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제주대에서의 간담회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비명문대 출신들의 구직난 해소를 위해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대해 지방대 졸업자 채용할당제 및 학력·학벌 블라인드 채용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채용할당제는 말 그대로 채용하는 신규직원 중 일정분을 지방대 졸업생들에게 할당하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학력·학벌 블라인드 채용제는 입사서류에 출신학교를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관련기사: 문재인, "지방대생 위해 학력 블라인드 실시할 것")
(관련기사: 문재인, "지방대생 위해 학력 블라인드 실시할 것")
지방대 졸업자 채용할당이나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면 물론 지방대 출신들의 구직난은 개선되겠지만, 반대로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의 구직난은
심화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는 피해를 주고, 누구에게는
이득을 주는 정책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책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안된 두 정책 중 어떤 것이 좀 더 나은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먼저 할당제를 살펴봅시다. 이 정책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아마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우선 이 정책이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이 정책이 효율성을 개선시키려면 아마도 할당제를 통해 뽑히게 된 지방대 졸업자들의
생산성(일하는 능력)이 할당제를 통해 못 뽑히게 된 서울지역
대학 졸업자들의 생산성보다 높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기 위해서는, 할당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고용주가 기대되는 생산성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인해서도 지방대학 출신들을
뽑기를 꺼려하고 있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기대 생산성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채용을
한다면,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황에서의 채용이 할당제라는 새로운 제약조건이 주어졌을 때의 채용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가져다 줄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고용주가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을 선호하는 이유가 오로지 일을 더 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면 이 정책은 효율성을 개선하지 못할 것이고, 반면에 그렇지 않다면 효율성을 개선할 여지가 있습니다.
저는 아마 후자가 사실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직원들의 대부분이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일 것이므로, 아무래도 예상되는 생산성이 동일하더라도 자기들과 유사한 부류인 사람을 뽑고 싶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을 때 일종의 시너지로 인한 생산성의 추가 향상도 있을 것이나, 그러한 생산성의 향상분 이상으로 차별이 있지 않을까 추측만 해 봅니다. 만약
제 추측이 맞다면, 그리고 지방대 졸업생에 대한 할당 비율이 지나치게 크지 않다면 (지나치게 크다면 오히려 생산성이 더 높은 서울지역 졸업생들이 뽑히지 못하므로),
할당제가 그 조직의 효율성을 늘릴 것입니다.
또한 할당제가 형평성을 개선시키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고용주가 지방대 출신들을 꺼리는 이유가 생산성만의 차이에 의해서라면 이를 차별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입니다. 수능 성적이 낮아서 대학에 못 간 것을 두고 차별이라고 할 수 없듯이요. 반면
고용주가 생산성뿐만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해서 지방대 출신의 채용을 꺼려한다면 이는 지방대 출신에 대한 차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사실일 경우, 할당제가 차별을 없애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블라인드 채용은 어떨까요? 우선 이 제도가 형평성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지 생각해 봅시다.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생산성 외의 다른 이유로 인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문재인 고문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입사원 선발 때 서류전형에서 지방대학
출신 또는 비명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원자를 배제하면 실력과 상관없이 학력ㆍ학벌 차별이 생기고 모순된 문제점이 파생한다… KBS의 경우 정연주 전 사장이
실제 실행한 블라인드 채용 이후 지방대 출신이 30%로 늘어났다… 지방대 출신들도 똑같은 기회를 주면 대등한 경쟁이 가능하다.”
정말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것이 지방대생과 비지방대생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고, "대등한 경쟁"을 시키는 것인가요? 오히려 심각한 역차별을 하는 것이겠죠. 예를 들어 채용이 학벌과 토익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때 한 학생은
서울대 출신에 토익이 900점이고, 한 학생은 비명문대 출신에
토익이 910점입니다. 블라인드 채용이 이루어진다면 후자의
학생이 뽑힐 것입니다. 이게 바람직한가요? 블라인드 채용은
학벌에 상대적인 강점이 있는 학생에게 그 장점을 완전하게 앗아가는 제도입니다.
더욱더 심각한 역차별 현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학교마다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필요한 실력의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명문대에서 3.4의 학점을 얻는 것은 비명문대에서 3.6를 얻는 것보다 힘들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되면 후자의 학생이 선택되겠죠.
효율성 향상 역시 기대하기 힘듭니다. 대학 졸업자들의 기대 생산성을 비교하는 데에 학벌 및 학점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비유하자면, 대학 입시에서 ‘언수외’를 잘하는 학생이 지나치게 선호받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 갑자기 정부가 모든 대학들에게 언수외를 무시하고 탐구영역
성적으로만 학생들을 뽑게끔 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 해 시험치는 모든 학생들은 언수외의 중요성을
몇 년 전부터 인지하고 뼈빠지게 공부해 왔는데 말이죠.
정리하면, 전 블라인드 채용제는 정말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채용할당제의 경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나, 할당량이 지나치게 크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심각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