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의 첫 스타트를 끊었던 gbsky님의 성과공유제에 관련된 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다음의 대목이었습니다.
“이처럼 대기업의 실적이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에 힘입어 크게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면에서,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기술혁신에 대한 적절한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기실적으로 평가받는 대기업 실무자들’에 의해 업무가 주도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청관계’에서는 기술혁신에 대한 유인 제공보다는 당장의 제품단가를 낮추기 위한 가격 후려치기가 먼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대기업 내에 존재하는 일종의 주인대리문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착취적 관계로 전락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쉽게 말하면 삼성전자의 20년 뒤를 보면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것이 삼성전자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20년 뒤의 실적에 전혀 관심이 없는 실무자들은 지금의 실적을 올리기에 급급하여 중소기업을 착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상당히 일리 있어 보입니다. 또한 이는 이러한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삼성전자와 중소기업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결론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 글의 댓글에도 밝혔듯이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를 다시 예로 들면 건실한 기업을 오래 유지해 나가려는 이건희 회장과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실무자 간의 주인-대리인 문제는 수긍이 되었으나 “과연 이건희 회장이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원할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건희 회장이 실무자들에게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기업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이 회장이 실무자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아서 난처해하고 있는 모습도 상상하기 힘들었고요. 단적인 예로 gbsky님의 글에서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익공유제를 이건희 회장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라며 폄하하였습니다.
저의 생각은 삼성전자의 장기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이건희 회장조차 중소기업과의 이익 공유를 통한 협력관계 유지 및 기술개발 지원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 주장에 대한 몇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 조금 정리가 되었으므로 여기서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글로벌 경쟁의 심화입니다. 경쟁 업체가 세계 단위로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격화되고 새로운 상품의 출시 주기가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장기적인 기술발전에 중심을 두는 것은 그리 현명한 전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의 삼성은 혁신성은 떨어지지만 아이폰과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그리고 그보다 뛰어난 하드웨어를 장착하고도 아이폰보다 가격은 비슷한 (혹은 보조금 등을 포함하면 더 저렴한) 제품, 즉 갤럭시S를 신속히 출시하여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경쟁의 격화는 기업이 상대방의 전략에 대해 단기적인 대응, 특히 추격자 전략 (follower's strategy)를 사용하면서 더 낮은 생산비용을 통해 가격을 낮추어서 대응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증대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자랑하는 일본의 전자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둘째, 기술 발전의 불확실성, 불연속성입니다. 소니는 아날로그 TV에서 우월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으나 디지털 TV가 출시되면서 삼성전자에게 TV시장 지배력을 잃게 되었고 세계 철강산업의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었지만 역시 새로운 공법이 개발되었을 때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신일본제철이 이를 채택하여 미국을 앞지르게 됩니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의 포항제철이 이후 신일본제철을 다시 앞질렀고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기술개발”이 장기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니가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우수한 아날로그 TV기술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디지털TV 기술이 대세가 될 것을 예견하지 못했고 (불확실성), 아날로그 TV와 디지털 TV의 기술은 별개였던 것입니다 (불연속성). 현대에는 기술발전의 주기가 점점 짧아져서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연속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소기업과의 이익공유를 통해 협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비용절약을 통해 최대한 많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여 이후 기술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신속한 전환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최근 바이오, 제약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현재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 보다 신사업 발굴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셋째, 기술의 일반적 적용 가능성입니다. 쉽게 말하면 삼성전자가 중소기업을 도와줘서 그 중소기업이 훌륭한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면 이 중소기업은 다른 기업에게도 자신의 기술을 이용하여 제품을 납품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괜히 남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되겠지요. 대안으로 독점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 등이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독점계약을 맺는 대신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더 높은 단가를 요구하게 되겠지요. 이 때문에 지출되는 비용을 생각하면 (높은 단가, 계약 이행 감시 비용) 차라리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구조를 유지하면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익공유제/성과공유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즉 이 제도가 중소기업에게는 좋아 보이지만 삼성전자에게는 기업의 생존에 해가 되는 제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이러한 제도가 과연 국가의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삼성이 살아야 한국이 산다”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