재의 효용함수와 무관해진다.
 
②유보여가시간(Reservation Leisure)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가 정도의 개념이다. 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근로효율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정도면 족할 것이다.
 
③동태적 효용체계를 극대화하기 위한 가상적 지표(Proxy)로 총소득이 사용된다. 비근로소득이 없다면 총소득 = 근로소득.
 
∴결과적으로 : 개인이 일할수 있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면 유보여가시간만을 쉬고 나머지를 전부 일하는 것이 최적선택이 된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한계가 있다면 근로가능시간 전부를 일하게 된다. (단 추가근로시간에 대해서는 임금이 정상적으로 지불되어야 함)
슬프지만 이러한 방식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은 왜 그렇게 많이 일하는지를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대기업의 독과점 현상(상품시장과 노동수요의 수요독점)으로 인한 고용의 불안정성, 미래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개인은 스스로의 (미래)효용계를 제대로 짐작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총소득을 효용체계의 가상적 지표(Proxy)로 활용해 여가/근로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전문직 업종의 경우(가령,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개업변호사 및 의사 등 미래불확실성이 비교적 적은 경우에 한해)근로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직관적인 예측과도 일치한다.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CJE-May 2012] 왜 북유럽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가?


[Choi Journal of Economics]


May 2012



왜 북유럽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가?


지난 4월에 소개한 Prescott의 논문에서 설명되지 않은 부분, '높은 세율에도 노동공급을 많이 하는 국가들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에 대한 하나의 설명을 제시하는 논문입니다. 요컨대 세금을 거둬서 민간에 '특정 방식으로' '잘' 배분하면 마치 정부가 없는 시장에서의 경쟁적 균형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수학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모형을 통해 직관에 부합하는 이론적, 실증적 분석결과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좋은 논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한글 파일로 링크를 겁니다.


http://www.mediafire.com/?7em931da1cqb05l

Taxation and Market Work: Is Scandinavia an Outlier?

Richard Rogerson (2007) Economic Theory

http://pages.stern.nyu.edu/~dbackus/Taxes/Rogerson%20scandinavia%20Jan%2006.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