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 글에서 roundmidnight님이 기회의 평등을 논할 때, 지능에 의한 소득 차이는 보전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를 간단한 게임이론 모형을 통해 보이셨지요. 이 모형에서 '기회의 평등'이란 사후적으로 관측된 소득을 다시 동일하게 나누는 것으로, '소득재분배'란 사전적으로 정해진 세율에 따라 세금을 걷어 이전하는 것으로 정의하셨습니다. 핵심은 천재가 노력하는 상황에서 범인이 직면하는 유인체계였던 것 같습니다. '기회의 평등' 상황에서는 범인이 노력하지 않는 편이 더 높은 효용을 얻지만, '소득재분배' 상황에서는 노력하는 편과 효용이 동일했습니다. 바로 노력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었죠. ‘기회의 평등’ 정책 아래서는 범인이 얻는 효용이 ‘관측되는 소득’의 격차가 커질수록 늘어나며, 천재의 전략이 주어진 아래에서 범인은 실제 ‘효용격차’는 같지만 태만할 때 ‘관측되는 소득’의 격차가 늘어나, 얻게 되는 몫이 커지는 것입니다. 반면 ‘소득재분배’의 상황에서는 범인이 소득 이전으로 받는 몫은 천재의 ‘관측되는 소득’에 정비례하므로, 자신의 전략과는 관계없이 천재가 어떤 전략을 택하는지에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니 일부러 태만할 유인이 발생할 이유가 없었죠.
하지만 설정하신 모형에서 말하는 ‘기회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과 구분하기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 다 노력을 했을 때 같은 소득을 받는 것 뿐 아니라 한쪽이 노력을 하고 한쪽이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관측되는 소득’을 동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같은 주장을 다른 근거를 들어 하고 싶습니다.
원래 이 논의는 John Roemer의 ‘기회의 평등’ 개념을 접하고 블로그 구성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작되었습니다. Roemer는 인간의 소득을 결정하는 요인을 환경적인 요인과 노력 요인으로 나누고, 오직 노력에 의해 소득이 결정되는 사회를 이상 사회로 꿈꿉니다. 그는 환경적 요인을 부모의 소득, 지능, 외모 등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모든 요소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노력’ 또한 완전히 개인이 통제하지 못한다고 보아, 노력의 level과 degree를 나누어 구분합니다. 노력의 절대적인 수준이 아니라, 같은 환경 집단 사람들에서 몇 분위 안에 드는 노력을 하느냐가 ‘진짜 노력’을 가늠할 기준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우선 저는 뢰머가 말하는 degree of effort 개념에 실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뢰머는 사람들을 ‘상황’에 따라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같은 사람들끼리는 동일한 소득을 받는 것이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사회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상황은 IQ 이외에는 동질적이고, IQ가 80인 그룹과 120인 그룹이 있을 때 80 그룹 중 소득이 상위 10%, 50%, 90%인 사람과 120 그룹 중 소득이 상위 10%, 50%, 90%인 사람의 소득이 동일해야 하는 것이죠. 같은 그룹 내에서의 상대적인 위치가 ‘진짜 노력’을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상황이 같은데 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노력을 할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저는 뢰머식의 ‘기회의 평등’ 개념이 인간의 개별성을 인위적으로 희석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봅니다. 지능에 따른 소득 차이를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지능을 개인의 소유로 볼 것인가와 직접 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위에서 말한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노력을 하는 이유는 개인의 선호가 달라서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여가와 소득 사이의 선호가 개인마다 다른 것이죠. 그렇다면 왜 부모의 소득, 지능, 외모, 체력 등 다른 요소는 개인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 선호의 차이를 특별히 개인의 고유한 엑기스로 인정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간의 자기 정체성은 여가와 소득 사이의 선호도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능, 외모, 사회관계 등 온갖 요소를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회의 평등’을 위해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 중 일부에 대해서는 그것이 소득에 미치는 효과를 보정해야 하겠지만, 과연 재능까지 포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기정체성이 희석되는 문제 이외에도, 사람들이 자기 재능을 따라 직업 선택을 할 유인을 없애 효율성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일반 대중이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분노하는 상황 또한 누군가 ‘재능은 없는데 인맥으로 성공한 때’이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 때문에 성공한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편 노력과 능력이 정말 쉽게 구분되는 개념일까요? 저는 머리가 좋은 것과 공부를 좋아하는 것을 실제로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을 정말 잘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수학 수업을 들으면 바로바로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일까요, 아니면 수리적 사고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수학적인 바탕을 많이 쌓아왔고 그것이 반영된 결과일까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하고 각각 자신의 그룹에서 같은 백분위에 위치할 때, 그것이 두 사람의 동일한 '노력'의 결과이며, 동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만일 노력의 실체가 노력에 따른 '비효용'이라면) 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사회 전체 후생에 얼마나 기여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개인적 비효용을 얻었느냐'를 기준으로 사회적 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강한 ‘기회의 평등’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적 세계와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중립적인 정부’와 ‘경제적 행위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나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자발적 거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연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세계에서 ‘기회의 평등’을 인간의 손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준의 부의 재분배가 필요할 텐데, 과연 완력 없이 가능할지 걱정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이란, 사람들의 초기 '상황'을 인위적으로 동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오직 '사회 전체 후생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를 기준으로 보상받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이란, 사람들의 초기 '상황'을 인위적으로 동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오직 '사회 전체 후생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를 기준으로 보상받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