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원론이나 비슷한 수준의 경제학 수업을 들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입니다)
바야흐로 6월 모의고사의 시즌이 다가왔다. 중간 평가를 앞두고 설렘과 긴장에 싸여 있을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이번 글을 시작한다.
얼마 전 블로그 필진 중 한 분과 대화를 하다가 대학 입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나에게 “왜 대학 입시에는 보험이 없을까”라고 물었다. 위험기피적인 개인들 사이에 위험한 사건이 있다면, 위험중립적인 기업에겐 늘 보험 상품을 판매하여 이윤을 얻을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왜 대학 입시에는 보험이 없는지.
1.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문제 때문일까? 대학 입시에 보험이 생긴다면, 상대적으로 붙을 확률이 높은 학생들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험사의 비용 부담이 증가하므로 보험료를 높일 수밖에 없고, 결국 그렇다면 더더욱 떨어질 확률이 높은 학생들만이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결국 보험료는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보험 상품이 사라진다. 하지만 보험사가 ‘신호(signal)’를 활용할 경우 이 문제는 대체로 해결된다. 이제까지 쌓아온 모의고사 성적이나 내신 성적, 기타 수상 실적이 좋은 학생들일수록 보험료를 깎아주며, 합격이 어려운 학교를 지원할수록 보험료를 높이는 것이다. 대입의 경우 학생의 합격 확률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가 쉬워 역선택의 문제는 많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2.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문제 때문일까? 대입 보험에 가입한 학생들은 위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학에 붙지 못하면 재수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위로금까지 주는 보험이 있다고 하자. 보험에 가입한 학생은 이제 대학 입시에 붙거나 붙지 않거나 ‘무차별’해질 것이다. 이 경우엔 학생의 위험 부담도 줄여주면서 학생이 공부도 열심히 하게 하는 최선(First-best)의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도 차선(Second-best)의 해결책은 존재하며, 이는 위험을 원래 수준과 0 사이의 적당한 수준으로 낮추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떨어질 경우, 재수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 또한 보험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여기까지 경제학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의문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내 나름대로 이유를 더 생각해 보았다.
3. 대학에 떨어진다는 것을 상상하기 싫어서일까? 보험에 가입하려면 내가 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지, 재수를 하게 될 경우 그 비용은 얼마나 될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대입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계산을 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심리적 비용)를 수반할 것이다. 대입을 가까이에 앞둔 시점에는 여러 대학의 입시 정보나 수능 시험 준비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시기이므로 학생과 학부모의 ‘심리적 안정’의 가치가 올라가고, ‘주의(Attention)’가 희소해지는 시기이다. 만일 할인율이 충분히 작아 현재가 미래보다 많이 중요하다면, ‘불합격 상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보험 가입에 따른 유의미한 추가적 비용으로 작용할 것이다.
4. 예산제약이나 손실회피 때문일까?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부분의 대학은 경쟁률이 2:1을 넘는다. 떨어질 확률이 상당히 큰 것이다. 따라서 보험 상품이 만들어질 경우, 보험료가 매우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한편 비행기 사고와 같이 보험 상품이 제공되는 대부분의 상황은 위험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작고, 따라서 보험료가 낮다. 보험료가 높아지면 두 가지 효과가 생기리라 예상된다. 우선, 일반적인 서민 가정이라면 소비를 줄이거나 대출을 받아서 보험료를 내야 할 텐데 이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둘째로, 심리학에서 연구된 ‘손실회피’ 경향 때문에 사람들은 보험료라는 확정된 손실을 대학 입시에 수반된 기대 손실보다 크게 인식하여,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한편 역선택의 문제 때문에 ‘합격 확률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들은 보험에 가입하기가 어려워, 보험료를 여러 해에 분산해서 지불하도록 하는 것도 어렵다.)
p.s.
3번과 4번 이유를 약간 변형하면 요즘 논란이 되는 노인보험(장기요양보험, 연금보험 등)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노후를 상상하는 데에 심리적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보험 가입을 계속 뒤로 미루게 되고, 노인보험은 보험료가 비싸지기 때문에 예산 제약과 손실 회피 심리에 부딪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